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데이트앱 '틴더'의 이미지     어쩌면 그놈의 푸코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문탁에서 공부하는 푸코 책을 읽다가 갑자기 내가 처한 모든 현실로부터 잠시 도망치고 싶었고, 소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도파민을 채우고 싶었다. 언젠가 친구가 알려준 데이팅 어플의 세계엔 그런 도파민이 있을 줄 알았다.   어플에서의 만남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한 번은 적당한 사회성을 갖춘 적당한 사람과 원나잇을 목적으로 만나 술을 마시며 가볍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는 성적 취향에 대한 비교적 노골적인 질문을 던진 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적극적인 게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자는 별로다. (본인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다 그럴 거다."   그 찰나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일과 양육의 양립이라는 이중 과업을 떠안아야 했던 것처럼, 나는 지금 성적 대상이 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갖춰야 하는 이중의 과업에 직면하게 된 건 아닐까? 나의 취향이나 선호와는 관계 없이 '리드당하는 포지션'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죄'가 성립하고 마는 거야.'   나는 만남 내내 그의 태도 전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더 노력하길 바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섹스를 잘했는지 은근히 증명받고 싶어했으며, 수동적인 여자는 싫다 말하면서도, 자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그런 욕망을 표현한다는 게 가장 기묘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만족하고...
소이
2026.09.30 | 조회 143
짧은생각
     직장인 학교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는 바로 학기말에 생활기록부를 작성 하는 것이다. 특히 '행동발달사항'을 적는 것은 개중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다. 학교를 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통지표 맨 마지막 칸에 적힌 나에 대한 담임교사의 의견을 마주하는 그 순간을.   물론 원칙은 교사가 학생을 경험하며 느낀 그대로를 적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어느 때부터 인가 교사의 솔직함은 학부모의 민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최근 교직사회에서는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 덕목이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말을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것도 평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의 마음까지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돌리고 돌려 평가를 하고 그들의 발전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말을 써내야 하는 일은 늘 고역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챗GPT의 등장은 이런 고민을 모두 날려주었다. 학생의 특징 몇 가지를 나열하고 '최대한 듣기 좋은 말로 만들어줘'라는 프롬프트 한 줄이면 내가 쓰지 못했던 말을 대신 써주었다. 덕분에 일주일은 고민해야 할 일들이 한 시간으로 줄었고, 학기말의 생활기록부 작성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지금 걱정하는 건 이 글이 밖으로 퍼져나가 교사들이 AI로 행동발달사항 작성하지 않게 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AI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AI와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인간이...
     직장인 학교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 중 하나는 바로 학기말에 생활기록부를 작성 하는 것이다. 특히 '행동발달사항'을 적는 것은 개중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다. 학교를 다닌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통지표 맨 마지막 칸에 적힌 나에 대한 담임교사의 의견을 마주하는 그 순간을.   물론 원칙은 교사가 학생을 경험하며 느낀 그대로를 적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어느 때부터 인가 교사의 솔직함은 학부모의 민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최근 교직사회에서는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 덕목이다. 그렇다고 듣기 좋은 말을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것도 평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의 마음까지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돌리고 돌려 평가를 하고 그들의 발전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말을 써내야 하는 일은 늘 고역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챗GPT의 등장은 이런 고민을 모두 날려주었다. 학생의 특징 몇 가지를 나열하고 '최대한 듣기 좋은 말로 만들어줘'라는 프롬프트 한 줄이면 내가 쓰지 못했던 말을 대신 써주었다. 덕분에 일주일은 고민해야 할 일들이 한 시간으로 줄었고, 학기말의 생활기록부 작성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지금 걱정하는 건 이 글이 밖으로 퍼져나가 교사들이 AI로 행동발달사항 작성하지 않게 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AI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라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AI와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나 싶다. 인간이...
호면
2026.08.31 | 조회 223
짧은생각
      여름의 살림청, ‘청하’  나는 4월부터 6월까지 문탁의 ‘살림청’이었다. 우리 여름 살림청 앞 전의 봄 살림청의 이름인 살림‘청,춘(春)’을 따서 살림‘청,하(夏)’라고 지었다. 청하로 활동하면서 점점 문탁을 속속히 들여다보게 됐다. 공간이 깨끗한지, 세미나와 각자의 안위에 놓친 소식은 없는지, 문탁의 회계에 문제는 없는지 등등. 물론 살림청이 아니어도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긴 하다. 하지만 살림청은 가능한 한 많이 살피고 거의 모든 이슈를 알고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문탁의 공지 사항을 전파하고 들려오는 불편 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살림청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전체 회의에 가져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동네 이장이 된 느낌이었다. 물론 이장은 주민이 뽑고 살림청은 제비뽑기로 뽑지만 말이다.       2026년 '청하'팀의 멤버. 왼쪽부터 새은, 두루미, 자작나무       실내화 장을 마련했다  문탁은 올해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했다. 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살림의 뼈대는 ‘청춘’에서 잡아줬다. 우리 청하팀은 뼈에 살을 붙이기 위해 두루미샘을 필두로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눈에 띄었던 것이 ‘실내화’였다.    이사 오기 전의 공간에서는 신발을 벗고 지내는 맨발 또는 실내화 생활이었다. 이제는 그 생활을 청산하고 신발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신발을 장시간 신기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필두로 실내화 생활도 시작됐다. 실내화를 가지고 다니기 뭣해서 자연스럽게 공부방에 두고 다니게 됐다. 몇몇 분들은 자주 앉으시는 책상 옆에 실내화를 두고 다니셨고, 나 포함 대부분은 공부방 창가 아래에 모아두었다. 이 실내화를 두고 재밌는 대화도 이어졌었다. ‘저...
      여름의 살림청, ‘청하’  나는 4월부터 6월까지 문탁의 ‘살림청’이었다. 우리 여름 살림청 앞 전의 봄 살림청의 이름인 살림‘청,춘(春)’을 따서 살림‘청,하(夏)’라고 지었다. 청하로 활동하면서 점점 문탁을 속속히 들여다보게 됐다. 공간이 깨끗한지, 세미나와 각자의 안위에 놓친 소식은 없는지, 문탁의 회계에 문제는 없는지 등등. 물론 살림청이 아니어도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긴 하다. 하지만 살림청은 가능한 한 많이 살피고 거의 모든 이슈를 알고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문탁의 공지 사항을 전파하고 들려오는 불편 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살림청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전체 회의에 가져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동네 이장이 된 느낌이었다. 물론 이장은 주민이 뽑고 살림청은 제비뽑기로 뽑지만 말이다.       2026년 '청하'팀의 멤버. 왼쪽부터 새은, 두루미, 자작나무       실내화 장을 마련했다  문탁은 올해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했다. 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살림의 뼈대는 ‘청춘’에서 잡아줬다. 우리 청하팀은 뼈에 살을 붙이기 위해 두루미샘을 필두로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눈에 띄었던 것이 ‘실내화’였다.    이사 오기 전의 공간에서는 신발을 벗고 지내는 맨발 또는 실내화 생활이었다. 이제는 그 생활을 청산하고 신발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신발을 장시간 신기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필두로 실내화 생활도 시작됐다. 실내화를 가지고 다니기 뭣해서 자연스럽게 공부방에 두고 다니게 됐다. 몇몇 분들은 자주 앉으시는 책상 옆에 실내화를 두고 다니셨고, 나 포함 대부분은 공부방 창가 아래에 모아두었다. 이 실내화를 두고 재밌는 대화도 이어졌었다. ‘저...
새은
2026.07.31 | 조회 168
짧은생각
  맹자 선생님은 말했었다. 군자는 무너질 담벼락 밑에는 서지 않는다고. 군자도 아니고, 담벼락도 자세히 보지 못한 나는 욕실에서 미끄러져 양쪽 무릎의 인대를 다쳤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에 갔지만 결과는 입원이었다. 병원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같은 병실을 쓰던 두 어르신의 다정한 에티켓도 병원 밥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양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지만, 그 정도 불편은 견딜 만했다. 병문안도 사절했으니 어쩌면 영유아기 이래 가장 몸 편하고 맘 편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나 혼자 산닷!     그러다 드디어 깁스를 하고 퇴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환자라는 사실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진 것은 병원이 아니라 오히려 집에서였다. 서러움은 집에서 시작됐다. 계단도 불편하고, 안전 바도 없고, 때 되면 칼같이 나오는 따스한 밥 역시 없었다. 병원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채워지고 제공되던 모든 것들이 집에서는 빈 채로 남아 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먹은 점심에 대해 묻는 다정한 질문도 급격히 줄어갔다. 필요한 물건들을 기꺼이 가져다주던 손길들에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눈치가 보였다. 긴병(?)에 효자 없다더니, 병원에서는 당연하던 것들이 집에서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넌 완벽했어.      물론 가족들이 나를 방치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각자의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이고, 나는 중환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병원은 누군가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이 공간의 출발점이다. 환자의 불편을 미리 예상하고 채워주는 곳인 반면 집에서의 돌봄은 누군가의 시간과...
  맹자 선생님은 말했었다. 군자는 무너질 담벼락 밑에는 서지 않는다고. 군자도 아니고, 담벼락도 자세히 보지 못한 나는 욕실에서 미끄러져 양쪽 무릎의 인대를 다쳤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에 갔지만 결과는 입원이었다. 병원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같은 병실을 쓰던 두 어르신의 다정한 에티켓도 병원 밥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양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지만, 그 정도 불편은 견딜 만했다. 병문안도 사절했으니 어쩌면 영유아기 이래 가장 몸 편하고 맘 편한 시간을 보낸 셈이다.     나 혼자 산닷!     그러다 드디어 깁스를 하고 퇴원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환자라는 사실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진 것은 병원이 아니라 오히려 집에서였다. 서러움은 집에서 시작됐다. 계단도 불편하고, 안전 바도 없고, 때 되면 칼같이 나오는 따스한 밥 역시 없었다. 병원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채워지고 제공되던 모든 것들이 집에서는 빈 채로 남아 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먹은 점심에 대해 묻는 다정한 질문도 급격히 줄어갔다. 필요한 물건들을 기꺼이 가져다주던 손길들에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눈치가 보였다. 긴병(?)에 효자 없다더니, 병원에서는 당연하던 것들이 집에서는 결코 당연하지 않았다.     넌 완벽했어.      물론 가족들이 나를 방치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들도 각자의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을 뿐이고, 나는 중환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병원은 누군가의 몸이 불편하다는 사실이 공간의 출발점이다. 환자의 불편을 미리 예상하고 채워주는 곳인 반면 집에서의 돌봄은 누군가의 시간과...
라겸
2026.06.30 | 조회 24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