일상명상
    욕망의 무게     지난 11월 22일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거의 2년에 한 번 꼬박 이사한 셈이다. 이제 이사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지경에 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사 견적을 받아들 때면 내 욕망과 허세를 톤 단위로 무게 매긴 것 같아 매번 부끄럽다.     여섯 번째 이사는 십 년 전이었다. 마당이 있는 복층 구조의 고기동 주택은 평수도 컸지만 창고 공간이 넉넉해서 나와 남편의 취미 생활 장비들이 집 안팎에 즐비했다. 그 집엔 베이킹 재료용 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만 네 개였다. 당시 남편은 캠핑 장비, 농기구, 가정용 공구에 전문 용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택보다 수납공간이 적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살림들을 나누고 버렸지만 남은 짐의 무게는 8톤. 이사 트럭에 실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안에서 때깔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뒤집어쓴 먼지와 치렁치렁 매달린 거미줄만 크게 보였다. 8톤의 이삿짐을 하루 종일 싸고 풀었던 그날. 이사를 마치고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사지 말자!       고기동 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커다란 모기장 속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고기동 집엔 물건도 많았고... 어리던 놈들과 추억도 많았다...       도전! 5톤!     현재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장롱이 없어서 전셋집을 구할 때 붙박이장의 유무를...
    욕망의 무게     지난 11월 22일 이사를 했다. 결혼하고 열 번째 이사였다. 거의 2년에 한 번 꼬박 이사한 셈이다. 이제 이사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났는지 크게 힘들이지 않고 해내는 지경에 왔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사 견적을 받아들 때면 내 욕망과 허세를 톤 단위로 무게 매긴 것 같아 매번 부끄럽다.     여섯 번째 이사는 십 년 전이었다. 마당이 있는 복층 구조의 고기동 주택은 평수도 컸지만 창고 공간이 넉넉해서 나와 남편의 취미 생활 장비들이 집 안팎에 즐비했다. 그 집엔 베이킹 재료용 냉장고를 포함하여 냉장고만 네 개였다. 당시 남편은 캠핑 장비, 농기구, 가정용 공구에 전문 용접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주택보다 수납공간이 적은 아파트로 옮기기 위해 많은 살림들을 나누고 버렸지만 남은 짐의 무게는 8톤. 이사 트럭에 실리기 위해 마당에 늘어선 물건들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집 안에서 때깔 좋던 모습은 간 데 없고 뒤집어쓴 먼지와 치렁치렁 매달린 거미줄만 크게 보였다. 8톤의 이삿짐을 하루 종일 싸고 풀었던 그날. 이사를 마치고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사지 말자!       고기동 집은 여름에 모기가 많았다. 여름이면 온 식구가 커다란 모기장 속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 고기동 집엔 물건도 많았고... 어리던 놈들과 추억도 많았다...       도전! 5톤!     현재 우리 집에는 가구가 별로 없다. 장롱이 없어서 전셋집을 구할 때 붙박이장의 유무를...
도라지
2024.12.22 | 조회 525
일상명상
  자전거라구요?   남편이 처음 자전거 이야기를 꺼낸 건 작년 봄, 환갑 생일이 지낸 직후였다. 그 무렵 남편은 대동맥 파열로 수술을 받은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바싹 마른 낙엽 같았다. 그런 남편이 몸에 딱 붙는 옷에 허리를 숙인 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남편은 운동은커녕 활동적인 것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결혼 초 30인치였던 허리사이즈가 36인치에 육박하도록 고혈압 가족력이 걱정되어 운동 좀 하라는 내 성화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푸시업, 플랭크, 풀업 등을 시작하더니 덤벨과 바벨을 들여 놓고 꾸준히 운동 강도를 높여갔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엄청 반가웠다. 그런데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한 지 딱 일 년 만에 남편이 응급실로 실려 갈 줄이야. 나중에 알고 보니, 강도 높은 운동이 갑작스러운 대동맥 파열의 주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까? 그럴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 비만에 고혈압, 고지혈증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성은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가 됐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남편은 건강 관리에 신중해졌고 꼼꼼하게 실천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잘 관리하려면 매일 아침마다 하는 무산소 운동뿐 아니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남편의 말에는 나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꼭 자전거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자전거 둘 곳이 없다, 자전거를 사는 대신 집에 있는...
  자전거라구요?   남편이 처음 자전거 이야기를 꺼낸 건 작년 봄, 환갑 생일이 지낸 직후였다. 그 무렵 남편은 대동맥 파열로 수술을 받은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바싹 마른 낙엽 같았다. 그런 남편이 몸에 딱 붙는 옷에 허리를 숙인 채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남편은 운동은커녕 활동적인 것과는 영 거리가 멀었다. 결혼 초 30인치였던 허리사이즈가 36인치에 육박하도록 고혈압 가족력이 걱정되어 운동 좀 하라는 내 성화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 푸시업, 플랭크, 풀업 등을 시작하더니 덤벨과 바벨을 들여 놓고 꾸준히 운동 강도를 높여갔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엄청 반가웠다. 그런데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한 지 딱 일 년 만에 남편이 응급실로 실려 갈 줄이야. 나중에 알고 보니, 강도 높은 운동이 갑작스러운 대동맥 파열의 주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까? 그럴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 비만에 고혈압, 고지혈증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성은 언제든,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가 됐을 것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남편은 건강 관리에 신중해졌고 꼼꼼하게 실천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잘 관리하려면 매일 아침마다 하는 무산소 운동뿐 아니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남편의 말에는 나도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꼭 자전거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자전거 둘 곳이 없다, 자전거를 사는 대신 집에 있는...
오영
2024.11.10 | 조회 588
일상명상
순례의 추억     추석연휴에 문탁의 친구 둘과 함께 오랫 동안 꿈꾸어 왔던 시코쿠 순례를 다녀왔다. 시코쿠 순례의 전체 코스는 88개 절을 도는 1200키로의 장대한 여정이다. 도보로 88개 절을 도는 데는 보통 40일 이상이 걸리는데, 우리는 도보를 기본으로 하되,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5일 동안 46번절에서 64번절까지 18개의 절을 참배했다(이 중에서 60번 절은 패쓰). 우리가 선택한 루트가 절과 절 사이가 비교적 가까운 곳이어서 18개절 사이의 총 거리는 약 90키로. 모든 루트를 걸어서 순례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오며가며 실제 걸은 거리도 비슷하니 순수 '아루키 오헨로'(걸어서 순례하는 사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더위에 웬만큼 걸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된 건 15년 전(2009년),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도보 여행가 김남희님의 글을 통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말고도 가까운 일본에 순례길이 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뒤 김남희님과 비슷한 시기에 시코쿠 순례길 1200키로를 완주한 경민선님이 쓴 <일생에 한번은 순례 여행을 떠나라>를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순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구도의 길, 순례   일반적인 여행과 순례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행과 순례 모두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떠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여행이 관광과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순례는 종교적인 장소를 방문하여 성스러움과 접촉하고 영성을 고양하는 수행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무슬림들은 성스러운 돌 카바가 있는 메카 순례를 의무로 여긴다. 메카는...
순례의 추억     추석연휴에 문탁의 친구 둘과 함께 오랫 동안 꿈꾸어 왔던 시코쿠 순례를 다녀왔다. 시코쿠 순례의 전체 코스는 88개 절을 도는 1200키로의 장대한 여정이다. 도보로 88개 절을 도는 데는 보통 40일 이상이 걸리는데, 우리는 도보를 기본으로 하되,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5일 동안 46번절에서 64번절까지 18개의 절을 참배했다(이 중에서 60번 절은 패쓰). 우리가 선택한 루트가 절과 절 사이가 비교적 가까운 곳이어서 18개절 사이의 총 거리는 약 90키로. 모든 루트를 걸어서 순례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오며가며 실제 걸은 거리도 비슷하니 순수 '아루키 오헨로'(걸어서 순례하는 사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무더위에 웬만큼 걸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 시코쿠 순례길을 알게 된 건 15년 전(2009년), 한겨레 신문에 연재된 도보 여행가 김남희님의 글을 통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말고도 가까운 일본에 순례길이 있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뒤 김남희님과 비슷한 시기에 시코쿠 순례길 1200키로를 완주한 경민선님이 쓴 <일생에 한번은 순례 여행을 떠나라>를 읽으며 나도 언젠가는 순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구도의 길, 순례   일반적인 여행과 순례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행과 순례 모두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떠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여행이 관광과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순례는 종교적인 장소를 방문하여 성스러움과 접촉하고 영성을 고양하는 수행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무슬림들은 성스러운 돌 카바가 있는 메카 순례를 의무로 여긴다. 메카는...
요요
2024.10.14 | 조회 602
일상명상
  농부되기의 어려움     남편은 눈 뜨자마자 텃밭을 둘러보러 나간다. 들어오는 남편 손엔 아침에 먹을 빨간 토마토가 들려 있지만 그새 모기도 남편의 피로 아침을 드신 모양이다. 남편이 온몸을 긁적긁적한다. 그러니까 긴팔에 긴바지 입고 밭에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도 수시로 밭일, 마당일 하러 나가는 남편은 더운 날씨에 여러 번 옷 챙겨 입는 걸 귀찮아한다. 반면 바깥 일하러 나가려면 벌레와 자외선이 두려워 중무장하는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밭에 나가질 않는다. 갑옷 같은 작업복을 입고 벗고, 입고 벗고. 그건 못 할 일이라 여름 텃밭은 꼭 할 일이 있지 않는 한 최대한 나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락이 궁금해야 진짜 농부라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3도 4촌(일주일에 3일은 도시, 4일은 시골)의 생활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양양 골짜기에서 텃밭 농사 거들며 사는 건 여간 이상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시어머님은 나에게 물으신다. “니는 거 가서 뭐하노?”, 친오빠도 물었었다. “풀 이름은 알어?” 알다마다! 이제 어지간한 밭작물은 떡잎만 봐도 이름을 맞출 수 있다.     물론 촌생활은 쉽지 않았다. 화분에 담긴 흙이 아닌 지구의 표면, 그것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경작지의 흙은 각종 벌레의 유충에서부터 설치류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는 동물들은 알아서 싫었고, 모르는 동물들은 몰라서 무서웠다. 지금은 동물들과 적당히 안면 튼 지 오래라 호미질 끝에 지렁이를 건드리면 미안해서 촉촉한 흙으로 덮어주고, 두더지의 흔적을...
  농부되기의 어려움     남편은 눈 뜨자마자 텃밭을 둘러보러 나간다. 들어오는 남편 손엔 아침에 먹을 빨간 토마토가 들려 있지만 그새 모기도 남편의 피로 아침을 드신 모양이다. 남편이 온몸을 긁적긁적한다. 그러니까 긴팔에 긴바지 입고 밭에 나가라고 잔소리를 해도 수시로 밭일, 마당일 하러 나가는 남편은 더운 날씨에 여러 번 옷 챙겨 입는 걸 귀찮아한다. 반면 바깥 일하러 나가려면 벌레와 자외선이 두려워 중무장하는 나는 하루에 한 번 이상 밭에 나가질 않는다. 갑옷 같은 작업복을 입고 벗고, 입고 벗고. 그건 못 할 일이라 여름 텃밭은 꼭 할 일이 있지 않는 한 최대한 나가고 싶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락이 궁금해야 진짜 농부라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3도 4촌(일주일에 3일은 도시, 4일은 시골)의 생활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양양 골짜기에서 텃밭 농사 거들며 사는 건 여간 이상해 보이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시어머님은 나에게 물으신다. “니는 거 가서 뭐하노?”, 친오빠도 물었었다. “풀 이름은 알어?” 알다마다! 이제 어지간한 밭작물은 떡잎만 봐도 이름을 맞출 수 있다.     물론 촌생활은 쉽지 않았다. 화분에 담긴 흙이 아닌 지구의 표면, 그것도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경작지의 흙은 각종 벌레의 유충에서부터 설치류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는 동물들은 알아서 싫었고, 모르는 동물들은 몰라서 무서웠다. 지금은 동물들과 적당히 안면 튼 지 오래라 호미질 끝에 지렁이를 건드리면 미안해서 촉촉한 흙으로 덮어주고, 두더지의 흔적을...
도라지
2024.09.11 | 조회 794
일상명상
  취약함 마주하기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어떤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왔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는데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빴다. 뭐지 싶었는데 그 사람이 나보다 한층 아래에서 내리는 것을 보니 불현듯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아래층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였는데 대뜸 내가 베란다 난간에 널어둔 이불이 자기 집 창을 가린다고 따졌다. 내가 위층에 산다고 했더니 자신과 같은 1호 라인에 사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곧 같은 라인 위층이 아니라 맞은 편 2호에 산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별다른 태도 변화 없이 이불을 내다 넌 행위가 마치 불법인 것 마냥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몹시 불쾌하고 황당해서 더는 아는 척 하지 않고 지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그 잠깐 사이에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오랜 전 일인데도 쿨하지 못하게 반응한 나 자신을 탓하고 분석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스스로 통제력을 잃었다고 여기는 순간에 감정적으로 취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땐 마음이 쪼그라들고 동요되는 바람에 지금 벌어지는 상황의 맥락을 놓치고 적절한 대응이나 능동적인 대처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책이나 원망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그런 취약함을 극복하려고 애썼지만 종종 제자리걸음하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불교공부를 시작할 때는 그동안의 공부가 취약한 자아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채우고 쌓아올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허물고 비워내는 공부를 하겠노라 다짐했었다.    ...
  취약함 마주하기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어떤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왔다. 잠깐 시선이 마주쳤는데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빴다. 뭐지 싶었는데 그 사람이 나보다 한층 아래에서 내리는 것을 보니 불현듯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아래층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을 때였는데 대뜸 내가 베란다 난간에 널어둔 이불이 자기 집 창을 가린다고 따졌다. 내가 위층에 산다고 했더니 자신과 같은 1호 라인에 사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곧 같은 라인 위층이 아니라 맞은 편 2호에 산다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별다른 태도 변화 없이 이불을 내다 넌 행위가 마치 불법인 것 마냥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몹시 불쾌하고 황당해서 더는 아는 척 하지 않고 지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그 잠깐 사이에 여러 생각들이 오갔다. 오랜 전 일인데도 쿨하지 못하게 반응한 나 자신을 탓하고 분석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스스로 통제력을 잃었다고 여기는 순간에 감정적으로 취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땐 마음이 쪼그라들고 동요되는 바람에 지금 벌어지는 상황의 맥락을 놓치고 적절한 대응이나 능동적인 대처를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책이나 원망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그런 취약함을 극복하려고 애썼지만 종종 제자리걸음하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불교공부를 시작할 때는 그동안의 공부가 취약한 자아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채우고 쌓아올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허물고 비워내는 공부를 하겠노라 다짐했었다.    ...
오영
2024.08.10 | 조회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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