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전환’에 대한 사적이면서 사적이지 않은 스몰토크 지상 중계> 문탁네트워크는 2025년 말, 17년 간 머물렀던 둥지를 떠나 새 공간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실제 이사를 단행하는 동안,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전환을 불러오는 사건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래서 문탁회원 세 사람을 초대해 ‘전환’을 키워드로 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웹진 편집 팀의 요요가 사회를 보았고, 봄날이 정리했다.)     참석자 소개   봄날: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5년. 고전공부를 한다. 탁구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새 터전의 인테리어도 그의 손을 안 거친 것이 없는 팔방미인. 그러나 공부는 늘 고민이다.       라겸: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0년. 작년에 갑자기 눈이 나빠지면서 문탁을 떠날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다시 문탁의 일상에 합류하며 ‘월간 읽기’ 세미나를 런칭했다. 근(육을)부(탁)해 신입멤버이기도 하다.       효주: 문탁생활 3년차. 사랑스런 반려종 레오와 함께 산다. 나이로는 청년과 중장년 사이지만 주로 청년들과 공부하고 있다. 문탁 이사 과정에서 TF팀에 합류하며 인문학 공동체 답사도 하고, 관심사와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아직도 문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Q1. 오늘의 주제인 ‘전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봄날) 저는 영화 <패터슨>과 <서칭 포 슈가맨>을 좋아해요. 두 영화 모두 단절로서의 전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있어요. 특히 <패터슨>에서 주인공 패터슨은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고,...
      <‘전환’에 대한 사적이면서 사적이지 않은 스몰토크 지상 중계> 문탁네트워크는 2025년 말, 17년 간 머물렀던 둥지를 떠나 새 공간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실제 이사를 단행하는 동안, 우리는 이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전환을 불러오는 사건이라는 것에 공감했다. 그래서 문탁회원 세 사람을 초대해 ‘전환’을 키워드로 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웹진 편집 팀의 요요가 사회를 보았고, 봄날이 정리했다.)     참석자 소개   봄날: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5년. 고전공부를 한다. 탁구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고 심지어 새 터전의 인테리어도 그의 손을 안 거친 것이 없는 팔방미인. 그러나 공부는 늘 고민이다.       라겸: 문탁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10년. 작년에 갑자기 눈이 나빠지면서 문탁을 떠날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다시 문탁의 일상에 합류하며 ‘월간 읽기’ 세미나를 런칭했다. 근(육을)부(탁)해 신입멤버이기도 하다.       효주: 문탁생활 3년차. 사랑스런 반려종 레오와 함께 산다. 나이로는 청년과 중장년 사이지만 주로 청년들과 공부하고 있다. 문탁 이사 과정에서 TF팀에 합류하며 인문학 공동체 답사도 하고, 관심사와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아직도 문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다.         Q1. 오늘의 주제인 ‘전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봄날) 저는 영화 <패터슨>과 <서칭 포 슈가맨>을 좋아해요. 두 영화 모두 단절로서의 전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의 삶을 보여주고 있어요. 특히 <패터슨>에서 주인공 패터슨은 늘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고,...
우현
2026.03.01 | 조회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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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 새 터전 집들이에 찾아와 주신 많은 분들!     2026년, 17년 만에 처음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간을 옮겼다. 올 해로 문탁 활동 8년차가 되는 나에게도, 3년 전 처음으로 문탁에 접속하신 효주샘에게도, 17년동안 회계로 활동해 오신 인디언샘 모두에게 큰 사건이었다. 잘 지내던 터전을 떠나 새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꽤나 복잡했다. 집주인과의 트러블, 신규 회원의 접속 부진, 공부의 미진함... 반면 우리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적어낸 이사의 이유는 단 한 마디였다. “인류세의 곤경 속에서 우리 공부의 새로운 비전을 찾으러~” 사실 내가 봐도 이 문장은 아리송하다. ‘인류세의 곤경’이란 무엇이고, 우리 공부의 ‘새로운 비전’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이 문장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글은 이 한 마디를 설명하는 글이 될 것이다. 문탁네트워크의 새 웹진 'MOON*MAG'(이하 '문맥')을 만들게 된 맥락도 포함해서...     ‘인류세의 곤경’ 우선 인류세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네덜란드의 대기학자 파울 크뤼천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표현으로, 지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주체가 ‘인간’이라는 맥락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이는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 끼친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암시하며, 그것이 주로 부정적인 영향력이었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미국의 작가 로이 스크랜턴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의 저서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에서는 기후 분석 자료들을 통해 이미 현대문명은 종말을 피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단언한다. 상업용 석탄과 자본주의...
        문탁 새 터전 집들이에 찾아와 주신 많은 분들!     2026년, 17년 만에 처음으로 문탁네트워크의 공간을 옮겼다. 올 해로 문탁 활동 8년차가 되는 나에게도, 3년 전 처음으로 문탁에 접속하신 효주샘에게도, 17년동안 회계로 활동해 오신 인디언샘 모두에게 큰 사건이었다. 잘 지내던 터전을 떠나 새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꽤나 복잡했다. 집주인과의 트러블, 신규 회원의 접속 부진, 공부의 미진함... 반면 우리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적어낸 이사의 이유는 단 한 마디였다. “인류세의 곤경 속에서 우리 공부의 새로운 비전을 찾으러~” 사실 내가 봐도 이 문장은 아리송하다. ‘인류세의 곤경’이란 무엇이고, 우리 공부의 ‘새로운 비전’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이 문장은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글은 이 한 마디를 설명하는 글이 될 것이다. 문탁네트워크의 새 웹진 'MOON*MAG'(이하 '문맥')을 만들게 된 맥락도 포함해서...     ‘인류세의 곤경’ 우선 인류세라는 말부터 살펴보자.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는 네덜란드의 대기학자 파울 크뤼천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표현으로, 지구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주체가 ‘인간’이라는 맥락에서 제안된 개념이다. 이는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 끼친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암시하며, 그것이 주로 부정적인 영향력이었다는 것을 시사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미국의 작가 로이 스크랜턴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의 저서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에서는 기후 분석 자료들을 통해 이미 현대문명은 종말을 피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단언한다. 상업용 석탄과 자본주의...
우현
2026.03.01 | 조회 54
방과후 고전중
          사건은 돌출된 고요한 변화이다 새해 들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로이 스크랜턴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이고 또 하나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고요한 변화』이다.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는 3월에 발행되는 웹진 'MOON*MAG'을 위한 사전 세미나 용이었고, 『고요한 변화』는 지난해 ‘주역 철학사’ 공부의 보충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별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두 책이 문탁네트워크의 ‘이사’라는 사건으로 서로 엮이게 되었다.       “거대한 빙하의 움직임처럼, 커다란 사건은 고요한 변화에서 돌출한다.”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       『고요한 변화』에서 줄리앙은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이행’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변화라고 말할 때는 A와 A′로의 변화, 그러니까 A라는 상태에서 A′로 달라짐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변화는 A에서 A′로 이행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구 사유에서 변화는 존재를 중심으로 하기에 ‘그 사이’ 즉 이행과정을 사유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의 침묵을 줄리앙은 ‘고요한 변화’라고 칭했다. 여기서 줄리앙은 변화에 대한 동양적 사유에 주목한다. 동양에서는 변화가 전반에 걸쳐 조금씩 지속성 있게 일어나며, 여러 요소의 상호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결코 지각될 만큼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변화를 우리는 하나의 단어로 쓰고 있지만 고전(古典)에서는 변(變)과 화(化)를 구분해서 쓴다. 변(變)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상태’를 말하고 있다면 화(化)는 고요한 변화처럼 비가시적 영역을 나타낸다. 이렇듯 우리가 말하는 ‘변화’에는 이 두 영역, 즉...
          사건은 돌출된 고요한 변화이다 새해 들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로이 스크랜턴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이고 또 하나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고요한 변화』이다.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는 3월에 발행되는 웹진 'MOON*MAG'을 위한 사전 세미나 용이었고, 『고요한 변화』는 지난해 ‘주역 철학사’ 공부의 보충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별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두 책이 문탁네트워크의 ‘이사’라는 사건으로 서로 엮이게 되었다.       “거대한 빙하의 움직임처럼, 커다란 사건은 고요한 변화에서 돌출한다.”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       『고요한 변화』에서 줄리앙은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이행’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변화라고 말할 때는 A와 A′로의 변화, 그러니까 A라는 상태에서 A′로 달라짐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변화는 A에서 A′로 이행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구 사유에서 변화는 존재를 중심으로 하기에 ‘그 사이’ 즉 이행과정을 사유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의 침묵을 줄리앙은 ‘고요한 변화’라고 칭했다. 여기서 줄리앙은 변화에 대한 동양적 사유에 주목한다. 동양에서는 변화가 전반에 걸쳐 조금씩 지속성 있게 일어나며, 여러 요소의 상호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결코 지각될 만큼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변화를 우리는 하나의 단어로 쓰고 있지만 고전(古典)에서는 변(變)과 화(化)를 구분해서 쓴다. 변(變)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상태’를 말하고 있다면 화(化)는 고요한 변화처럼 비가시적 영역을 나타낸다. 이렇듯 우리가 말하는 ‘변화’에는 이 두 영역, 즉...
우현
2026.03.01 | 조회 55
유물;멍때리기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 북송, 범관范寬 세로 206센티×가로 103센티 타이완 고궁박물원   **범관(950?~1032?) : 북송 초기의 산수화가. 섬서성 출신. 주산主山을 화면 중앙에 배치해 비석처럼 우뚝 세우는 ‘거비산수巨碑山水’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림 속 길을 가고 있는 자들에게 원경의 커다란 산과 폭포는 어떻게 감지될까. 저 먼 곳의 산은 단지 숲 그늘로만, 폭포의 웅대한 소리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만 감지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산속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그 풍경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 일부로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 그림을 보는 우리는 풍경과 거리를 둠으로써, 안에 있는 존재의 시점으로는 볼 수 없는 진면목을 접할 수 있다.     거대한 바위산은 우주의 중심처럼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지구 중력의 힘으로 수직낙하하는 폭포는 소리와 포말이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 한쪽에 인간은 자신의 길을 가는 데 여념이 없다(오른쪽 아래 길 가는 사람들을 보라). 그렇게 각각은 화면의 한 부분들을 차지하듯 전체 우주 질서 속의 부분들로 우주 질서 전체에 참여한다. 잘 감지되진 않지만^^. 그러하니 .... 때때로 고개를 들어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볼 일이다. 그러면 주위에 있으나 감지하지 못했던 것과 조우할지도 모르겠다.                 자작나무 천부적인 감식안이 아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관련 서적을 읽고 이런저런 시각 이미지를 보고 그 이미지 뒤에 숨겨진 것들을 탐구한다. 나, 공부하는 감상자다.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 북송, 범관范寬 세로 206센티×가로 103센티 타이완 고궁박물원   **범관(950?~1032?) : 북송 초기의 산수화가. 섬서성 출신. 주산主山을 화면 중앙에 배치해 비석처럼 우뚝 세우는 ‘거비산수巨碑山水’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림 속 길을 가고 있는 자들에게 원경의 커다란 산과 폭포는 어떻게 감지될까. 저 먼 곳의 산은 단지 숲 그늘로만, 폭포의 웅대한 소리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만 감지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산속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그 풍경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그 일부로 살아간다. 하지만 지금 그림을 보는 우리는 풍경과 거리를 둠으로써, 안에 있는 존재의 시점으로는 볼 수 없는 진면목을 접할 수 있다.     거대한 바위산은 우주의 중심처럼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지구 중력의 힘으로 수직낙하하는 폭포는 소리와 포말이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 한쪽에 인간은 자신의 길을 가는 데 여념이 없다(오른쪽 아래 길 가는 사람들을 보라). 그렇게 각각은 화면의 한 부분들을 차지하듯 전체 우주 질서 속의 부분들로 우주 질서 전체에 참여한다. 잘 감지되진 않지만^^. 그러하니 .... 때때로 고개를 들어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볼 일이다. 그러면 주위에 있으나 감지하지 못했던 것과 조우할지도 모르겠다.                 자작나무 천부적인 감식안이 아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관련 서적을 읽고 이런저런 시각 이미지를 보고 그 이미지 뒤에 숨겨진 것들을 탐구한다. 나, 공부하는 감상자다.  
우현
2026.03.01 | 조회 42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글은 3월 1일에 업로드 되나 2월 12일에 쓰였습니다. 이란의 긴박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읽을 때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2년 전 나와 우리 집 사람들은 퀴어 페스티벌의 테크노 트럭 뒤에 자리를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가지각색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을 구경하던 중, 옆에서 허리를 꺾으며 춤을 추는 조그만 여자애를 의식하게 됐다. 먼저 말을 걸었다. 너 바이브 되게 좋다! 친구들이랑 같이 왔어? 그 애가 답했다. 아니 나 혼자야.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내 친구지 뭐. 나는 맞장구를 치며 이 애가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같이 행진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디아다. 이란에서 한 달 전 독일에 이사 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 애는 방을 구하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방이 있었다. 한번의 플랫메이트 인터뷰 후로 나디아는 나의 열두번째 동거인이 되었다.     터키인 베이자와 친구가 된 후, 독일에서 터키가 비행기로 2시간밖에 안 걸린다는 것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터키가 정확히 어디있는지 모르는 채 아시아에 좀 더 가까울 거라고, 독일과 한국 그 중간 즈음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독일에 터키계 이주민들이 많은 만큼, 터키의 대해서는 종종 들은 바가 있지만 그 주변 중동 나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다. 한번은 나디아와 이야기하다가 이란의 수도가 테헤란이라는 것도 몰라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중동은...
*이 글은 3월 1일에 업로드 되나 2월 12일에 쓰였습니다. 이란의 긴박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새로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읽을 때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2년 전 나와 우리 집 사람들은 퀴어 페스티벌의 테크노 트럭 뒤에 자리를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가지각색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을 구경하던 중, 옆에서 허리를 꺾으며 춤을 추는 조그만 여자애를 의식하게 됐다. 먼저 말을 걸었다. 너 바이브 되게 좋다! 친구들이랑 같이 왔어? 그 애가 답했다. 아니 나 혼자야.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내 친구지 뭐. 나는 맞장구를 치며 이 애가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같이 행진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디아다. 이란에서 한 달 전 독일에 이사 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 애는 방을 구하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방이 있었다. 한번의 플랫메이트 인터뷰 후로 나디아는 나의 열두번째 동거인이 되었다.     터키인 베이자와 친구가 된 후, 독일에서 터키가 비행기로 2시간밖에 안 걸린다는 것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터키가 정확히 어디있는지 모르는 채 아시아에 좀 더 가까울 거라고, 독일과 한국 그 중간 즈음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독일에 터키계 이주민들이 많은 만큼, 터키의 대해서는 종종 들은 바가 있지만 그 주변 중동 나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이 없다. 한번은 나디아와 이야기하다가 이란의 수도가 테헤란이라는 것도 몰라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중동은...
우현
2026.03.01 | 조회 39
요요와 불교산책
              요즘 자주 찾아보는 OTT 프로그램이 있다. <취미는 과학>이다. 얼마 전 빅뱅편을 보고 나서 빅뱅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우주가 고온 고밀도였던 어떤 시점으로부터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팽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었다. 그러니 138억년은 전체 우주의 역사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시공간이 빅뱅 이후 흘러온 시간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팽창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고온 고밀도 상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빅뱅 이론은 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러니 빅뱅을 우주 창조의 제1원인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제1원인을 탐구하는 것이 형이상학이다. 플라톤은 신화의 구조를 빌려 우주의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데미우르고스는 엄밀한 의미의 제1원인은 아니었다. 제작에 앞서 이미 설계도(이데아)와 재료(코라와 질료)가 주어졌다고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원인을 보다 엄밀하게 정의함으로써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세계를 움직이게 한 ‘부동의 원동자’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기독교는 그것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학화 했다. 성경의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자 빛이 생겼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 자신이 답한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과학은 물리법칙으로 세계의 생성과 파괴를 설명한다. 신학은 신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 세계가 건립되었다고 본다. 세계의 파괴 역시 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불교의 창세기는 괴멸로 시작한다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여 생성하고 소멸하는 무시무종의 연기를 설하는 불교에는 제1원인이 없다. 서구 형이상학이 최초의 원인에 주목했다면...
              요즘 자주 찾아보는 OTT 프로그램이 있다. <취미는 과학>이다. 얼마 전 빅뱅편을 보고 나서 빅뱅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우주가 고온 고밀도였던 어떤 시점으로부터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팽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었다. 그러니 138억년은 전체 우주의 역사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시공간이 빅뱅 이후 흘러온 시간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팽창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고온 고밀도 상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빅뱅 이론은 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그러니 빅뱅을 우주 창조의 제1원인에 대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제1원인을 탐구하는 것이 형이상학이다. 플라톤은 신화의 구조를 빌려 우주의 제작자 데미우르고스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데미우르고스는 엄밀한 의미의 제1원인은 아니었다. 제작에 앞서 이미 설계도(이데아)와 재료(코라와 질료)가 주어졌다고 가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원인을 보다 엄밀하게 정의함으로써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세계를 움직이게 한 ‘부동의 원동자’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기독교는 그것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학화 했다. 성경의 <창세기>는 창조주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하자 빛이 생겼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 자신이 답한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과학은 물리법칙으로 세계의 생성과 파괴를 설명한다. 신학은 신의 목적과 계획에 의해 세계가 건립되었다고 본다. 세계의 파괴 역시 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불교의 창세기는 괴멸로 시작한다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여 생성하고 소멸하는 무시무종의 연기를 설하는 불교에는 제1원인이 없다. 서구 형이상학이 최초의 원인에 주목했다면...
우현
2026.03.01 | 조회 38
일과 나날
      1 호기로운 출발 나는 스무 살에 취업했다. 내가 머물던 인문학 공동체와 내 가족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해줬지만, 난 자립을 위해 돈을 벌고 싶었다. 취업을 하루빨리 하기 위해서 ‘국민취업지원제도’(이하 국취제)를 이용했다. 나는 수원에 있는 학원에서 취업 연계형 ‘출판 편집디자인 인재 양성과정’을 이수하며, 어도비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인디자인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웠고, GTQ 1급(포토샵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는 출판업계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고졸에다가 경력도 없는 나를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졸 무경력은 사회적으로 무능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다행히 학원의 도움을 받아서 광고 에이전시에 취업했다. 나는 미래에 대졸, 경력자가 되어 승진과 이직을 손쉽게 해내는 직장인을 꿈꾸며 호기롭게 직장생활에 발을 들였다.     2 첫 번째 직장생활, 소심해진 마음가짐 첫 직장은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외주를 받아서 온라인 광고를 대신 올려주는 업체였다. 이 회사는 영업팀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디자인팀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는데, 나까지 총 4명이었다. 디자인팀은 팀장님의 노력으로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팀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회의는 짧고 굵게, 결재는 시원하게 해주셨다.   하지만 일을 배울 기회가 되진 못했던 것 같다. 이 회사는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디자인을 했다. 나의 업무는 단지 사진을 오리고 글자를 얹는 정도였다. 팀장님의 업무도 내가 하는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디자인을 찍어내야 했지만 인력이 적은 탓에 디자인팀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1 호기로운 출발 나는 스무 살에 취업했다. 내가 머물던 인문학 공동체와 내 가족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해줬지만, 난 자립을 위해 돈을 벌고 싶었다. 취업을 하루빨리 하기 위해서 ‘국민취업지원제도’(이하 국취제)를 이용했다. 나는 수원에 있는 학원에서 취업 연계형 ‘출판 편집디자인 인재 양성과정’을 이수하며, 어도비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인디자인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웠고, GTQ 1급(포토샵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는 출판업계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고졸에다가 경력도 없는 나를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졸 무경력은 사회적으로 무능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다행히 학원의 도움을 받아서 광고 에이전시에 취업했다. 나는 미래에 대졸, 경력자가 되어 승진과 이직을 손쉽게 해내는 직장인을 꿈꾸며 호기롭게 직장생활에 발을 들였다.     2 첫 번째 직장생활, 소심해진 마음가짐 첫 직장은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외주를 받아서 온라인 광고를 대신 올려주는 업체였다. 이 회사는 영업팀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디자인팀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는데, 나까지 총 4명이었다. 디자인팀은 팀장님의 노력으로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팀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회의는 짧고 굵게, 결재는 시원하게 해주셨다.   하지만 일을 배울 기회가 되진 못했던 것 같다. 이 회사는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디자인을 했다. 나의 업무는 단지 사진을 오리고 글자를 얹는 정도였다. 팀장님의 업무도 내가 하는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디자인을 찍어내야 했지만 인력이 적은 탓에 디자인팀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우현
2026.03.01 | 조회 39
할 말 있어요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어느덧 나온 지 7년째를 맞이한 책을 오랜만에 다시 잡고 읽어보니 그 안에 담긴 모든 문장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이, 이 생각들이 정말로 전부 내 안에서 나온 것인가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할 즈음 까만 글자들 사이사이에서 맡아지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희미한 잔향이다. 그럼 그렇지! 의심이 들어맞았음에 즐거워하다가 이내 위화감을 깨닫는다. 명백히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냄새이건만 그로부터 친숙함이 느껴지는 탓이다. 이윽고 그 친숙함은 머뭇거리던 나를 오랜 기억으로 잡아끌고 나는 낯섦 속에서 예전에 지나갔던 길을 되짚는다. 비록 책에는 가명으로 적혀있으나 그 글들을 조금만 읽어도 떠오르는 이름들, 함께했던 아이들.   그제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려낸다. 이 책의 저자는 나만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기도 했다. 이 책을 나오게 한 수업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자 내가 배우는 수업이기도 했다. 자칫 상투적인 문구로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럼에도 명백하기 그지없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생생히 전하기 위해 나는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겪은 그 현장과 그 시간들을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중등인문학교이고, 나는 올해 다시 그 중등인문학교를 시작하려 한다. 다시 한 번 아이들과 책을 읽어나가려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기 이 책이 나온 것은 7년 전인 2019년이지만 내가 중등인문학교를 처음 맡게 된 것은...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어느덧 나온 지 7년째를 맞이한 책을 오랜만에 다시 잡고 읽어보니 그 안에 담긴 모든 문장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이, 이 생각들이 정말로 전부 내 안에서 나온 것인가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할 즈음 까만 글자들 사이사이에서 맡아지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희미한 잔향이다. 그럼 그렇지! 의심이 들어맞았음에 즐거워하다가 이내 위화감을 깨닫는다. 명백히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냄새이건만 그로부터 친숙함이 느껴지는 탓이다. 이윽고 그 친숙함은 머뭇거리던 나를 오랜 기억으로 잡아끌고 나는 낯섦 속에서 예전에 지나갔던 길을 되짚는다. 비록 책에는 가명으로 적혀있으나 그 글들을 조금만 읽어도 떠오르는 이름들, 함께했던 아이들.   그제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려낸다. 이 책의 저자는 나만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기도 했다. 이 책을 나오게 한 수업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자 내가 배우는 수업이기도 했다. 자칫 상투적인 문구로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럼에도 명백하기 그지없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생생히 전하기 위해 나는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겪은 그 현장과 그 시간들을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중등인문학교이고, 나는 올해 다시 그 중등인문학교를 시작하려 한다. 다시 한 번 아이들과 책을 읽어나가려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기 이 책이 나온 것은 7년 전인 2019년이지만 내가 중등인문학교를 처음 맡게 된 것은...
우현
2026.03.01 | 조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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