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있어요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개념 없는 사람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공동육아를 하겠다고 사람들이 모였다. 전셋집을 구해 교사를 직접 모셔오고 운영도 직접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을 만들자는 것이었고,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끼리 몇 백 만원 씩 누군가의 계좌에 보냈다. 그 돈은 아무런 보장도 없어서 일이 잘못되면 사라질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개념 없는 사람들 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들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공동육아를 시작할 수 있었던 조건이었던 것도 같다. 모인 사람들은 경제적 상황이 비슷한 듯했지만 또 많이 달랐다. 그때 처음 실험한 것이 ‘보육료 차등제’였다. 누군가가 제안했고 참여한 20여 가구가 모두 동의하여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누구는 더 내고 누구는 덜 냈다. 얼마까지 더 낼 것인지, 어떤 조건이면 덜 낼 것인지 등등 논의는 끝이 없었고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돈에 관해서는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내는 사람도 덜 내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이 불편함이 아마 오랫동안 이 제도를 유지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를 하면서 1/N이 아닌, 서로의 사정을 생각하며 부담을 나누는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커서 어린이집을 떠날 때는 대부분 출자금을 받아 가지 않고 조합에 남겨두었다.   문탁네트워크를 시작할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누구는 생각보다 많은 보증금의 일부를 맡아주었고, 살림살이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돈도 재량껏 알아서 냈다. 기본적인 운영비를...
인디언
2026.09.30 | 조회 155
할 말 있어요
        SF(Speculative Fiction), 재난을 모으다 SF를 떠올리면 우주여행, 외계인과 로봇 같은 낯선 세계가 먼저 떠오른다. 이러한 소재들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나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과 연결되어 왔다. 그러나 SF는 단순히 그런 세계를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다른 시공간과 삶의 조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SF가 상상하는 것은 미래이지만, 그 미래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은 현재다.   이러한 SF의 방식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후위기를 생각할 때 더욱 유용하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연결된 사건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올여름만 해도 연일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며 한때 기온이 40도 안팎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광복절 연휴의 거제에서는 사흘 동안 80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침수,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땅과 도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대개 ‘2026년 40도 폭염’, ‘거제의 집중호우’처럼 각각의 재난으로 접한다. 뉴스가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면 우리의 관심도 다른 사건으로 옮겨간다.   기후위기는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편적으로 경험하는 셈이다. 그러나 SF는 이렇게 서로 떨어져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의 세계 안에 모아놓을 수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 자본주의적 질서의 붕괴를 미래의 미국에 함께 펼쳐놓는다.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은 서로 다른...
        SF(Speculative Fiction), 재난을 모으다 SF를 떠올리면 우주여행, 외계인과 로봇 같은 낯선 세계가 먼저 떠오른다. 이러한 소재들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나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과 연결되어 왔다. 그러나 SF는 단순히 그런 세계를 상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과 다른 시공간과 삶의 조건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말하자면, SF가 상상하는 것은 미래이지만, 그 미래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되는 것은 현재다.   이러한 SF의 방식은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후위기를 생각할 때 더욱 유용하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현실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연결된 사건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올여름만 해도 연일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며 한때 기온이 40도 안팎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광복절 연휴의 거제에서는 사흘 동안 80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산사태와 침수,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 한쪽에서는 땅과 도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비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건들을 대개 ‘2026년 40도 폭염’, ‘거제의 집중호우’처럼 각각의 재난으로 접한다. 뉴스가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면 우리의 관심도 다른 사건으로 옮겨간다.   기후위기는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편적으로 경험하는 셈이다. 그러나 SF는 이렇게 서로 떨어져 보이는 사건들을 하나의 세계 안에 모아놓을 수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기후변화와 사회적 불평등, 자본주의적 질서의 붕괴를 미래의 미국에 함께 펼쳐놓는다. 어슐러 K. 르 귄의 『빼앗긴 자들』은 서로 다른...
띠우
2026.08.31 | 조회 188
할 말 있어요
        지난 문*맥 ‘할 말 있어요’ 코너에 올림픽공원 시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썼다. 올림픽공원 시위를 젠더적 관점으로 보며, 특히 내 또래 남성들이 그에 열렬히 반응했던 이유를 간단히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7월 22일, 성미산 마을 극장에서 페미니즘 좌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주최로 여성현실연구소 소장 권김현영샘과 뉴스타파 PD 박종화님이 패널로 참여하여 올림픽공원 시위를 둘러싼 현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그 좌담회에 참여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지난 문맥에서 했던 이야기와 좌담회에서의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 비슷하거나 다른지, 또 올림픽공원 시위에 대한 새로운 분석은 무엇이 있을지 공유해보고자 한다.     현장 취재로 본 올림픽공원 시위 스케치 뉴스타파의 박종화 PD님은 6월 8일부터 6일 동안 올림픽공원 현장에서 숙식하며 취재를 하셨다고 한다(그 내용은 유튜브 ‘뉴스타파’ 채널에서 다큐멘터리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만난 다양한 참여자들과 점점 변화하는 현장 분위기, 현장에서 생산/재생산되는 담론들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올림픽공원 시위는 6월 3일 잠실동의 일부 개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어난 시위의 연장선이다. 다만 주요 언론에 비친 모습에 따르면 개표소에서의 시위와 올림픽공원에서의 시위 양상은 다르다. 6월 3일부터 5일까지 이어진 잠실 개표소에서의 시위 구호는 주로 ‘부정선거’였던 반면, 투표용지가 올림픽공원으로 이송되고 난 뒤, 올림픽공원에서의 시위 구호는 ‘재선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시위가 올림픽공원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본격적인 ‘참정권 시위’가 되었으며, ‘좌/우를 막론한 일종의 탈정치적 시위’, 나아가 그들은 ‘시위대라고 규정되는 것조차 거부하는’...
        지난 문*맥 ‘할 말 있어요’ 코너에 올림픽공원 시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썼다. 올림픽공원 시위를 젠더적 관점으로 보며, 특히 내 또래 남성들이 그에 열렬히 반응했던 이유를 간단히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7월 22일, 성미산 마을 극장에서 페미니즘 좌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주최로 여성현실연구소 소장 권김현영샘과 뉴스타파 PD 박종화님이 패널로 참여하여 올림픽공원 시위를 둘러싼 현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나는 그 좌담회에 참여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지난 문맥에서 했던 이야기와 좌담회에서의 이야기는 어떤 부분에서 비슷하거나 다른지, 또 올림픽공원 시위에 대한 새로운 분석은 무엇이 있을지 공유해보고자 한다.     현장 취재로 본 올림픽공원 시위 스케치 뉴스타파의 박종화 PD님은 6월 8일부터 6일 동안 올림픽공원 현장에서 숙식하며 취재를 하셨다고 한다(그 내용은 유튜브 ‘뉴스타파’ 채널에서 다큐멘터리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만난 다양한 참여자들과 점점 변화하는 현장 분위기, 현장에서 생산/재생산되는 담론들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선 올림픽공원 시위는 6월 3일 잠실동의 일부 개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어난 시위의 연장선이다. 다만 주요 언론에 비친 모습에 따르면 개표소에서의 시위와 올림픽공원에서의 시위 양상은 다르다. 6월 3일부터 5일까지 이어진 잠실 개표소에서의 시위 구호는 주로 ‘부정선거’였던 반면, 투표용지가 올림픽공원으로 이송되고 난 뒤, 올림픽공원에서의 시위 구호는 ‘재선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시위가 올림픽공원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본격적인 ‘참정권 시위’가 되었으며, ‘좌/우를 막론한 일종의 탈정치적 시위’, 나아가 그들은 ‘시위대라고 규정되는 것조차 거부하는’...
우현
2026.07.31 | 조회 158
할 말 있어요
      최근 SNS나 유튜브 댓글 창을 열어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이하 ‘잠실 사태’) 이후 온갖 음모론과 갈라치기, 혐오적 표현들이 인터넷 세계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내 알고리즘 속 극우 세력들의 주장은 이렇다. 이번 ‘잠실 사태’는 이재명 정부가 주도한 부정선거이며, 이재명을 비롯한 민주당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주장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민주당’, ‘공산주의(빨갱이)’, ‘중국(인)’ 등으로 몰아세우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이번 일의 원인은 ‘생각 없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줬기 때문이라며 퀴어 페미니즘과 PC주의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민주당, 퀴어, 페미니스트, 중국인, 공산주의 등에 대한 혐오가 한 대 묶여 공명하고 있으며, 특히 20-30대 남성들이 그 공명의 주체이자 동시에 맹렬히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 SNS ‘맞팔’을 맺고 있는 친구들(공교롭게도 모두 남성 친구들이다) 중 일부도 올림픽 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에 참여한 것을 인증하거나, ‘#멸공’과 같은 표현을 SNS에 개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중학교 때 알고 지내던 친구이고, 내가 음악을 하던 시기 자주 도움을 받아온 형이며, 고향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던 동생이다. 만약 내가 그 친구들과 실제로 마주쳤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나는 우선 내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언팔로우’했다.     잠실 종합운동장 시위 모습 (출처 : 해럴드경제 잠실 개표소 시위 9일째...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 계속)...
      최근 SNS나 유튜브 댓글 창을 열어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이하 ‘잠실 사태’) 이후 온갖 음모론과 갈라치기, 혐오적 표현들이 인터넷 세계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내 알고리즘 속 극우 세력들의 주장은 이렇다. 이번 ‘잠실 사태’는 이재명 정부가 주도한 부정선거이며, 이재명을 비롯한 민주당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주장에 대해 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민주당’, ‘공산주의(빨갱이)’, ‘중국(인)’ 등으로 몰아세우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은 이번 일의 원인은 ‘생각 없는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줬기 때문이라며 퀴어 페미니즘과 PC주의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요컨대 민주당, 퀴어, 페미니스트, 중국인, 공산주의 등에 대한 혐오가 한 대 묶여 공명하고 있으며, 특히 20-30대 남성들이 그 공명의 주체이자 동시에 맹렬히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와 SNS ‘맞팔’을 맺고 있는 친구들(공교롭게도 모두 남성 친구들이다) 중 일부도 올림픽 공원 개표소 봉쇄 시위에 참여한 것을 인증하거나, ‘#멸공’과 같은 표현을 SNS에 개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중학교 때 알고 지내던 친구이고, 내가 음악을 하던 시기 자주 도움을 받아온 형이며, 고향 동네에서 종종 마주치던 동생이다. 만약 내가 그 친구들과 실제로 마주쳤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거듭하다가 나는 우선 내 멘탈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언팔로우’했다.     잠실 종합운동장 시위 모습 (출처 : 해럴드경제 잠실 개표소 시위 9일째... "부정선거 재선거" 구호 계속)...
우현
2026.06.29 | 조회 244
할 말 있어요
        이런 여행은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일 때 내 인생에 여행은 더 이상 없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권도 갱신하지 않고, 그냥 집과 문탁을 오가는 생활만 했다.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여권이 없으니 귀찮아서 외국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타이완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그것도 수학여행! 그 계기가 된 것은, 세미나다.   작년 한 해 동안 [중국옛그림읽기] 세미나를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서로 그 감상을 나누는 세미나다. 중국미술사 책도 읽고 작품에 관한 에세이집도 읽고 실크로드를 따라 만들어진 석굴과 불상을 찾아가는 여행 서적도 읽었다. 원래는 3년 정도 세미나를 하면서 관련 정보나 지식도 축적하면 여행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곳도 그렇고 단체로 여행 가는 것도 힘들어하는 성격이다. 어디를 갈 것인가 라는 여행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함께 가는 사람들 아니 그냥 단체여행이라는 데서 오는 피로감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나는 ‘방구석’ 여행이 좋아졌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보다 가기 전에 여행지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혼자서 일정을 짜고 시간을 배분하는 일들을 더 좋아한다. 난, 좀 J인 듯.   그렇기에 이번 타이완 수학여행은 나에게 있어서는 놀라우면서도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으흠, 그렇다면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내 운이 바뀌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음으로는 책이다. 작년에는 <자금성의 그림들>과 <자금성의 물건들>을...
        이런 여행은 없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일 때 내 인생에 여행은 더 이상 없다! 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권도 갱신하지 않고, 그냥 집과 문탁을 오가는 생활만 했다. 상황이 나아졌을 때는 여권이 없으니 귀찮아서 외국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타이완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그것도 수학여행! 그 계기가 된 것은, 세미나다.   작년 한 해 동안 [중국옛그림읽기] 세미나를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서로 그 감상을 나누는 세미나다. 중국미술사 책도 읽고 작품에 관한 에세이집도 읽고 실크로드를 따라 만들어진 석굴과 불상을 찾아가는 여행 서적도 읽었다. 원래는 3년 정도 세미나를 하면서 관련 정보나 지식도 축적하면 여행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사람 많은 곳도 그렇고 단체로 여행 가는 것도 힘들어하는 성격이다. 어디를 갈 것인가 라는 여행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함께 가는 사람들 아니 그냥 단체여행이라는 데서 오는 피로감도 있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나는 ‘방구석’ 여행이 좋아졌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보다 가기 전에 여행지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공부를 하고 혼자서 일정을 짜고 시간을 배분하는 일들을 더 좋아한다. 난, 좀 J인 듯.   그렇기에 이번 타이완 수학여행은 나에게 있어서는 놀라우면서도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으흠, 그렇다면 이런 결정이 가능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내 운이 바뀌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다음으로는 책이다. 작년에는 <자금성의 그림들>과 <자금성의 물건들>을...
자작나무
2026.05.31 | 조회 134
할 말 있어요
  길위기금, 변치 않음의 변화      ‘길위기금’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요청받았다.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길위기금팀’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제부터였을까, 라고 묻는다면 기억이 안 난다.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에서의 나의 활동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 시작은 알 수 없으나 ‘어느새, 이미,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길위(길-wee)’와 같이 문탁의 역사적 맥락(이것도 ‘문맥’) 속에서 이해가 필요한 활동들은 홈페이지를 찾아봐야 흐릿한 기억이 그나마 선명해진다.    최근 개편된 문탁 홈페이지 메인에는 문탁의 ‘History’가 시간순으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자누리샘 너무 감사드려요!!!). 2010년 마을시설 청소년들과 ‘악어떼 1기’를 함께 하면서 나의 ‘길위기금’ 활동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악어떼 아이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은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주로 동네 ‘삼촌’에 가까웠다.    그 삼촌은 참 ‘잘 놀았다’. 사진도 찍고, 눈썰매도 타고, 족구도 하고, 식당도 열었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만들었다. 악어떼들이 오는 날이면 문탁에서는 밥상과 간식을 만들기에 분주했고, 문탁 식구들이 선생님으로 친구로 함께 했다. 그렇게 악어떼 1기가 졸업하고, ‘해봄’이 시작되고, ‘주권없는학교’와 ‘파지스쿨’에 이어서 2015년 ‘길위기금’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 문탁의 이삿날, 악어떼 1기 녀석 중 한 명이 결혼 후 아직 돌이 안 된 아기와 함께 왔었다. 녀석과 똑같이 생긴 아기의 모습에 놀랐고, 불현듯 문탁의 악어떼 1기 졸업식(2014년)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32개월 된 나의 둘째는 이제 중2가 되었다. 아차차, 서두가 길어졌다. 못 미더운 기억 탓에 ‘길위기금’의 시작을 되짚었던 건, 악어떼로...
  길위기금, 변치 않음의 변화      ‘길위기금’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요청받았다.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길위기금팀’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리라. 언제부터였을까, 라고 묻는다면 기억이 안 난다.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에서의 나의 활동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 시작은 알 수 없으나 ‘어느새, 이미,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길위(길-wee)’와 같이 문탁의 역사적 맥락(이것도 ‘문맥’) 속에서 이해가 필요한 활동들은 홈페이지를 찾아봐야 흐릿한 기억이 그나마 선명해진다.    최근 개편된 문탁 홈페이지 메인에는 문탁의 ‘History’가 시간순으로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자누리샘 너무 감사드려요!!!). 2010년 마을시설 청소년들과 ‘악어떼 1기’를 함께 하면서 나의 ‘길위기금’ 활동은 이미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악어떼 아이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은 ‘선생님’이라기 보다는 주로 동네 ‘삼촌’에 가까웠다.    그 삼촌은 참 ‘잘 놀았다’. 사진도 찍고, 눈썰매도 타고, 족구도 하고, 식당도 열었고, 공부도 하고, 영화도 만들었다. 악어떼들이 오는 날이면 문탁에서는 밥상과 간식을 만들기에 분주했고, 문탁 식구들이 선생님으로 친구로 함께 했다. 그렇게 악어떼 1기가 졸업하고, ‘해봄’이 시작되고, ‘주권없는학교’와 ‘파지스쿨’에 이어서 2015년 ‘길위기금’이 만들어졌다.    얼마 전 문탁의 이삿날, 악어떼 1기 녀석 중 한 명이 결혼 후 아직 돌이 안 된 아기와 함께 왔었다. 녀석과 똑같이 생긴 아기의 모습에 놀랐고, 불현듯 문탁의 악어떼 1기 졸업식(2014년) 사진이 떠올랐다. 사진 속 32개월 된 나의 둘째는 이제 중2가 되었다. 아차차, 서두가 길어졌다. 못 미더운 기억 탓에 ‘길위기금’의 시작을 되짚었던 건, 악어떼로...
청량리
2026.05.01 | 조회 232
할 말 있어요
          “혼은 경계를 넘나들며 온갖 곳에서 생성되고 변화한다.”(50쪽)     <너무 희미한 존재들> 북토크 리뷰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문맥 편집팀의 제안에, 나는 선뜻 응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물었다. “이미 훌륭한 리뷰가 두 편이나 올라와 있는데요? 하고 싶은 말은 북토크 오픈마이크 코너에서 이미 전했는데요? 아...리뷰가 될지 일기가 될지 에세이가 될지... 정체 모를 글이 나와도 전 모릅니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북토크를 준비하며 오간 말들, 현장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들,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더듬어보았다.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말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야기는 개개인의 것으로 고정되기보다 서로를 통과하고 엇갈리며 계속 변화하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이어지고, 되살아나고, 계속 변화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증발된 이야기   책 속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은둔고립청년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듣던 한 청년이 질문 시간에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은둔을 3년 했던 당사자입니다. 한 해 동안 자살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시는지 아십니까? 코로나 19 펜데믹 기간 동안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바이러스가 위험하다고 느끼고 두려워한다고들 하지만, 이미 바이러스보다 더 큰 위험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런 곳에 나와서 화분 만들기 같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고, 그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살에 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 예의, 존중, 배려 같은 키워드들 때문에 문제...
          “혼은 경계를 넘나들며 온갖 곳에서 생성되고 변화한다.”(50쪽)     <너무 희미한 존재들> 북토크 리뷰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문맥 편집팀의 제안에, 나는 선뜻 응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물었다. “이미 훌륭한 리뷰가 두 편이나 올라와 있는데요? 하고 싶은 말은 북토크 오픈마이크 코너에서 이미 전했는데요? 아...리뷰가 될지 일기가 될지 에세이가 될지... 정체 모를 글이 나와도 전 모릅니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로 북토크를 준비하며 오간 말들, 현장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들,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더듬어보았다. 그런데 끝난 줄 알았던 말들이 여전히 어딘가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야기는 개개인의 것으로 고정되기보다 서로를 통과하고 엇갈리며 계속 변화하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이어지고, 되살아나고, 계속 변화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증발된 이야기   책 속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은둔고립청년을 주제로 한 강의를 듣던 한 청년이 질문 시간에 단상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은둔을 3년 했던 당사자입니다. 한 해 동안 자살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시는지 아십니까? 코로나 19 펜데믹 기간 동안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바이러스가 위험하다고 느끼고 두려워한다고들 하지만, 이미 바이러스보다 더 큰 위험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이런 곳에 나와서 화분 만들기 같은 것을 하고 싶어 한다고, 그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살에 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 예의, 존중, 배려 같은 키워드들 때문에 문제...
경덕
2026.03.30 | 조회 408
할 말 있어요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어느덧 나온 지 7년째를 맞이한 책을 오랜만에 다시 잡고 읽어보니 그 안에 담긴 모든 문장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이, 이 생각들이 정말로 전부 내 안에서 나온 것인가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할 즈음 까만 글자들 사이사이에서 맡아지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희미한 잔향이다. 그럼 그렇지! 의심이 들어맞았음에 즐거워하다가 이내 위화감을 깨닫는다. 명백히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냄새이건만 그로부터 친숙함이 느껴지는 탓이다. 이윽고 그 친숙함은 머뭇거리던 나를 오랜 기억으로 잡아끌고 나는 낯섦 속에서 예전에 지나갔던 길을 되짚는다. 비록 책에는 가명으로 적혀있으나 그 글들을 조금만 읽어도 떠오르는 이름들, 함께했던 아이들.   그제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려낸다. 이 책의 저자는 나만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기도 했다. 이 책을 나오게 한 수업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자 내가 배우는 수업이기도 했다. 자칫 상투적인 문구로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럼에도 명백하기 그지없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생생히 전하기 위해 나는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겪은 그 현장과 그 시간들을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중등인문학교이고, 나는 올해 다시 그 중등인문학교를 시작하려 한다. 다시 한 번 아이들과 책을 읽어나가려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기 이 책이 나온 것은 7년 전인 2019년이지만 내가 중등인문학교를 처음 맡게 된 것은 그보다 몇 해...
    “일요일 오후 2시, 동네 청년이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어느덧 나온 지 7년째를 맞이한 책을 오랜만에 다시 잡고 읽어보니 그 안에 담긴 모든 문장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들이, 이 생각들이 정말로 전부 내 안에서 나온 것인가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할 즈음 까만 글자들 사이사이에서 맡아지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희미한 잔향이다. 그럼 그렇지! 의심이 들어맞았음에 즐거워하다가 이내 위화감을 깨닫는다. 명백히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냄새이건만 그로부터 친숙함이 느껴지는 탓이다. 이윽고 그 친숙함은 머뭇거리던 나를 오랜 기억으로 잡아끌고 나는 낯섦 속에서 예전에 지나갔던 길을 되짚는다. 비록 책에는 가명으로 적혀있으나 그 글들을 조금만 읽어도 떠오르는 이름들, 함께했던 아이들.   그제야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려낸다. 이 책의 저자는 나만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기도 했다. 이 책을 나오게 한 수업은 내가 가르치는 수업이자 내가 배우는 수업이기도 했다. 자칫 상투적인 문구로 느껴질 수도 있는, 그럼에도 명백하기 그지없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생생히 전하기 위해 나는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겪은 그 현장과 그 시간들을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중등인문학교이고, 나는 올해 다시 그 중등인문학교를 시작하려 한다. 다시 한 번 아이들과 책을 읽어나가려 한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기 이 책이 나온 것은 7년 전인 2019년이지만 내가 중등인문학교를 처음 맡게 된 것은 그보다 몇 해...
우현
2026.03.01 | 조회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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