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문탁       길드다의 4년 실험이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길드다는 각 구성원의 조건과 욕망에 따라 두 팀으로 분화한다. 한 팀은 길드다 아젠다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유튜브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길드다의 현재 역량과 상황을 반영한 구조조정이고 전진적 개편이다.      그러나 이런 쿨한 공식적 멘트 이면에서 내 속은 좀 복잡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길드다 4년 중 처음 2년간은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는데 이에 비해 후반부 2년은 힘은 힘대로 들고 마음은 고달팠다. 나는 대체로 답답했고 속이 터졌는데 그런데도 이 감정을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의 회고는 불가피하다. 4년 전 길드다는, 4인(5인)의 청년 + 1인의 사장으로 구성된 “인문학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정체성이 애매하긴 했다. 4(5) + 1의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건 5+2가 될 수도 있는 것일까? 혹은 10+1도 괜찮다는 것이었을까?  ‘인문학 스타트업’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자립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지만, 그것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주요 사업모델로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출발한 건, 내가 경험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청년들의 위치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들이 중, 장년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치이는’ 사례를 계속 봐왔다. 다시 말하면 성인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청년은 시작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계속 ‘선생님(들)’께 배우고 혼나는 미숙한 학인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게다가 문탁네트워크의 경우엔 ‘선생님’에 더해 (감수성의 측면에서) ‘엄마’들도...
문탁       길드다의 4년 실험이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길드다는 각 구성원의 조건과 욕망에 따라 두 팀으로 분화한다. 한 팀은 길드다 아젠다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유튜브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길드다의 현재 역량과 상황을 반영한 구조조정이고 전진적 개편이다.      그러나 이런 쿨한 공식적 멘트 이면에서 내 속은 좀 복잡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길드다 4년 중 처음 2년간은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는데 이에 비해 후반부 2년은 힘은 힘대로 들고 마음은 고달팠다. 나는 대체로 답답했고 속이 터졌는데 그런데도 이 감정을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의 회고는 불가피하다. 4년 전 길드다는, 4인(5인)의 청년 + 1인의 사장으로 구성된 “인문학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정체성이 애매하긴 했다. 4(5) + 1의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건 5+2가 될 수도 있는 것일까? 혹은 10+1도 괜찮다는 것이었을까?  ‘인문학 스타트업’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자립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지만, 그것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주요 사업모델로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출발한 건, 내가 경험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청년들의 위치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들이 중, 장년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치이는’ 사례를 계속 봐왔다. 다시 말하면 성인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청년은 시작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계속 ‘선생님(들)’께 배우고 혼나는 미숙한 학인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게다가 문탁네트워크의 경우엔 ‘선생님’에 더해 (감수성의 측면에서) ‘엄마’들도...
문탁
2022.03.25 | 조회 363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영화 <노회찬 6411>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회찬 6411>이 개봉되었다. 볼까 말까 망설였다. 봐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한때 몸담았던 진영과 옛 동지들에 대한 의리, 그와의 개인적 인연, 노회찬 재단에서 애쓰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 그러나 걱정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격과 관련된 것. 이것은 어떤 영화일까? 회고? 애도? 질문? 회고라고 하기에는 그를, 그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다룰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공적 애도와 관련해서도 그의 죽음 직후의 거대한 애도 행렬, 신문과 방송에서의 각종 특집이 이미 있었다. 혹시 이 영화가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라는 손석희의 그 유명한 앵커 브리핑 4분53초를 127분으로 늘려놓은 것이면 어쩌지? 이런 것들과 연결된 것이지만 노회찬 지지자들에 의한 노회찬의 재현이 노무현 지지자들에 의한 노무현의 재현, 혹은 박정희 지지자들에 의한 박정희 재현과 정말 다른 것일 수 있을까, 라는 영화적 질문도 있었다. 나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나는 그 영화의 수많은 인터뷰이처럼 그와 일정 기간 사적으로, 공적으로 깊이 연루된 관객이다. 회고와 애도 없이 그를 이야기하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 울지 않고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추억과 감성을 소비하지 않는 영화 보기가 가능할까? 그런데 울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건, 또 얼마나 웃기는 일일까?  그러나 그 모든 사려(思慮)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봉 당일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움이 모든 걸 압도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려한 만큼 나쁘진 않았다. 영웅서사나 신파를 배제하겠다는...
    *영화 <노회찬 6411>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노회찬 6411>이 개봉되었다. 볼까 말까 망설였다. 봐야 하는 이유는 많았다. 한때 몸담았던 진영과 옛 동지들에 대한 의리, 그와의 개인적 인연, 노회찬 재단에서 애쓰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 그러나 걱정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격과 관련된 것. 이것은 어떤 영화일까? 회고? 애도? 질문? 회고라고 하기에는 그를, 그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다룰 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공적 애도와 관련해서도 그의 죽음 직후의 거대한 애도 행렬, 신문과 방송에서의 각종 특집이 이미 있었다. 혹시 이 영화가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라는 손석희의 그 유명한 앵커 브리핑 4분53초를 127분으로 늘려놓은 것이면 어쩌지? 이런 것들과 연결된 것이지만 노회찬 지지자들에 의한 노회찬의 재현이 노무현 지지자들에 의한 노무현의 재현, 혹은 박정희 지지자들에 의한 박정희 재현과 정말 다른 것일 수 있을까, 라는 영화적 질문도 있었다. 나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나는 그 영화의 수많은 인터뷰이처럼 그와 일정 기간 사적으로, 공적으로 깊이 연루된 관객이다. 회고와 애도 없이 그를 이야기하는 게 애당초 불가능하다. 울지 않고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추억과 감성을 소비하지 않는 영화 보기가 가능할까? 그런데 울기 위해 영화를 보러 간다는 건, 또 얼마나 웃기는 일일까?  그러나 그 모든 사려(思慮)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봉 당일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움이 모든 걸 압도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려한 만큼 나쁘진 않았다. 영웅서사나 신파를 배제하겠다는...
문탁
2021.10.20 | 조회 316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
문탁
2021.09.20 | 조회 241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문탁
2021.08.20 | 조회 249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문탁
2021.06.20 | 조회 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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