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고전중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방과후 고전중
자작나무의 <초한지> 읽기(2) 중국 역사에서 ‘통일제국’ 진한秦漢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초한지>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사조와 문제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초한지》는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 뒤를 이어 등장한 한나라의 건국을 그린다. 한왕 유방은 초 패왕 항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통일 제국 한나라를 건국했다. 건국 과정에서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초한 전쟁에서 우리는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건국했음을 안다. ‘반진反秦’을 내걸고 기의起義했다는 점은 같으나 두 사람의 시작은 크게 차이가 났다. 한 마을의 일개 정장亭長(지역 민병대 수준의)에 불과했던 유방은 자기가 알고 있는 동네 친구들과 일어났고, 항우는 초의 명문가 항씨 가문의 명망에다가 자신의 힘과 무용武勇으로 처음부터 기린아로 우뚝 섰다. 전국적으로 삼삼오오 일어난 기의는 점차 한 대 초, 유방 대 항우로 모아졌다. 세勢 대결은 어느 쪽이 가용할 인적, 물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느냐에서 정해진다.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전력을 보자면 항우가 처음부터 우세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유방이었다. 산동 가상 무씨 사당 속 화상석에 새겨진 전쟁 그림 권모라는 것은 바름으로 나라를 지키고 기괴함으로 군사를 운용하며, 먼저 계획을 세운 뒤에 전쟁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형과 세를 겸하며, 음과 양을 포함하고, 기교를 사용하는 것이다.(반고, 《한서 예문지 병서략》, 리링, 《유일한 규칙》, 45쪽 재인용) 병서의 내용들은 대개 권모=전략과 기교=전술로 구분된다. 전략에는 위의 언급처럼 치국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전쟁은 치국이자 정치의 연장이기도...
자작나무의 <초한지> 읽기(2) 중국 역사에서 ‘통일제국’ 진한秦漢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초한지>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사조와 문제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초한지》는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 뒤를 이어 등장한 한나라의 건국을 그린다. 한왕 유방은 초 패왕 항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통일 제국 한나라를 건국했다. 건국 과정에서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초한 전쟁에서 우리는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건국했음을 안다. ‘반진反秦’을 내걸고 기의起義했다는 점은 같으나 두 사람의 시작은 크게 차이가 났다. 한 마을의 일개 정장亭長(지역 민병대 수준의)에 불과했던 유방은 자기가 알고 있는 동네 친구들과 일어났고, 항우는 초의 명문가 항씨 가문의 명망에다가 자신의 힘과 무용武勇으로 처음부터 기린아로 우뚝 섰다. 전국적으로 삼삼오오 일어난 기의는 점차 한 대 초, 유방 대 항우로 모아졌다. 세勢 대결은 어느 쪽이 가용할 인적, 물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느냐에서 정해진다.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전력을 보자면 항우가 처음부터 우세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유방이었다. 산동 가상 무씨 사당 속 화상석에 새겨진 전쟁 그림 권모라는 것은 바름으로 나라를 지키고 기괴함으로 군사를 운용하며, 먼저 계획을 세운 뒤에 전쟁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형과 세를 겸하며, 음과 양을 포함하고, 기교를 사용하는 것이다.(반고, 《한서 예문지 병서략》, 리링, 《유일한 규칙》, 45쪽 재인용) 병서의 내용들은 대개 권모=전략과 기교=전술로 구분된다. 전략에는 위의 언급처럼 치국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전쟁은 치국이자 정치의 연장이기도...
방과후 고전중
“아직도 공부하나?” “아직도 공부가 좋은가?” 내가 세미나 시간 때문에 다른 약속 날짜를 요청할 때, 동창생들에게 종종 듣는 핀잔 섞인 말이다. 녀석들은 십수년을 징글징글하게 외우는 공부로써 세상에 나아갔고, 이제 은퇴하여 다시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그 공부를 또 한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날은 지금, 현재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혹은 욕망하며 현재를 기피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몰아세운다. 또 나이가 들면 미래의 욕심에 과거의 후회가 더해져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그때 ㅇㅇㅇ 할 껄, 그래서 지금…’하는 후회 말이다. 이 후회를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탓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얼마 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에픽테토스 내가 만난 에픽테토스(AD.55? ~ AD.135) 문탁 철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났다. 그의 도덕적 사유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아직도 공부하나?” “아직도 공부가 좋은가?” 내가 세미나 시간 때문에 다른 약속 날짜를 요청할 때, 동창생들에게 종종 듣는 핀잔 섞인 말이다. 녀석들은 십수년을 징글징글하게 외우는 공부로써 세상에 나아갔고, 이제 은퇴하여 다시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그 공부를 또 한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날은 지금, 현재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혹은 욕망하며 현재를 기피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몰아세운다. 또 나이가 들면 미래의 욕심에 과거의 후회가 더해져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그때 ㅇㅇㅇ 할 껄, 그래서 지금…’하는 후회 말이다. 이 후회를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탓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얼마 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에픽테토스 내가 만난 에픽테토스(AD.55? ~ AD.135) 문탁 철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났다. 그의 도덕적 사유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