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약방 에세이
따스함과 자유 『먼길로 돌아갈까?』(게일 콜드웰, 문학동네, 2023)는 게일 콜드웰이 마흔 둘에 폐암으로 죽은 캐럴라인 냅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그들은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 인내, 고통 보다 자기 긍정, 성장, 자유와 연결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5,6년이었다.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사랑과 우정의 경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일은 친밀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오롯한 자유로움 둘 다를 원했던 그녀는 따스한 관계가 만족되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얻었다 싶으면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캐럴라인도 게일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자신의 자율을 침해 받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스함과 자유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현해낸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닮은꼴이다. 게일은 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캐럴라인은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 나왔다. 두 여성은 알코올중독이라는 자기 파괴의 늪에서도 과감하게 살아나와 존재를 파산시키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개를 통해서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과 자립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힘을 지니기 위해 분투했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공유한 명제는 “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119쪽)이었다. 이런...
따스함과 자유 『먼길로 돌아갈까?』(게일 콜드웰, 문학동네, 2023)는 게일 콜드웰이 마흔 둘에 폐암으로 죽은 캐럴라인 냅과의 우정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그들은 우정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랑이라는 말도 추가하고 싶다. 이들의 사랑은 희생, 인내, 고통 보다 자기 긍정, 성장, 자유와 연결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은 5,6년이었다. 둘 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았으며,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들이 만들어낸 사랑과 우정의 경이로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게일은 친밀한 관계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주는 따스함과 오롯한 자유로움 둘 다를 원했던 그녀는 따스한 관계가 만족되면 자유를 잃었고, 자유를 얻었다 싶으면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처리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캐럴라인도 게일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자신의 자율을 침해 받는 것도 두려워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따스함과 자유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현해낸다. 게일과 캐럴라인은 닮은꼴이다. 게일은 소아마비를 이겨냈고, 캐럴라인은 거식증의 물살을 헤쳐 나왔다. 두 여성은 알코올중독이라는 자기 파괴의 늪에서도 과감하게 살아나와 존재를 파산시키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개를 통해서 터득하는 중이었다. 그녀들은 공통적으로 술이든 사람이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립과 자립을 지켜내기 위해, 그런 힘을 지니기 위해 분투했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들이 공유한 명제는 “삶은 고되고 때로 가장 치열한 싸움은 고독하게 치러야 하지만,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상처를 입고 나올지라도 여전히 숨을 쉴 수 있다는 믿음”(119쪽)이었다. 이런...
인문약방 에세이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인문약방 에세이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
‘품위’ 있는 학교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모로 초등학교 4학년인 나의 아들은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고기능 자폐라고도 부른다. 인지나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사회성만 떨어지는 경우다. 거기에 상위 1%의 지능을 가진 영재이기도 하고, ADHD가 있고, 간혹 틱도 보인다. 이렇게 동시에 두 개의 특성을 가진 것을 2E(twice exceptional)라고도 하는데, 두 번의 예외라는 뜻이다. 2E들은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영재 집단에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만날 수 있지만,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장애 집단에서의 반복적인 행동 수정 교육은 흥미를 떨어트린다. 아이들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사이의 간극이 커서, 자랄수록 정신적인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난관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빠지는 건 기본, 단체 운동이나 학원은 다녀보지도 못했다. 학기 초에 공개수업을 했는데,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 걱정보다 많이 자라있었다. 물론 수업 중간에 큰 소리로 “엄마 왔어?” 인사를 하고, 심지어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뒤에 서 있는 나에게 걸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지시하는 것을 수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눈에 띄는 것은 반 친구들의 태도였다. 아들은 다행히 여러 가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몇몇 아이들이 몰려와 이것저것 말을 걸어주고, 대답을 안 하는 아들을 위해 서로 주고받는 손 하트를 날렸다. 수업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별로 구성된 팀원들은 누가 시키기라도 한 양 우리 아이를 전담 마크하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