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문탁이 사랑한 책들
문탁이 사랑한 책들 04  <병원이 병을 만든다> 필연과 자율의 삶, ‘건강’         글 : 둥글레                     나는 약사다. 의료 전문직으로 그 관련된 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종합병원, 약국, 의약품 도매상, 제약회사를 섭렵하며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아픈 사람을 치유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일을 하기도 했고 전문직으로서 책임질만한 능력을 구비하기 위해 공부도 꽤 했다. 그래서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내게 힘든 책이었다. 이 책이 직접적으로 의료제도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인문학 책들처럼 읽고 나서 감상이든 의견이든 쉽게 떠벌릴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에 동의하면 내가 벌어먹고 사는 직업에 대해 나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가 배운 학문은 과학에 근거하고 있었고 내 사명감은 건강 담론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의료제도에 어느 정도 비판적일지언정 일리히에게 전면적으로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제도가 목표로 하고 있는 질병 퇴치와 건강관리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필수 소비품이 되어 가는 과정의 부자연스러움과 그 이면에 삭제된 인간의 자율성에 공감하는 만큼 나는 크게 흔들렸다. 처음 이 책을 읽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읽고 이 글을 쓰면서 난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되었다. 약사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의존하고 있던 의료제도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건강’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기...
문탁이 사랑한 책들 04  <병원이 병을 만든다> 필연과 자율의 삶, ‘건강’         글 : 둥글레                     나는 약사다. 의료 전문직으로 그 관련된 업계에서 20년 이상 일했다. 종합병원, 약국, 의약품 도매상, 제약회사를 섭렵하며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아픈 사람을 치유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일을 하기도 했고 전문직으로서 책임질만한 능력을 구비하기 위해 공부도 꽤 했다. 그래서 이반 일리히의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내게 힘든 책이었다. 이 책이 직접적으로 의료제도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인문학 책들처럼 읽고 나서 감상이든 의견이든 쉽게 떠벌릴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에 동의하면 내가 벌어먹고 사는 직업에 대해 나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가 배운 학문은 과학에 근거하고 있었고 내 사명감은 건강 담론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의료제도에 어느 정도 비판적일지언정 일리히에게 전면적으로 동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제도가 목표로 하고 있는 질병 퇴치와 건강관리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필수 소비품이 되어 가는 과정의 부자연스러움과 그 이면에 삭제된 인간의 자율성에 공감하는 만큼 나는 크게 흔들렸다. 처음 이 책을 읽고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지만 다시 읽고 이 글을 쓰면서 난 어느 정도 입장 정리가 되었다. 약사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의존하고 있던 의료제도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건강’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기...
둥글레
2018.07.24 | 조회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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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탁이 사랑한 책들 03  <청춘의 커리큘럼>  시대의 끝자락에서 청춘에게 말을 걸다   글 : 차명식           대체 왜, ‘커리큘럼’인가?     커리큘럼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currere에서 왔다. 이 currere는 ‘달린다, 뛴다’라는 뜻으로 보통 경주장이나 경주 그 자체를 의미하며, 여기서 나아가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나 활동의 연속을 뜻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이 말을 교육 분야에서 주로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달리기, 혹은 학생들이 달리는 트랙 = ‘교육 그 자체이기도 한 교육과정’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트랙이라 함은 주자가 따라 달려야 하는 선을 의미한다. 주자가 직접 트랙을 긋고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트랙은 누군가에 의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그어진 선, 주자들에게는 ‘주어지는 선’이다. 즉 『청춘의 커리큘럼』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청춘이여, 이 선을 따라 달려라’가 된다. 그와 같은 발화는 사실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이미 청춘의 멘토로 불리는 수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글의 서문에서 그러한 멘토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책을 시작한다.     어떤 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청년들을 위로하려 했다. 성공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누릴 것 다 누리고 있는 예외적인 엘리트의 위로는 청년들에게 동일시의 선망을 불러일으킬지언정 그들의 고통에는 가 닿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또 어떤 이는 청년들에게 “토플책을 놓고 짱돌을 들라”고 했다. 청년들은 그런 선동에도 냉소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7쪽)     힐링과 88만원 세대. 한때 청년 담론을 주름잡았던, 어쩌면 아직까지도 주름잡고...
  문탁이 사랑한 책들 03  <청춘의 커리큘럼>  시대의 끝자락에서 청춘에게 말을 걸다   글 : 차명식           대체 왜, ‘커리큘럼’인가?     커리큘럼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currere에서 왔다. 이 currere는 ‘달린다, 뛴다’라는 뜻으로 보통 경주장이나 경주 그 자체를 의미하며, 여기서 나아가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나 활동의 연속을 뜻하게 된다. 오늘날에는 이 말을 교육 분야에서 주로 사용함으로써 학생들의 달리기, 혹은 학생들이 달리는 트랙 = ‘교육 그 자체이기도 한 교육과정’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트랙이라 함은 주자가 따라 달려야 하는 선을 의미한다. 주자가 직접 트랙을 긋고 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트랙은 누군가에 의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그어진 선, 주자들에게는 ‘주어지는 선’이다. 즉 『청춘의 커리큘럼』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청춘이여, 이 선을 따라 달려라’가 된다. 그와 같은 발화는 사실 그리 낯선 것도 아니다. 이미 청춘의 멘토로 불리는 수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있어 왔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글의 서문에서 그러한 멘토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책을 시작한다.     어떤 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면서 청년들을 위로하려 했다. 성공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누릴 것 다 누리고 있는 예외적인 엘리트의 위로는 청년들에게 동일시의 선망을 불러일으킬지언정 그들의 고통에는 가 닿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또 어떤 이는 청년들에게 “토플책을 놓고 짱돌을 들라”고 했다. 청년들은 그런 선동에도 냉소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7쪽)     힐링과 88만원 세대. 한때 청년 담론을 주름잡았던, 어쩌면 아직까지도 주름잡고...
차명식
2018.07.24 | 조회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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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이 사랑한 책들 02  <이 폐허를 응시하라> 폐허에서 피어나는 자율적 개인의 도덕성            글 : 달팽이                  우리는 누구인가?     문탁에 처음 오는 신입들은 문탁이 친절하지 않다고 한다. 꽤 상냥한 웃음으로 맞이하는데도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한다. 아마도 그 불편함은 다른 데서 보기 힘든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문탁은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만들어내는 변화하기 쉬운 균형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간다. 개인이나 팀의 활동이 살짝 방향을 틀면, 회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내 전체 지형이 변하기 때문에 역할은 수시로 달라진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율성을 믿고 끌어내는 이런 사람관계는 때로 오해와 갈등을 불러오지만, 나는 이 때문에 우리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탁의 이런 운영원리는 아나키 철학에 맞닿아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자율적 공동체, 현재가 미래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예시적 정치.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우둔한 민중을 교양하고 선도하는 대문자 투쟁이 아니라 특수한 것들로부터 자기자리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다른 정치의 실현. 이런 아나키즘의 철학과 이상은 지나치게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는다. 비판의 핵심에는 인간존재에 대한 상반된 믿음이 있다. 우리는 과연 자율적 공동체를 이루어낼 가능성을 지닌 존재인가?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자율적 공동체가 가능하리라는 믿음 쪽으로 우리를 조금 더 다가가게 한다. 그는 인간 도덕감정의 기원을 진화의 기억과 사회성의 본능에서 찾는다. 그는 시베리아 탐험시절 동물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문탁이 사랑한 책들 02  <이 폐허를 응시하라> 폐허에서 피어나는 자율적 개인의 도덕성            글 : 달팽이                  우리는 누구인가?     문탁에 처음 오는 신입들은 문탁이 친절하지 않다고 한다. 꽤 상냥한 웃음으로 맞이하는데도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한다. 아마도 그 불편함은 다른 데서 보기 힘든 개인과 전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문탁은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만들어내는 변화하기 쉬운 균형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간다. 개인이나 팀의 활동이 살짝 방향을 틀면, 회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내 전체 지형이 변하기 때문에 역할은 수시로 달라진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율성을 믿고 끌어내는 이런 사람관계는 때로 오해와 갈등을 불러오지만, 나는 이 때문에 우리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탁의 이런 운영원리는 아나키 철학에 맞닿아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없는 자율적 공동체, 현재가 미래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예시적 정치. 소수의 엘리트가 다수의 우둔한 민중을 교양하고 선도하는 대문자 투쟁이 아니라 특수한 것들로부터 자기자리에서 희망을 만들어내는 다른 정치의 실현. 이런 아나키즘의 철학과 이상은 지나치게 고상하고 아름다우며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는다. 비판의 핵심에는 인간존재에 대한 상반된 믿음이 있다. 우리는 과연 자율적 공동체를 이루어낼 가능성을 지닌 존재인가?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자율적 공동체가 가능하리라는 믿음 쪽으로 우리를 조금 더 다가가게 한다. 그는 인간 도덕감정의 기원을 진화의 기억과 사회성의 본능에서 찾는다. 그는 시베리아 탐험시절 동물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다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달팽이
2018.07.24 | 조회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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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이 사랑한 책들 01  <나무에게 배운다> 아주 찬찬히1 전해지는 것들         글 : 히말라야            내게 전해진 말들 어느 날 곱게 장정된 책 한 권과 만났다. 그와 동시에 ‘상추쌈’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출판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용인에서 멀고 먼 지리산 자락의 어느 마을.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세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에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문을 여는 출판사다. 못 견디게 이 세상에 내 놓고 싶은 글을 골라 매일 밤 서로에게 조금씩 읽어준다. 그 말들은 책이 되면서 동시에 두 사람에게는 다시 힘내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경전이 된다. 그래서 이 기묘한 출판사의 책들은 무척이나 더디게 나온다. <<나무에게 배운다>> 역시 이런 식으로 일 년여에 걸쳐 만들어낸 책이다. 일본의 고대건축물인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궁궐목수들의 삶을 다룬 이 책은, 90년대에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누렇게 빛바랜 이 옛 책을 간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도시의 속도에 맞춰 살 수 없었을 때, 두 사람은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가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각오는 했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새로운 삶에 찾아올 때마다 둘에게 힘이 되어 준 책이었다.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둘은 이 책에 다시 고운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궁궐목수들의 이야기이지만 책의 저자는 집 짓는 장인이 아니다. 옛 장인들의 ‘손의 기억’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문탁이 사랑한 책들 01  <나무에게 배운다> 아주 찬찬히1 전해지는 것들         글 : 히말라야            내게 전해진 말들 어느 날 곱게 장정된 책 한 권과 만났다. 그와 동시에 ‘상추쌈’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출판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용인에서 멀고 먼 지리산 자락의 어느 마을. 하루의 농사일을 마치고 세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에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문을 여는 출판사다. 못 견디게 이 세상에 내 놓고 싶은 글을 골라 매일 밤 서로에게 조금씩 읽어준다. 그 말들은 책이 되면서 동시에 두 사람에게는 다시 힘내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경전이 된다. 그래서 이 기묘한 출판사의 책들은 무척이나 더디게 나온다. <<나무에게 배운다>> 역시 이런 식으로 일 년여에 걸쳐 만들어낸 책이다. 일본의 고대건축물인 궁궐이나 사찰을 짓는 궁궐목수들의 삶을 다룬 이 책은, 90년대에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이미 출간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누렇게 빛바랜 이 옛 책을 간직하고 있었다. 더 이상 도시의 속도에 맞춰 살 수 없었을 때, 두 사람은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가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각오는 했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새로운 삶에 찾아올 때마다 둘에게 힘이 되어 준 책이었다.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둘은 이 책에 다시 고운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궁궐목수들의 이야기이지만 책의 저자는 집 짓는 장인이 아니다. 옛 장인들의 ‘손의 기억’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히말라야
2018.07.24 | 조회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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