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아웃
문탁의 커머닝, 중장년 이야기 문*맥 5월호 주제는 “커먼즈(commons)”이다. 사실 ‘커먼즈’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너무 구태의연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문탁은 ‘인문학 공동체’다. 따라서 처음 문탁에 발 들여놓았을 때부터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니 정말 내가 공동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혹은 커머닝(commonimg, 공통화하다)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커먼즈란 무엇인가》에 의하면 커먼즈는 이전에는 ‘공유지’, ‘공유재’, ‘공유자원’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이후에 그것만으로는 커먼즈의 뜻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자라났다고 한다. 커먼즈 이론가들과 활동가들 등등은 커먼즈를 단순히 자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그 의미를 활동이자 관계로 확장했다. 네그리는 “공통적인 것은 너와 내가 무언가를 함께 할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커먼즈를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탁의 활동, 즉 우리가 함께 활동하는 것 자체가 커먼즈일까?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우리는 맥잡기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들을 토대로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기로 했다. 뻔해 보였던 주제지만 세미나를 통해 우리가 ‘공통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각각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당연하겠지만 청년과 장년의 감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중장년에게 있어 문탁은 어떤 커먼즈일까? 문탁 커먼즈의 꽃, 에세이 발표날 맥잡기 세미나를 하는...
문탁의 커머닝, 중장년 이야기 문*맥 5월호 주제는 “커먼즈(commons)”이다. 사실 ‘커먼즈’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너무 구태의연한 주제라고 생각했다. 문탁은 ‘인문학 공동체’다. 따라서 처음 문탁에 발 들여놓았을 때부터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니 정말 내가 공동체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혹은 커머닝(commonimg, 공통화하다)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커먼즈란 무엇인가》에 의하면 커먼즈는 이전에는 ‘공유지’, ‘공유재’, ‘공유자원’ 등으로 번역되었지만 이후에 그것만으로는 커먼즈의 뜻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자라났다고 한다. 커먼즈 이론가들과 활동가들 등등은 커먼즈를 단순히 자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그 의미를 활동이자 관계로 확장했다. 네그리는 “공통적인 것은 너와 내가 무언가를 함께 할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커먼즈를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탁의 활동, 즉 우리가 함께 활동하는 것 자체가 커먼즈일까? 우리는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공통적인 것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우리는 맥잡기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들을 토대로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기로 했다. 뻔해 보였던 주제지만 세미나를 통해 우리가 ‘공통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각각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당연하겠지만 청년과 장년의 감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중장년에게 있어 문탁은 어떤 커먼즈일까? 문탁 커먼즈의 꽃, 에세이 발표날 맥잡기 세미나를 하는...
줌 인&아웃
문탁의 커머닝, 청년의 이야기 지난 호 문*맥에서 나는 ‘전환’을 주제로 문탁 네트워크가 겪고 있는 ‘인류세의 곤경’, 그리고 문탁이 가져야 할 새로운 비전에 대해 적었다. ‘인류세의 곤경’은 갈수록 인문학 공동체에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사회의 욕망은 더더욱 화폐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문탁의 새로운 비전은 이사와 문*맥 발행, 즉 더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맥 5월호 주제는 “커먼즈(commons)”다. 나는 이 주제가 시의적절하다고 느꼈다. 문탁이 이사를 하고 변혁을 꾀하고 있는 시점에서, ‘공동체’란 무엇인지, 문탁은 어떤 감각을 가지고 사람들과 관계 맺을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먼즈’ 혹은 ‘공동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명확히 하고, 구성원들의 감각을 정교하게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디디의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었다. 한디디에 따르면 “커먼즈(commons)는 함께 섞고 나누는 활동, 즉 커머닝(commoning/공통하기)이다(p.19)”.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p.58)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 그 자체’(p.12)이기도 하다. 삶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고,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만 삶은 살아진다. 요컨대 커먼즈는 삶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요소, 즉 ‘함께 함’이면서, 동시에 그런 감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활동들을 말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점점 삶과 커먼즈를 분리해내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재조직하려 한다. ‘공유지’와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소유’와 ‘화폐에 대한 욕망’으로 전환되었고, 공동체적 관계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핵가족과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를 통해 생산성은 극대화되었지만, 우리의 삶은...
문탁의 커머닝, 청년의 이야기 지난 호 문*맥에서 나는 ‘전환’을 주제로 문탁 네트워크가 겪고 있는 ‘인류세의 곤경’, 그리고 문탁이 가져야 할 새로운 비전에 대해 적었다. ‘인류세의 곤경’은 갈수록 인문학 공동체에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사회의 욕망은 더더욱 화폐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에 대한 문탁의 새로운 비전은 이사와 문*맥 발행, 즉 더 다양한 이들과의 만남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맥 5월호 주제는 “커먼즈(commons)”다. 나는 이 주제가 시의적절하다고 느꼈다. 문탁이 이사를 하고 변혁을 꾀하고 있는 시점에서, ‘공동체’란 무엇인지, 문탁은 어떤 감각을 가지고 사람들과 관계 맺을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먼즈’ 혹은 ‘공동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명확히 하고, 구성원들의 감각을 정교하게 맞출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디디의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었다. 한디디에 따르면 “커먼즈(commons)는 함께 섞고 나누는 활동, 즉 커머닝(commoning/공통하기)이다(p.19)”.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p.58)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 그 자체’(p.12)이기도 하다. 삶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고,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만 삶은 살아진다. 요컨대 커먼즈는 삶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요소, 즉 ‘함께 함’이면서, 동시에 그런 감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활동들을 말한다. 반면 자본주의는 점점 삶과 커먼즈를 분리해내고,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재조직하려 한다. ‘공유지’와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소유’와 ‘화폐에 대한 욕망’으로 전환되었고, 공동체적 관계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핵가족과 개인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를 통해 생산성은 극대화되었지만, 우리의 삶은...
방과후 고전중
“아직도 공부하나?” “아직도 공부가 좋은가?” 내가 세미나 시간 때문에 다른 약속 날짜를 요청할 때, 동창생들에게 종종 듣는 핀잔 섞인 말이다. 녀석들은 십수년을 징글징글하게 외우는 공부로써 세상에 나아갔고, 이제 은퇴하여 다시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그 공부를 또 한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날은 지금, 현재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혹은 욕망하며 현재를 기피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몰아세운다. 또 나이가 들면 미래의 욕심에 과거의 후회가 더해져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그때 ㅇㅇㅇ 할 껄, 그래서 지금…’하는 후회 말이다. 이 후회를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탓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얼마 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에픽테토스 내가 만난 에픽테토스(AD.55? ~ AD.135) 문탁 철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났다. 그의 도덕적 사유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아직도 공부하나?” “아직도 공부가 좋은가?” 내가 세미나 시간 때문에 다른 약속 날짜를 요청할 때, 동창생들에게 종종 듣는 핀잔 섞인 말이다. 녀석들은 십수년을 징글징글하게 외우는 공부로써 세상에 나아갔고, 이제 은퇴하여 다시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그 공부를 또 한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날은 지금, 현재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혹은 욕망하며 현재를 기피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몰아세운다. 또 나이가 들면 미래의 욕심에 과거의 후회가 더해져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그때 ㅇㅇㅇ 할 껄, 그래서 지금…’하는 후회 말이다. 이 후회를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탓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얼마 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에픽테토스 내가 만난 에픽테토스(AD.55? ~ AD.135) 문탁 철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났다. 그의 도덕적 사유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요요와 불교산책
2026 불교박람회에 전시된 불상 힙불교라는 트렌드 불교에 대한 2030세대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힙불교’를 검색어로 넣었더니 수많은 기사와 영상이 뜬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올해 불교박람회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기사다. 나흘 동안 25만 명이 방문했는데, 방문자 중 73%가 2030세대였다. 코엑스에서 열린 박람회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서 봉은사까지 줄을 서고, 불교굿즈를 사기 위한 오픈런까지 있었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다. 참가자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2024년 ‘재밌는 불교’를 컨셉으로 디제잉, 출가상담 등의 체험형 이벤트와 번뇌청산 양말 등의 굿즈가 본격 등장한 이후부터다. 올해 박람회 주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당신이 좋아하는 공놀이’였다. 어렵게 느껴지던 불교가 재미있는 불교가 되고, 엄숙한 불교가 '힙불교'가 되었다. 불교굿즈라고 하면 절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나 인사동에서 볼 수 있는 염주와 불상 등 불자들을 위한 소품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박람회에서 대히트를 친 굿즈는 번뇌 닦는 수건, 목탁 키링. ‘깨닫다’라는 문구가 프린팅 된 티셔츠 등이다. 이런 굿즈를 만든 사람들 역시 청년들이 만든 젊은 회사다. 이들의 쇼핑몰에 들어가 보니, 이런! ‘번뇌를 없애는 수건’ ‘탐욕을 없애는 수건’이라는 글자가 궁서체로 인쇄된 수건이 보인다. 키링도 다양하다. ‘극락도 락이다’ ‘깨닫다’ 등의 문구들이 눈에 띈다. 수영하는 부처님, 스키 타는 부처님, 서핑하는 부처님, 운전하는 부처님이 그려진 티셔츠도 인기였다. 서핑하는 부처님 그림에는 ‘Go with the flow’가 쓰여 있다. 애쓰지 말고 파도를 타라!...
2026 불교박람회에 전시된 불상 힙불교라는 트렌드 불교에 대한 2030세대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힙불교’를 검색어로 넣었더니 수많은 기사와 영상이 뜬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올해 불교박람회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기사다. 나흘 동안 25만 명이 방문했는데, 방문자 중 73%가 2030세대였다. 코엑스에서 열린 박람회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서 봉은사까지 줄을 서고, 불교굿즈를 사기 위한 오픈런까지 있었다니, 대체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다. 참가자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은 2024년 ‘재밌는 불교’를 컨셉으로 디제잉, 출가상담 등의 체험형 이벤트와 번뇌청산 양말 등의 굿즈가 본격 등장한 이후부터다. 올해 박람회 주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당신이 좋아하는 공놀이’였다. 어렵게 느껴지던 불교가 재미있는 불교가 되고, 엄숙한 불교가 '힙불교'가 되었다. 불교굿즈라고 하면 절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나 인사동에서 볼 수 있는 염주와 불상 등 불자들을 위한 소품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박람회에서 대히트를 친 굿즈는 번뇌 닦는 수건, 목탁 키링. ‘깨닫다’라는 문구가 프린팅 된 티셔츠 등이다. 이런 굿즈를 만든 사람들 역시 청년들이 만든 젊은 회사다. 이들의 쇼핑몰에 들어가 보니, 이런! ‘번뇌를 없애는 수건’ ‘탐욕을 없애는 수건’이라는 글자가 궁서체로 인쇄된 수건이 보인다. 키링도 다양하다. ‘극락도 락이다’ ‘깨닫다’ 등의 문구들이 눈에 띈다. 수영하는 부처님, 스키 타는 부처님, 서핑하는 부처님, 운전하는 부처님이 그려진 티셔츠도 인기였다. 서핑하는 부처님 그림에는 ‘Go with the flow’가 쓰여 있다. 애쓰지 말고 파도를 타라!...
현민의 독국유학기
인도의 한 결혼식에서 생긴 일 인도에서 온 바비야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내게 동서가 생겼다(아직 미혼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바비야다. 인도의 남쪽 지방에서 온 바비야는 7년 전 인도를 떠났다. 그녀가 처음 도착한 곳은 두바이다. 인도 여권 소지자로서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두바이가 거의 유일해, 많은 인도 해외 거주자들이 처음 두바이를 통한다. 그녀는 두바이에서 일하다 베를린에 일자리를 찾았고 몇년 후, 뮌헨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같은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나와 바비야는 비슷한 시기에 남자친구 가족에 합류했다. 한국에서는 애인의 부모님을 만나는 게 큰일인 만큼, 독일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애인이 가족의 한 파트가 되고 가족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뭘 말해도 되는지, 얼마만큼 말해도 되는지, 말했는데 안 궁금한 건 아닌지 등 혼자서 눈치를 보다 아무 말을 못하곤 했다. 바비야는 유쾌한 여자다. 바비야는 인도에서 기숙학교를 다닐 때 한국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며 나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고, 드라마로 배운 한국어를 선보일 때에는 발음이 좋았다. 미지의 독일인 가족을 대하기가 어려울 때, 바비야는 인도에선 이렇다, 저렇다,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다. 그녀가 가족에 합류한 후에는 내가 독일인 가족에 낀 외딴 한국 여자애라는 느낌이 덜 들었다. 한국과 인도의 거리는 멀지만, 우리는 둘 다 나라를 떠나 사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점,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족 문화에서...
인도의 한 결혼식에서 생긴 일 인도에서 온 바비야 남자친구의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내게 동서가 생겼다(아직 미혼이지만). 그녀의 이름은 바비야다. 인도의 남쪽 지방에서 온 바비야는 7년 전 인도를 떠났다. 그녀가 처음 도착한 곳은 두바이다. 인도 여권 소지자로서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두바이가 거의 유일해, 많은 인도 해외 거주자들이 처음 두바이를 통한다. 그녀는 두바이에서 일하다 베를린에 일자리를 찾았고 몇년 후, 뮌헨으로 이직을 하게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다 같은 회사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나와 바비야는 비슷한 시기에 남자친구 가족에 합류했다. 한국에서는 애인의 부모님을 만나는 게 큰일인 만큼, 독일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애인이 가족의 한 파트가 되고 가족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뭘 말해도 되는지, 얼마만큼 말해도 되는지, 말했는데 안 궁금한 건 아닌지 등 혼자서 눈치를 보다 아무 말을 못하곤 했다. 바비야는 유쾌한 여자다. 바비야는 인도에서 기숙학교를 다닐 때 한국 드라마를 보는 낙으로 살았다며 나를 반가워했다. 그녀는 한국 음식을 좋아했고, 드라마로 배운 한국어를 선보일 때에는 발음이 좋았다. 미지의 독일인 가족을 대하기가 어려울 때, 바비야는 인도에선 이렇다, 저렇다, 대화를 이끌어가곤 했다. 그녀가 가족에 합류한 후에는 내가 독일인 가족에 낀 외딴 한국 여자애라는 느낌이 덜 들었다. 한국과 인도의 거리는 멀지만, 우리는 둘 다 나라를 떠나 사는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점, 그리고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족 문화에서...
할 말 있어요
길위기금, 변치 않음의 변화 ‘길위기금’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요청받았다.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길위기금팀’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제부터였을까, 라고 묻는다면 기억이 안 난다.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에서의 나의 활동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 시작은 알 수 없으나 ‘어느새, 이미,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길위(길-wee)’와 같이 문탁의 역사적 맥락(이것도 ‘문맥’) 속에서 이해가 필요한 활동들은 홈페이지를 찾아봐야 흐릿한 기억이 그나마 선명해진다. 최근 개편된 문탁 홈페이지 메인에는 문탁의 ‘History’가 시간순으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자누리샘 너무 감사드려요!!!). 2010년 마을시설 청소년들과 ‘악어떼 1기’를 함께 하면서 나의 ‘길위기금’ 활동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악어떼 아이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은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주로 동네 ‘삼촌’에 가까웠다. 그 삼촌은 참 ‘잘 놀았다’. 사진도 찍고, 눈썰매도 타고, 족구도 하고, 식당도 열었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만들었다. 악어떼들이 오는 날이면 문탁에서는 밥상과 간식을 만들기에 분주했고, 문탁 식구들이 선생님으로 친구로 함께 했다. 그렇게 악어떼 1기가 졸업하고, ‘해봄’이 시작되고, ‘주권없는학교’와 ‘파지스쿨’에 이어서 2015년 ‘길위기금’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 문탁의 이삿날, 악어떼 1기 녀석 중 한 명이 결혼 후 아직 돌이 안 된 아기와 함께 왔었다. 녀석과 똑같이 생긴 아기의 모습에 놀랐고, 불현듯 문탁의 악어떼 1기 졸업식(2014년)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32개월 된 나의 둘째는 이제 중2가 되었다. 아차차, 서두가 길어졌다. 못 미더운 기억 탓에 ‘길위기금’의 시작을 되짚었던 건, 악어떼로...
길위기금, 변치 않음의 변화 ‘길위기금’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요청받았다.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길위기금팀’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제부터였을까, 라고 묻는다면 기억이 안 난다.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에서의 나의 활동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 시작은 알 수 없으나 ‘어느새, 이미,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길위(길-wee)’와 같이 문탁의 역사적 맥락(이것도 ‘문맥’) 속에서 이해가 필요한 활동들은 홈페이지를 찾아봐야 흐릿한 기억이 그나마 선명해진다. 최근 개편된 문탁 홈페이지 메인에는 문탁의 ‘History’가 시간순으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자누리샘 너무 감사드려요!!!). 2010년 마을시설 청소년들과 ‘악어떼 1기’를 함께 하면서 나의 ‘길위기금’ 활동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악어떼 아이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은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주로 동네 ‘삼촌’에 가까웠다. 그 삼촌은 참 ‘잘 놀았다’. 사진도 찍고, 눈썰매도 타고, 족구도 하고, 식당도 열었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만들었다. 악어떼들이 오는 날이면 문탁에서는 밥상과 간식을 만들기에 분주했고, 문탁 식구들이 선생님으로 친구로 함께 했다. 그렇게 악어떼 1기가 졸업하고, ‘해봄’이 시작되고, ‘주권없는학교’와 ‘파지스쿨’에 이어서 2015년 ‘길위기금’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 문탁의 이삿날, 악어떼 1기 녀석 중 한 명이 결혼 후 아직 돌이 안 된 아기와 함께 왔었다. 녀석과 똑같이 생긴 아기의 모습에 놀랐고, 불현듯 문탁의 악어떼 1기 졸업식(2014년)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32개월 된 나의 둘째는 이제 중2가 되었다. 아차차, 서두가 길어졌다. 못 미더운 기억 탓에 ‘길위기금’의 시작을 되짚었던 건, 악어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