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띠우 2023.05.28 조회 24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청량리 2023.05.02 조회 29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띠우 2023.04.23 조회 31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청량리 2023.04.09 조회 33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공포물이거나 혹은 복수극이거나   <월하의 공동묘지(1967)>/권철휘 감독     이것은 공포다   1924년 발표된 김영환 감독의 <장화홍련전>은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계모의 괴롭힘 때문에 죽은 딸들이 밤마다 고을 사또에게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을 푸는 이야기다. 여성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처음에 갑자기 귀신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공적 대리인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다. 이후 악인은 처벌받고 한을 풀면서 마무리된다. 한국공포영화에서 소복입은 여성귀신의 이미지는 유독 강렬한데, 이는 가부장제 속에서 고통받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난사와 관련이 있다. 차츰 이 과정은 공포영화 서사의 전형이 되어 간다. <장화홍련전>은 1936년, 1956년, 1962년, 1972년에 리메이크되었고, 2003년에는 김지운 감독에 의해 또 다른 가족괴담의 형태인 <장화, 홍련>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공포영화의 전형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1967)>가 있다. 서울 동아극장에서 개봉 당시 관객이 5만 명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주인공 명순(강미애)은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오빠 춘식(황해)과 애인 한수(박노식)의 옥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된다. 춘식이 모든 죄를 떠안자 한수는 풀려나 명순과 가정을 꾸리고 자식도 낳는다. 그런데 이 집의 식모 난주(도금봉)는 명순이 정절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공포물이거나 혹은 복수극이거나   <월하의 공동묘지(1967)>/권철휘 감독     이것은 공포다   1924년 발표된 김영환 감독의 <장화홍련전>은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계모의 괴롭힘 때문에 죽은 딸들이 밤마다 고을 사또에게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을 푸는 이야기다. 여성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처음에 갑자기 귀신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공적 대리인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다. 이후 악인은 처벌받고 한을 풀면서 마무리된다. 한국공포영화에서 소복입은 여성귀신의 이미지는 유독 강렬한데, 이는 가부장제 속에서 고통받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난사와 관련이 있다. 차츰 이 과정은 공포영화 서사의 전형이 되어 간다. <장화홍련전>은 1936년, 1956년, 1962년, 1972년에 리메이크되었고, 2003년에는 김지운 감독에 의해 또 다른 가족괴담의 형태인 <장화, 홍련>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공포영화의 전형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1967)>가 있다. 서울 동아극장에서 개봉 당시 관객이 5만 명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주인공 명순(강미애)은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오빠 춘식(황해)과 애인 한수(박노식)의 옥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된다. 춘식이 모든 죄를 떠안자 한수는 풀려나 명순과 가정을 꾸리고 자식도 낳는다. 그런데 이 집의 식모 난주(도금봉)는 명순이 정절을...
띠우 2023.03.26 조회 30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또다시, 새롭게 되풀이될 것이다 <성춘향成春香>(1961) | 감독 : 신상옥 / 주연 : 최은희, 김진규 | 107분       1960년에 개봉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처럼 전후 당시 메마르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이 있었고, 한편으로 힘든 삶에 약간의 판타지와 대리만족을 채워주는 영화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은 <오발탄>과는 정반대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폭발했던 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1961)이 같은 해 동시 개봉되면서 ‘핫이슈’가 됐었다. 상업영화에 관객평점이 중요한 건 변함이 없다. 두 감독 모두 ‘춘향전’으로 승부를 걸고, 고가의 ‘총천연색’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당시 흥행감독 ‘홍성기 프로덕션’과 ‘신예감독 신상옥’의 대결이 볼만했는데, 결과는 신상옥 감독의 압승이었다. 영화 <성춘향>이 ‘대박’나자, 신상옥 감독은 이를 토대로 ‘헐리우드 스튜디오시스템’을 표방한 ‘신필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이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포스터, 오른쪽은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포스터. 이 영화로 두 감독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 실패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다 아는 이야기일수록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홍성기 감독은 연극무대를 보여주듯이 방 전체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또다시, 새롭게 되풀이될 것이다 <성춘향成春香>(1961) | 감독 : 신상옥 / 주연 : 최은희, 김진규 | 107분       1960년에 개봉한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처럼 전후 당시 메마르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이 있었고, 한편으로 힘든 삶에 약간의 판타지와 대리만족을 채워주는 영화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은 <오발탄>과는 정반대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양적으로 폭발했던 60년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과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1961)이 같은 해 동시 개봉되면서 ‘핫이슈’가 됐었다. 상업영화에 관객평점이 중요한 건 변함이 없다. 두 감독 모두 ‘춘향전’으로 승부를 걸고, 고가의 ‘총천연색’ 필름으로 영화를 제작한다. 당시 흥행감독 ‘홍성기 프로덕션’과 ‘신예감독 신상옥’의 대결이 볼만했는데, 결과는 신상옥 감독의 압승이었다. 영화 <성춘향>이 ‘대박’나자, 신상옥 감독은 이를 토대로 ‘헐리우드 스튜디오시스템’을 표방한 ‘신필름’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왼쪽이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포스터, 오른쪽은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포스터. 이 영화로 두 감독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다.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 실패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다 아는 이야기일수록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홍성기 감독은 연극무대를 보여주듯이 방 전체를...
청량리 2023.03.13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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