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달지만은 않은 설탕의 서사 - 『설탕으로 보는 세계사』 리뷰      설탕, 담배, 초콜릿, 차. 이것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일단 그것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게 꼭 우연인 것 같지만은 않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플랜테이션’Plantation으로 발달한 무역품들이며, 현대인들의 삶에 아주 밀접한 기호품들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삶의 어떤 단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기호(記號, Symbol)들이기도 하다. 나는 운동을 하기 전에 기운을 내기 위해 초콜릿과 설탕이 들어간 에너지바로 당분을 섭취하며, 책을 읽을 땐 커피를 마시고,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러 나간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설탕과 차를 통해 당분과 카페인을 섭취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니코틴을 흡수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제당회사가 만들어낸 문화 컨텐츠를 즐긴다. 설탕을 비롯한 기호품들은 분명 달지만, 세계적인 기호품이 되기까지의 과정마저 단 것은 아니었다.     설탕의 충격  오늘날 단맛은 하나의 취향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 때때로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보통 두 가지의 경우인데, 어른들의 경우 달거나 자극적인 맛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대부분이고, 내 또래 친구들의 경우에는 건강과 미용을 이유로 단 음료나 간식을 먹지 않는다. 전자는 익숙하지 않아서, 후자는 지나치게 익숙해서 일까? 이 상황들을 적절하게 이해하려면 근대 이전 상황으로 가보아야 한다.  근대 이전에는 지금처럼 단맛이 강한 음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감미료를 생산하거나 구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였다. 하층민들은...
달지만은 않은 설탕의 서사 - 『설탕으로 보는 세계사』 리뷰      설탕, 담배, 초콜릿, 차. 이것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일단 그것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게 꼭 우연인 것 같지만은 않다. 말하자면 이것들은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플랜테이션’Plantation으로 발달한 무역품들이며, 현대인들의 삶에 아주 밀접한 기호품들이면서 동시에 현대적 삶의 어떤 단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기호(記號, Symbol)들이기도 하다. 나는 운동을 하기 전에 기운을 내기 위해 초콜릿과 설탕이 들어간 에너지바로 당분을 섭취하며, 책을 읽을 땐 커피를 마시고,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러 나간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 설탕과 차를 통해 당분과 카페인을 섭취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니코틴을 흡수한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제당회사가 만들어낸 문화 컨텐츠를 즐긴다. 설탕을 비롯한 기호품들은 분명 달지만, 세계적인 기호품이 되기까지의 과정마저 단 것은 아니었다.     설탕의 충격  오늘날 단맛은 하나의 취향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거나 간식을 먹을 때, 때때로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보통 두 가지의 경우인데, 어른들의 경우 달거나 자극적인 맛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대부분이고, 내 또래 친구들의 경우에는 건강과 미용을 이유로 단 음료나 간식을 먹지 않는다. 전자는 익숙하지 않아서, 후자는 지나치게 익숙해서 일까? 이 상황들을 적절하게 이해하려면 근대 이전 상황으로 가보아야 한다.  근대 이전에는 지금처럼 단맛이 강한 음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뿐더러, 감미료를 생산하거나 구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였다. 하층민들은...
우현
2024.06.17 | 조회 159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300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아 테스형!” 삶의 지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은 합당할까? : <철학 입문> 세미나를 들어야 하는 이유       ‘깨달은 자’의 대명사 소크라테스  “아 테스형!”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슈퍼스타’ 나훈아는 3년 전 자신의 신곡에서 이렇게 외쳤다.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냐는 질문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은 것이다. 오랜만에 컴백한 나훈아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가사로 더욱 이슈가 됐었다. 특히 가사가 ‘철학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힘든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내용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곡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던가, <독서가 테크트리>에서 다룰만한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전형으로, 머나먼 인생의 선배이자 ‘진리를 깨달은 자’의 의미의 ‘테스형’으로 쓰였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용법은 흔한 편이다. 나도 온라인 대전 게임을 하다보면, 드물게 ‘소크라테스 컨셉’을 잡고 행동하는 유저를 만나곤 한다. 닉네임을 ‘Socrates’로 짓고, 칭호를 ‘철학가’나 ‘깨달은 자’로 달고, 게임 내내 채팅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만 하는 식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세상 만사를 깨달은 ‘철학자’의 아이콘이며, 근엄하고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일반적 이미지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철학사에서 다뤄지는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어떤 점이 다를까?     나훈아의 <테스형!> 무대. 배경 이미지로 올림푸스 신전과 소크라테스의 그래픽이 나타나는 게 나의 '웃음벨'이었다.     ‘철학의 아버지’, 그리고 ‘슈퍼스타’  우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아이콘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자연...
  “아 테스형!” 삶의 지혜를 소크라테스에게 묻는 것은 합당할까? : <철학 입문> 세미나를 들어야 하는 이유       ‘깨달은 자’의 대명사 소크라테스  “아 테스형!”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슈퍼스타’ 나훈아는 3년 전 자신의 신곡에서 이렇게 외쳤다. 살아가기 힘겨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냐는 질문을 소크라테스 ‘형’에게 물은 것이다. 오랜만에 컴백한 나훈아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가사로 더욱 이슈가 됐었다. 특히 가사가 ‘철학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힘든 세상에 대해 한탄하는 내용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곡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이라던가, <독서가 테크트리>에서 다룰만한 ‘철학적’인 내용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전형으로, 머나먼 인생의 선배이자 ‘진리를 깨달은 자’의 의미의 ‘테스형’으로 쓰였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런 사용법은 흔한 편이다. 나도 온라인 대전 게임을 하다보면, 드물게 ‘소크라테스 컨셉’을 잡고 행동하는 유저를 만나곤 한다. 닉네임을 ‘Socrates’로 짓고, 칭호를 ‘철학가’나 ‘깨달은 자’로 달고, 게임 내내 채팅으로 ‘너 자신을 알라’고만 하는 식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세상 만사를 깨달은 ‘철학자’의 아이콘이며, 근엄하고 흔들리지 않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듯하다. 하지만 정말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일반적 이미지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철학사에서 다뤄지는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어떤 점이 다를까?     나훈아의 <테스형!> 무대. 배경 이미지로 올림푸스 신전과 소크라테스의 그래픽이 나타나는 게 나의 '웃음벨'이었다.     ‘철학의 아버지’, 그리고 ‘슈퍼스타’  우선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아이콘이라는 것에 대해 반론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자연...
우현
2024.02.05 | 조회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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