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 신체 + 정신 + 자연 / 김지영
문탁
2023-09-11 06:24
175
몸 = 신체 + 정신 + 자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고
김지영
1. 한의학, 친근하지만 관심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총 25권(번역본은 총 2,500쪽)에 달한다고 한다. 분량에서부터 엄청나게 방대한 의서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내 또래에서 동의보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9년 방영돼 국민드라마 반열에 오른 <허준>을 통해 애민정신이 넘치는 명의가 불굴의 의지로 완성시킨 한의학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그 의서 아닌가. 그렇게 친근했지만 나는 동의보감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등은 한번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은 그렇지 않았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의서를 본다한들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침술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어디에 써먹는다고 그걸 읽겠나? 바탕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의서는 그렇다치고 한의원은 나와 얼마나 가까운가? 한의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보약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나는 성장기에 보약 한 첩 먹어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한의원 이미지는 보약 짓는 곳, 부자들의 구역이었다. 내가 한의원 문턱을 처음 넘은 건 서른을 훌쩍 넘었을 때로 기억한다.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나도 이제 보약 한 재 지어 먹을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은 후 한의사는 내 체질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무슨 체질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까먹었다. 그 때 먹은 보약이 효과가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다음은 체기가 한참을 내려가지 않아서 가게 되었다. 소화제로 해결이 안 됐고 며칠을 고생하자, 엄마가 침을 맞아보라고 권했다. 마흔이 다 돼서야 나는 처음 침을 맞아봤다. 보기보다 아프지 않았고, 기대보다 효과는 없었다. 그 다음은 허리가 아파서 갔다. 갑자기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허리가 아팠는데,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추나 치료를 받았다. 그 때는 효과를 보았다.
이것이 한의원과 맺었던 내 경험의 전부다. 드라마가 준 감동을 한의원은 내게 주지 못했다. 양의와 대비해, 체질을 개선하는 장기적이고 예방적인 차원의 치료와 관리를 하는 의료기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당장 내가 아플 때 의지하게 되는 의료기관은 한의원이 아니다. 나 뿐 아니라 대체로 그럴 것이다. 물론 몇 가지 한의학적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다리를 삐었거나 구안와사(얼굴 신경 마비 증상. 입과 눈이 한쪽으로 틀어지는 병)가 생겼을 때는 예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의 수준으로 나는 이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만났다.
2.정·기·신,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네요?
저자는 동의보감을 ‘생명과 우주, 삶과 질병, 존재와 자연 등을 두루 포괄하는 비전탐구서’라고 소개한다. ‘병과 약’이 아니라 ‘생명과 우주’, ‘존재와 자연’이라니... 동의보감의 목차는 ‘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의 순서로 구성되었다. 처방 성격인 탕액과 침구편을 제외하면, ‘몸 안의 풍경(내경), 육체의 형상(외형), 몸 안팎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잡병)’이 동의보감에서 보여주는 몸이다. 그중에서도 <내경편>을 맨 앞에 배치해 가장 중요하게 다뤘다. 동의보감이 ‘병과 치료법’을 다룬 평범한 의서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한다. 내경편의 포문을 연 <신형장부도>를 통해 ‘평범한 의서’를 뛰어넘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힌트를 얻어보자.
<신형장부도>는 팔다리가 생략된 몸통의 측면도다. 일종의 해부도 같다. 이 그림을 본 나의 첫 느낌은 ‘사실적이고 엉성하다’였다.
배꼽 안쪽으로 주름이 가득했는데 복부의 지방까지 표현한 것이라 생각해 ‘참 사실적이구나!’ 싶었다. 장부(장기)의 이름은 써있는데 선은 마감처리가 안 된 채 대충 구역만 나눠놓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등 중앙의 척추는 맨 아래부터 뇌까지 꼼꼼하게 그려져 존재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복부의 출렁이는 주름은 지방덩어리가 아니라 단전호흡 중임을 나타내고, 등뼈는 기수련할 때 정기가 오르내리는 길인 삼관이라고 한다. 마감처리가 안 된 선도 대충 그렸기 때문이 아니다. 한의학에서의 장부는 장기만이 아니라 그 기운이 작용하는 구역과 회로를 포함하기 때문에 막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배꼽을 통해 신체 외부와 소통하고, 척추에서 뇌까지 정기가 오르내리고, 장부들 간에도 기운이 순환하는 몸. 살아있다는 건 몸의 내외부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기운이 순환하는 것임을 이 그림은 보여준다.
<신형장부도>가 기운의 흐름을 보여주는 형상이라면, ‘정(精), 기(氣), 신(神)’은 기운의 흐름을 언어로 개념화한 것이다. 우주의 시작, 즉 빅뱅으로 생긴 우주의 에너지를 동양에서는 ‘기’라고 한다. ‘기’의 이합집산이 생명의 토대가 된다. ‘기’는 정과 신의 모태이면서 매개체이다. ‘기’는 몸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항상성을 유지시켜주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호흡과 관련이 깊고, 폐에서 주관한다. ‘정’은 몸의 근본, 물질적 토대이다. 물(액체)의 형태로 몸의 모든 조직에 존재한다. 진액 뇌 골수 눈물 콧물 정액 생리혈 등등. 더 강력하게 응축되면 뼈가 된다. 모두 물을 다루는 장부인 신장에서 주관한다. ‘신’은 생각, 지각, 감정 등 정신 활동 전체를 의미한다. 비물질적이고 무형적이다. 심장이 주관한다. 정기의 흐름에 방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정말 귀신’ 이야기인 것만 같아 이순간 나는 몹시 ‘정신’이 사나운데, 이 때의 ‘정신’이 바로 ‘정과 신’이 결합된 단어다. 동양사상에선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다룬 것을 알 수 있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기가 다 빠진’ 느낌이 들고, 요즘같이 더울 땐 ‘기력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적으로 ‘정, 기, 신’을 말하고 살지만, 개념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이 세계에선 생리와 심리, 육체와 정신,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구획이 날카롭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계를 이분법과 진화론 인간중심주의에 구겨넣어 사고하게 하는 근대적 표상체계를 넘지 못하면, 개념에만 집착하고 ‘사이’와 관계는 포착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아! 딱 내 얘기다. 일단 개념에 집착하지 말고, ‘정기신’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질료와 에너지, 그 모태는 ‘우주의 기’라는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자.
3.우리 몸은 자연의 리듬을 따른다
‘정기신’의 활동무대는 오장육부다. 한의학에서의 장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정적 장기와 흐름으로 존재하는 유동적 장부, 두 가지 양태로 존재한다. 물질적 토대인 ‘정’은 고정적 장기에 담긴 질량적 에너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음적인 에너지이다. ‘기’는 흐름으로 존재하는 유동적 장부이며 양적인 에너지이다. 기가 다니는 길을 경맥이라 하는데, 이것이 곧 유동적인 장부이다. 사지로 뻗어 세로로 흐르는 12개의 경맥은 낙맥에 의해 가로로 연결된다. 경맥과 낙맥을 합쳐서 경락이라 부른다. 경락의 네트워크에서 오장육부의 기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기가 모이면 정이 가득차고, 정이 가득 차면 기가 왕성해진다. 이렇게 정과 기는 서로 맞물려서 지속적인 상호전환이 일어난다.
“환경은 항상 우리 몸속을 관통하고 있다. 아니 ‘관통’이라는 말도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분자가 ‘통과할 수 있는’ 용기(容器) 같은 뭔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기서 용기라 부르고 있는 우리의 몸 자체도 ‘끊임없이 통과하고 있는’ 분자가 일시적으로 형태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흐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변하고 간신히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흐름 자체가 ‘살아 있다’고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후쿠오카 신이치, 『동적평형』, 192~3쪽) 작년에 읽은 생물학 책 『동적평형』에 나오는 내용이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동의보감이 말하는 생명의 원리를 분자생물학 버전으로 설명해주는 것 같다. ‘기’를 이해하는데 빅뱅이론이 필요했고, 분자생물학의 설명을 연결하자 ‘기운의 흐름’이라는 말에 신뢰가 생긴다.
신이치는 또, 우리의 생명은 수정란이 생긴 그 순간부터 행진을 시작해 ‘시간의 축’에 따라 흐르는,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일방통행의 과정이라고도 했다. 한의학에서 ‘기’는 ‘몸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항상성을 유지’시켜준다. 움직인다는 건 시간성을 내포한다. 신이치가 말한 ‘시간의 축’과 한의학에서의 ‘기’는 일면 대응이 가능해보인다. 시간은 변화를 낳는다. ‘기’는 다섯가지 변화의 패턴이 있다. 목화토금수, 오행이다.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간심비폐신 즉 오장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시간의 이치가 몸 안에 내재되어 있다. 오장육부가 계절적 순행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이다. 계절의 기운에 호응해 살아가는 것은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양생법이다. 시간의 리듬에 어떤 성격이 있는지 계절의 특징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겠다.
욕망이 폭주하는 현대, 특히 도시에서의 삶은 안타깝게도 그러한 자연의 리듬과 많이 멀어져있다. 도시는 잠들지 않는다. 오행적으로 보면 모든 기운이 응축해야 할 밤에 사람들은 불야성을 헤맨다. 무성하게 뻗는 발산의 기운을 거둬들이고 수렴의 기운을 써야 하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사람들도 지나간 젊음을 놓지 못하고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들락거린다. ‘정’과 ‘기’가 상호전환한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교류하는 것이고. 몸통 안의 고정된 장부와 경맥이 연동하는 일이다. 이런 교류와 연동은 몸의 항상성에 긴밀하게 영향을 준다. 달리 말해 육체와 정신이 따로 놀면 몸의 항상성을 해치게 된다는 말이다. 항상성의 어긋남이 질병 상태다. 겨울엔 봄을 기다리고, 봄엔 가을을 꿈꾸고, 여기에선 저기를, 저기에선 또 다른 곳을 갈구하는 삶의 엇박자. ‘지금, 여기’에 같이 있지 못하고 ‘지금’과 ‘여기’가 따로 노는 것도 항상성의 어긋남에 속할 것이다. 현대인의 병은 거기서 오는 것이 많지 않을까?
4.자연의 리듬에서 멀어지면 욕망을 잘못 해석한다
자연의 리듬이 가져다 주는 나이듦. 우리사회에는 나이듦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안내받을 수 있는 담론이 부족하다. 온통 청춘만 욕망할 뿐 개인도 자신에게 찾아온 ‘나이듦’을 해석할 능력이 부실하다. 갱년기에 도착한 나도 그렇다. 후회와 회한, 올라가는 인생을 더 이상 살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부터 오는 두려움과 막막함. 공허하고 정처없는 마음 앞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폭풍이 지나가자 ‘다르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다. 하루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향해 뛰어들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과 가장의 책임이 발목을 잡는다는 억울함 사이에서 하루에도 열두번 감정이 널을 뛴다. 리뷰쓰기 결론이 난망하여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욕망의 실체가 정말 ‘다른 일’이었을까?
여름이 가을로 바뀌는 금화교역, 우주의 대혁명이 일어나는 시절이다. 이 시기를 멋지게 통과해야 가을의 결실과 겨울의 대성찰이 가능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 인생도 가을로 접어든 것이니, 그 리듬에 맞춰 삶을 조정하려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일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다. 나는 ‘다른 일’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덜어낼 것과 남길 것을 고르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풀 문제를 지나간 여름의 습관대로 답을 찾으려 했으니... 하마터면 나는 쓸데없이 이직할 뻔 했다. 살아오면서 나는 내 ‘몸’과 ‘마음’의 거리를 얼마나 벌려놓은 것일까? ‘정, 기, 신’이 우리의 언어 곳곳에 녹아 있지만, 한의학과 내 삶은 별 관련이 없었던 만큼, 몸에 새겨진 음양오행의 코드를 고작 내 욕망의 성취여부를 알아내는 도구로 소비하는 수준만큼. 딱 그만큼 내 ‘몸’과 ‘마음’은 멀어져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내가 이 책을 읽는데 겪은 어려움과도 연결돼 있다. 동의보감이 가장 중요하게 다뤘다는 <내경편>, 생명의 원리를 서술한 내용들을 이해하는 게 나는 너무 힘들었다. 동의보감이 말해주는 몸과 우주(자연)에 대한 연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신같다는 혐의를 두거나, 은유의 늪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저자는 이것이 서양의 근대적 인식체계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양의 직선적 사고는 모든 것을 평면적이고 균질화하며 이분법으로 보게 한다. ‘인간/자연, 지구/별, 문명/원시’로 끊임없이 쪼개고 나누는 이분법. 근대에 들어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결이 끊어져, 자연물과 인체는 전혀 별개의 차원이라는 확고부동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동의보감 내용 보다 내 인식체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글을 보는 사람이 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쯤되면 묻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이 책의 저자는 의역학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우주를 은유나 상징의 차원으로 비약시키고자 하는 마음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내 이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데 온 힘을 쏟아야 했다. 그래도 마침내 마음의 장벽은 허물었으니, 이제 비로소 동의보감을 읽을 준비는 된 셈인가! 나처럼 서양식 근대적 인식체계가 견고해 이에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동의보감의 내용을 찬찬히 그리고 꼼꼼하게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안도균의 『동의보감, 양생과 치유의 인문의학』이 더 나을 것 같다. 나도 정기신과 오장육부를 이해하고 쓰는데 그의 책에 많이 의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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