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고전중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올해 나의 공부는 수련(수행)이다. 형이상학적 화두를 붙들고 좌선하며 도를 닦는 수련이 아닌, 살면서 생겨나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실천적인 수양에 대한 공부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스토아철학을 선택했고, 고전은 『대학』과 『중용』을 읽는다. 시공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유가 유사할 때는 신기함이 느껴지고, 다소 다를 때에는 동·서양 간에 다른 사고체계를 보는 것 같다.     크게 보아서 비슷한 점은, 인간됨의 원천을 이미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에서는 인간에게 신(우주, 자연)이 준 ‘이성-Logos’의 파편이 깃들어 있다고 보았고, 『대학』은 인간에게 본래 밝은 덕인 '명덕明德'이 주어졌다고 본다. 두 사상 모두 인간이 이미 내면에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이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의 자유와 완성을 추구하는 “수양을 통해서”이다.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나 타인의 시선 같은 외부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내면을 닦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스토아철학)와 성인(『대학』)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어떤 내면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일까?   스토아철학은 고통, 공포, 욕망, 쾌락 같은 정념이나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마음에 동요가 없는 부동심不動心과 평정심平靜心의 경지인 아파테이아(apatheia,자유)를 추구한다. 이것은 『대학』에서 8조목 중 하나인 정심正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몸을 닦는 것(修身)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正心)에 있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스토아철학에서의 아파테이아 상태이다. 『대학』은 이 수준을...
가마솥
2026.09.30 | 조회 92
방과후 고전중
<동은의 눈길대로 중국신화> 중국 신화보다 그리스 신화가 더 익숙한 90년대생. 한자를 알아가다보니 중국의 신화가 궁금해졌다. 일단은 눈길 닿는 대로! 중국의 신화를 읽어보자.     인류세의 길목에서 신화를 읽다   1. 고대 사람들은 해가 뜰 때도 일정한 순서를 따라 뜬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상서로운 나무, 부상수扶桑樹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옥계玉鷄가 울면, 그 소리를 듣고 도도산 복숭아 나무에 사는 금계金鷄가 따라 울었다. 그리고 금계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각지의 명산과 큰 강에 살고 있는 석계石鷄들이 따라서 울었다. 그 뒤에 온 세상의 닭(천하계天下鷄)이 울면, 비로소 동방의 천제의 아들이었던 열 개의 태양이 순서대로 하루에 하나씩 떠올랐다고 한다. 단순히 해가 뜨는 일에도 고대 사람들은 낮과 밤이 흐르는 하루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나름의 답을 찾았다. 달이 차고 기우는 한 달, 덥고 추운 한해까지, 사시사철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모습을 바꾸는 세상을 보며 그 규칙성이 곧 세계가 유지되는 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그 규칙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때에 맞춰 제의를 올리고 혹시라도 세상의 질서를 흔드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행동을 다스렸다. 그들이 기울인 노력들은 곧 세상의 변화를 순조롭게 만들고 세상을 이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되었다.     달과 해가 뜨는 하늘을 묘사한 그림     그런데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언제나 이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가뭄과 홍수같은 재해가 일어나면 고대 사람들은 이것이 하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했다....
<동은의 눈길대로 중국신화> 중국 신화보다 그리스 신화가 더 익숙한 90년대생. 한자를 알아가다보니 중국의 신화가 궁금해졌다. 일단은 눈길 닿는 대로! 중국의 신화를 읽어보자.     인류세의 길목에서 신화를 읽다   1. 고대 사람들은 해가 뜰 때도 일정한 순서를 따라 뜬다고 생각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상서로운 나무, 부상수扶桑樹의 꼭대기에 앉아있는 옥계玉鷄가 울면, 그 소리를 듣고 도도산 복숭아 나무에 사는 금계金鷄가 따라 울었다. 그리고 금계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각지의 명산과 큰 강에 살고 있는 석계石鷄들이 따라서 울었다. 그 뒤에 온 세상의 닭(천하계天下鷄)이 울면, 비로소 동방의 천제의 아들이었던 열 개의 태양이 순서대로 하루에 하나씩 떠올랐다고 한다. 단순히 해가 뜨는 일에도 고대 사람들은 낮과 밤이 흐르는 하루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나름의 답을 찾았다. 달이 차고 기우는 한 달, 덥고 추운 한해까지, 사시사철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모습을 바꾸는 세상을 보며 그 규칙성이 곧 세계가 유지되는 원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그 규칙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때에 맞춰 제의를 올리고 혹시라도 세상의 질서를 흔드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행동을 다스렸다. 그들이 기울인 노력들은 곧 세상의 변화를 순조롭게 만들고 세상을 이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되었다.     달과 해가 뜨는 하늘을 묘사한 그림     그런데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언제나 이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가뭄과 홍수같은 재해가 일어나면 고대 사람들은 이것이 하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난 문제라고 생각했다....
동은
2026.08.31 | 조회 235
방과후 고전중
자작나무의 <초한지> 읽기(2) 중국 역사에서 ‘통일제국’ 진한秦漢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초한지>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사조와 문제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초한지》는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 뒤를 이어 등장한 한나라의 건국을 그린다. 한왕 유방은 초 패왕 항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통일 제국 한나라를 건국했다. 건국 과정에서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초한 전쟁에서 우리는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건국했음을 안다. ‘반진反秦’을 내걸고 기의起義했다는 점은 같으나 두 사람의 시작은 크게 차이가 났다. 한 마을의 일개 정장亭長(지역 민병대 수준의)에 불과했던 유방은 자기가 알고 있는 동네 친구들과 일어났고, 항우는 초의 명문가 항씨 가문의 명망에다가 자신의 힘과 무용武勇으로 처음부터 기린아로 우뚝 섰다. 전국적으로 삼삼오오 일어난 기의는 점차 한 대 초, 유방 대 항우로 모아졌다. 세勢 대결은 어느 쪽이 가용할 인적, 물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느냐에서 정해진다.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전력을 보자면 항우가 처음부터 우세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유방이었다.     산동 가상 무씨 사당 속 화상석에 새겨진 전쟁 그림     권모라는 것은 바름으로 나라를 지키고 기괴함으로 군사를 운용하며, 먼저 계획을 세운 뒤에 전쟁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형과 세를 겸하며, 음과 양을 포함하고, 기교를 사용하는 것이다.(반고, 《한서 예문지 병서략》, 리링, 《유일한 규칙》, 45쪽 재인용)   병서의 내용들은 대개 권모=전략과 기교=전술로 구분된다. 전략에는 위의 언급처럼 치국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전쟁은 치국이자 정치의 연장이기도...
자작나무의 <초한지> 읽기(2) 중국 역사에서 ‘통일제국’ 진한秦漢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초한지>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사조와 문제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초한지》는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인 진나라 뒤를 이어 등장한 한나라의 건국을 그린다. 한왕 유방은 초 패왕 항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통일 제국 한나라를 건국했다. 건국 과정에서 있었던 전쟁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초한 전쟁에서 우리는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건국했음을 안다. ‘반진反秦’을 내걸고 기의起義했다는 점은 같으나 두 사람의 시작은 크게 차이가 났다. 한 마을의 일개 정장亭長(지역 민병대 수준의)에 불과했던 유방은 자기가 알고 있는 동네 친구들과 일어났고, 항우는 초의 명문가 항씨 가문의 명망에다가 자신의 힘과 무용武勇으로 처음부터 기린아로 우뚝 섰다. 전국적으로 삼삼오오 일어난 기의는 점차 한 대 초, 유방 대 항우로 모아졌다. 세勢 대결은 어느 쪽이 가용할 인적, 물적 자원을 많이 갖고 있느냐에서 정해진다. 전체적이고 객관적인 전력을 보자면 항우가 처음부터 우세였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유방이었다.     산동 가상 무씨 사당 속 화상석에 새겨진 전쟁 그림     권모라는 것은 바름으로 나라를 지키고 기괴함으로 군사를 운용하며, 먼저 계획을 세운 뒤에 전쟁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형과 세를 겸하며, 음과 양을 포함하고, 기교를 사용하는 것이다.(반고, 《한서 예문지 병서략》, 리링, 《유일한 규칙》, 45쪽 재인용)   병서의 내용들은 대개 권모=전략과 기교=전술로 구분된다. 전략에는 위의 언급처럼 치국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전쟁은 치국이자 정치의 연장이기도...
자작나무
2026.08.01 | 조회 110
방과후 고전중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복합적인 젠더 이데올로기 간의 충돌과 극우화, 권력 재편이 교차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이 전장에서 ‘젠더’는 사회의 구조적 상상력과 정치적 장치를 둘러싼 첨예한 투쟁의 중심축이 되었다.” 윤지선 외, 《코리아 젠더 워》       7월 문-맥의 주제는 ‘젠더’이다. 맥잡기 세미나에서 읽은 《코리아 젠더 워》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이 전쟁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며,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2025년 1월 서울서부지법 침탈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극우 남성 연대체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사건에서 저자는 “복원 정치(restoration politics)”라는 키워드를 길어 낸다. 가부장제 남성 특권의 복원을, 반공 기독교 중심의 복원을 기득권의 부와 계급 특권의 복원 등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구하고 찬란했던 과거’로의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다시 찾아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이 ‘찬란한’, 혹은 ‘가장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토대인 ‘가부장제’는 정말로 그 역사가 유구하고, 근본적인 바탕을 지니고 있을까?         공주의 죽음 대만학자인 리전더(李貞德)의 책 《공주의 죽음》은 ‘우리가 모르는 3-7세기 중국 법률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6세기 북위(北魏)에서 일어난 ‘부마 유휘가 난릉장공주를 구타하여 유산에 이르게 한 사건’을 단서로 한(漢)과 당(唐) 사이의 법률의 유가화(혹은 유가 윤리의 법제화) 과정을 살펴본다.   먼저 이 사건을 간단히 이야기해 보자. 공주의 남편인 유휘가 평민 여자들과 바람을 폈다. 이 일을 알게 된 공주는 남편과 다투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부마가 공주를 발로 차 임신 중이던...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 역사상 가장 격렬하고 복합적인 젠더 이데올로기 간의 충돌과 극우화, 권력 재편이 교차하는 최전선에 서 있다. 이 전장에서 ‘젠더’는 사회의 구조적 상상력과 정치적 장치를 둘러싼 첨예한 투쟁의 중심축이 되었다.” 윤지선 외, 《코리아 젠더 워》       7월 문-맥의 주제는 ‘젠더’이다. 맥잡기 세미나에서 읽은 《코리아 젠더 워》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이 전쟁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며, 그 대표적인 사건으로 2025년 1월 서울서부지법 침탈 사건을 예로 들고 있다. 극우 남성 연대체의 주도로 이루어진 이 사건에서 저자는 “복원 정치(restoration politics)”라는 키워드를 길어 낸다. 가부장제 남성 특권의 복원을, 반공 기독교 중심의 복원을 기득권의 부와 계급 특권의 복원 등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구하고 찬란했던 과거’로의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다시 찾아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이 ‘찬란한’, 혹은 ‘가장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토대인 ‘가부장제’는 정말로 그 역사가 유구하고, 근본적인 바탕을 지니고 있을까?         공주의 죽음 대만학자인 리전더(李貞德)의 책 《공주의 죽음》은 ‘우리가 모르는 3-7세기 중국 법률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6세기 북위(北魏)에서 일어난 ‘부마 유휘가 난릉장공주를 구타하여 유산에 이르게 한 사건’을 단서로 한(漢)과 당(唐) 사이의 법률의 유가화(혹은 유가 윤리의 법제화) 과정을 살펴본다.   먼저 이 사건을 간단히 이야기해 보자. 공주의 남편인 유휘가 평민 여자들과 바람을 폈다. 이 일을 알게 된 공주는 남편과 다투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부마가 공주를 발로 차 임신 중이던...
진달래
2026.06.30 | 조회 122
방과후 고전중
      “아직도 공부하나?” “아직도 공부가 좋은가?” 내가 세미나 시간 때문에 다른 약속 날짜를 요청할 때, 동창생들에게 종종 듣는 핀잔 섞인 말이다. 녀석들은 십수년을 징글징글하게 외우는 공부로써 세상에 나아갔고, 이제 은퇴하여 다시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그 공부를 또 한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날은 지금, 현재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혹은 욕망하며 현재를 기피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몰아세운다. 또 나이가 들면 미래의 욕심에 과거의 후회가 더해져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그때 ㅇㅇㅇ 할 껄, 그래서 지금…’하는 후회 말이다. 이 후회를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탓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얼마 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에픽테토스     내가 만난 에픽테토스(AD.55? ~ AD.135) 문탁 철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났다. 그의 도덕적 사유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아직도 공부하나?” “아직도 공부가 좋은가?” 내가 세미나 시간 때문에 다른 약속 날짜를 요청할 때, 동창생들에게 종종 듣는 핀잔 섞인 말이다. 녀석들은 십수년을 징글징글하게 외우는 공부로써 세상에 나아갔고, 이제 은퇴하여 다시는 필요 없을 것 같은 그 공부를 또 한다니 별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냥 웃고 말았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날은 지금, 현재라고 쉽게들 말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혹은 욕망하며 현재를 기피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몰아세운다. 또 나이가 들면 미래의 욕심에 과거의 후회가 더해져 현재를 망치기도 한다. ‘그때 ㅇㅇㅇ 할 껄, 그래서 지금…’하는 후회 말이다. 이 후회를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현재를 탓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얼마 전,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에픽테토스     내가 만난 에픽테토스(AD.55? ~ AD.135) 문탁 철학학교에서 고대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났다. 그의 도덕적 사유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그의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은 믿음, 충동, 욕구, 혐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 자신이 행하는 그러한 모든 일이다.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육체, 소유물, 평판,...
가마솥
2026.05.31 | 조회 187
방과후 고전중
  <동은의 눈길대로 중국신화> 중국 신화보다 그리스 신화가 더 익숙한 90년대생. 한자를 알아가다보니 중국의 신화가 궁금해졌다. 일단은 눈길 닿는 대로! 중국의 신화를 읽어보자.         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      위엔커의 <중국신화전설>은 중국에서 전해지는 여러 신화와 전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는 여러 이야기들을 시간 순서로 구별해 중국의 신화를 소개했는데, 그 첫 대목을 굴원(B.C 339~B.C 278)의 <천문天問>으로 시작한다. <천문>은 “하늘에게 묻는다”는 의미로 굴원은 하늘을 향해 가장 먼저 세상의 시작에 대해 질문으로 시를 시작한다.   묻노니, 아득한 옛날, 세상의 시작에 대하여 누가 전해 줄 수 있을까? 그때 천지가 갈라지지 아니하였음을 무엇으로 알아낼 수 있으랴. 모든 것이 혼돈 상태. 누구라서 그것을 분명히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 속에서 떠다녔는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을까? 曰遂古之初 誰傳道之 上下未形 何由考之 冥昭瞢闇 誰能極之 馮翼惟像 何以識之 - 초나라 굴원의 <천문>에서. <중국신화전설> 번역본 발췌       굴원의 시에서는 “천지가 갈라지지 않았을 때”, “모든 것이 혼돈이었을 때”같은 구절을 통해 세상의 기원에 대한 중국 고대인들의 관념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기원을 담고 있는 중국의 신화를 살펴보자.     하늘과 땅을 가른 반고   상하미형上下未形, 천지가 갈라지지 않았던 시절은 바로 반고신화와 연결된다. 반고신화에서 태초의 모습은 마치 큰 알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안에서 반고가 잉태되어 1만 8천년을 보낸다. 어느 날 반고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진절머리가 나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동은의 눈길대로 중국신화> 중국 신화보다 그리스 신화가 더 익숙한 90년대생. 한자를 알아가다보니 중국의 신화가 궁금해졌다. 일단은 눈길 닿는 대로! 중국의 신화를 읽어보자.         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      위엔커의 <중국신화전설>은 중국에서 전해지는 여러 신화와 전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는 여러 이야기들을 시간 순서로 구별해 중국의 신화를 소개했는데, 그 첫 대목을 굴원(B.C 339~B.C 278)의 <천문天問>으로 시작한다. <천문>은 “하늘에게 묻는다”는 의미로 굴원은 하늘을 향해 가장 먼저 세상의 시작에 대해 질문으로 시를 시작한다.   묻노니, 아득한 옛날, 세상의 시작에 대하여 누가 전해 줄 수 있을까? 그때 천지가 갈라지지 아니하였음을 무엇으로 알아낼 수 있으랴. 모든 것이 혼돈 상태. 누구라서 그것을 분명히할 수 있을까? 무엇이 그 속에서 떠다녔는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을까? 曰遂古之初 誰傳道之 上下未形 何由考之 冥昭瞢闇 誰能極之 馮翼惟像 何以識之 - 초나라 굴원의 <천문>에서. <중국신화전설> 번역본 발췌       굴원의 시에서는 “천지가 갈라지지 않았을 때”, “모든 것이 혼돈이었을 때”같은 구절을 통해 세상의 기원에 대한 중국 고대인들의 관념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기원을 담고 있는 중국의 신화를 살펴보자.     하늘과 땅을 가른 반고   상하미형上下未形, 천지가 갈라지지 않았던 시절은 바로 반고신화와 연결된다. 반고신화에서 태초의 모습은 마치 큰 알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안에서 반고가 잉태되어 1만 8천년을 보낸다. 어느 날 반고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 진절머리가 나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자...
동은
2026.05.01 | 조회 155
방과후 고전중
    자작나무의 <초한지> 읽기(1) 중국 역사에서 ‘통일제국’ 진한秦漢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초한지>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사조와 문제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중국의 역사소설들이 으레 그렇듯, <초한지楚漢志>도 역사를 풀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연의演義’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B.C 221)한 진秦나라는 20년도 채 되지 않아 망하고, 그 뒤를 이어 한漢나라가 등장한다.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두 주역인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전쟁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 군상의 처세와 행적을 <초한지>는 담고 있다. ‘역사소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역사가 스포다. <초한지>의 결말이나 그 과정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초한지>의 재미 포인트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역사와 소설 사이의 긴장,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결말로 사건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인물들의 형상을 어떻게 부각시켜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가 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하면서도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시대 의식이나 시대적 물음에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초한지>의 정본을 밝히는 일은 난망한 일이지만, 대개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고 책의 형태로 유통된 것은 명나라 만력 연간 견위甄偉의 <서한연의西漢演義>이다. 다양한 작가들이 필력의 구사해 나름의 <초한지>를 만들었는데, 가령 정비석과 이문열의 <초한지>를 들 수 있다. 여기서의 사건 전개와 인용은 <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초한지>에서 가져왔다.       나른한 봄, 진시황의 상념   “나른한 봄날이었다.”(<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초한지>, 8쪽)   <초한지>의 시작을 여는 구절이다. 이어 등장하는 진시황. 그의...
    자작나무의 <초한지> 읽기(1) 중국 역사에서 ‘통일제국’ 진한秦漢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초한지>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사조와 문제의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중국의 역사소설들이 으레 그렇듯, <초한지楚漢志>도 역사를 풀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연의演義’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B.C 221)한 진秦나라는 20년도 채 되지 않아 망하고, 그 뒤를 이어 한漢나라가 등장한다.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두 주역인 유방劉邦과 항우項羽의 전쟁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 군상의 처세와 행적을 <초한지>는 담고 있다. ‘역사소설’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역사가 스포다. <초한지>의 결말이나 그 과정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면 <초한지>의 재미 포인트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역사와 소설 사이의 긴장,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결말로 사건들을 어떻게 구성하고 인물들의 형상을 어떻게 부각시켜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가 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역사 속 인물에 주목하면서도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시대 의식이나 시대적 물음에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초한지>의 정본을 밝히는 일은 난망한 일이지만, 대개 이야기의 얼개를 만들고 책의 형태로 유통된 것은 명나라 만력 연간 견위甄偉의 <서한연의西漢演義>이다. 다양한 작가들이 필력의 구사해 나름의 <초한지>를 만들었는데, 가령 정비석과 이문열의 <초한지>를 들 수 있다. 여기서의 사건 전개와 인용은 <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초한지>에서 가져왔다.       나른한 봄, 진시황의 상념   “나른한 봄날이었다.”(<한 권으로 읽는 중국 고전 초한지>, 8쪽)   <초한지>의 시작을 여는 구절이다. 이어 등장하는 진시황. 그의...
자작나무
2026.03.30 | 조회 297
방과후 고전중
    사건은 돌출된 고요한 변화이다 새해 들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로이 스크랜턴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이고 또 하나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고요한 변화』이다.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는 3월에 발행되는 웹진 'MOON*MAG'을 위한 사전 세미나 용이었고, 『고요한 변화』는 지난해 ‘주역 철학사’ 공부의 보충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별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두 책이 문탁네트워크의 ‘이사’라는 사건으로 서로 엮이게 되었다.       “거대한 빙하의 움직임처럼, 커다란 사건은 고요한 변화에서 돌출한다.”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       『고요한 변화』에서 줄리앙은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이행’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변화라고 말할 때는 A와 A′로의 변화, 그러니까 A라는 상태에서 A′로 달라짐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변화는 A에서 A′로 이행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구 사유에서 변화는 존재를 중심으로 하기에 ‘그 사이’ 즉 이행과정을 사유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의 침묵을 줄리앙은 ‘고요한 변화’라고 칭했다. 여기서 줄리앙은 변화에 대한 동양적 사유에 주목한다. 동양에서는 변화가 전반에 걸쳐 조금씩 지속성 있게 일어나며, 여러 요소의 상호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결코 지각될 만큼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변화를 우리는 하나의 단어로 쓰고 있지만 고전(古典)에서는 변(變)과 화(化)를 구분해서 쓴다. 변(變)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상태’를 말하고 있다면 화(化)는 고요한 변화처럼 비가시적 영역을 나타낸다. 이렇듯 우리가 말하는 ‘변화’에는 이 두 영역, 즉 가시적 · 비가시적...
    사건은 돌출된 고요한 변화이다 새해 들어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로이 스크랜턴의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이고 또 하나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고요한 변화』이다. 『인류세에서 죽음을 배우다』는 3월에 발행되는 웹진 'MOON*MAG'을 위한 사전 세미나 용이었고, 『고요한 변화』는 지난해 ‘주역 철학사’ 공부의 보충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별로 관련이 없어 보였던 두 책이 문탁네트워크의 ‘이사’라는 사건으로 서로 엮이게 되었다.       “거대한 빙하의 움직임처럼, 커다란 사건은 고요한 변화에서 돌출한다.” 프랑수아 줄리앙, 『고요한 변화』       『고요한 변화』에서 줄리앙은 변화는 단절이 아니라 ‘이행’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변화라고 말할 때는 A와 A′로의 변화, 그러니까 A라는 상태에서 A′로 달라짐을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사실 변화는 A에서 A′로 이행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구 사유에서 변화는 존재를 중심으로 하기에 ‘그 사이’ 즉 이행과정을 사유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사유의 침묵을 줄리앙은 ‘고요한 변화’라고 칭했다. 여기서 줄리앙은 변화에 대한 동양적 사유에 주목한다. 동양에서는 변화가 전반에 걸쳐 조금씩 지속성 있게 일어나며, 여러 요소의 상호 관계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에서는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결코 지각될 만큼 충분히 구별되지 않는다.”   변화를 우리는 하나의 단어로 쓰고 있지만 고전(古典)에서는 변(變)과 화(化)를 구분해서 쓴다. 변(變)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처럼 ‘달라진 상태’를 말하고 있다면 화(化)는 고요한 변화처럼 비가시적 영역을 나타낸다. 이렇듯 우리가 말하는 ‘변화’에는 이 두 영역, 즉 가시적 · 비가시적...
우현
2026.03.01 | 조회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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