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나날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변신, 창업가에서 공동체 활동가로 3년 동안의 좌충우돌 속에서 ‘팀과 함께 매출을 창출하라’라는 과제를 치열하게 완수했다. 수익 목표를 달성하고 개인 에세이 제출 등의 조건을 통과하면 4학년의 졸업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프로젝트는 일을 통해 얻은 배움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커리큘럼이다. 팀과 함께 기존 사업을 더 성장시키거나, 개인의 고민을 확장해 활동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해 5개월 이상 참여한 일에 대해 졸업논문을 작성하면 대학 과정이 완료된다.   우리 팀은 4학년 시작을 앞두고 진행한 마지막 팀 평가에서 높은 매출과 팀 협력 성과를 보였다. 평가가 끝나고 지난 3년간 치열하게 달려온 모두를 위해 자축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에 팀 사업을 유지해 원팀으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반복되는 이유로 6인 6색으로 흩어졌다. 재학 내내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바로 그 문제, ‘개인의 관심사’ 때문이었다. 지난 3년간 개인이 얻기보다 양보하거나 포기해야 했던 상황이 누적되었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손익 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다올랩을 주제로 졸업프로젝트를 하려는 팀원은 ‘FLOW’ 제안자 외에는 없었다. 매번 우리는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라고 말했지만, 말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창업 1명, 취업 5명으로 나뉘어 졸업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NEXT 사업을 종료한 3학년 중반부터 대학 생활과 병행하며 동네 책방 우주소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우주소년은 수지 동천동에 있는 공간으로, 책을 파는 서점이자, 음료를 파는 카페이자, 문화 및...
현진
2026.09.30 | 조회 202
일과 나날
    사업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열다 우리 팀 이름은 '다올랩'이다. '하는 일마다 복이 온다'라는 순우리말 '다올'과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 공간 'Lab'을 더했다. 그리고 고객이 우리에게 다 오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팀원을 소개해보겠다.   빛과 소금이라는 뜻의 별칭을 가진 팀원 A. 가장 필요한 순간 언제든지 등장하는 묵묵한 친구다. 서류상 이사장이자 총무 및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팀 내 유일한 개발자 B. 전공자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코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 지금은 반복 업무를 줄여주는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팀원 C. SNS 콘텐츠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 놀랍게도 그녀는 대학교 입학하기 직전까지 휴대폰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SNS를 잘 사용한다. 팀 내 유일한 디자이너 D. 예술가로서 미술 작업을 하고 싶어 한다. 디자인 일을 할 때면, 본인의 추구미와 고객이 요구하는 바가 달라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다. 발품 팔기 및 영업 담당 팀원 E. 아직 관심 키워드는 없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창업하리라 매번 다짐한다. 실제 전문 영역은 동네별 점심 메뉴 추천, 회식 장소 추천, 워크숍 장소 선정이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것에서 안정을 찾는 팀원 F. 법, 회계, 세무를 주로 담당한다. 참고로 F는 팀 내 유일한 극단적 계획형이다. 그 F가 바로 '나'다. 팀워크를 다지던 2년을 지나, 개성 있는 6명이 3학년을 맞이했다. 졸업까지 남은 2년 동안, 이 여섯 명은...
    사업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열다 우리 팀 이름은 '다올랩'이다. '하는 일마다 복이 온다'라는 순우리말 '다올'과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 공간 'Lab'을 더했다. 그리고 고객이 우리에게 다 오라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팀원을 소개해보겠다.   빛과 소금이라는 뜻의 별칭을 가진 팀원 A. 가장 필요한 순간 언제든지 등장하는 묵묵한 친구다. 서류상 이사장이자 총무 및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팀 내 유일한 개발자 B. 전공자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코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 지금은 반복 업무를 줄여주는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팀원 C. SNS 콘텐츠 마케팅에 관심이 많다. 놀랍게도 그녀는 대학교 입학하기 직전까지 휴대폰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 SNS를 잘 사용한다. 팀 내 유일한 디자이너 D. 예술가로서 미술 작업을 하고 싶어 한다. 디자인 일을 할 때면, 본인의 추구미와 고객이 요구하는 바가 달라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다. 발품 팔기 및 영업 담당 팀원 E. 아직 관심 키워드는 없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창업하리라 매번 다짐한다. 실제 전문 영역은 동네별 점심 메뉴 추천, 회식 장소 추천, 워크숍 장소 선정이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것에서 안정을 찾는 팀원 F. 법, 회계, 세무를 주로 담당한다. 참고로 F는 팀 내 유일한 극단적 계획형이다. 그 F가 바로 '나'다. 팀워크를 다지던 2년을 지나, 개성 있는 6명이 3학년을 맞이했다. 졸업까지 남은 2년 동안, 이 여섯 명은...
현진
2026.08.31 | 조회 201
일과 나날
        협동을 배우는 공간, 몬드라곤 대학을 아시나요?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대입 공부를 시작한 지 2주가 되었을 때, 페이스북에서 한 대학교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강의, 시험, 교수, 강의실이 없는 대학 그리고 팀창업, 대화, 코치, 실험실이 있는 대학’. 심장이 떨렸다. ‘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우고, 심지어 시험도 보지 않는다고!’ 나는 입학 상담하기를 누른 후 다 펼쳐보지도 못한 수능 문제집들을 당근에다 팔았다.   몬드라곤 대학교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주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만든 대학이다. 이 협동조합은 바스크를 대표하는 공동체로, 미래세대 양성을 하기 위해 대학을 세웠다. 나는 경영학부 소속 ‘기업가정신, 혁신, 리더십(LEINN)’학과의 한국 연구실에 다녔다. (본교는 스페인에 있지만, 우리 학과 연구실은 전 세계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인 경영학과와 달리, 4년간 팀과 함께 실제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다. 법인을 설립하고, 고객을 만나고, 매출을 창출하고, 실패를 경험하는 모든 과정이 수업이다. 이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지금 옆 사람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기’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학교가 있는 바스크주는 분지 지형으로 주변과 고립된 작은 지역이었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들은 함께 일자리를 만들고,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세웠다. 또한 협동을 바탕으로 돌봄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바스크 구겐하임 미술관이 지역 문화 재생을 이루어 낸 대표적 사례이다) 고립의 공간을 자립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꽃을 피우는 팀 기업가 학교는 몬드라곤에서 하는 많은 일을 ‘Blooming(꽃을 피우다)’으로...
        협동을 배우는 공간, 몬드라곤 대학을 아시나요? 고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대입 공부를 시작한 지 2주가 되었을 때, 페이스북에서 한 대학교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강의, 시험, 교수, 강의실이 없는 대학 그리고 팀창업, 대화, 코치, 실험실이 있는 대학’. 심장이 떨렸다. ‘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우고, 심지어 시험도 보지 않는다고!’ 나는 입학 상담하기를 누른 후 다 펼쳐보지도 못한 수능 문제집들을 당근에다 팔았다.   몬드라곤 대학교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주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만든 대학이다. 이 협동조합은 바스크를 대표하는 공동체로, 미래세대 양성을 하기 위해 대학을 세웠다. 나는 경영학부 소속 ‘기업가정신, 혁신, 리더십(LEINN)’학과의 한국 연구실에 다녔다. (본교는 스페인에 있지만, 우리 학과 연구실은 전 세계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인 경영학과와 달리, 4년간 팀과 함께 실제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다. 법인을 설립하고, 고객을 만나고, 매출을 창출하고, 실패를 경험하는 모든 과정이 수업이다. 이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지금 옆 사람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내기’ 철학과 맞닿아 있다. 학교가 있는 바스크주는 분지 지형으로 주변과 고립된 작은 지역이었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그들은 함께 일자리를 만들고,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세웠다. 또한 협동을 바탕으로 돌봄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역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바스크 구겐하임 미술관이 지역 문화 재생을 이루어 낸 대표적 사례이다) 고립의 공간을 자립의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꽃을 피우는 팀 기업가 학교는 몬드라곤에서 하는 많은 일을 ‘Blooming(꽃을 피우다)’으로...
현진
2026.08.01 | 조회 210
일과 나날
    언제든 여백을 비워두며 솔직하게 밝히자면, 나는 오랫동안 '딴짓'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딴짓하듯이' 가볍고 여유롭게 대하는 것. 하지만 이 말이 무슨 일이든 대충 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딴짓'은 게으름이나 회피와는 다르다. 오히려 어떤 일에 몰입하되 스스로를 완전히 쏟지 않는 유연한 태도에 가깝다. 그러니까 너무 무겁게 여기지 않고 언제든지 나의 역할과 모드를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동안 알바를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건 문탁에서의 생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문탁에서의 활동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됐다. 그 일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나름의 성의를 다해 임하면서도 의식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동시에 문탁에서도 여러 일을 해왔다. 문탁에서는 알바와 달리 맡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더해지기도 했다. 늘어나는 일들에 부담스러워질 때면 다시 알바를 하면서 문탁의 일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딴짓'의 태도는 이렇게 문탁에서의 생활과 알바, 두 가지 축 사이에서 덜 긴장되는 쪽에 안도하며 오가는 생활을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딴짓'의 딜레마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을 가져왔지만 사실 누구에게 얘기해본 적은 없다. '딴짓'처럼 살고 싶다는 말에는 언제나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딴짓'은 '본업'이 있을 때만 성립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할 일을...
    언제든 여백을 비워두며 솔직하게 밝히자면, 나는 오랫동안 '딴짓'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딴짓하듯이' 가볍고 여유롭게 대하는 것. 하지만 이 말이 무슨 일이든 대충 하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딴짓'은 게으름이나 회피와는 다르다. 오히려 어떤 일에 몰입하되 스스로를 완전히 쏟지 않는 유연한 태도에 가깝다. 그러니까 너무 무겁게 여기지 않고 언제든지 나의 역할과 모드를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동안 알바를 구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건 문탁에서의 생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문탁에서의 활동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됐다. 그 일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나름의 성의를 다해 임하면서도 의식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동시에 문탁에서도 여러 일을 해왔다. 문탁에서는 알바와 달리 맡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더해지기도 했다. 늘어나는 일들에 부담스러워질 때면 다시 알바를 하면서 문탁의 일들과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딴짓'의 태도는 이렇게 문탁에서의 생활과 알바, 두 가지 축 사이에서 덜 긴장되는 쪽에 안도하며 오가는 생활을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딴짓'의 딜레마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생각을 가져왔지만 사실 누구에게 얘기해본 적은 없다. '딴짓'처럼 살고 싶다는 말에는 언제나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딴짓'은 '본업'이 있을 때만 성립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자칫하면 할 일을...
동은
2026.06.30 | 조회 214
일과 나날
      잊을 수 없는 졸업식   간략히 설명하자면 나는 특목고의 범주에 있는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마이스터고)를 다녔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고 졸업했다. 가까웠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세 명 정도였는데 취업에 실패한 건 나뿐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같은 기수로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 현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한 사람은 공기업, 한 사람은 사기업, 한 사람은 취업 실패자. 실패자라는 말이 조금 강한 감이 있지만, 취업이 목표였던 곳에서 취업을 못했으니 그 말을 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원하는 회사마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류도, 인적성 시험도, 면접도 매번 수월하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결국 최종 합격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미 출근을 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학교에 얼굴을 비췄다. 소속이 정해진 친구들은 서로의 졸업을 축하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잘 지내기를 기원했다. 물론 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공허가 느껴졌다. 그건 단순히 취업을 못했다는 실패로 느껴지는 좌절이 아니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강제로 학생 신분을 박탈당하고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평생 밥벌이를 찾아 헤매야만 한다는 서늘하고 막연한 예감. 졸업식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교문을 지나갈 때 느꼈던 막막함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실패 끝에 남은 의심   졸업 이후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계속 취업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더 취업 준비 기간을 가졌다....
      잊을 수 없는 졸업식   간략히 설명하자면 나는 특목고의 범주에 있는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마이스터고)를 다녔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고 졸업했다. 가까웠던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 세 명 정도였는데 취업에 실패한 건 나뿐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같은 기수로 졸업한 학생들의 취업 현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한 사람은 공기업, 한 사람은 사기업, 한 사람은 취업 실패자. 실패자라는 말이 조금 강한 감이 있지만, 취업이 목표였던 곳에서 취업을 못했으니 그 말을 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원하는 회사마다 매번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류도, 인적성 시험도, 면접도 매번 수월하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결국 최종 합격은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이미 출근을 하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학교에 얼굴을 비췄다. 소속이 정해진 친구들은 서로의 졸업을 축하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잘 지내기를 기원했다. 물론 나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공허가 느껴졌다. 그건 단순히 취업을 못했다는 실패로 느껴지는 좌절이 아니었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강제로 학생 신분을 박탈당하고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평생 밥벌이를 찾아 헤매야만 한다는 서늘하고 막연한 예감. 졸업식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교문을 지나갈 때 느꼈던 막막함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실패 끝에 남은 의심   졸업 이후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계속 취업 준비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할 일을 찾아야 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더 취업 준비 기간을 가졌다....
동은
2026.05.31 | 조회 288
일과 나날
팔아야 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조금만 더  지난 2년 동안 명품 매장 판매직으로 열심히 일했다. 'A'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노력이기도 했다. 그 사건이 마음에 남아서인지 한 매장에 깊이 정착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해서 이직하며 몸값을 빠르게 올려 갔다. 당시에는 이런 속도감과 치열함이 내 성향에 잘 맞고 적성에도 맞는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직종으로 넘어가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이미 이 일에 적응해버린 터라 이 직종에 매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감정노동은 스트레스가 컸다. 그럴 때면 소비로 풀곤 했다. 나는 명품이나 비싼 브랜드는 싫어해서 실용적이되 내가 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걸 샀다. 예를 들면 100ml에 30만 원 정도 하는 향수 같은 것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업계의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같았고, 우리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일단 더현대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사고 나서 줄어든 통장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줬지만, 살 때만큼은 모든 힘듦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함께 쇼핑을 다니며 우리는 서로가 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쇼핑을 부추겼다. 돈이 없어서 쇼핑에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 악순환은 문탁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멈췄다. 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이제 나는 쇼핑을 같이 다니지 않을뿐더러 돈이 적더라도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그만 사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곤 한다.    2024년, 개인적으로...
팔아야 하는 삶에서 질문하는 삶으로         조금만 더  지난 2년 동안 명품 매장 판매직으로 열심히 일했다. 'A'에 대한 생각이 들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노력이기도 했다. 그 사건이 마음에 남아서인지 한 매장에 깊이 정착하고 싶지 않았고, 계속해서 이직하며 몸값을 빠르게 올려 갔다. 당시에는 이런 속도감과 치열함이 내 성향에 잘 맞고 적성에도 맞는 줄로만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직종으로 넘어가는 것이 귀찮기도 했고, 이미 이 일에 적응해버린 터라 이 직종에 매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감정노동은 스트레스가 컸다. 그럴 때면 소비로 풀곤 했다. 나는 명품이나 비싼 브랜드는 싫어해서 실용적이되 내가 살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걸 샀다. 예를 들면 100ml에 30만 원 정도 하는 향수 같은 것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이 업계의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같았고, 우리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일단 더현대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사고 나서 줄어든 통장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줬지만, 살 때만큼은 모든 힘듦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함께 쇼핑을 다니며 우리는 서로가 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쇼핑을 부추겼다. 돈이 없어서 쇼핑에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 악순환은 문탁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멈췄다. 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이제 나는 쇼핑을 같이 다니지 않을뿐더러 돈이 적더라도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그만 사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곤 한다.    2024년, 개인적으로...
새은
2026.05.01 | 조회 362
일과 나날
          나는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 실수와 수습을 반복하는 일상에 지쳐 점차 평정심을 잃어갔다. 지금와서는 성장통이었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매일이었다. 아침에 눈 뜨기 싫었고 스트레스에 몸은 무거웠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매장에서 유달리 환한 웃음을 가진 친절한 직원을 만났다. 이 직원은 일이 정말 즐거워보였고, 이는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그 직원을 본 후로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가짐도 달리 해보고, 명상도 하고, 디자인 공부도 하고, 직장에서 일 잘하는 법에 관한 책도 보고, 내가 일하는 자리에 좋아하는 물건을 놓아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직종을 탓했다. 직원의 미소가 가식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매장판매직에서 일하면 긍정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커리어보다 마음을 돌보는 게 더 절실했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매장판매직에 취직했다.   1 취업 장벽이 낮은 매장판매직 매장은 관리자의 말을 잘 듣는 직원을 원하기 때문에 나처럼 학력과 경력이 부족해 갈 곳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선호한다. 매장판매직 업무는 청소, 재고관리-필수품 관리, 손님응대-대화까지 일상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크게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보다 규모가 크고 업무가 세분화 돼서 일 강도는 높다. 보통 수습기간은 3개월이지만, 평균적으로 2주 안에 적응하지 못하면 해고된다. 직원 교육에 힘이 적게 들기 때문에 적응을 못한 직원은 지체없이 해고하는 거다. 자의든 타의든 오래 일하는 사람이 적으니...
          나는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 실수와 수습을 반복하는 일상에 지쳐 점차 평정심을 잃어갔다. 지금와서는 성장통이었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매일이었다. 아침에 눈 뜨기 싫었고 스트레스에 몸은 무거웠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매장에서 유달리 환한 웃음을 가진 친절한 직원을 만났다. 이 직원은 일이 정말 즐거워보였고, 이는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다. 그 직원을 본 후로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음가짐도 달리 해보고, 명상도 하고, 디자인 공부도 하고, 직장에서 일 잘하는 법에 관한 책도 보고, 내가 일하는 자리에 좋아하는 물건을 놓아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직종을 탓했다. 직원의 미소가 가식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매장판매직에서 일하면 긍정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디자인을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커리어보다 마음을 돌보는 게 더 절실했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매장판매직에 취직했다.   1 취업 장벽이 낮은 매장판매직 매장은 관리자의 말을 잘 듣는 직원을 원하기 때문에 나처럼 학력과 경력이 부족해 갈 곳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선호한다. 매장판매직 업무는 청소, 재고관리-필수품 관리, 손님응대-대화까지 일상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크게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보다 규모가 크고 업무가 세분화 돼서 일 강도는 높다. 보통 수습기간은 3개월이지만, 평균적으로 2주 안에 적응하지 못하면 해고된다. 직원 교육에 힘이 적게 들기 때문에 적응을 못한 직원은 지체없이 해고하는 거다. 자의든 타의든 오래 일하는 사람이 적으니...
새은
2026.03.30 | 조회 512
일과 나날
  1. 호기로운 출발 나는 스무 살에 취업했다. 내가 머물던 인문학 공동체와 내 가족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해줬지만, 난 자립을 위해 돈을 벌고 싶었다. 취업을 하루빨리 하기 위해서 ‘국민취업지원제도’(이하 국취제)를 이용했다. 나는 수원에 있는 학원에서 취업 연계형 ‘출판 편집디자인 인재 양성과정’을 이수하며, 어도비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인디자인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웠고, GTQ 1급(포토샵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는 출판업계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고졸에다가 경력도 없는 나를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졸 무경력은 사회적으로 무능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다행히 학원의 도움을 받아서 광고 에이전시에 취업했다. 나는 미래에 대졸, 경력자가 되어 승진과 이직을 손쉽게 해내는 직장인을 꿈꾸며 호기롭게 직장생활에 발을 들였다.     2. 첫 번째 직장생활, 소심해진 마음가짐 첫 직장은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외주를 받아서 온라인 광고를 대신 올려주는 업체였다. 이 회사는 영업팀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디자인팀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는데, 나까지 총 4명이었다. 디자인팀은 팀장님의 노력으로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팀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회의는 짧고 굵게, 결재는 시원하게 해주셨다.   하지만 일을 배울 기회가 되진 못했던 것 같다. 이 회사는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디자인을 했다. 나의 업무는 단지 사진을 오리고 글자를 얹는 정도였다. 팀장님의 업무도 내가 하는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디자인을 찍어내야 했지만 인력이 적은 탓에 디자인팀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했다....
  1. 호기로운 출발 나는 스무 살에 취업했다. 내가 머물던 인문학 공동체와 내 가족은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해줬지만, 난 자립을 위해 돈을 벌고 싶었다. 취업을 하루빨리 하기 위해서 ‘국민취업지원제도’(이하 국취제)를 이용했다. 나는 수원에 있는 학원에서 취업 연계형 ‘출판 편집디자인 인재 양성과정’을 이수하며, 어도비 프로그램인 포토샵과 인디자인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웠고, GTQ 1급(포토샵 자격증)을 취득했다.           나는 출판업계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고졸에다가 경력도 없는 나를 뽑아주는 곳은 없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졸 무경력은 사회적으로 무능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다행히 학원의 도움을 받아서 광고 에이전시에 취업했다. 나는 미래에 대졸, 경력자가 되어 승진과 이직을 손쉽게 해내는 직장인을 꿈꾸며 호기롭게 직장생활에 발을 들였다.     2. 첫 번째 직장생활, 소심해진 마음가짐 첫 직장은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외주를 받아서 온라인 광고를 대신 올려주는 업체였다. 이 회사는 영업팀이 1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디자인팀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는데, 나까지 총 4명이었다. 디자인팀은 팀장님의 노력으로 항상 분위기가 좋았다. 팀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회의는 짧고 굵게, 결재는 시원하게 해주셨다.   하지만 일을 배울 기회가 되진 못했던 것 같다. 이 회사는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디자인을 했다. 나의 업무는 단지 사진을 오리고 글자를 얹는 정도였다. 팀장님의 업무도 내가 하는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디자인을 찍어내야 했지만 인력이 적은 탓에 디자인팀은 야근과 주말 출근을 밥 먹듯이 했다....
우현
2026.03.01 | 조회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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