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몸 = 신체 + 정신 + 자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고     김지영     1. 한의학, 친근하지만 관심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총 25권(번역본은 총 2,500쪽)에 달한다고 한다. 분량에서부터 엄청나게 방대한 의서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내 또래에서 동의보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9년 방영돼 국민드라마 반열에 오른 <허준>을 통해 애민정신이 넘치는 명의가 불굴의 의지로 완성시킨 한의학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그 의서 아닌가. 그렇게 친근했지만 나는 동의보감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등은 한번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은 그렇지 않았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의서를 본다한들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침술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어디에 써먹는다고 그걸 읽겠나? 바탕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의서는 그렇다치고 한의원은 나와 얼마나 가까운가? 한의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보약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나는 성장기에 보약 한 첩 먹어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한의원 이미지는 보약 짓는 곳, 부자들의 구역이었다. 내가 한의원 문턱을 처음 넘은 건 서른을 훌쩍 넘었을 때로 기억한다.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나도 이제 보약 한 재 지어 먹을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은 후 한의사는 내 체질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무슨 체질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까먹었다. 그 때 먹은 보약이...
      몸 = 신체 + 정신 + 자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고     김지영     1. 한의학, 친근하지만 관심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총 25권(번역본은 총 2,500쪽)에 달한다고 한다. 분량에서부터 엄청나게 방대한 의서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내 또래에서 동의보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9년 방영돼 국민드라마 반열에 오른 <허준>을 통해 애민정신이 넘치는 명의가 불굴의 의지로 완성시킨 한의학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그 의서 아닌가. 그렇게 친근했지만 나는 동의보감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등은 한번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은 그렇지 않았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의서를 본다한들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침술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어디에 써먹는다고 그걸 읽겠나? 바탕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의서는 그렇다치고 한의원은 나와 얼마나 가까운가? 한의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보약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나는 성장기에 보약 한 첩 먹어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한의원 이미지는 보약 짓는 곳, 부자들의 구역이었다. 내가 한의원 문턱을 처음 넘은 건 서른을 훌쩍 넘었을 때로 기억한다.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나도 이제 보약 한 재 지어 먹을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은 후 한의사는 내 체질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무슨 체질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까먹었다. 그 때 먹은 보약이...
문탁
2023.09.11 | 조회 172
인문약방 에세이
    복직과 두려움, 떨쳐낼 수 있을까?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리뷰       박정은       1.작은 갈등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   일주일 뒤에 5년간 휴직이 끝나고 출근을 한다. 어제 개학준비로 학교에 가서 동료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민원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도시학교보다 시골학교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5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학생과도 잘 지내야 하는데 학부모는 더 큰 고민으로 보였다. 학부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게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데 중요해보였다. 학생에 대해 보이는 대로 말을 하면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떤 자세로 학교로 돌아가야 할까.   복직을 앞두고 참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데 그 이유가 뭘까?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계에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오직 완전무결하게 평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작은 갈등에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왜 사건이 발생하고 생기는 감정들을 가볍게 털어버리지 못할까. 감정들을 꽁꽁 싸매고 행여 흩어질까 재차 확인하고 묶어둔다. 산다는 것이 사건의 연속인데 다음 사건이 일어나면 앞서 묵혀둔 감정 위에 새로 생긴 감정을 덧씌운다. 점점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천근만근이다. 그러다보면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를 날짜만 새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담임인 나조차도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없는데 아이들한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사건의 연속 속에서 가볍게,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동의보감> 속에서 지금 나의 두려움을...
    복직과 두려움, 떨쳐낼 수 있을까?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리뷰       박정은       1.작은 갈등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   일주일 뒤에 5년간 휴직이 끝나고 출근을 한다. 어제 개학준비로 학교에 가서 동료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민원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도시학교보다 시골학교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5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학생과도 잘 지내야 하는데 학부모는 더 큰 고민으로 보였다. 학부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게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데 중요해보였다. 학생에 대해 보이는 대로 말을 하면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떤 자세로 학교로 돌아가야 할까.   복직을 앞두고 참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데 그 이유가 뭘까?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계에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오직 완전무결하게 평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작은 갈등에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왜 사건이 발생하고 생기는 감정들을 가볍게 털어버리지 못할까. 감정들을 꽁꽁 싸매고 행여 흩어질까 재차 확인하고 묶어둔다. 산다는 것이 사건의 연속인데 다음 사건이 일어나면 앞서 묵혀둔 감정 위에 새로 생긴 감정을 덧씌운다. 점점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천근만근이다. 그러다보면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를 날짜만 새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담임인 나조차도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없는데 아이들한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사건의 연속 속에서 가볍게,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동의보감> 속에서 지금 나의 두려움을...
문탁
2023.09.11 | 조회 185
인문약방 에세이
  그날 시는 내게 무슨 일을 한 걸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하는 삶은 가윗날 두 개가 맞물려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상대와 함께 자르고 해체해 재구성했고 혼자였을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에 더 ‘온전한’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다. 내게는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을 하는 많은 부부들과 우리 부부는 다를 거라는. 아이를 낳고 나서 환상이 허황된 자만임을 알았다. 물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은 내게 어떤 반쪽 같은 존재였다. 아이가 중심인 세계에서 내가 밤이라면 남편은 낮인 느낌. 그와 함께해야 온전한 하루가 되는 느낌이기에 그는 여전히 소중했다. 그러나 남편은 같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가 버린 사람 같았다. 나만 어두운 곳에 남겨두고 자꾸 밝은 곳으로만 떠나려고 하는 느낌. 화가 났다가 외로웠다가 무시했다가 반성했다가 체념했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밤의 세계에 그는 낮의 세계에 있다고 받아들이고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자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그렇게 밤의 세계의 머물며 별과 달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고 더 이상 낮의 세계가 신경 쓰이지 않거나 그 세계를 신경 쓰려하지 않게 된. 이런 상태의 요약이 아이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라면 우리는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확신과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추측과...
  그날 시는 내게 무슨 일을 한 걸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하는 삶은 가윗날 두 개가 맞물려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상대와 함께 자르고 해체해 재구성했고 혼자였을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에 더 ‘온전한’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다. 내게는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을 하는 많은 부부들과 우리 부부는 다를 거라는. 아이를 낳고 나서 환상이 허황된 자만임을 알았다. 물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은 내게 어떤 반쪽 같은 존재였다. 아이가 중심인 세계에서 내가 밤이라면 남편은 낮인 느낌. 그와 함께해야 온전한 하루가 되는 느낌이기에 그는 여전히 소중했다. 그러나 남편은 같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가 버린 사람 같았다. 나만 어두운 곳에 남겨두고 자꾸 밝은 곳으로만 떠나려고 하는 느낌. 화가 났다가 외로웠다가 무시했다가 반성했다가 체념했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밤의 세계에 그는 낮의 세계에 있다고 받아들이고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자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그렇게 밤의 세계의 머물며 별과 달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고 더 이상 낮의 세계가 신경 쓰이지 않거나 그 세계를 신경 쓰려하지 않게 된. 이런 상태의 요약이 아이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라면 우리는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확신과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추측과...
김현지
2023.09.05 | 조회 295
인문약방 에세이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새봄
2023.09.03 | 조회 231
인문약방 에세이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천유상
2023.09.03 | 조회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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