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 『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 『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그리고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마을의 대모    B는 마을의 대모다. 마을의 모든 갓난아이들이 그의 품에 안겨보았다. 정작 그 자신은 아이도 없이 혼자 사는 싱글인데 말이다. 남의 뒷이야기 하는데 시간을 다 쓰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방인 B를 입에 올린다. 연애는 언제 하지? 결혼은 왜 안 하나?   여하튼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좋게 보는 편이다. 특히 아줌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젊은 아가씨’가 어쩜 그렇게 아이들을 잘 돌보냐면서 칭찬을 후하게 퍼준다. 그러나 B는 칭찬의 목적을 이미 간파했다. 그네들은 쌀 배급 받으러 줄을 서거나 손톱을 다듬으면서 수다를 떨 때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기 위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아줌마와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끌고 그의 사무실을 불쑥불쑥 쳐들어온다. 잠깐만 놓고 갈게! 금방 돌아올게! 처음에는 황당했고 화도 났지만 이제는 체념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장난감도 몇 개 사무실에 구비해 놨다. 그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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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 조회 556
지난 연재 읽기 해완이의 쿠바통신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돌파구를 찾아서   스물네 살이 되었을 때 M은 인생을 다시 계획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 년 간의 긴 투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M은 아버지가 쉰 살에 얻은 막둥이였고, 이미 가정을 꾸린 다섯 명의 손위형제들은 오 년 전 병 구환을 도맡을 사정이 안 된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M이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당혹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곧 틀에 박힌 일상이 모든 것을 덮었다. 어떤 마음이든 일상에 편입되면 얼마간은 무감각해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자 갑자기 자유가 찾아왔다. M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인생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전환기, 그는 돈 벌기와 병 구환에만 몰두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뺀 모두가 앞으로 나가고 있는 듯했다. 물론 M의 생존력은 어떤 친구들보다도 강했다. 그는 소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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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 조회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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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병원 가는 날   오늘은 Y가 가족주치의와 약속이 있는 날이다. 꼰술또리오는 벌써 엄마와 아기들로 득실거릴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소아과의사와 산부인과의사가 찾아오는 정기검진 날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 바쁜 날에 진찰을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Y는 동네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거실에 나오니 식탁 위에는 Y를 위한 빵과 커피가 올려져 있다. 옆방에서 하숙하는 학생이 아침식사로 준비해놓은 것이다. 이 친구는 현재 Y의 유일한 가족이다. 전공 수련을 위해서 쿠바로 유학 온 볼리비아 의사인데 올해 2년차 레지던트가 되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정신 쏙 빠져서 살더니, 올해는 의사가 된 티가 좀 난다. Y보고 주치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라고, 혹은 이 약 저 약을 처방해달라고 해보라며 참견을 해댄다. 그럴 때마다 Y는 깔깔 웃는다. 자기는 의사 복이 많아서 집 안팎 어디에서도 아플 수가 없겠단다.  ...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병원 가는 날   오늘은 Y가 가족주치의와 약속이 있는 날이다. 꼰술또리오는 벌써 엄마와 아기들로 득실거릴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소아과의사와 산부인과의사가 찾아오는 정기검진 날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 바쁜 날에 진찰을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Y는 동네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거실에 나오니 식탁 위에는 Y를 위한 빵과 커피가 올려져 있다. 옆방에서 하숙하는 학생이 아침식사로 준비해놓은 것이다. 이 친구는 현재 Y의 유일한 가족이다. 전공 수련을 위해서 쿠바로 유학 온 볼리비아 의사인데 올해 2년차 레지던트가 되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정신 쏙 빠져서 살더니, 올해는 의사가 된 티가 좀 난다. Y보고 주치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라고, 혹은 이 약 저 약을 처방해달라고 해보라며 참견을 해댄다. 그럴 때마다 Y는 깔깔 웃는다. 자기는 의사 복이 많아서 집 안팎 어디에서도 아플 수가 없겠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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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4 | 조회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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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노인과 스쿠터   이보다 더 낭만적인 순간이 있을까?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과외수업을 끝나는 시간에 맞춰 R을 데리러 온 남편, 가는 내내 그의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자신, 거의 닳아버린 배터리로 힘겹게 움직이는 스쿠터. 미국에 사는 조카가 다음에 쿠바를 방문할 때 새 배터리를 가져다줄 예정이다. 조카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이모의 나라에 환상을 가진다. 모든 걸 돈으로 살 수 있는 미국에는 낭만이 없다나. 그렇지만 조카가 낭만을 찾는 이미지는 살사, 럼, 말레꼰이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스쿠터로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머리가 발랑 까진 두 노인의 모습은 아니다. R의 낭만을 십대 소녀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R은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노련한 스페인어 선생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일주일에 과외 수업을 수차례씩 다닌다. 이 일에 뛰어든 지 벌써 삼십년 째다. 그 세월 동안 R은 어떤 학생과도 시간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쉬운...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노인과 스쿠터   이보다 더 낭만적인 순간이 있을까?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과외수업을 끝나는 시간에 맞춰 R을 데리러 온 남편, 가는 내내 그의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자신, 거의 닳아버린 배터리로 힘겹게 움직이는 스쿠터. 미국에 사는 조카가 다음에 쿠바를 방문할 때 새 배터리를 가져다줄 예정이다. 조카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이모의 나라에 환상을 가진다. 모든 걸 돈으로 살 수 있는 미국에는 낭만이 없다나. 그렇지만 조카가 낭만을 찾는 이미지는 살사, 럼, 말레꼰이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스쿠터로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머리가 발랑 까진 두 노인의 모습은 아니다. R의 낭만을 십대 소녀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R은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노련한 스페인어 선생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일주일에 과외 수업을 수차례씩 다닌다. 이 일에 뛰어든 지 벌써 삼십년 째다. 그 세월 동안 R은 어떤 학생과도 시간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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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5 | 조회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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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숭고한 청소부   여자는 A를 숭고한 청소부라고 부른다. A는 자신의 딸 뻘인 여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계속 알아왔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할머니가 이곳에 살았었다. 이제는 여자가 집의 주인이다. A는 여자가 나이를 먹은 햇수만큼 이 집 열쇠를 가지고 살았고,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며, 사람이 있든 없든 집안 구석구석 청소한다. 바닥난 세제를 채우고 오래된 빗자루를 바꿔놓는 것도 A의 몫이다.   긴 세월 동안 도난당한 물건은 없다. 집안의 일이 집 밖의 소문이 되어 흘러나간 적도 없다. A의 행실은 몇 십 년째 한결같다. 여자가 그에게 숭고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다.   남들이 보기에 A는 말 없는 청소부다. 무뚝뚝하지는 않다. 오랜 이웃들은 A가 청소를 하러 오는 날이면 아는 체를 하고, A는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띠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숭고한 청소부   여자는 A를 숭고한 청소부라고 부른다. A는 자신의 딸 뻘인 여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계속 알아왔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할머니가 이곳에 살았었다. 이제는 여자가 집의 주인이다. A는 여자가 나이를 먹은 햇수만큼 이 집 열쇠를 가지고 살았고,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며, 사람이 있든 없든 집안 구석구석 청소한다. 바닥난 세제를 채우고 오래된 빗자루를 바꿔놓는 것도 A의 몫이다.   긴 세월 동안 도난당한 물건은 없다. 집안의 일이 집 밖의 소문이 되어 흘러나간 적도 없다. A의 행실은 몇 십 년째 한결같다. 여자가 그에게 숭고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다.   남들이 보기에 A는 말 없는 청소부다. 무뚝뚝하지는 않다. 오랜 이웃들은 A가 청소를 하러 오는 날이면 아는 체를 하고, A는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띠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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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8 | 조회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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