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지원의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짱어탕’을 끓이듯이 마감하기     몇 번이나?   목공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마감과 관련한 것이다. 가구의 마감은 보통 칠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 나뭇결을 덮는 페인트칠을 할 때도 있고, 나무 본연의 색을 살려주기 위해 오일을 칠하기도 한다. 나뭇결이 보이면서도 좀 더 진한 색상이나 다른 톤의 색상을 표현하고 싶을 땐 스테인을 칠한다. 이처럼 칠은 물론 미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원목 가구의 경우엔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다. 칠을 하지 않은 목재를 흔히들 ‘백골’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잘 건조되어 허연 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백골 상태의 목재는 이물질을 바로 흡수해버린다. 칠을 하는 첫 번째 목적은 건조된 상태의 목재가 뭐든지 흡수하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식탁에 물 컵을 올려뒀을 때 컵 밑단의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면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 특히 겨울철 등산하다가 잘못 잡아 사고가 나기 십상인 바짝 마른 줄기처럼 나무는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칠은 이렇게 취약한 나무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단단해지도록 한다.   칠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가져 오는지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물성이 그렇듯 목재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데, 이 사이를 채우고 있던 수분들이 날아가며 목재가 변형을 겪는다. 수분이...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짱어탕’을 끓이듯이 마감하기     몇 번이나?   목공수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마감과 관련한 것이다. 가구의 마감은 보통 칠을 의미하는데, 경우에 따라 나뭇결을 덮는 페인트칠을 할 때도 있고, 나무 본연의 색을 살려주기 위해 오일을 칠하기도 한다. 나뭇결이 보이면서도 좀 더 진한 색상이나 다른 톤의 색상을 표현하고 싶을 땐 스테인을 칠한다. 이처럼 칠은 물론 미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원목 가구의 경우엔 보다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다. 칠을 하지 않은 목재를 흔히들 ‘백골’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잘 건조되어 허연 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백골 상태의 목재는 이물질을 바로 흡수해버린다. 칠을 하는 첫 번째 목적은 건조된 상태의 목재가 뭐든지 흡수하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식탁에 물 컵을 올려뒀을 때 컵 밑단의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면 곤란하다. 뿐만 아니라 죽은 나무, 특히 겨울철 등산하다가 잘못 잡아 사고가 나기 십상인 바짝 마른 줄기처럼 나무는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된다. 칠은 이렇게 취약한 나무가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단단해지도록 한다.   칠이 어떻게 그런 효과를 가져 오는지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부분의 물성이 그렇듯 목재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는데, 이 사이를 채우고 있던 수분들이 날아가며 목재가 변형을 겪는다. 수분이...
지원
2021.08.24 | 조회 495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류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류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관리자
2021.08.24 | 조회 518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올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자료에 의하면 37일간 폭염경보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트는 파지사유에서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러나 집에 오면 온 집안 기물들이 전부 열기를 뿜었다. 서향이라 오후 세시쯤부터 넘어가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풀가동해도 열이 식지 않았다. 저절로 냉커피를 찾게 되었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면 열기 때문에 뒤척이기 일쑤였다. 이런 여름엔 어떻게 일상을 지내는 것이 몸을 잘 보살피는 양생일까 궁금해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동의보감』을 펼쳤다.       네 계절 중 여름철이 가장 조섭하게 힘드네 묵은 추위 몸 안에 숨어 있어 배가 차네 보신할 탕약이 없어서는 안 될 것 싸늘하게 식은 음식 입에 대지 말지어다 심장 기운 왕성함과 신장 기운 쇠약함을 금해야 하지만 특히 정(精)과 기(氣)의 유설을 꺼려야 할 것 자는 곳은 삼가 문을 꼭꼭 문을 닫고 생각을 가라앉혀 마음을 평화로이 하라 얼음물과 찬 과실도 몸에 좋지 않아 가을철 반드시 학질을 일으킨다네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536쪽 「위생가(衛生歌)」    위의 노래에서는 여름의 더위를 찬 기운으로 다스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몸 안이 차지면 오장육부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여름의 더위를 피하지 말고 땀을 내서 기운을 밖으로 보내는 것이 양생의 도라고 한다. 하지만 올 여름의 폭염은 여름의 양생의 도를 따르기에는 너무 심했다. 양산 없이 밖을 나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고, 잠깐만 나갔다와도...
  올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자료에 의하면 37일간 폭염경보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에어컨을 트는 파지사유에서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그러나 집에 오면 온 집안 기물들이 전부 열기를 뿜었다. 서향이라 오후 세시쯤부터 넘어가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선풍기를 풀가동해도 열이 식지 않았다. 저절로 냉커피를 찾게 되었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면 열기 때문에 뒤척이기 일쑤였다. 이런 여름엔 어떻게 일상을 지내는 것이 몸을 잘 보살피는 양생일까 궁금해서 요즘 공부하고 있는 『동의보감』을 펼쳤다.       네 계절 중 여름철이 가장 조섭하게 힘드네 묵은 추위 몸 안에 숨어 있어 배가 차네 보신할 탕약이 없어서는 안 될 것 싸늘하게 식은 음식 입에 대지 말지어다 심장 기운 왕성함과 신장 기운 쇠약함을 금해야 하지만 특히 정(精)과 기(氣)의 유설을 꺼려야 할 것 자는 곳은 삼가 문을 꼭꼭 문을 닫고 생각을 가라앉혀 마음을 평화로이 하라 얼음물과 찬 과실도 몸에 좋지 않아 가을철 반드시 학질을 일으킨다네 『한 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536쪽 「위생가(衛生歌)」    위의 노래에서는 여름의 더위를 찬 기운으로 다스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몸 안이 차지면 오장육부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여름의 더위를 피하지 말고 땀을 내서 기운을 밖으로 보내는 것이 양생의 도라고 한다. 하지만 올 여름의 폭염은 여름의 양생의 도를 따르기에는 너무 심했다. 양산 없이 밖을 나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고, 잠깐만 나갔다와도...
기린
2021.08.24 | 조회 372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문탁
2021.08.20 | 조회 249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최악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라 이것을 견딜 수 있는 나의 체력, 면역력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본투비 저질체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적절히 관리하면서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한번 놓친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몸의 회복탄성지수가 거의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제발 좀 쉬라고,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의사들은 산책도 등산도, 그 어떤 운동도 멈추고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 남아있는 에너지를 보존하면서 움츠려 있으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혀진 강의, 회의, 세미나는 다 어쩌구? 함께 모시고 살며 돌봐드려야 하는 어머니는 또 어쩌구?        동생은 강의 따위가 대수냐고, 죽을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쉬어야 제대로 쉴 수 있다고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한 게 아직 마르지 않았다며, 또 짐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자잘한 수리들이 아직도 남았다면서 우리 집에서 한 달 넘게 게기고 있었다. 웬수가 따로 없었다. 성질 같아서는 그래,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 좀 돌봐드려. 장도 보고, 간병인 아주머니 업무 지시도 하고, 엄마 짜증도 받아내. 그리고 어디론가 확 떠나고 싶었다. 사실 휴식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카피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2000년대 초 모 카드회사 광고가 아니었던가?        당장의 과업들을 중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과업들을 중단한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늘어난 휴식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도 좀 애매했다. 평상시 같으면...
문탁
2021.08.10 | 조회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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