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 스우파 덕질 중! (아젠다 16호 / 20210920)

문탁
2021-09-20 13:02
246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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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돌이켜보니 어릴 때부터 가무(歌舞)를 좋아했다. 어머니의 전언에 따르면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이웃 블록에 무용학원이 들어서서 구경 갔는데 거기서 내가 “반바지만 입은 채” 춤을 따라 췄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무용학원에 보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무용시간. 안무숙제를 받은 나는 여성=발레의 통념을 깨고 피노키오 스토리에 맞춘 ‘독창적’인 안무를 짜갔다. 선생과 친구들의 환호 속에서 ‘춤 부심’이 수직 상승했던 순간! 심지어 아줌마가 된 이후에도 집 근처 문화센터에 춤을 추러 간 적이 있다. 스포츠 댄스였나, 댄스 스포츠였나, 어쨌든 거금을 들여 댄스 슈즈까지 장만했었는데 당시 춤 선생이 아줌마들에게 ‘교태’를 요구해서 바로 그만둬버렸다. 그 미련이 수유너머 시절, 후배들과 함께 춤을 추게 했을까? 난 그때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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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이는 더 먹었고 춤을 출 기회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물론 내 친구 중 일부는 여전히 춤을 춘다. 한 애는 자기가 원장인 시민교육단체에서 전통무용코스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더니 이곳저곳에서 공연까지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운동을 빌미 삼아 차차차, 룸바, 자이브 등을 배운다. 가끔 친구 모임에서 상체를 고정하고 하체만 흔드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선보이는데 급기야 춤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주로 읽고 쓰고 잔소리를 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나는, 춤과 접속하긴 거의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우파를 만난 것이다. 스트릿에서 갈고 닦은 내공을 가진, 진짜 춤 잘 추는 다채로운 캐릭터의 언니들을.

 

  언젠가 문탁에 강의를 왔던 모 음악평론가는 한국의 아이돌이 남미에서 강세를 띠는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 아이돌 음악이 ‘안전하다’라는 것을 들었다. 남미의 부모들에게 케이팝은 욕을 하지도 않고 침을 뱉지도 않는 음악, 마약과 섹스에 노출되지 않고도 즐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문화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걸그룹은 ‘피규어’처럼 받아들여진다고도 했다. 케이팝이나 아이돌을 폄하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러기에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때 나는 왠지 동의가 되었었다. 그것에 비한다면 스우파의 댄서들은 좀 다른 느낌이다. 이들의 춤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한 신체적 정동성이었다. 그들은 몸을 가지고 있고, 거리(스트릿)에서 몸을 단련했고, 그 단련을 ‘떼’(크루)로 했으며, 이제 고수들이 강호에서 실전으로 무술을 겨루듯이 춤-배틀을 통해 교섭한다. 그것은 대결이자 곧 우정! 홀로 싸우면서 확장해가는 네트워크! 바로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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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시아 로즈에 의하면 그래피티와 랩, 그리고 브레이크 댄스에는 어떤 형식적인 일관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흐름’folw, ‘층화’layering, ‘단절’rupture로 구성된다. ‘흐름으로 리듬적인 움직임과 계속성, 회귀성을 만들고, 층화를 통해 이러한 계속성을 반복적으로 강화시키고 윤색하지만, 단절을 통해 때때로 이러한 계속성에 대해 도전하고 위협함으로써 오히려 계속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러한 흐름과 단절이야말로 문화영역에서 사회적 탈각과 단절에 대항할 수 있는 긍정적인 행위를 하도록 하는 전환점의 맹아가 된다. 바로 그 형식 속에 심어진 힙합의 저항성이었다.” (이와사보로 코소, 『뉴욕열전』, p462)

 

 

  난 간병인 아주머니 휴무인 화요일에 어머니가 빨리 잠들기를 바라며 어머니 옆에 가만히 누워 티비를 보다가 스우파에 접속했다. 그런데 4주 정도가 지난 지금, 스우파는 장안의 화제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걸 모든 사람이 느끼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는 긴 팔다리와 멋진 몸매로 유연한 춤을 춰서 멋지고, 누군가는 팔다리가 짧고 몸매가 오동통한데도 말할 수 없이 강렬한 에너지와 개성을 뿜어내서 멋지다.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해? 라는 싸늘한 표정도 멋지고, 오구오구 내 새끼, 하면서 크루멤버를 챙기는 모습도 멋지다. 오로지 몸과 춤으로 자신을 살아내는, 스타일리쉬하고 힙하고 멋진 언니들이 거기엔 그득하다.

 

  살짝 소망이 생겼다. 현민과 조은, 초희. 양생프로젝트 세미나의 우리 조원들. 이 20대 여자 친구들과 한시적인 크루를 만들어 춤 한번 춰? 몇 달이라도 빡세게 노력하면 왁킹의 원 포인트, 혹은 락킹의 원 포인트 정도는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는데, 줌바 댄스 하는 현민아, 어떠니? 콜? 빨리 답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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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 트월킹 (Twerking)  1980년대 후반 뉴올리언스에서 생겨난 바운스 음악에 맞춰 추는 엉덩이춤의 일종이다. 쪼그리고 앉는 자세로 엉덩이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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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정크스페이스, 뒤편으로 쫓겨난 흐름들     공기순환의 N차방정식   내가 열 평 남짓 되는 작은 식당의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느꼈던 것들 중 하나는 ‘공기의 순환’이다. 작은 가게인 만큼 요리를 위해 불을 쓰면 가게 내부가 금세 후끈 달아오르고, 물만 끓여도 습도가 몇 분 만에 60%를 상회한다. 음식을 하면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도 큰 문제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주방에서 발생하는 열과 습기, 냄새와 연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팬fan을 단다. 이렇게 말하면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 공간은 매우 ‘골 때리는’ n차방정식에 돌입하게 된다.   작은 가게의 미닫이 혹은 여닫이문을 열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지 모르겠다. 열과 습도를 가게 내부에서 외부로 방출하는 팬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가져가지 않고, 가게 내부의 공기를 밖으로 가져간다.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외부의 공기가 내부로 들어와 줘야만 한다. 누구도 가게 내부가 진공상태가 되길 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만약 조그만 가게에 출입문을 제외하고 별도의 창이 없다면, 밖으로 나가는 공기만큼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출입문을 밀며 들어온다. 다시 말해 팬을 틀면, 마치 여닫이문을 누가 당기고 있는 것처럼 가게 내부 방향으로 빨려 들어오는 상태를 유지하며 공기가 유입된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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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 조회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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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목
2021.09.27 | 조회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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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전태일 힙합 음악제>. 전태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힙합 음악제로,  재작년의 1회에서는 1차 온라인 예선 때 탈락했었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의 10주기를 추모하며 그분의 말씀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를 주제로 한 올해에는 온라인, 실연심사, 본선을 뚫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집에 올 때마다 보이는 트로피 덕에 아주 헤벌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래퍼들의 현실     우승도 좋지만, 나에겐 여러 동료 래퍼들을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총 12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본선 진출자들이니만큼 실력은 모두 출중했고 19세부터 3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으며 음악 스타일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 음악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이건 아마추어 래퍼들이 처한 현실의 조건이다. 주 6일 알바를 뛰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작업하거나, 쌀국수집 매니저로 있으면서 매일 9시에 퇴근하고 새벽까지 작업하는 일상. 아니면 빚을 져가며 앨범을 만들고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안정한 직업이고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돈 많은 래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언젠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트렌디 래퍼’, ‘언더 래퍼’, 그리고 ‘아마추어 래퍼’   음악제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을 쓰게 했는데 그 소개 문구에 ‘반년 뒤에 성공’이라고 적어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 포부만큼이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탈색한 머리, 팔 쪽에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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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1.09.22 | 조회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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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1.09.20 | 조회 246
지난 연재 읽기 한뼘 양생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집순이다. “둥글레가 집순이라니 믿어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뽀시락 거리며 뭘 만드는 걸 좋아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집안에서 걷지 않고 굴러다닌 적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운동하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형제들도 그렇고 운동신경은 발달한 편이어서 운동을 하면 곧 잘 배운다. 스노보드도 하루 만에 뒤로 내려오는 것까지 마스터했다. 이런 나의 성향들이 합해져 나오는 결과는 늘 정해졌다. 어떤 운동에 꽂히면 빨리 배워서 오버하다 금방 질리고 만다. 결국 운동이 루틴이 되질 못한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티다가 작년에 문제가 생겼다. 작년이 운기적으로 폐나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기 쉬운 해였다. 코로나 유행만큼이나 내 기관지 염증도 계속되었다. 기관지가 좁아져서 나오는 천명음에 잠을 깨다 보니 푹 잘 수가 없었다. 54일간 지속된 장마에 기관지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기침과 가래를 달고 살았다. 운동을 해서 습을 말리고 기운을 돌리지 않으면 천식은 더욱 심해질 거라는 판단이 섰다. 해서 큰맘 먹고 필라테스 PT를 시작했다. 인도 여행을 하겠다고 모아 둔 목돈이 들어갔다. 스스로 만들지 못한 운동 루틴을 남들처럼 돈의 힘을 빌어서 시도해본 거다.    처음에 돈의 힘은 효과가 있었다. 운동을 하니 호흡을 깊게 하게 되었고 몸의 순환이 좋아졌다. 하지만 주 2회로 한정된 운동 횟수와 비싼 기구와 트레이너에 의존적인 상황은 내게 자율성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운동이 일상화가 되지 못하고 이벤트가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에 따라 운동 센터가...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집순이다. “둥글레가 집순이라니 믿어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뽀시락 거리며 뭘 만드는 걸 좋아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집안에서 걷지 않고 굴러다닌 적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운동하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형제들도 그렇고 운동신경은 발달한 편이어서 운동을 하면 곧 잘 배운다. 스노보드도 하루 만에 뒤로 내려오는 것까지 마스터했다. 이런 나의 성향들이 합해져 나오는 결과는 늘 정해졌다. 어떤 운동에 꽂히면 빨리 배워서 오버하다 금방 질리고 만다. 결국 운동이 루틴이 되질 못한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티다가 작년에 문제가 생겼다. 작년이 운기적으로 폐나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기 쉬운 해였다. 코로나 유행만큼이나 내 기관지 염증도 계속되었다. 기관지가 좁아져서 나오는 천명음에 잠을 깨다 보니 푹 잘 수가 없었다. 54일간 지속된 장마에 기관지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기침과 가래를 달고 살았다. 운동을 해서 습을 말리고 기운을 돌리지 않으면 천식은 더욱 심해질 거라는 판단이 섰다. 해서 큰맘 먹고 필라테스 PT를 시작했다. 인도 여행을 하겠다고 모아 둔 목돈이 들어갔다. 스스로 만들지 못한 운동 루틴을 남들처럼 돈의 힘을 빌어서 시도해본 거다.    처음에 돈의 힘은 효과가 있었다. 운동을 하니 호흡을 깊게 하게 되었고 몸의 순환이 좋아졌다. 하지만 주 2회로 한정된 운동 횟수와 비싼 기구와 트레이너에 의존적인 상황은 내게 자율성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운동이 일상화가 되지 못하고 이벤트가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에 따라 운동 센터가...
둥글레
2021.09.06 | 조회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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