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장자』 내편은 총 일곱 편이다. 이 편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겠다는 발심을 하고 1회로 「양생주」편을 업로드 한 날을 찾아보니 2023년 4월이다. 다른 편들까지 써 보는 동안 2년여가 지나갔다. 장자의 문장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매번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변심해서 쓰기를 멈추기도 해서 기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제물론」은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미룬 편이자 뭘 쓸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는 편이었다.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이야기가 나오는 편이기도 하다.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제물론」을 다시 읽다보니 모른다는 대답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장자가 지은 이야기에 담긴 ‘모른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장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 스승 왕예와 제자 설결의 문답     설결이 스승 왕예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그런 것을 알고 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스승님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인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인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낭송 장자』 164쪽)       왕예는 제자의 질문에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吾惡乎知之). 누구나 옳게 여기는 그런 것(同是)을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어찌 알겠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설결은 그런 스승의...
『장자』 내편은 총 일곱 편이다. 이 편들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겠다는 발심을 하고 1회로 「양생주」편을 업로드 한 날을 찾아보니 2023년 4월이다. 다른 편들까지 써 보는 동안 2년여가 지나갔다. 장자의 문장을 읽고 글을 쓰면서 매번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시간이었다. 변심해서 쓰기를 멈추기도 해서 기간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제물론」은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미룬 편이자 뭘 쓸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는 편이었다.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이야기가 나오는 편이기도 하다. 도통 감을 잡지 못하고 「제물론」을 다시 읽다보니 모른다는 대답이 반복되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장자가 지은 이야기에 담긴 ‘모른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장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 스승 왕예와 제자 설결의 문답     설결이 스승 왕예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누구나 옳다고 여기는 그런 것을 알고 계십니까?”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스승님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인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설결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인가요?” 왕예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 (『낭송 장자』 164쪽)       왕예는 제자의 질문에 세 번에 걸쳐 똑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니(吾惡乎知之). 누구나 옳게 여기는 그런 것(同是)을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어찌 알겠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설결은 그런 스승의...
기린
2025.03.05 | 조회 472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응제왕」편은 내편 중에서 가장 짧은 글로 편명의 뜻을 직역하면 제왕에게 응답한다는 뜻이다. 제왕이라고 하지만 묻고 답하는 이들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은둔하는 무명인들이다. 이들에게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물으면, 천하는 한 사람의 솔선수범이나 밝은 도리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사사롭게 개입하기보다는 만물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다. 인간이 나서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기획 자체를 부정한다. 한편, 무당을 만나고 나서 스승 호자의 도를 폄하하는 제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라는 다른 이야기의 결말과 달리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천하를 논하던 규모에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좁혀지는 사이에서 어떤 간극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간 열자, 그가 터득한 깨달음이 궁금해졌다.         1.무당에 빠진 열자    정나라에 신통하다고 이름난 계함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그의 신통력은 이러했다.   죽고 사는 것, 얻고 잃는 것, 재앙과 행운, 오래 살지 일찍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연월일까지 맞추는 것이 마치 귀신같았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갖고 있던 것도 모두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낭송장자> 221쪽     그 사람의 관상만 보고도 길흉화복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명예와 부는 충분히 얻으면서도 재앙은 멀리하려고 무당을 찾아간다. 하지만 계함의 신통력은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까지 맞추었다. 죽는 날까지 알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계함을 만나기가 점점 두려워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달아났다. 그런데 열자는 그런 계함을 보고 마음이 완전히...
 「응제왕」편은 내편 중에서 가장 짧은 글로 편명의 뜻을 직역하면 제왕에게 응답한다는 뜻이다. 제왕이라고 하지만 묻고 답하는 이들은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아니라 은둔하는 무명인들이다. 이들에게 천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물으면, 천하는 한 사람의 솔선수범이나 밝은 도리로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사사롭게 개입하기보다는 만물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따를 뿐이다. 인간이 나서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기획 자체를 부정한다. 한편, 무당을 만나고 나서 스승 호자의 도를 폄하하는 제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으라는 다른 이야기의 결말과 달리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천하를 논하던 규모에서 아내가 있는 집으로 좁혀지는 사이에서 어떤 간극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간 열자, 그가 터득한 깨달음이 궁금해졌다.         1.무당에 빠진 열자    정나라에 신통하다고 이름난 계함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그의 신통력은 이러했다.   죽고 사는 것, 얻고 잃는 것, 재앙과 행운, 오래 살지 일찍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연월일까지 맞추는 것이 마치 귀신같았습니다.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보면 갖고 있던 것도 모두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낭송장자> 221쪽     그 사람의 관상만 보고도 길흉화복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명예와 부는 충분히 얻으면서도 재앙은 멀리하려고 무당을 찾아간다. 하지만 계함의 신통력은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까지 맞추었다. 죽는 날까지 알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사람들은 계함을 만나기가 점점 두려워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달아났다. 그런데 열자는 그런 계함을 보고 마음이 완전히...
기린
2025.02.09 | 조회 404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최근에 호시노 미치오의 『긴 여행의 도중』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는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알래스카 사진집에 꽂혀서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 책에는 알래스카의 사계에서 깨달은 것들이나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들과 조우하는 이야기와 사진들이 가득했다. 바다로 나가 보트 가까이에서 공중으로 로켓처럼 솟아오르는 혹등고래의 비상에 감탄하고, 알래스카에 서식하는 카리브 순록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에 압도되어 그 발소리가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그가 보았다는 장면을 읽다가 「소요유」편에서 장자가 북쪽과 남쪽까지 횡단하면서 그려냈던 자연의 세계가 겹쳤다. 장자가 상상했던 자연과 알래스카에서 호시노 미치오가 마주했던 자연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가 보자.     1.장자의 사고실험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몽땅에 살면서 칠원(옻나무밭)에서 말단의 관리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칠원의 숲을 산책하는 장자를 상상해 보면, 그 숲에 깃들인 온갖 생명과 교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자』에 나오는 나무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런 상상을 더 부추긴다. 「소요유」편에도 자연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매미와 새끼 비둘기, 버섯, 메추라기, 뱁새, 두더지 등이 나오고, 겨자씨와 박씨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실제로는 없을 것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북쪽 메마른 땅에 깊은 바다가 있는데 이를 천지(天池)라 합니다. 그곳에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넓이가 수천 리이고 길이는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이름을 곤이라 합니다. 또 그곳에 새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붕이라 합니다. 등은 태산과 같고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최근에 호시노 미치오의 『긴 여행의 도중』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는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알래스카 사진집에 꽂혀서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 책에는 알래스카의 사계에서 깨달은 것들이나 자연에서 만나는 생명들과 조우하는 이야기와 사진들이 가득했다. 바다로 나가 보트 가까이에서 공중으로 로켓처럼 솟아오르는 혹등고래의 비상에 감탄하고, 알래스카에 서식하는 카리브 순록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장관에 압도되어 그 발소리가 아득히 멀어질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그가 보았다는 장면을 읽다가 「소요유」편에서 장자가 북쪽과 남쪽까지 횡단하면서 그려냈던 자연의 세계가 겹쳤다. 장자가 상상했던 자연과 알래스카에서 호시노 미치오가 마주했던 자연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가 보자.     1.장자의 사고실험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 사람으로 몽땅에 살면서 칠원(옻나무밭)에서 말단의 관리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칠원의 숲을 산책하는 장자를 상상해 보면, 그 숲에 깃들인 온갖 생명과 교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자』에 나오는 나무나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런 상상을 더 부추긴다. 「소요유」편에도 자연물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매미와 새끼 비둘기, 버섯, 메추라기, 뱁새, 두더지 등이 나오고, 겨자씨와 박씨가 등장하기도 한다. 한편, 실제로는 없을 것 같은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북쪽 메마른 땅에 깊은 바다가 있는데 이를 천지(天池)라 합니다. 그곳에 물고기가 살고 있었는데 넓이가 수천 리이고 길이는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 이름을 곤이라 합니다. 또 그곳에 새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을 붕이라 합니다. 등은 태산과 같고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기린
2024.12.16 | 조회 589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장자』를 읽고 있으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속세와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벼슬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는 장자, 등 길이가 몇 천리가 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새가 하늘 위로 날아가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인간세」 편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결이 조금 다른 내용들이 나온다. 유가의 대표적 인물 공자와 안회를 등장시켜 벼슬길에 나서는 마음가짐을 논하는가 하면, 사신으로 가게 된 자고가 공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심재(心齋), 승물이유심(乘物以遊心), 부득이(不得已)등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벼슬에 나가지 말라는 만류 대신 거듭 되새기는 이러한 자세들을 통해 장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1.마음을 재계하라     안회는 스승에게 배운 것을 펼치기 위해 혼란한 위나라로 가겠다고 했다. 공자는 그가 덕이 충실하고 행동이 성실하지만 임금의 기분을 몰라서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안회가 의지하겠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은 그에게나 옳은 말이지 임금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싶다는 그에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공자: 여러 갈래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나아가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듣는 데서 멈추고 마음은 인상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쳐라. 그렇게 하면 기는 텅 비어 모든 사물에 부응한다. 도는 오직 텅 빈 것에서 실현되는데, 이 텅 비게 하는 것이 마음의 재계(心齋)이다. 안회: 마음의 재계를 실천하기 전에는 제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장자』를 읽고 있으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속세와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벼슬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는 장자, 등 길이가 몇 천리가 되는지 가늠할 수 없는 새가 하늘 위로 날아가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그런데 「인간세」 편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결이 조금 다른 내용들이 나온다. 유가의 대표적 인물 공자와 안회를 등장시켜 벼슬길에 나서는 마음가짐을 논하는가 하면, 사신으로 가게 된 자고가 공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면서 심재(心齋), 승물이유심(乘物以遊心), 부득이(不得已)등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벼슬에 나가지 말라는 만류 대신 거듭 되새기는 이러한 자세들을 통해 장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1.마음을 재계하라     안회는 스승에게 배운 것을 펼치기 위해 혼란한 위나라로 가겠다고 했다. 공자는 그가 덕이 충실하고 행동이 성실하지만 임금의 기분을 몰라서 결국은 죽게 될 것이라고 염려한다. 안회가 의지하겠다는 옛사람의 가르침은 그에게나 옳은 말이지 임금에게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싶다는 그에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공자: 여러 갈래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나아가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듣는 데서 멈추고 마음은 인상을 받아들이는 데서 그쳐라. 그렇게 하면 기는 텅 비어 모든 사물에 부응한다. 도는 오직 텅 빈 것에서 실현되는데, 이 텅 비게 하는 것이 마음의 재계(心齋)이다. 안회: 마음의 재계를 실천하기 전에는 제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기린
2024.10.23 | 조회 721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문장인데, 사람 좋아하는 나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덕(德)이다. 반드시 외롭지 않으려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 문장만으로는 너무 막연해서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소화불량이다. 『장자』의 「덕충부」편에는 덕이 충만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어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다면 덕을 몰라 답답한 나에게 어떤 팁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덕이 충만한 표시는 어떻게 드러날까.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그들의 매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1. 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존하다    형벌을 받아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 숙산무지가 공자를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 공자는 무지의 외형을 보고 이런 몰골이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질책했다. 유가인 공자 입장에서는 형벌로 발목이 잘린 무지가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유가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기기 때문이다. 불효도 모자라 형벌까지 받은 몸이라니 구제불능이 아니냐는 반문이 내포되어 있는 반응이다. 무지는 발을 잃은 후 자신을 깨우칠 새로운 배움을 찾아 왔는데 이렇게 말하다니 실망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안으로 들어오라 권했으나 무지는 그 자리를 떠났다.         신도가도 형벌을 받아서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다. 그가 정나라 재상인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이라는 스승께 배우고 있었는데, 자산은 신도가와 함께 스승의 방에 드나드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문장인데, 사람 좋아하는 나에게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덕(德)이다. 반드시 외롭지 않으려면 덕이 무엇인지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저 문장만으로는 너무 막연해서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소화불량이다. 『장자』의 「덕충부」편에는 덕이 충만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어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다면 덕을 몰라 답답한 나에게 어떤 팁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덕이 충만한 표시는 어떻게 드러날까.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그들의 매력을 찾아보기로 했다.     1. 발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존하다    형벌을 받아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 숙산무지가 공자를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 공자는 무지의 외형을 보고 이런 몰골이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질책했다. 유가인 공자 입장에서는 형벌로 발목이 잘린 무지가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유가에서는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불효로 여기기 때문이다. 불효도 모자라 형벌까지 받은 몸이라니 구제불능이 아니냐는 반문이 내포되어 있는 반응이다. 무지는 발을 잃은 후 자신을 깨우칠 새로운 배움을 찾아 왔는데 이렇게 말하다니 실망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안으로 들어오라 권했으나 무지는 그 자리를 떠났다.         신도가도 형벌을 받아서 한쪽 발이 잘린 절름발이다. 그가 정나라 재상인 자산과 함께 백혼무인이라는 스승께 배우고 있었는데, 자산은 신도가와 함께 스승의 방에 드나드는 것이 아무래도...
기린
2024.07.13 | 조회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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