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대소12일차> 종이 대신 소창필터

곰곰
2022-03-2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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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좋아한다. 한때는 끊으려고도 해봤는데,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아직 그만한 대안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하루에 한 잔 정도 마시고 있다.

 

에스프레소든, 프렌치프레스든, 캡슐커피든 다른 것도 다 괜찮지만 집에서는 주로 핸드드립을 한다. 커피에 대해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드립 커피 내리는 법을 따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대강의 눈치와 통밥으로 내려 마시다보니 그럭저럭 내게는 만족스러운 맛을 내는 커피 내리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드립 커피 내리는 방식도 다양하더라만 푸어오버라던지, 원드립, 나선드립, 점적드립, ... 등등. 이름만으로 유추해 본다면 나는 나선드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줄곧 종이필터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집에서 쓰던 종이필터가 딱 떨어져 동네 마트 몇 군데를 돌아봤는데 아직 파는 곳을 못 찾고 있었던 터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야 하나, 이것 때문에 이마트까지 가야하나 한참 귀찮아하고 있었는데, 마침 소창도 찾았으니 시험삼아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완성품은 요런 모습.

 

소창필터는 처음이라 커피는 잘 걸러지는지, 재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등 기능적인 것은 물론이고, 과연 커피 맛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살짝 삶아서 소창을 정련해주고 사용해 봤다.

 

우선 세탁과 건조는 나쁘지 않다. 소창 두 겹으로 했는데 한 손으로 조물조물, 고리에 걸어 말려주니 은근 빨리 마른다. 느낌이 좋다! 

원두 갈아서 뜨거운 물을 내려본다. 물이 좔좔 흐른다. 종이필터 사용했을 때 너무 천천히 내려와서 갑갑할 때도 있었는데, 커피가 좔좔 흘러나오니 보기만 해도 시원하더라. ㅋㅋ 종이보다는 그 조직이 듬성듬성하니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시음. 커피맛이 난다! 내 입맛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원두 가루도 없이 잘 걸러진 것 같다. 원래 종이필터 사용했을 땐 종이 맛이랄까, 향이랄까 그런 것이 가끔 느껴지기도 했는데, 소창필터를 사용했더니 그런 것도 없다.  그것으로 1차 만족. 

 

그런데 아무래도 커피가 내려지는 속도가 마음에 걸린다. 저렇게 빠른데, 필터링이 가능한 건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원두 맛이 우러나기에도 그렇고, 핸드드립은 커피 유분을 걸러준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러기엔 소창필터에서 커피와 물이 만나는 시간이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정련해둔 새 소창티슈 한장을 겹쳐서 네 겹으로 만들었다. 속도는 여전히 좀 빨랐지만, 많이 진정되었고 맛도 더 좋아진 느낌이다. 생각해보니 원두를 좀더 곱게 갈고, 물 붓는 속도와 양을 잘 조절하면 내가 원하는 정도로 커피 내려지는 속도를 조정할 수도 있겠다. 

 

한번만 사용했는데도 커피색이 소창필터에 바로 밴다. 조물조물 씻고 잘 말려두었다. 나중에 그 색이 영- 거슬리면 과탄산소다에 담궈두면 새하얗게 돌아올테니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노르스름해진 커피필터가 은근 매력있었다. 

 

남편이 와서 보더니 괜히 아는 척을 한다. 종이필터의 셀룰로오스 성분이 원두의 콜레스테롤를 걸러주는 건데, 이렇게 허술해서 되겠냐고. 아, 이대로 합격인 줄 알았는데... 난감했다. 하지만 자누리샘의 일지에서 소창(식물성섬유)에도 셀룰로오스 성분이 있다고 한 내용이 퍼뜩 떠올랐다. 남편은 더이상 간섭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고, 나중에 소창필터로 내린 커피를 줬는데 기존의 것과 맛의 차이도 모르더라. ㅋ

 

3일 정도 사용해 봤고 그 후기를 남기자면,  

제로 웨이스트, 친환경적이다. 빨아쓸 수 있어 경제적이다. 사용법이 쉽다. 그리고 갬성이 있다!  다만, 쓸 때마다 빨아써야 한다는 건데, 너무 작아서 씻고 말리기가 쉬우니 괜찮을 듯. 

 

사실 아이디어만 있었지 구체적인 구상을 하고 만든 것은 아니라서, 첫 소창필터는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로써  몇 가지 확인된 내용이 있으니 좀 수정해서 다시 만들어볼까 한다. 커피 마실 때마다 종이 한 장씩 버리는 게 싫었는데 이제 종이필터와 작별할 수 있을 것 같다. 

댓글 9
  • 2022-03-22 07:05

    와우 리스펙!!

    커피와 필터 관계는 잘 몰러서 모르겠지만, 셀룰로오스만 보면 소창이 90% 목재가 그 절반쯤이랍니다..과탄산소다는 가루가 남을 우려가 있어서 사용하지 않는게 좋을것 같네요^^

  • 2022-03-22 08:37

    소창필터 그믐님이 필요하다고 만들어달라했는데…

    곰곰님 그믐님 것도 부탁해요~~~

  • 2022-03-22 08:47

    저도 커피필터 2개 주문 할게요

    달팽이샘~ 소창생리대는 제가 더 나이 들어서 요실금 생기면 그때 주문할게요 ^^

    • 2022-03-22 11:16

      ㅋㅋㅋㅋ 요실금용으로 사용해야하는군요

      면생리대 버리지 말고 잘 갖고 있어야겠네요

       

  • 2022-03-22 09:01

    저는 모카포트 애용자라 커피필터가 필요치않지만...용기내의 소창템으로 아주 좋을 것 같네요. ㅎㅎ

    시간 나실 때 몇 개 만들어주시면 잘 팔아보겠습니다~^^

  • 2022-03-22 09:05

    도라지샘은 비닐 속에 싸인 호박, 무에서 석유냄새가 난다고 했다. 현민이도 그랬고.

    곰곰샘은 종이필터에서 종이맛(향)이 난다고 한다.

    다들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들이다!!!

    난...뭐냐......^^;;;

  • 2022-03-22 09:33

    집에 융필터가 있어서 가끔 내려 먹는데... 그거는 또 너무 물이 안내려가더라고요... 차라리 소창필터가  낫지 않을까 싶네요

    집에서 내려먹는 날은 가뭄에 콩나듯 하지만 저도 하나 장만 해놓고 싶네요 ~~

     

    저는 코로나 걸렸을 때 휴지 왕창 쓰던 버릇이 아직 안 고쳐지고 있어요..금방 돌아가더라고요~
    쌤들 글 보면서 움찔움찔 손수건 챙깁니다 ㅋㅋ

  • 2022-03-22 13:49

    셀룰로오스 ㅋㅋ

    소창 필터 급 땡기는군요

     

    하여간 누대소팀 별거별거 다 만드시는군요

  • 2022-03-22 20:53

    소창필터 쓰는 분들 계시더라고요.
    세겹 네겹으로 만드는 걸로 압니다. 

    쓰다보면 요령이 생기겠죠?  저도 사놓은 종이 필터 다 쓰면 소창 필터 써볼게요.
    아마도 필터 빨기 귀찮아서 커피를 덜 먹게 될테고... 그럼 더 좋군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