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대소 16일차> 썩기 어려운 걸 일회용으로 쓴다는 발상

관리쟈
2022-03-25 19:59
130

다시팩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강아지패드처럼 평소에 있었으면 하는

아이템이었는데 누대소와 같은 이벤트가 있어야 움직이게 되네요.

 

 

다시팩 주머니가 없어도 멸치 육수를 내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깔끔한 국물이 필요할땐 조금 난감하더군요.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껍질조각을 건져낼때도 있습니다. ㅎㅎ

21세기에 사는 거 맞아? 시간의 이질감을 느끼며 일회용 다시팩에 유혹을 느끼곤 합니다.

 

보통 일회용 다시팩은 좋아야 부직포 유사 종류입니다.

부직포도 발암물질이 나온다고 하지만, 일회용인게 더 문제인 것도 같습니다.

엄밀히 보면 부직포나 나일론이나 면이나 종이나 거의 사촌간이거든요.

그럼에도 합성섬유는 안되고 천연섬유는 되는 이유 두가지 중 하나는  쉽게 썩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다른 하나는 다음 시간에)

합성섬유는 천연섬유를 모방한 것이면서 단점을 커버하였겠지요.

바로 셀룰로오스 사슬의 길이를 무제한으로 늘린겁니다. 그러니 조직 해체가 어렵고 썩지 않는다고 표현됩니다.

 

면사의 경우, 지난번에 번수가 클수록 가늘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무한정 크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목화솜 하나의 무게는 정해져 있을테니까요.  100수 정도면 매우 높은 번수인데 보통은 기술로도 안됩니다.

이런 번수를 갖는 목화솜은 따로 있습니다.

 

면화 생산지에 따라 목화솜의 보송한 정도와 솜털의 길이가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긴건 ‘해도면’이라 해서 중앙아메리카 바하마 섬이 원산지입니다(아래 첫번째 그림).

그 다음이 이집트 초면(아래 두번째)인데, 이 두 면화에서 100수를 뽑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창도 원면은 수입하는데 거의 모든 나라가 미국의 ‘육지면’을 사용합니다.

해도면, 육지면 하니 바다가 육지라면~이 떠오르네요 ㅎㅎ

   

 

육지면은 40수 이하인데 원산지는 페루와 멕시코입니다. 

그 외에도 많이 사용되는 면으로는 인도면과 중국면이 있습니다.

면사의 번수는 영국식으로 표기되는데, 위에 언급된 곳 중 영국은 없지요?

 

목화는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데 영국과 유럽은 여름에 서늘한 편입니다.

유럽인들은  모시(린넨)와 털옷을 입었고, 목화는 중세까지도 그 존재를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이슬람 문명에 의해 알게 되었을 때, 양의 다리가 식물이 되어, 머리는 양, 하체는 식물줄기인 잡종이

우화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일상에서는 사용되지 않았고요.

<화폐, 마법의 사중주>에서인가, 시장과 화폐는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지 않으며

유럽의 상거래 네트워크가 공동체들 속으로 잠입해 들어갔다고 합니다.

목화에서도 비슷한 점을 보게 됩니다. 유럽의 공동체에는 목화가 없었는데도

영국이 면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면산업은 자본주의 정착에 일조했으니까요.

 

근대 초 무역이 발달하면서 무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에서 먼저 목화재배를 시작했고,

영국은 16~17세기가 되어서야 재배를 시작합니다.

그것도 네덜라드 망명자들에 의해서입니다. 물론 기후 조건상 여의치는 않았지요

그리고 면직물을 짜는 것도 시작하는데 이 때 상인들이 선대제 수공업, 돈을 미리 주고 주문하는 방식을 가동시킵니다.

이 방식은 먼저 모직물에서 이미 경험치를 쌓은 수법입니다.

모직물은 콜럼버스 이래 해양무역이 발달할 때 처음으로 영국에서 밀었던 분야이거든요.

그전에는 원료 양모를 수출하고 가공품인 모직물은 수입해서 썼었습니다.

모직물 산업이 발달하면서 원료인 양모의 가격이 폭등했지요.

보통 1차 ‘울타리치기’라고 불리는 일이 일어난  1500년대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모직물 산업을 인위적으로 키운 방식이 상인 네트워크에 의한 선대제 방식입니다.

 

다시 백년 쯤 지난 후에 영국은 해양패권을 쥐게 되었고, 인도-청나라-남미-아프리카를 잇는

무역 네트워크의 중심에 면직물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목화 재배는 시원찮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바로 이주민들이 건너간 미국이 있었고, 그곳에는 해도면과 육지면과 그 외 다양한 목화들이 자생하고있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연구와 실험 끝에, 튼튼하게 잘 키우는데는 육지면이 좋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그들이 플랜테이션 농장을 한 건 다 알잖아요?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오고 그 값을 대신한 것도 면직물이었다고 합니다.

미 남부 면화농장과 노예와...일련의 것들이 떠오르는 아픈 역사입니다.

 

목화를 대신 키울 곳을 찾았지만 영국은 여전히 면직물 기술이 일천하였습니다.

당시 인기를 휩쓴 것은 인도 모슬린 등이었고 그들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수입만 하다가 수요와 시장이 커지자 본격적으로 직물작업장을 가동시키기는 했지만

인도나 중국의 기술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적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조면기라는 목화의 씨앗빼는

기계가 등장하구요. 빨리빨리 대량으로~~ 

좀 길어져서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해보려구요.

목화를 재배하는 역사, 뿌리가 있었다면 그리 쉽게 기계화를 할 수 있었을까하는.

영국이 배워 온 인도의 목화 재배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왜 영국에서는 쉽게 일어났을까요?

‘니들이 목화를 알아?’라는 말도 떠오르네요.

 

목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 일이 또 있습니다.

19세기는 빈민의 시대였습니다. 울타리치기로 밀려난 농부들은 빈민이 되어갔습니다.

도시 노동자도 사실은 빈민이었지요. 이렇게 땅에서 분리되고, 생명활동에서 분리되던 시대라서 그런지

화학의 전성시대이기도 합니다. 원소로 쪼개보고 섞어보고 하던 시대이지요.

영국 면공업은 양적으로는 늘어났지만 그 품질이 여전히 인도면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광택이나 염색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에는 화학자들이 기여하였습니다.

과탄산소다를 넣고 삶을 것이냐하는 문제도 이런 류의 것이지요?

다음 시간에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다시팩 주머니를 만들고 보니 좀 작고, 위 커버를 뒤집어 씌우니

흔히 보는 아름다운 모양이 안나오네요 ㅋㅋㅋ

요렇게 만들면 안된다는 걸 알았네요. 역사와 뿌리가 있는 마니들에게 배워야겠습니다.

 

 

댓글 4
  • 2022-03-25 21:03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시다니! 그리고  이런것도 다 찾아내시다니! 고맙습니다. ❤

    제가 샘께 질문했던 것들. 그 이상의 답을 얻었어요.

     

     

  • 2022-03-25 21:38

    지금은 목화농장 농사도 대량으로 화석연료 팡팡 쓰며 기계로 하고 있겠죠..

    소창가격이 싸더라구요.

    뭐 하나 간단한 게 없네요

     

  • 2022-03-25 21:54

    헐 ㅡ 지금 거대한 전환 책에서 그 부분 읽었는디 ㅋㅋ

    신기하네ㅡㅡ

  • 2022-03-26 15:02

    아, 그런 내막이 있었군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아주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