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뚜버기
2020-07-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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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SVC 이슈] 참여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인문학 커뮤니티

 

공유지 X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한국탈핵>, <나는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와 같은 좋은 책들의 출판기념회도 열렸다. 파지사유라는 멋진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의미를 나눌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탈핵, 탈성장, 세월호와 같은 문제들에 조금씩 더 깊이 다가가게 되었다. ‘녹색다방’이라는 탈핵활동 동아리가 만들어졌고 파지사유는 수시로 녹색다방의 공작소로 변신했다. 일주일에 한 번 벌이는 탈핵일인시위를 위한 피켓공작과 시위 나갈 사람을 조직하는 공작이 함께 벌어지곤 했다.

새로운 만남을 위해 열심히 단체모임에 장소를 제공하고 식사를 서빙하기도 했다. 매출로 따지자면 재료비를 제하면 인건비도 안 빠지는 손해였지만 그렇게 해서 새로운 관계가 만들고 싶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의 회의가 열렸던 어느 밤의 기억도 생생하다. 매니저들이 열심히 날라주던 뒷풀이 어묵탕의 온기와, 전국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의 뜨거웠던 열기가 그립다. 연대한다는 것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만큼 지속을 위한 노력이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늘 힘이 부쳤다.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한다와, 왜 하고 싶은 일만 하려는가 사이의 갈등에 점점 기운 빠져갔다.

2030 청년 모임을 만들고 싶어 했던 매실과 광합성이 파지사유에서 소셜다이닝을 주최하기도 했다. 그때 만난 2030 여자청년들이 ‘언니들의 옷장’을 열었는데, 그간 이어가게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웠던 패셔너블한 옷들을 펼치고 팔던 광경은 신선했다. 청년의 접속이 늘면서 공부로, 활동으로 청년들을 만날 기회도 차츰 빈번해졌다. 일회성의 만남은 신선하게 느껴졌지만 막상 청년들과 일상을 함께 하는 것은 다른 경험이었다. 일요일엔 청년들 맘껏 파지사유를 쓰라고 했지만, 월요일 아침이면 청소 안 된 지저분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마음은 자꾸 청년들에게 일을 맡기는게 미덥지 못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동시에 청년들을 이해 못 하는 나는 꼰대인가 아닌가 자기검열 중인 내 모습을 보는 일 또한 피곤했다.

월세도 내고 전기세도 내려면 매출이 일정 수준은 되야 한다. 강좌를 열고 공간대여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차를 팔아 매출을 올려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니저들은 열심히 메뉴를 개발하고 복잡한 제조 순서를 익히며 차(茶)판매에 힘썼다. 공유지를 유지하기 위해 파지사유에 올 때 차 한잔은 마시자는 캠페인도 전개했었다. 그럼에도 파지사유 매출은 점점 떨어졌고 커피가 맛이 없어서라는 진단이 잊을 만하면 제기되었다. 공정무역커피 탓이냐 아니냐의 논쟁 속에 서로 마음 상하는 일도 생겼다.

우리는 왜 카페를 만들었을까? 동네에 찻집이 부족해서? 주인 눈치 안 보고 맘껏 이야기 나눌 곳이 필요해서? 근본적인 부분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함께 만든 공간인데 우리 대부분은 그저 찻값 내고 서비스를 받는 고객에 머물러 있었다. 매니저들 역시 관리와 서비스 활동에 치여서일까 관계를 만들고 활동을 조직하는 데까지 힘쓰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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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지 변천사

 

파지사유 오픈 3년째, 파지사유를 접수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나왔다. 이름하여 주술밥상. 물론 나중에 지어진 이름이다. 이들은 파지사유에 새로운 주술을 걸고 예술적인 공동체 밥상을 차리겠다고 나섰다. 당황스러웠다. 비록 손님은 얼마 없지만 명색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 카페인데 점심때마다 된장국 냄새를 풍기면서 밥상을 차리고 여기저기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니. 카페 손님들에게 어떻게 그에 대해 양해를 구할 수 있을까. 아예 외부 손님들은 오지 말라는 말인가? 이게 과연 공유지라고 할 수 있나.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대의 명분은 딱히 서지 못했다. 외부로의 확장이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적인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공유지를 채워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겠다고 나선 친구가 있다는 점이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다.

주술밥상엔 엉뚱발랄한 기획들이 많았다. 공연과 디너를 결합한 메인디쉬 덕분에 지금은 oo밴드로 유명해진 모 피아니스트의 쇼팽 연주를 떡볶이 먹으며 듣는 호사도 누렸다. 또 덜컥 맡아온 급식사업 덕분에 십대청년들과 중년학인들이 함께 공동식사를 했던 시절도 있다. 주술밥상으로 자리잡은 파지사유의 공동체밥상은 지금은 은방울키친으로 변신하여 찬방보다는 더욱 공동체밥상의 성격을 강화했다. 이제 점심시간마다 파지사유에서 공동체밥상이 펼쳐지는 광경은 어떤 이질감도 느낄 수 없다.

얼마 전 파지사유는 공간을 크게 리모델링했다. 세미나실 하나를 고쳐서 작업장이 파지사유로 들어온 것이다. 그 사이 청년들의 활동이 늘어나서 원래 월든 공방이 쓰던 옛 작업장을 아예 청년들에게 넘겨주고 온 것이다. 밉네 곱네 해도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문탁의 안과 밖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매주 의심과 감시 속에서 영화감상회를 열던 젊은 시네필들은 공모사업 프로젝트를 따내고 고급프로젝터를 장만하여 우리도 눈호강을 하고 있다. 예술프로젝트로 인연이 된 연극하는 청년은 인문약방 팟캐스트를 위해 한 걸음에 달려와 준다. 청년들이 주축이된 활동들이 활발해지면서 문탁의 감각도 촌티(?)를 벗어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끼기도 한다.

처음엔 막연히 공유지란 마을사람들이 누구나 제집 드나들 듯 편안히 드나들면서 소통하는 공간이라고 여겼다. 파지사유엔 늘 문탁 사람들만 바글바글한데 우리는 공유지를 과연 꾸린다고 할 수 있나? 라는 의구심이 몇 년동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문탁 주변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 있다. 파지사유라는 장소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람들이 만나게 하고 서로를 두드리게 하고 자신을 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왔다. 남의 출판기념회 열심히 열어주다가 급기야 자기 소리를 글로 쓰고 책을 내어 출판기념회 주인공이 된다. 라이브뉴스쇼를 기획하고 리포터가 되고, 연극배우가 되고, 낭송유랑단이 되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자기공부를 표현하고 공유한다.

그 과정은 당연히 순조롭지 않다. 의욕넘쳐서 시작했다가도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을 겪게 되고 일들은 실타래 꼬이듯 꼬여만 간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해 나가는 가운데 각자의 견고한 벽을 깨고 서로 만나는 순간들을 만들면서 왔다. 외부로의 확장은 우리 안에 갖혀있던 이절적인 것을 끄집어 내는 것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다. 그런 화학 반응 속에서 우리는 다양하게 변신하는 존재가 되어갔고 그러는 가운데 파지사유는 살아 숨 쉬고 있다.

 

자율성을 키우는 공간

 

파지사유의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서비스 매니저제를 없앤 것이다. 카페 이용자는 손수 차를 타고 장부에 기록하고 돈계산도 직접한다. 처음엔 가능할까 싶었으나 메뉴 단순화로 해결했다. 지금은 오히려 자신만의 레시피로 음료를 제조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유자차와 레몬차를 혼합하고 생강차로 라떼를 만들기도 한다. 커피맛 논쟁도 셀프 드립커피의 등장으로 마침내 종결되었다. 숨은 드리핑 고수들이 등장해서 우아한 자태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파지사유의 새로운 풍경으로 추가되었다. 자기가 내려 마시는 드립커피 값이 왜 전기쓰고 기계를 사용하는 커피보다 비싼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잠시 투덜거리던 이들도 자본주의 논리와 무관한 파지사유 가격정책에 그러려니 한다.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찻값지불방식도 자리를 잡아서 장부기록과 돈통잔액이 틀린 날이 별로 없다. 모두들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파지사유가 자율공간으로 바뀌면서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청소다. 예전에 매니저가 도맡았던 청소를 세미나팀들이 돌아가면서 맡게 되었다. 세미나 회비 내고 공부하러 왔는데 왠 청소냐고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말을 떼기가 조심스러웠으나 걱정은 기우였다. 그래, 문탁은 이렇게 운영되는 곳이었지...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하지만 자기 팀 청소 당번인 날 이외에는 청소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까지는 관심이 미치지 않을 때도 많다. 밤새도록 난방이 켜져 있거나 에어콘이 신나게 돌아가는 일도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세미나도 열리지 않던 시기를 겪고 나서 나는 문득 내가 그 시기에 공유지의 문은 누가 열었는지, 청소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무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흔히 공유지의 비극을 말한다. “모두에게 개방된 초원을 상상해보라. 모든 목동들은 마음껏 자신의 가축을 공유지에 풀어놓고 키운다. 저마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가축 수는 늘어나게 되고 결국 초원은 황폐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유지를 꾸리는 것도 헛된 수고란 말인가. 공유지의 비극 우화는 중대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공유에 대한 추상적 개념만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유지를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주인없는 땅으로 보는 것은 크나큰 오류다. 목동들은 함께 초원을 관리할 것이고, 지나치게 이용한다든가 관리에 무책임한 목동에 대한 제재 규정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규범들은 긴 시간 목동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공유지는 무작정 열려있는 공간이 아니다. 공유지는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나름의 특이성으로 구축된 규범이 주어진 곳이다.

 

막연한 느낌만 가지고 공유지라 명명한 공간을 만들고 꾸려나가면서 비로소 우리에겐 공유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나 오픈한다고 해서 공유지가 되는 것이 아님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공유지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머리를 맛대고 이 궁리 저 궁리할 때, 공유지를 터전삼아 스스로의 활동을 조직할 때 그 장소는 공유지가 됨을 체득하게 되었다. 또한 공유지의 경험은 우리에게 사적소유 아니면 공공서비스라는 이분법 너머가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니것 내것의 구별을 넘어선 공유지에서 공통의 것이라는 신세계를 구체적으로 배우게 된 것이다. 아마 공유지가 있었기에 우리는 감히 사적소유를 넘어보자며 무진장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을경제로 시장을 흔들겠다고 뭉친지 십년 남짓. 어떻게 시장의 방식과는 다르게 경제를 보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구성할지 질문하고 답을 찾으며 여기까지 왔다. 시장의 강력한 중력 탓에 한 발짝 떼는 일도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공유지가 있다. 메마른 시장사회에서 공유지는 오아시스다. 공유지가 있었기에 우리는 활력을 얻고, 우정을 쌓고, 유쾌한 삶의 순간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오아시스를 잘 돌보지 않는다면 그곳 역시 메말라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파지사유 한쪽 벽면엔 에코챌린저들이 에코라이프 도전 상황을 보여주는 스티커판이 붙어 있다. 중앙 벽면엔 전태일 50주기를 기리며 문탁인들이 책을 읽고 필사한 종이들이 빈틈없이 빽빽하다. 또 다른 한 켠엔 나눠쓰고 돌려쓰는 반짝이어가게가 한창이다. 오늘도 마을공유지에선 다양한 삶이 좋은 삶을 향해 서로 얽히며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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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4
  • 2020-07-11 08:36

    메마른 시장 사회에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는 공유지~
    오아시스에서 해보면 제밌는 일... 아~ 상상력이 더 필요해 ㅋ

  • 2020-07-11 11:15

    이공유지가 그 공유지였음읊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올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다가다 주역을 공부한다기에 들른 세상 개인자본주의에 찌든 일인이 느끼기엔 낯설고 불편한 시간도 제법 되었습니다 물론 기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커피맛이 없었던건 콩탓이 아니고 머신탓인것 같습니다.

    • 2020-08-04 11:37

      ㅋㅋ 뚜띠님 방학 끝나고 오시면 파지사유에서 커피 한 잔 사드릴게요~

  • 2020-07-12 02:09

    이런 공간이 있어 정말 기쁘고 감사해요~
    잘 가꾸고 잘 지켜나갑시다^^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이년 전이었던가 지방에서 문탁네트워크에 대해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문탁네트워크가 인문학 공동체이며 세미나와 글쓰기 등을 통해 나름대로 깊이있는 인문학 공부를 함께 한다는 것을 힘주어 설명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질문은 마을작업장이라든가, 문탁내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인 복(福)이라든가, 2,500원으로 먹을 수 있다는 문탁의 공동밥상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해갈 수 있는가’가 그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문탁의 차별성은 그렇게 ‘돈’과 ‘공부’를 잘 결합시킨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점으로 귀결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며 살아온 것이 어언 10년 쯤 되어가는 나도 처음에는 선뜻 ‘돈 버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문탁의 많은 일에는 돈이 필요하다) 공부에 나서기가 망설여졌다. 문탁의 많은 친구들도 ‘돈’이 아쉽고, ‘돈’ 문제만 해결되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문탁네트워크의 많은 활동 중에서 마을작업장 <월든>이, 그렇게 마을에서 함께 모여 살면서 경제적인 자립을 꿈꾸면서 시작된 것도 그러한 친구들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복’이라는 이름의 대안화폐도, 그처럼 공동체의 경제를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려는 생각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미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경제적 자립이라는 차원에서는 현실은 늘 ‘노답’이었다. 이때 우리는 스즈카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즈카라는 작은 마을에 도시락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살아가는 공동체가 있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접한 스즈카 커뮤니티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검색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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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2020년 월든공방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 공유지 파지사유 한 켠에는 월든공방이 있다. 여기엔 갖가지 옷감과 가죽, 그리고 실과 바늘, 재봉틀과 다리미, 제법 널따란 작업대와 거기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손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즘 그 공간이 가장 북적이는 날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데, 그 첫 순서는 철학읽기 + 업사이클링 손인문학이다. 손인문학은 새롭게 실험하고 있는 작업과 세미나의 콜라보 프로그램이다. 손인문학을 하면서 우리는 손작업이 우리에게 어떤 배움을 일으킬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한다. 이번 시즌에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의 엄마 유가 참여 하고 있어 함께 아기 키우기 실험까지 자연스럽게 병행하고 있다. 지난 주 우리는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아름다움(美)은 앎 바로 깨달음에서 온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작업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어진 작업은 작은 가죽 조각들을 이어 패치워크 필통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우리는 실과 바늘이 구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낸 가지런한 바느질 선을 보며 즐거워했다. 손인문학이 마무리 될 시간 쯤 월든공방 일꾼들의 공동작업이 시작됐다. 올해는 주 1회 작업을 하고 있어 작업시간이 빠듯하다. 작업은 네 가지였는데, 달팽이는 고로께가 주문한 스테디셀러 파우치를, 띠우는 블랙이 주문한 패치워크 크로스백을, 최근 공방에 다시 합류한 바람은 친구에게 주문받은 가죽 슬리퍼를 만들었다. 새롭게 발굴된 인턴 초빈은 꼼꼼한 재봉실력으로 여름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공방이 매일 이렇게 북적이진 않지만 이제 공방을 시작한 지 9년차, 제법...
달팽이
2020.09.21 | 조회 444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7.10 | 조회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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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4.23 | 조회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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