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노자의 도를 아십니까? (3)유약(柔弱) – 상선약수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도덕경』 출전으로 유명한 말이다. 내가 앞서 풀이했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나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는 노자의 말인 줄도 모르고 사용되기 일쑤이다. 그에 비하면 상선약수는 그 출전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편이다. 노자의 도는 어느 땐 너무 커서 뜬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느 땐 너무나 소박해서 개인적 취향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노자의 도를 자기 삶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쉽지 않다. 책 어디에도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선약수는 어떻게 삶의 지혜를 전하는 노자의 도로써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까?   상선약수에 열광하는 이유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으니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8장 中)   노자의 도는 물(水)과 같다. 그런데 정작 물이 언급된 경우는 본문 전체에서 단 두 장뿐이다.(주석 제외) 강과 바다까지 합쳐도 채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상선약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얼까? 물이 만물에 두루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속을 뚫고 싹을 틔우려면 물이 필요하다. 그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매순간마다 물은 그 생장을 돕는다. 그러다 가뭄이 들면 뿌리째 말라죽기도 하고 홍수가 나면 뿌리째 쓸려가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물이 만물의 생장과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만물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존재인데 반해,...
노자의 도를 아십니까? (3)유약(柔弱) – 상선약수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도덕경』 출전으로 유명한 말이다. 내가 앞서 풀이했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나 “대기만성”이라는 사자성어는 노자의 말인 줄도 모르고 사용되기 일쑤이다. 그에 비하면 상선약수는 그 출전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편이다. 노자의 도는 어느 땐 너무 커서 뜬구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느 땐 너무나 소박해서 개인적 취향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노자의 도를 자기 삶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쉽지 않다. 책 어디에도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선약수는 어떻게 삶의 지혜를 전하는 노자의 도로써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까?   상선약수에 열광하는 이유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으니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8장 中)   노자의 도는 물(水)과 같다. 그런데 정작 물이 언급된 경우는 본문 전체에서 단 두 장뿐이다.(주석 제외) 강과 바다까지 합쳐도 채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상선약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얼까? 물이 만물에 두루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속을 뚫고 싹을 틔우려면 물이 필요하다. 그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매순간마다 물은 그 생장을 돕는다. 그러다 가뭄이 들면 뿌리째 말라죽기도 하고 홍수가 나면 뿌리째 쓸려가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물이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물이 만물의 생장과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만물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존재인데 반해,...
두루미
2025.03.09 | 조회 444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노자의 도를 아십니까? (2)도대(道大) - 대기만성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大器晩成) 큰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大音希聲) 큰 형상은 드러나지 않는다.(大象無形) (『왕필의 노자주』 41장 中)   몇 년 전 <노자 세미나>에서는 원문 필사가 숙제였다. 나는 한자만 써서는 그 뜻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어찌저찌 한글 번역을 시도했다. 필요하면 주석도 넣었다. 어느 날 대기만성이 나온 문장을 읽다가 의문이 들었다. 모서리가 없는 듯 보이지만 도리어 큰 네모(方)이고, 들리지 않는 듯 하지만 도리어 큰 소리이고, 형상이 없는 듯 보이지만 도리어 큰 형태를 지녔다. 그런데 대기만성(大器晩成)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다른 문장들은 형식상으로 대구를 이루면서 의미상으로 역설적인데 반해, 왜 대기만성만 다를까?   내가 읽은 한길사판 『왕필의 노자주』 의 옮긴이는 400년 앞선 백서을본에 대기만성이 아니라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늦어진다는 의미의 만(晩)이 아니라 부정어인 면(免)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위아래 다른 구절들을 참고해서 뜻을 살펴보자면, 그릇이 완성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도리어 완성된 큰 그릇이라는 의미이다. 내게는 대기면성이 대기만성보다 대구법과 역설적인 의미가 강조되어서 다른 구절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였다. 그렇다면 대기면성으로 바꿔서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보자.       大 - 노자의 도는 크다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는 것 같고 (大方無隅) 큰 그릇은 완성이 안 된 것 같다.(大器免成)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고(大音希聲) 큰 형상은 형태가 없는 것 같다.(大象無形) (『도덕경』 41장...
노자의 도를 아십니까? (2)도대(道大) - 대기만성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고 (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大器晩成) 큰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大音希聲) 큰 형상은 드러나지 않는다.(大象無形) (『왕필의 노자주』 41장 中)   몇 년 전 <노자 세미나>에서는 원문 필사가 숙제였다. 나는 한자만 써서는 그 뜻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어찌저찌 한글 번역을 시도했다. 필요하면 주석도 넣었다. 어느 날 대기만성이 나온 문장을 읽다가 의문이 들었다. 모서리가 없는 듯 보이지만 도리어 큰 네모(方)이고, 들리지 않는 듯 하지만 도리어 큰 소리이고, 형상이 없는 듯 보이지만 도리어 큰 형태를 지녔다. 그런데 대기만성(大器晩成)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다른 문장들은 형식상으로 대구를 이루면서 의미상으로 역설적인데 반해, 왜 대기만성만 다를까?   내가 읽은 한길사판 『왕필의 노자주』 의 옮긴이는 400년 앞선 백서을본에 대기만성이 아니라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늦어진다는 의미의 만(晩)이 아니라 부정어인 면(免)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위아래 다른 구절들을 참고해서 뜻을 살펴보자면, 그릇이 완성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도리어 완성된 큰 그릇이라는 의미이다. 내게는 대기면성이 대기만성보다 대구법과 역설적인 의미가 강조되어서 다른 구절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였다. 그렇다면 대기면성으로 바꿔서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보자.       大 - 노자의 도는 크다   큰 네모는 모서리가 없는 것 같고 (大方無隅) 큰 그릇은 완성이 안 된 것 같다.(大器免成) 큰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 같고(大音希聲) 큰 형상은 형태가 없는 것 같다.(大象無形) (『도덕경』 41장...
두루미
2025.01.20 | 조회 444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노자의 도를 아십니까? (1)무위 -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우쌤의 노자 강의를 들을 때 일이다. 쉬는 시간에 누군가 공부를 해도해도 모르겠는 게 “노자의 도”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나는 골치 아프게 “뭔 도?”냐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듣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수년간 동양고전을 공부했으면서 어떻게 “도”를 “재미있는 이야기” 수준으로 그치냐고 반문했다. 그 말이 맞다. 깊이가 없는 것이 내 공부의 단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어려운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노자의 도를 제대로 공부해보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아마도 얼마 못가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노자의 도일지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우리말 속담이나 사자성어가 한자 원문에서 어떻게 풀이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소소한 즐거움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 이상하다! 내가 기존에 알던 의미와 다르네... 이렇게 만난 노자의 도(①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②대기만성, ③상선약수)를 이번 편부터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첫 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 이름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이 책이 『도덕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장부터 37장까지 도경(道經), 38장부터 81장 끝까지 덕경(德經)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호남성 마왕퇴(무덤)에서 발견된 비단책자(백서)에는 기존과 달리 “덕경”과 “도경” 순서로 편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덕도경>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노자(老子)가 지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노자』로도 불린다. 나는 처음에 『노자』와 『도덕경』이 같은 책인 줄도 몰랐다! 여기서는 책 이름을 『도덕경』으로 통일한다.   한 걸음이 대단한 이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노자의 도를 아십니까? (1)무위 -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우쌤의 노자 강의를 들을 때 일이다. 쉬는 시간에 누군가 공부를 해도해도 모르겠는 게 “노자의 도”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나는 골치 아프게 “뭔 도?”냐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듣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수년간 동양고전을 공부했으면서 어떻게 “도”를 “재미있는 이야기” 수준으로 그치냐고 반문했다. 그 말이 맞다. 깊이가 없는 것이 내 공부의 단점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어려운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노자의 도를 제대로 공부해보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아마도 얼마 못가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노자의 도일지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우리말 속담이나 사자성어가 한자 원문에서 어떻게 풀이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소소한 즐거움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 이상하다! 내가 기존에 알던 의미와 다르네... 이렇게 만난 노자의 도(①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②대기만성, ③상선약수)를 이번 편부터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첫 편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이 책 이름의 유래부터 살펴보자. 이 책이 『도덕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장부터 37장까지 도경(道經), 38장부터 81장 끝까지 덕경(德經)이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 호남성 마왕퇴(무덤)에서 발견된 비단책자(백서)에는 기존과 달리 “덕경”과 “도경” 순서로 편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덕도경>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노자(老子)가 지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노자』로도 불린다. 나는 처음에 『노자』와 『도덕경』이 같은 책인 줄도 몰랐다! 여기서는 책 이름을 『도덕경』으로 통일한다.   한 걸음이 대단한 이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두루미
2024.10.18 | 조회 688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3) 세란 무엇인가   한비의 법술세 중에서 내게 가장 친숙한 단어는 세(勢)이다. 법은 정작 자신이 위반하기 전까지 법령의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술 또한 평소에 나의 의중을 숨기는 데는 잼병이라 내 관심사 밖이다. 그에 반해 세는 집안의 장녀, 맏며느리, 아내이자 엄마 등 내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자리’이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한비의 세가 내가 생각하는 자리, 위치를 의미할까? 먼저 세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노자의 세는 필연이다 『사기』에서 한비는 「노장신한열전」에 속해있다. 사마천은 도가의 대표자로 노자와 장자를, 법가의 대표자로 신불해와 한비를 각각 소개하며, 이들이 공통적으로 도와 덕의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평가한다. 한비는 왕필보다 500년 앞선 『노자』의 최초 해설자이다. 『한비자』에는 「해로」편과 「유로」편 두 편에 걸쳐 도와 덕에 대한 해석과 주, 그리고 사례를 싣고 있다. 이 때문에 한비가 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데는 일반적으로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노자』로부터 세에 대한 단서 또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도(道)는 모든 것을 낳고(生), 덕(德)은 모든 것을 기르고(畜), 물(物)은 모든 것을 꼴지우고(形), 세(勢)는 모든 것을 완성시킵니다(成). 그러기에 모든 것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명령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입니다. (『노자』 51장, 현암사, 오강남 풀이)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른다.” 『노자』에서 도와 덕의 성격을 말해주는 유명한 문장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알면 만물의 생성 변화에 대해 반만...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3) 세란 무엇인가   한비의 법술세 중에서 내게 가장 친숙한 단어는 세(勢)이다. 법은 정작 자신이 위반하기 전까지 법령의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술 또한 평소에 나의 의중을 숨기는 데는 잼병이라 내 관심사 밖이다. 그에 반해 세는 집안의 장녀, 맏며느리, 아내이자 엄마 등 내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자리’이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한비의 세가 내가 생각하는 자리, 위치를 의미할까? 먼저 세의 기원으로부터 시작해보자.   노자의 세는 필연이다 『사기』에서 한비는 「노장신한열전」에 속해있다. 사마천은 도가의 대표자로 노자와 장자를, 법가의 대표자로 신불해와 한비를 각각 소개하며, 이들이 공통적으로 도와 덕의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평가한다. 한비는 왕필보다 500년 앞선 『노자』의 최초 해설자이다. 『한비자』에는 「해로」편과 「유로」편 두 편에 걸쳐 도와 덕에 대한 해석과 주, 그리고 사례를 싣고 있다. 이 때문에 한비가 노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데는 일반적으로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노자』로부터 세에 대한 단서 또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도(道)는 모든 것을 낳고(生), 덕(德)은 모든 것을 기르고(畜), 물(物)은 모든 것을 꼴지우고(形), 세(勢)는 모든 것을 완성시킵니다(成). 그러기에 모든 것은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명령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입니다. (『노자』 51장, 현암사, 오강남 풀이)   “도는 만물을 낳고 덕은 만물을 기른다.” 『노자』에서 도와 덕의 성격을 말해주는 유명한 문장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알면 만물의 생성 변화에 대해 반만...
두루미
2024.07.23 | 조회 804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2) 술이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술(術)은 일반적으로 ‘권모술수’라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의 전략전술이 정당하지 못할 때 주로 권모술수라고 하지 않는가. 가령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료를 향해 우영우는 “권모술수 권민우”라고 별칭을 붙인다. 이처럼 우리에게 권모술수는 부정적이다. 정말 한비의 술은 권모술수일까? 왜 권모술수라고 불리는 걸까? 한비의 술을 탐구해보자.     『순자』의 욕망론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다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에 모인 학자들(제자)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다양했다. 이 당시 유세가였던 그 역시 이런 제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저서 『한비자』에서 순자에 대한 언급이 소략한 점, 마찬가지로 순자의 저서에서 그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따져볼 때 이들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한비가 당시 유행하던 『순자』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한비자 교양강의』, 가이즈카 시게키, 돌베게)   나는 이전 『순자』에 대한 글에서 그의 성악설을 욕망론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순자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그에게 욕망을 좇는 일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다만 자기 욕심만 채우다 분별심을 잃게 되는 것이 악이다. 한비는 순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간 관계론을 펼친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양육을 등한히 하면 자식이 자라서 원망한다. 자식이...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2) 술이란 무엇인가   『한비자』의 술(術)은 일반적으로 ‘권모술수’라고 알려져 있다. 누군가의 전략전술이 정당하지 못할 때 주로 권모술수라고 하지 않는가. 가령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동료를 향해 우영우는 “권모술수 권민우”라고 별칭을 붙인다. 이처럼 우리에게 권모술수는 부정적이다. 정말 한비의 술은 권모술수일까? 왜 권모술수라고 불리는 걸까? 한비의 술을 탐구해보자.     『순자』의 욕망론으로 인간관계를 파악하다 한비는 순자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에 모인 학자들(제자)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 다양했다. 이 당시 유세가였던 그 역시 이런 제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의 저서 『한비자』에서 순자에 대한 언급이 소략한 점, 마찬가지로 순자의 저서에서 그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점 등을 따져볼 때 이들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한비가 당시 유행하던 『순자』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한비자 교양강의』, 가이즈카 시게키, 돌베게)   나는 이전 『순자』에 대한 글에서 그의 성악설을 욕망론으로 재해석한 바 있다. 순자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그에게 욕망을 좇는 일 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다만 자기 욕심만 채우다 분별심을 잃게 되는 것이 악이다. 한비는 순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인간 관계론을 펼친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양육을 등한히 하면 자식이 자라서 원망한다. 자식이...
두루미
2024.06.11 | 조회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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