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짝에 도라지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혼자가 아니야   산속에서 오두막살이 중이라고 하면 자주 듣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 “애들이 좋아하죠?” 망설임 없이 답한다. “전혀요!”     나에게는 육군 병장을 전역한 장성한 아들이 둘이나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양양으로 두 집 살림을 냈지만 아이들이 지금까지 양양에 방문한 횟수는 둘을 합쳐 열 번이 안 된다. 와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 집엔 숨을 공간이 없다. 거실과 주방에 경계가 없으니 개방감은 좋지만 사적인 시공간은 확보되지 않는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몇 날 며칠을 부모와 얼굴 맞대고 지내는 건 서로 간에 못할 짓이긴 하다. 안 싸우면 다행이다.      방이 하나 있기는 한데 문 닫고 들어가도 편안한 시간을 보내기 힘든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혼자 있어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사람 몸에 올라타고, 녀석들의 신체 일부인 스마트폰 불빛에 환호하며 달려드는 존재. 바로 벌레다. 주인집 아들들은 고기를 구워 줄 수 있다는 시골 내외의 꼬임에 넘어가 멋 모르고 산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는 안 오고 싶을 거라며 돌아갔다. 군입대 후에 두어번 방문을 했었는데 아마 그걸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말리는 표고버섯에 위에  방아깨비       벌레의 계절   양양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서로 편한 시간을 맞춰보고 방문 날짜를 잡는다. 혹서기는 서로 간에 더 이상 벗고 지내기 힘든 수위와 에어컨이 없음을 고려하여 피한다. 혹한기는 예상치...
도라지
2025.12.09 | 조회 172
산골짝에 도라지
    티빙을 해지했다   8월 초, 롯데가 가을야구에 가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봄에만 반짝 잘하고 여름부터 야구 못하기로 소문난 롯데라지만 올해는 달라 보였다. 줄곧 3위를 지키면서 2등 LG와 순위 싸움을 하는 동안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확률은 80퍼센트였다. 아들들과 사직으로 가을야구 보러 갈 생각만 하면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야구 시즌이면 저녁 밥상은 TV 앞에 차려진다. 롯데가 잘하고 있으면 밥상 분위기가 좋다. 하지만 욕 나오는 플레이가 시작되면(자주 그렇다) 밥맛과 품위를 동시에 지키기 위해 급히 화면을 바꿔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무려 80퍼센트라는 가을야구 확률을 제 발로 걷어차고 연패의 기록을 써가던 즈음(결국 롯데는 12연패를 했다). 타자들은 방망이 휘두르는 방법을 까먹었고,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이 어딘지 모르는 것 같았다. 가을야구 가기 싫은 선수들의 간절함이 전해지는 플레이를 지켜보다 지친 나는 어느 저녁 밥상머리에서 외쳤다. “야구 그만!!!”     양양집에서 야구를 보려면 티빙 구독은 필수다. 롯데가 연패를 거듭하는 동안 티빙 구독과 해지를 반복하며 매일 저녁 이상행동을 보이는 부인을 염려하던 남편은 화면을 유튜브로 급히 전환했다. 남편에게 심심한 도파민을 제공해 주는, 마치 자연사 박물관 같은 남편의 알고리즘 속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가운데 롯데는 7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7월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버섯은 유튜브를 타고   거주지의 위치는 계절에 따른 음식 접근성과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의 장래 희망은 수렵-채집인. 최근 남편의 어깨와 나의 손가락이...
    티빙을 해지했다   8월 초, 롯데가 가을야구에 가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봄에만 반짝 잘하고 여름부터 야구 못하기로 소문난 롯데라지만 올해는 달라 보였다. 줄곧 3위를 지키면서 2등 LG와 순위 싸움을 하는 동안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확률은 80퍼센트였다. 아들들과 사직으로 가을야구 보러 갈 생각만 하면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야구 시즌이면 저녁 밥상은 TV 앞에 차려진다. 롯데가 잘하고 있으면 밥상 분위기가 좋다. 하지만 욕 나오는 플레이가 시작되면(자주 그렇다) 밥맛과 품위를 동시에 지키기 위해 급히 화면을 바꿔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가 무려 80퍼센트라는 가을야구 확률을 제 발로 걷어차고 연패의 기록을 써가던 즈음(결국 롯데는 12연패를 했다). 타자들은 방망이 휘두르는 방법을 까먹었고, 투수들은 스트라이크 존이 어딘지 모르는 것 같았다. 가을야구 가기 싫은 선수들의 간절함이 전해지는 플레이를 지켜보다 지친 나는 어느 저녁 밥상머리에서 외쳤다. “야구 그만!!!”     양양집에서 야구를 보려면 티빙 구독은 필수다. 롯데가 연패를 거듭하는 동안 티빙 구독과 해지를 반복하며 매일 저녁 이상행동을 보이는 부인을 염려하던 남편은 화면을 유튜브로 급히 전환했다. 남편에게 심심한 도파민을 제공해 주는, 마치 자연사 박물관 같은 남편의 알고리즘 속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가운데 롯데는 7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7월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버섯은 유튜브를 타고   거주지의 위치는 계절에 따른 음식 접근성과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의 장래 희망은 수렵-채집인. 최근 남편의 어깨와 나의 손가락이...
도라지
2025.11.09 | 조회 263
산골짝에 도라지
  박꽃이 준 선물   80평생을 편식으로 사셨던 입 짧은 아빠와 그런 남편의 입맛을 방어하며 밥상 차리기 바빴던 엄마. 장인 장모의 면면을 알게 된 남편은 내게 물었다. “대체 뭘 먹고 자랐어?” 처갓집 밥상에서 구경한 반찬이라곤 호박나물과 계란찜, 소고기 무국과 김치찌개가 다였을 테니 남편의 질문은 일면 합당하다. 두 분 다 충청도 분이시라 “충청도 밥상이 뭐 별거 있것슈~”라고 눙쳐도 되려나? 하지만 최근에 혼자되신 엄마를 돌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엄마 또한 아빠 못지않게 편식이 심하다는 사실. 친정집 밥상은 두 분의 교집합이 빚어낸 소박함의 정수였다.       결혼 이후 가장 좋았던 건 내 부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보고 듣고 맛본 다양한 음식을 흉내 내며 경험했던 맛의 신세계. 그곳에는 맛의 오지 뿐만 아니라 나만의 비경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편식 DNA가 아로새겨진 나에겐 숨길 수 없는 편력도 내재되어 있었으니 주로 슴슴하고, 식감은 부드럽지만 씹는 맛 또한 놓치지 않는 음식을 발굴하여 애정한다는 점인데 이것은 치아와 위장의 건강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올해는 여름을 지나며 가지 구이, 노각 무침, 깻잎 찜이 밥상의 절대 강자였다. 가지, 오이, 깻잎은 여전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텃밭 터줏대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9월과 동시에 새롭게 더해진 재료가 있었다. 여름밤을 밝히던 하얀 박꽃이 빚어낸 둥근 ‘박’이다.       박꽃은 저녁 무렵 피어 다음 날 아침에 시든다. 박꽃을 월하미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박꽃이 준 선물   80평생을 편식으로 사셨던 입 짧은 아빠와 그런 남편의 입맛을 방어하며 밥상 차리기 바빴던 엄마. 장인 장모의 면면을 알게 된 남편은 내게 물었다. “대체 뭘 먹고 자랐어?” 처갓집 밥상에서 구경한 반찬이라곤 호박나물과 계란찜, 소고기 무국과 김치찌개가 다였을 테니 남편의 질문은 일면 합당하다. 두 분 다 충청도 분이시라 “충청도 밥상이 뭐 별거 있것슈~”라고 눙쳐도 되려나? 하지만 최근에 혼자되신 엄마를 돌보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엄마 또한 아빠 못지않게 편식이 심하다는 사실. 친정집 밥상은 두 분의 교집합이 빚어낸 소박함의 정수였다.       결혼 이후 가장 좋았던 건 내 부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보고 듣고 맛본 다양한 음식을 흉내 내며 경험했던 맛의 신세계. 그곳에는 맛의 오지 뿐만 아니라 나만의 비경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편식 DNA가 아로새겨진 나에겐 숨길 수 없는 편력도 내재되어 있었으니 주로 슴슴하고, 식감은 부드럽지만 씹는 맛 또한 놓치지 않는 음식을 발굴하여 애정한다는 점인데 이것은 치아와 위장의 건강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다.       올해는 여름을 지나며 가지 구이, 노각 무침, 깻잎 찜이 밥상의 절대 강자였다. 가지, 오이, 깻잎은 여전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텃밭 터줏대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9월과 동시에 새롭게 더해진 재료가 있었다. 여름밤을 밝히던 하얀 박꽃이 빚어낸 둥근 ‘박’이다.       박꽃은 저녁 무렵 피어 다음 날 아침에 시든다. 박꽃을 월하미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도라지
2025.09.10 | 조회 312
산골짝에 도라지
    오늘은 뭐 먹지?     여름 텃밭의 주인은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 당근, 깻잎이다. 텃밭 셔틀 몇 번이면 밥상은 풍성해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것 같은 도시생활에 비해 여름철 시골 살이는 경제적인 면에서 월등하다. 근처에 구멍가게 하나 없고, 배달 음식은 상상할 수 없으니 돈은 쓸래야 쓸 데가 없어 좋다. 하지만 애환은 어디에나 있는 법. 문득 밥하기 귀찮고, 더위에 입맛도 없는 것 같고, 특별한 뭔가 먹고 싶어지는 날은 난감하다.       “오늘 뭐 먹지?” 가지, 호박, 오이로 매 끼니 돌려먹다 지겨워지면 남편에게 묻는다. 남편은 간단하게 국수나 먹자고 할 때가 많은데, 국수가 후루룩 먹기에나 그렇지 어떤 국수도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좋건 싫건 산속에서 선택지는 별로 없다. 그나마 쉬운 게 국수 일테니, 나와 입지조건이 비슷한 곳에 사시는 스님들이 국수를 왜 ‘승소(僧笑)'라고 부르셨는지 알 것 같다.          여름이면 양양에 도착해서 마트 들러 계란만 사면 된다. 장바구니는 가벼워도 텃밭에 먹을 것들이 넘친다. 이 날은 아침 상을 차리고 색감이 예뻐 사진 찍기 바빴다. 전날 구운 통밀빵에 커피를 더해 아침식사를 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육수 내고 면을 삶아야 하는 잔치국수는 벌써 냄비만 두 개가 필요하다. 고명으로 호박이라도 볶아내려면 여기에 프라이팬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쯤 되면 있는 반찬 해서 밥해 먹을 걸 슬슬 후회가...
    오늘은 뭐 먹지?     여름 텃밭의 주인은 토마토, 가지, 고추, 오이, 호박, 당근, 깻잎이다. 텃밭 셔틀 몇 번이면 밥상은 풍성해진다.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것 같은 도시생활에 비해 여름철 시골 살이는 경제적인 면에서 월등하다. 근처에 구멍가게 하나 없고, 배달 음식은 상상할 수 없으니 돈은 쓸래야 쓸 데가 없어 좋다. 하지만 애환은 어디에나 있는 법. 문득 밥하기 귀찮고, 더위에 입맛도 없는 것 같고, 특별한 뭔가 먹고 싶어지는 날은 난감하다.       “오늘 뭐 먹지?” 가지, 호박, 오이로 매 끼니 돌려먹다 지겨워지면 남편에게 묻는다. 남편은 간단하게 국수나 먹자고 할 때가 많은데, 국수가 후루룩 먹기에나 그렇지 어떤 국수도 간단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좋건 싫건 산속에서 선택지는 별로 없다. 그나마 쉬운 게 국수 일테니, 나와 입지조건이 비슷한 곳에 사시는 스님들이 국수를 왜 ‘승소(僧笑)'라고 부르셨는지 알 것 같다.          여름이면 양양에 도착해서 마트 들러 계란만 사면 된다. 장바구니는 가벼워도 텃밭에 먹을 것들이 넘친다. 이 날은 아침 상을 차리고 색감이 예뻐 사진 찍기 바빴다. 전날 구운 통밀빵에 커피를 더해 아침식사를 했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어요     육수 내고 면을 삶아야 하는 잔치국수는 벌써 냄비만 두 개가 필요하다. 고명으로 호박이라도 볶아내려면 여기에 프라이팬이 하나 더 추가된다. 이쯤 되면 있는 반찬 해서 밥해 먹을 걸 슬슬 후회가...
도라지
2025.08.10 | 조회 391
산골짝에 도라지
  꽃밭이나 텃밭이나!     나는 귀촌한 사람들을 텃밭파와 가드닝파로 나누곤 한다. 기준은 애써 가꾸는 것이 ‘먹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이다. 텃밭이든 정원이든 가꾸는 일은 사람 손을 끝없이 요구하는데, 가심비보다 가성비를 우선하는 나로서는 먹지도 못할 꽃을 땀 흘려 가꾸는 사람들의 감수성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산속에 들어와 살면서 처음부터 꽃을 키우는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선화, 백합, 채송화와 과꽃이 차례로 피는 풍경도 상상했었다. 땅 일구고 파종하고 거둬 먹으며 텃밭의 계절 경치를 즐기는 사이 플라워 가든은 점점 멀어졌을 뿐이다.     문 열고 나가면 사방천지 꽃과 나무.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산야초들은 돌아가며 피고 진다. 그뿐인가! 텃밭도 게으른 일꾼을 만난 덕에 꽃잔치는 흔한 일이다. 작고 하얀 부추꽃, 연노랑 쑥갓꽃을 본적 있는가? 수확할 때를 놓친 아쉬움은 플라워 텃밭의 반전으로 만회되기도 하니 정원을 가꾸지는 않지만 주변에 꽃이 만발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       부추를 부지런히 베어 먹으면 저 하얗고 예쁜 부추꽃을 절대 만날 수 없다. ^^       자두 따러 왔던 로이가 쑥갓꽃을 한줌 예쁘게 꺾어놓고 갔다.        너, 이름이 뭐니?   양양에 온 첫 해엔 텃밭 관리에 의욕이 넘쳤다. 공단 같은 텃밭을 만들고 싶어 재배할 목적이 아닌 풀들은 다 뽑아낼 기세로 덤볐다. 그런데 낯선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유독 성장이 빨라 키가 크고, 몸 전체에 털이 난 풀이었다. 처음 보는 풀이다 싶었는데...
  꽃밭이나 텃밭이나!     나는 귀촌한 사람들을 텃밭파와 가드닝파로 나누곤 한다. 기준은 애써 가꾸는 것이 ‘먹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이다. 텃밭이든 정원이든 가꾸는 일은 사람 손을 끝없이 요구하는데, 가심비보다 가성비를 우선하는 나로서는 먹지도 못할 꽃을 땀 흘려 가꾸는 사람들의 감수성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산속에 들어와 살면서 처음부터 꽃을 키우는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선화, 백합, 채송화와 과꽃이 차례로 피는 풍경도 상상했었다. 땅 일구고 파종하고 거둬 먹으며 텃밭의 계절 경치를 즐기는 사이 플라워 가든은 점점 멀어졌을 뿐이다.     문 열고 나가면 사방천지 꽃과 나무.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산야초들은 돌아가며 피고 진다. 그뿐인가! 텃밭도 게으른 일꾼을 만난 덕에 꽃잔치는 흔한 일이다. 작고 하얀 부추꽃, 연노랑 쑥갓꽃을 본적 있는가? 수확할 때를 놓친 아쉬움은 플라워 텃밭의 반전으로 만회되기도 하니 정원을 가꾸지는 않지만 주변에 꽃이 만발하지 않았던 적도 없다.       부추를 부지런히 베어 먹으면 저 하얗고 예쁜 부추꽃을 절대 만날 수 없다. ^^       자두 따러 왔던 로이가 쑥갓꽃을 한줌 예쁘게 꺾어놓고 갔다.        너, 이름이 뭐니?   양양에 온 첫 해엔 텃밭 관리에 의욕이 넘쳤다. 공단 같은 텃밭을 만들고 싶어 재배할 목적이 아닌 풀들은 다 뽑아낼 기세로 덤볐다. 그런데 낯선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유독 성장이 빨라 키가 크고, 몸 전체에 털이 난 풀이었다. 처음 보는 풀이다 싶었는데...
도라지
2025.07.14 | 조회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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