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분노 혼란스러움(천유상)

천유상
2023-09-03 10:17
190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검사 결과에 따라 ’낙태‘를 할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임신을 처음 겪는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두려움과 함께 더 이상 밥을 넘기지 못하고 울었고,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양수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특수교사임에도 ’장애‘는 나에게 있어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건강한 아이를 원한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그 후에 닥칠 일들로 두려웠다. 검사 후 ’증상이 발견되지 않음‘이라는 소견을 받아서 우리 부부는 ’낙태‘를 고민하지 않게 되었지만 만약 아이에게 ’증상‘이 발견되었다면 우리 부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 때 호성이 임신했을 때 당시가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재가 내 뱃속에 있을 때 뭐 잘못한 게 있나...‘(「그래, 엄마야_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34쪽, 오월의 봄). 낙태를 선택하더라도 혹은 선택하지 않더라도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자기 검열을 하게 되고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분노_아빠

 

   스무 살 무렵 나의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한 아빠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나의 뺨을 때렸고, 담배는 모두 버려졌다. 그 순간 느꼈던 분노와 무력감이 오랜 시간 지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아빠도 한때 ‘담배’를 피웠음에도 ‘딸’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마 용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담배 문제 외에도 나와 아빠의 대립은 아빠가 나의 첫 남자친구를 끝까지 거부했던 문제로 격해졌다. 나는 집에 거의 1년을 집에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 집에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어느 날, 엄마가 ‘아빠가 네 남자친구를 허락하기로 했다고’ 라는 말을 전하러 오셨다. 나와 남자친구는 이미 헤어진 뒤였지만, 그렇게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나는 집과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풍경이든 어머니의 풍경이든, 오래된 분노의 조각들이 이글이글 타고 있을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69쪽, 에이드리언 리치)

 

 

  이십대의 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 안에는 ‘분노’도 있었다. 아빠와의 대화는 상호간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일 때가 더 많았고, 어릴 때는 그러려니 하며 지나쳤던, 가족 안에서 ‘자신’의 의사가 누구보다도 중요한 아빠의 고집스러운 면들이 힘들게 느껴졌다. 가끔이긴 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큰 소리로 화를 내며 집안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것, 아빠가 좋아하는 등산, 낚시로 가족 여행을 해야 할 때 힘들어도 토를 달 수 없었던 것과 같은 것들이 쌓여갔다. 아빠는 직장에서 그리고 가족 안에서 아빠의 기호를, 아빠의 존재를 그렇게 드러냈다. 되돌아보면 ‘우리 집’은 ‘가장’인 ‘아빠’의 목소리에 주도권이 있는 전형적인 ‘가부장’ 제도 안의 가족이었다.

 

 

 

 

 

 

3. 혼란스러움_엄마

 

‘이건 여자들이 아주 오랜전부터 늘 해왔던 일이지’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43쪽, 에이드리언 리치)

 

 

  최근 우리 부부는 ‘밥’ 문제로 다투었다. 주말에 늦잠을 자서 아침밥 하는 타이밍을 번번히 놓치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밥’도 안한다고, 집에서 하는 일이 뭐냐는 말에 발끈한 내가 ‘나는 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받아치면서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나는 밥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 찜찜함은 어쩔 수 없이 남았다. 나에게 ‘요리’는 쉬운 일이 아니며, ‘요리하기’를 즐기지 못한다. ‘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하기 싫다’는 마음이 큰 상황에서 반찬 가게에서 산 반찬을 식탁에 올릴 때, 아이들에게 손쉽다는 이유로 라면을 끓여주거나 일회용 포장국을 데워줄 때, 배달 음식을 시킬 때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밥도 안하는’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마음 안에는 ‘당연한 일을 내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당혹감과 미안함이 ‘밥도 안한다’라는 말이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분노보다 더 크게 뒤섞여 있다. 나는 왜 이런 감정들 속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것일까?

 

   우리 집 주방에는 늘 엄마가 있었고, 아빠가 주방으로 들어와 엄마를 도와 음식을 준비하거나 하거나 자신이 먹은 음식을 치우는 일은 없었다. 집을 청소하거나 정리하는 일도 온전한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가 전업 주부이고, 자녀(나를 포함한 남동생 2명)을 키워야하는 상황에서 집안일과 양육의 전적인 부담은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무더운 여름, 외출에 돌아와서 집 식구들이 모두 지쳐서 쉬는데도 자리에 앉지 않고 더운 주방에서 혼자서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아빠의 생일날 여러 사람들을 불러 여러 음식들로 밥상을 차려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손님들의 밥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바빴다. 밥 하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설거지까지 혼자서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당연함과 익숙함 그러면서도 ‘엄마도 힘들텐데’ 하는 불편함과 미안함이 섞인 복잡한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의 생일은 챙겼었나? 어떻게 지나갔었나?_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한 기억이 없다)

 

   지금 나의 남편과 나의 관계는 아빠, 엄마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남편은 아빠와 달리 주방에 있는 일이 훨씬 많고, 주말에 내가 약속이 있어 집을 비우면 직접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아이들을 챙긴다. 아빠처럼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 가끔 ‘욱’하면서 화를 내는 모습이 아빠와 비슷하지만 달라진 건 상대가 아빠였을 때와 달리 남편과는 내가 그때그때 맞서 싸운다는 점이다. 이것이 남편의 개인적인 성향인지 아니면 우리가 맞벌이 부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남편에게 식사 준비를 포함한 집안일의 분담을 요구할 때 ‘나도 직장 생활을 하니 바쁘다. 당신도 분담을 해야한다’고 늘 이야기하며 남편도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럼에도 ’밥‘ 문제에 있어서는 나는 늘 양가감정을 느낀다. ’직장일을 하다보면 바쁘고 힘드니까‘ 라는 이유로 번번히 일회용 음식을 먹는 것을 정당화하는 내가 게으른 것인지 아님 내가 너무 나를 옥죄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따뜻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을 식구들에게 준비해주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몸을 잘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를 자책하다가도 남편이 ’네가 준비해주는 따뜻한 밥상을 잘 먹어보지 못했다‘라는 말에 발끈하게 되는 이 마음도 잘 모르겠다.  이런 혼란스러움 뒤에 늘 수고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들)를 보면서, 여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늘 해왔던 일(143쪽)에 대한, 내가 느꼈던 고마움과 익숙함 그리고 불편함과 미안함이 내 안에 남아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4. 스스로를 사랑하기

 

   임신을 했을 때 뱃 속의 아이가 ‘남자아이’이기를 바랬다. 그동안 내가 ‘여성’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고민하는 시점에서 내 스스로가 ‘여성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고민하다가 내 안에 ‘여성’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려움, 분노, 무력감, 혼란스러움과 같은 감정들. ‘자신에게 너무나 적대적인 세상에서 자라는 여성들은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매우 심오한 사랑이 필요하다’ (207쪽). 나는 예전만큼 아빠에게 분노하지 않고, 엄마와의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 대해서도 예전보다 덜 고민한다. 아빠는 훨씬 유해지셨고 자신의 주장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모습도 덜 해지셨다. 엄마는 이모들과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무언가를 배우시며 바쁘게 본인의 생활을 사신다. 내가 봤고 느껴왔던 모습과 엄마, 아빠가 느끼는 당신들의 모습은 또 다르리라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때는 나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당할 수 없을만큼 ‘적대적’이기도 했다는 것 그 안에서 내가 혼란스럽기도 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러한   ‘자각’이   ‘스스로 사랑하는 법’(207쪽)을 배우기 위한 시작이 되기를 바래본다.

 

 

 

댓글 2
  • 2023-09-05 13:43

    와! ! 소제목4가 들어가니까 훨씬 더 글이 좋아졌네요!!!! ㅎㅎㅎ글잘쓰는 유상샘~♡

  • 2023-09-17 14:48

    시즌 1의 샘의 글과 이어지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관찰하셨군요. 딸로서 엄마로서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음으로 변화하는 여성의 보편적인 감정들을 함께 볼 수 있었어요.

    저 또한 여성으로서 혼란스러웠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여성의 정체성과 함께 연동되어 있는 감정은 무엇이 있었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ㅎㅎ

인문약방 에세이
      몸 = 신체 + 정신 + 자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고     김지영     1. 한의학, 친근하지만 관심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총 25권(번역본은 총 2,500쪽)에 달한다고 한다. 분량에서부터 엄청나게 방대한 의서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내 또래에서 동의보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9년 방영돼 국민드라마 반열에 오른 <허준>을 통해 애민정신이 넘치는 명의가 불굴의 의지로 완성시킨 한의학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그 의서 아닌가. 그렇게 친근했지만 나는 동의보감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등은 한번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은 그렇지 않았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의서를 본다한들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침술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어디에 써먹는다고 그걸 읽겠나? 바탕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의서는 그렇다치고 한의원은 나와 얼마나 가까운가? 한의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보약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나는 성장기에 보약 한 첩 먹어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한의원 이미지는 보약 짓는 곳, 부자들의 구역이었다. 내가 한의원 문턱을 처음 넘은 건 서른을 훌쩍 넘었을 때로 기억한다.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나도 이제 보약 한 재 지어 먹을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은 후 한의사는 내 체질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무슨 체질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까먹었다. 그 때 먹은 보약이...
      몸 = 신체 + 정신 + 자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읽고     김지영     1. 한의학, 친근하지만 관심은 없습니다   동의보감은 총 25권(번역본은 총 2,500쪽)에 달한다고 한다. 분량에서부터 엄청나게 방대한 의서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내 또래에서 동의보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9년 방영돼 국민드라마 반열에 오른 <허준>을 통해 애민정신이 넘치는 명의가 불굴의 의지로 완성시킨 한의학의 자랑스런 유산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 그 의서 아닌가. 그렇게 친근했지만 나는 동의보감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등은 한번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같은 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은 그렇지 않았다. 한의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의서를 본다한들 이해나 할 수 있을까? 침술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어디에 써먹는다고 그걸 읽겠나? 바탕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의서는 그렇다치고 한의원은 나와 얼마나 가까운가? 한의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보약이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나는 성장기에 보약 한 첩 먹어본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한의원 이미지는 보약 짓는 곳, 부자들의 구역이었다. 내가 한의원 문턱을 처음 넘은 건 서른을 훌쩍 넘었을 때로 기억한다. 딱히 아픈 곳은 없었지만 나도 이제 보약 한 재 지어 먹을 정도는 된다는 생각으로 한의원에 갔다. 맥을 짚은 후 한의사는 내 체질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무슨 체질이라고 했는지 지금은 까먹었다. 그 때 먹은 보약이...
문탁
2023.09.11 | 조회 175
인문약방 에세이
    복직과 두려움, 떨쳐낼 수 있을까?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리뷰       박정은       1.작은 갈등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   일주일 뒤에 5년간 휴직이 끝나고 출근을 한다. 어제 개학준비로 학교에 가서 동료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민원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도시학교보다 시골학교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5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학생과도 잘 지내야 하는데 학부모는 더 큰 고민으로 보였다. 학부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게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데 중요해보였다. 학생에 대해 보이는 대로 말을 하면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떤 자세로 학교로 돌아가야 할까.   복직을 앞두고 참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데 그 이유가 뭘까?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계에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오직 완전무결하게 평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작은 갈등에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왜 사건이 발생하고 생기는 감정들을 가볍게 털어버리지 못할까. 감정들을 꽁꽁 싸매고 행여 흩어질까 재차 확인하고 묶어둔다. 산다는 것이 사건의 연속인데 다음 사건이 일어나면 앞서 묵혀둔 감정 위에 새로 생긴 감정을 덧씌운다. 점점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천근만근이다. 그러다보면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를 날짜만 새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담임인 나조차도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없는데 아이들한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사건의 연속 속에서 가볍게,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동의보감> 속에서 지금 나의 두려움을...
    복직과 두려움, 떨쳐낼 수 있을까?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리뷰       박정은       1.작은 갈등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   일주일 뒤에 5년간 휴직이 끝나고 출근을 한다. 어제 개학준비로 학교에 가서 동료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니 민원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도시학교보다 시골학교는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5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학생과도 잘 지내야 하는데 학부모는 더 큰 고민으로 보였다. 학부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게 민원이 발생하지 않는데 중요해보였다. 학생에 대해 보이는 대로 말을 하면 불쾌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어떤 자세로 학교로 돌아가야 할까.   복직을 앞두고 참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데 그 이유가 뭘까? 갈등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관계에서 갈등은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오직 완전무결하게 평안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작은 갈등에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다. 왜 사건이 발생하고 생기는 감정들을 가볍게 털어버리지 못할까. 감정들을 꽁꽁 싸매고 행여 흩어질까 재차 확인하고 묶어둔다. 산다는 것이 사건의 연속인데 다음 사건이 일어나면 앞서 묵혀둔 감정 위에 새로 생긴 감정을 덧씌운다. 점점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천근만근이다. 그러다보면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를 날짜만 새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담임인 나조차도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없는데 아이들한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사건의 연속 속에서 가볍게, 즐겁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동의보감> 속에서 지금 나의 두려움을...
문탁
2023.09.11 | 조회 236
인문약방 에세이
  그날 시는 내게 무슨 일을 한 걸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하는 삶은 가윗날 두 개가 맞물려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상대와 함께 자르고 해체해 재구성했고 혼자였을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에 더 ‘온전한’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다. 내게는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을 하는 많은 부부들과 우리 부부는 다를 거라는. 아이를 낳고 나서 환상이 허황된 자만임을 알았다. 물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은 내게 어떤 반쪽 같은 존재였다. 아이가 중심인 세계에서 내가 밤이라면 남편은 낮인 느낌. 그와 함께해야 온전한 하루가 되는 느낌이기에 그는 여전히 소중했다. 그러나 남편은 같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가 버린 사람 같았다. 나만 어두운 곳에 남겨두고 자꾸 밝은 곳으로만 떠나려고 하는 느낌. 화가 났다가 외로웠다가 무시했다가 반성했다가 체념했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밤의 세계에 그는 낮의 세계에 있다고 받아들이고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자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그렇게 밤의 세계의 머물며 별과 달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고 더 이상 낮의 세계가 신경 쓰이지 않거나 그 세계를 신경 쓰려하지 않게 된. 이런 상태의 요약이 아이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라면 우리는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확신과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추측과...
  그날 시는 내게 무슨 일을 한 걸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하는 삶은 가윗날 두 개가 맞물려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상대와 함께 자르고 해체해 재구성했고 혼자였을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에 더 ‘온전한’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다. 내게는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을 하는 많은 부부들과 우리 부부는 다를 거라는. 아이를 낳고 나서 환상이 허황된 자만임을 알았다. 물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은 내게 어떤 반쪽 같은 존재였다. 아이가 중심인 세계에서 내가 밤이라면 남편은 낮인 느낌. 그와 함께해야 온전한 하루가 되는 느낌이기에 그는 여전히 소중했다. 그러나 남편은 같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가 버린 사람 같았다. 나만 어두운 곳에 남겨두고 자꾸 밝은 곳으로만 떠나려고 하는 느낌. 화가 났다가 외로웠다가 무시했다가 반성했다가 체념했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밤의 세계에 그는 낮의 세계에 있다고 받아들이고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자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그렇게 밤의 세계의 머물며 별과 달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고 더 이상 낮의 세계가 신경 쓰이지 않거나 그 세계를 신경 쓰려하지 않게 된. 이런 상태의 요약이 아이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라면 우리는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확신과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추측과...
김현지
2023.09.05 | 조회 305
인문약방 에세이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새봄
2023.09.03 | 조회 233
인문약방 에세이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천유상
2023.09.03 | 조회 19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