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의 독국유학기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이곳에 어떻게 이런 집이 있지? 나는 뮌헨에 보겐하우젠이라는 지역에 위치한 동네의 한 주택에 살고 있다. 첫 만남에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보겐하우젠이라는 지명을 듣고 '오~ 얘가 어느 중국 갑부의 딸인가 보다' 생각하겠지만, 뒤따라오는 말을 들으면 다들 탄식에 가까운 ‘오...’를 내뱉는다. 그건 내가 열 두명의 사람들과 함께 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뮌헨의 유명한 회사 사장, 축구 선수들이 산다는 부촌에 있지만, 집이 위치한 베알레(Wehrle) 거리를 걷다보면 누구라도 이 집이 눈에 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아 제멋대로 솟아난 나무, 자전거 거치소인가 싶은 현관 입구, 부러진 창문과 고장 난 문, 편지통 옆에 붙어 있는 12명의 빽빽한 이름. 이 집은 인터내셔널 셰어하우스로 독일에 위치해 있지만 영어가 공용어다. 현재는 독일인, 헝가리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코스타리카인,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올해로 사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우리 집 낮의 풍경 이 집은 지하실과 다락을 포함해 5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가가 비싸다는 뮌헨 중심가에서 널찍한 정원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해한다. 이렇게도 산다니 다들 좀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이상한 집의 마법적인 매력에 매료되는 사람들은 꼭 있다. 우리는 그런 친구들을 모아 주기적으로 파티를 연다. 지하실의 벙커 같은 파티룸에서는 디제이 친구들이 테크노를 틀고 주방에서는 디스코와 팝을 튼다. 여름에는 윈터가든(거실 같은 역할)의 유리...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쥐드티롤(Südtirol), 이탈리아어로 알토 아디제(Alto Adige)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알프스의 뾰족한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오스트리아식 자연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이탈리아의 지중해식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탈리아지만 어딜 가도 독일어가 통한다. 쥐드티롤은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내가 사는 독일 뮌헨에서는 차를 타고 3-4시간만 운전하면 닿을 수 있다.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으나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이탈리아에 강제 합병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는 이곳의 독일스러움을 지우기 위해 언어 탄압, 지명 변경 등 아주 가혹한 정책을 펼쳤다. 이 곳에 살던 독일계 주민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한국의 독립 운동만큼이나 치밀했던 투쟁과 협상을 통해 자치권을 얻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세금의 90%를 중앙 정부가 아닌 지역 정부가 관리하게 되었고, 언어 비례제를 도입하며(모든 공무원을 그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비율에 맞춰 뽑아야 하며, 공무원이 되려면 이중 언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쥐드티롤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운 지역이 되었다. 얼마 전 나는 쥐드티롤의 주도인 볼차노에 방문해 메스너 산악 뮤지엄을 다녀왔다. 메스너 산악 뮤지엄은 쥐드티롤 출신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에 의해서 지어졌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 고봉 14개를 등정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소한의 장비와 스스로의 힘으로만 산을 오르는 방식을 고수하는 산악인이자, NGO활동가 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통해 얻은 강연, 책 판매,...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쥐드티롤(Südtirol), 이탈리아어로 알토 아디제(Alto Adige)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알프스의 뾰족한 산과 호수에 둘러싸여 오스트리아식 자연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이탈리아의 지중해식 여유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탈리아지만 어딜 가도 독일어가 통한다. 쥐드티롤은 오스트리아, 스위스와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내가 사는 독일 뮌헨에서는 차를 타고 3-4시간만 운전하면 닿을 수 있다.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으나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이탈리아에 강제 합병되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는 이곳의 독일스러움을 지우기 위해 언어 탄압, 지명 변경 등 아주 가혹한 정책을 펼쳤다. 이 곳에 살던 독일계 주민들은 그에 굴하지 않고, 한국의 독립 운동만큼이나 치밀했던 투쟁과 협상을 통해 자치권을 얻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세금의 90%를 중앙 정부가 아닌 지역 정부가 관리하게 되었고, 언어 비례제를 도입하며(모든 공무원을 그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 비율에 맞춰 뽑아야 하며, 공무원이 되려면 이중 언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쥐드티롤은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운 지역이 되었다. 얼마 전 나는 쥐드티롤의 주도인 볼차노에 방문해 메스너 산악 뮤지엄을 다녀왔다. 메스너 산악 뮤지엄은 쥐드티롤 출신의 전설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에 의해서 지어졌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산맥의 8000미터 고봉 14개를 등정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소한의 장비와 스스로의 힘으로만 산을 오르는 방식을 고수하는 산악인이자, NGO활동가 겸 작가다.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통해 얻은 강연, 책 판매,...
현민의 독국유학기
인도의 한 결혼식에서 생긴 일 인도에서 온 바비야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내게 동서가 생겼다(아직 미혼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바비야다. 인도의 남쪽 지방에서 온 바비야는 7년 전 인도를 떠났다. 그녀가 처음 도착한 곳은 두바이다. 인도 여권 소지자로서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두바이가 거의 유일해, 많은 인도 해외 거주자들이 처음 두바이를 통한다. 그녀는 두바이에서 일하다 베를린에 일자리를 찾았고 몇년 후, 뮌헨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같은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나와 바비야는 비슷한 시기에 남자친구 가족에 합류했다. 한국에서는 애인의 부모님을 만나는 게 큰일인 만큼, 독일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애인이 가족의 한 파트가 되고 가족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뭘 말해도 되는지, 얼마만큼 말해도 되는지, 말했는데 안 궁금한 건 아닌지 등 혼자서 눈치를 보다 아무 말을 못하곤 했다. 바비야는 유쾌한 여자다. 바비야는 인도에서 기숙학교를 다닐 때 한국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며 나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고, 드라마로 배운 한국어를 선보일 때에는 발음이 좋았다. 미지의 독일인 가족을 대하기가 어려울 때, 바비야는 인도에선 이렇다, 저렇다,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다. 그녀가 가족에 합류한 후에는 내가 독일인 가족에 낀 외딴 한국 여자애라는 느낌이 덜 들었다. 한국과 인도의 거리는 멀지만, 우리는 둘 다 나라를 떠나 사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점,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족 문화에서...
인도의 한 결혼식에서 생긴 일 인도에서 온 바비야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내게 동서가 생겼다(아직 미혼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바비야다. 인도의 남쪽 지방에서 온 바비야는 7년 전 인도를 떠났다. 그녀가 처음 도착한 곳은 두바이다. 인도 여권 소지자로서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두바이가 거의 유일해, 많은 인도 해외 거주자들이 처음 두바이를 통한다. 그녀는 두바이에서 일하다 베를린에 일자리를 찾았고 몇년 후, 뮌헨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같은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나와 바비야는 비슷한 시기에 남자친구 가족에 합류했다. 한국에서는 애인의 부모님을 만나는 게 큰일인 만큼, 독일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애인이 가족의 한 파트가 되고 가족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뭘 말해도 되는지, 얼마만큼 말해도 되는지, 말했는데 안 궁금한 건 아닌지 등 혼자서 눈치를 보다 아무 말을 못하곤 했다. 바비야는 유쾌한 여자다. 바비야는 인도에서 기숙학교를 다닐 때 한국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며 나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고, 드라마로 배운 한국어를 선보일 때에는 발음이 좋았다. 미지의 독일인 가족을 대하기가 어려울 때, 바비야는 인도에선 이렇다, 저렇다,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다. 그녀가 가족에 합류한 후에는 내가 독일인 가족에 낀 외딴 한국 여자애라는 느낌이 덜 들었다. 한국과 인도의 거리는 멀지만, 우리는 둘 다 나라를 떠나 사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점,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족 문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