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선생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선생님과 잘 지내기는 어려워      내가 공부하는 인문학 공동체 문탁 네트워크에는 또래가 거의 없다. 처음에 나는 몇십 명의 선생님들의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 그것도 낯선 젊은 이방인이었다. 문화의 차이, 어법의 차이, 공부의 차이가 두드러질 때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대항했다. 다수의 어른에게 아부를 떨거나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들에게 마냥 반기를 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래가 없는 이곳에서 선생님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 역시 공동체에서 제 몫을 해야 하는 제자이자 후배, 동료였다.      언젠가부터 매일 선생님들 얼굴을 보면서 이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함께 일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고 말을 잘 못하는 나를 일방적으로 대하는 같았다. 때문에 나는 『논어』에 공자와 제자의 대담이 나오면 눈여겨 보게 되었다. 『논어』는 내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료집이었다.      『논어』엔 공자가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잘 보인다. 나는 이점이 좋기도 했지만, 제자들의 입장이 궁금했으므로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좀 더 하다 보니 『논어』의 문장과 『논어』 밖의 자료를 통해 제자들의 생각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제자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공자를...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선생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선생님과 잘 지내기는 어려워      내가 공부하는 인문학 공동체 문탁 네트워크에는 또래가 거의 없다. 처음에 나는 몇십 명의 선생님들의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 그것도 낯선 젊은 이방인이었다. 문화의 차이, 어법의 차이, 공부의 차이가 두드러질 때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대항했다. 다수의 어른에게 아부를 떨거나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들에게 마냥 반기를 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래가 없는 이곳에서 선생님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 역시 공동체에서 제 몫을 해야 하는 제자이자 후배, 동료였다.      언젠가부터 매일 선생님들 얼굴을 보면서 이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함께 일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고 말을 잘 못하는 나를 일방적으로 대하는 같았다. 때문에 나는 『논어』에 공자와 제자의 대담이 나오면 눈여겨 보게 되었다. 『논어』는 내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료집이었다.      『논어』엔 공자가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잘 보인다. 나는 이점이 좋기도 했지만, 제자들의 입장이 궁금했으므로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좀 더 하다 보니 『논어』의 문장과 『논어』 밖의 자료를 통해 제자들의 생각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제자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공자를...
고은
2021.04.12 | 조회 534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연애의   딜레마에   빠지다               연애의 딜레마      거의 6년 만에 솔로가 되었다. 간만에 솔로가 되니 ‘이제 연애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전 애인과는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연애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 명과의 관계에 몰두하는 일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연애할 때면 애인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에 휩싸이고, 연인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생긴다. 다른 이와 깊은 관계를 맺을 시 그 상대가 나의 성적 지향성에 부합한다면 바람피우는 일이 된다. (나의 경우엔 내 애인의 성별에 크게 개의치 않으니 사랑하는 내 동성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애매해진다) 물론 다른 관계를 열심히 배타적으로 만들어도 애인과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다투거나 같은 일에 의견이 갈릴 때면 상대와 합일될 수 없음을 체감하면서 외로움이 급격하게 밀려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는 대개 낯선 존재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줄 내 편을 찾기 위해,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기 위해 시작된다. 외롭지 않기 위해 시작한 연애가 외로움을 만들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별을 했다가도 다시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연애를 한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연애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연애의   딜레마에   빠지다               연애의 딜레마      거의 6년 만에 솔로가 되었다. 간만에 솔로가 되니 ‘이제 연애 그만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전 애인과는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렇다고 연애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한 명과의 관계에 몰두하는 일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연애할 때면 애인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에 휩싸이고, 연인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생긴다. 다른 이와 깊은 관계를 맺을 시 그 상대가 나의 성적 지향성에 부합한다면 바람피우는 일이 된다. (나의 경우엔 내 애인의 성별에 크게 개의치 않으니 사랑하는 내 동성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애매해진다) 물론 다른 관계를 열심히 배타적으로 만들어도 애인과 하나가 될 수는 없다. 다투거나 같은 일에 의견이 갈릴 때면 상대와 합일될 수 없음을 체감하면서 외로움이 급격하게 밀려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는 대개 낯선 존재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줄 내 편을 찾기 위해,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혼자라는 느낌을 받지 않기 위해 시작된다. 외롭지 않기 위해 시작한 연애가 외로움을 만들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별을 했다가도 다시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연애를 한다. 몇 번이고 반복되는 연애의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고은
2021.03.03 | 조회 662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공자님은 자기계발이 좋다고 하셨어               전공에 대한 거부감      2017년 겨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이 평창에 모였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오래 공부한 청년들이 가진 욕망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길드다가 탄생했으니, 길드다는 시작부터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2017년 평창에 모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      길드다가 시작된 뒤로는 길드다 일에 허덕였다. 퀴어나 장애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게 길드다의 멤버들은 그들만큼이나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한 멤버는 쓰고 싶은 글이 명확했다. 그가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길 바라며 내가 길드다 운영 일을 좀 더 맡았고,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주제의 책과 이슈를 백업했다. 다른 멤버는 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있는 술자리에 끼거나, 술 먹기를 썩 즐기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길드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중요하게 여겨진 건 전공에 대한 개개인의 역량이었다.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보면 내 전공은 동양고전이나 다름없었으나, 나는 전공을 전면에 잘 내세우지 않았다. 전공, 그러니까 나의 일을 앞세우는 건...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공자님은 자기계발이 좋다고 하셨어               전공에 대한 거부감      2017년 겨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이 평창에 모였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오래 공부한 청년들이 가진 욕망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길드다가 탄생했으니, 길드다는 시작부터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2017년 평창에 모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      길드다가 시작된 뒤로는 길드다 일에 허덕였다. 퀴어나 장애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게 길드다의 멤버들은 그들만큼이나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한 멤버는 쓰고 싶은 글이 명확했다. 그가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길 바라며 내가 길드다 운영 일을 좀 더 맡았고,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주제의 책과 이슈를 백업했다. 다른 멤버는 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있는 술자리에 끼거나, 술 먹기를 썩 즐기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길드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중요하게 여겨진 건 전공에 대한 개개인의 역량이었다.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보면 내 전공은 동양고전이나 다름없었으나, 나는 전공을 전면에 잘 내세우지 않았다. 전공, 그러니까 나의 일을 앞세우는 건...
고은
2020.12.26 | 조회 574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자의식 부풀리지 않고 SNS 사용하기                     십 년차 SNS 유저      처음에 SNS는 지인과 일상·관심사를 공유하는 장이었지만, 요즘엔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피드가 스타일리시해보이면 그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DM(Direct Massage)을 보낸다. 잘나가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려면 SNS에서 영업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예술가의 컨텐츠와 SNS에서 보여지는 라이프 스타일이 잘 어우러지면 SNS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클릭을 불러일으키는 홍보 매체가 된다.      우리 또래에게 SNS에서 나를 드러내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조건이 됐다. SNS를 하지 않는 것조차 SNS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유저는 셀럽이 아니더라도 셀럽 못지않게 피드를 신경 쓴다. 피드에 뜨는 사진의 색감과 구도, 글의 내용과 길이, 게시물이 올라오는 주기가 그 사람의 얼굴이다. 어떤 이들은 개인 계정을 비즈니스 계정으로 등록하고 관리 서비스를 이용한다. 한 사람의 일상이 브랜드인 셈이다.      생활 전반에 들어온 SNS는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약 10년간 SNS를 사용해왔지만, 여전히 ‘좋아요’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동했다. 게시글을 올릴 때 말투와 분위기를 검열하고, 게시글이 올라간 직후에는 반응이 얼마나 오는지 체크했다. 친하지 않은 이가 친구 신청을 걸면 내가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자의식 부풀리지 않고 SNS 사용하기                     십 년차 SNS 유저      처음에 SNS는 지인과 일상·관심사를 공유하는 장이었지만, 요즘엔 그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피드가 스타일리시해보이면 그 계정을 팔로우하거나 DM(Direct Massage)을 보낸다. 잘나가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려면 SNS에서 영업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예술가의 컨텐츠와 SNS에서 보여지는 라이프 스타일이 잘 어우러지면 SNS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클릭을 불러일으키는 홍보 매체가 된다.      우리 또래에게 SNS에서 나를 드러내는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조건이 됐다. SNS를 하지 않는 것조차 SNS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유저는 셀럽이 아니더라도 셀럽 못지않게 피드를 신경 쓴다. 피드에 뜨는 사진의 색감과 구도, 글의 내용과 길이, 게시물이 올라오는 주기가 그 사람의 얼굴이다. 어떤 이들은 개인 계정을 비즈니스 계정으로 등록하고 관리 서비스를 이용한다. 한 사람의 일상이 브랜드인 셈이다.      생활 전반에 들어온 SNS는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약 10년간 SNS를 사용해왔지만, 여전히 ‘좋아요’는 무언의 압박으로 작동했다. 게시글을 올릴 때 말투와 분위기를 검열하고, 게시글이 올라간 직후에는 반응이 얼마나 오는지 체크했다. 친하지 않은 이가 친구 신청을 걸면 내가 불특정 다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고은
2020.12.11 | 조회 558
지난 연재 읽기 고은의 걸헤이 유고걸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고은
2020.09.21 | 조회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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