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남은 이야기> 굿바이 길드다 (문탁)

문탁
2022-03-25 12:06
371

문탁

 

 

  길드다의 4년 실험이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길드다는 각 구성원의 조건과 욕망에 따라 두 팀으로 분화한다. 한 팀은 길드다 아젠다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유튜브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길드다의 현재 역량과 상황을 반영한 구조조정이고 전진적 개편이다. 

 

  그러나 이런 쿨한 공식적 멘트 이면에서 내 속은 좀 복잡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길드다 4년 중 처음 2년간은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는데 이에 비해 후반부 2년은 힘은 힘대로 들고 마음은 고달팠다. 나는 대체로 답답했고 속이 터졌는데 그런데도 이 감정을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의 회고는 불가피하다. 4년 전 길드다는, 4인(5인)의 청년 + 1인의 사장으로 구성된 “인문학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정체성이 애매하긴 했다. 4(5) + 1의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건 5+2가 될 수도 있는 것일까? 혹은 10+1도 괜찮다는 것이었을까?  ‘인문학 스타트업’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자립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지만, 그것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주요 사업모델로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출발한 건, 내가 경험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청년들의 위치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들이 중, 장년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치이는’ 사례를 계속 봐왔다. 다시 말하면 성인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청년은 시작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계속 ‘선생님(들)’께 배우고 혼나는 미숙한 학인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게다가 문탁네트워크의 경우엔 ‘선생님’에 더해 (감수성의 측면에서) ‘엄마’들도 많았다. 언젠가 지원이가 말했던 것처럼 “백 명의 엄마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 같은 문화가 우리에겐 있었다. 계몽적 구도! 혹은 유사 가족주의! 이런 식으로는 청년들은 영원히 자립하기 힘들다. 나는 청년들을 어른들의 ‘감시’의 눈에서 떼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 밑천도 없는 청년들끼리만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게 가능할까? 어떤 연대의 형식이 요구되는 것일까? 나는 계몽적 배치보다는 차라리 도제적 관계를 맺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일정 기간 바싹 수련시키고 그리고 하산시키자. 그것이 내가 애매모호한 길드다를 만들게 된 맥락이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르게 흘렀다. 우선 “Out of Sight, Out of Mind”랄까, 일상의 공부와 활동에서 청년들과 부대끼는 일이 사라지자 어른들의 청년들에 관한 관심도 빠르게 사라졌다. 난 친구들에게 섭섭했지만, 공동체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한 곳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다양한 어른들과의 접속이 사라지자 청년들은 약간 섬처럼 고립되었고 감정이든 인간관계든 순환이 정체되었다. 물론 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탁의 선생님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지역으로, 나아가 전국적으로 다른 청년들을 만나서 접속할 것. 그렇게 확장된 청년들의 새로운 집합적 목소리로 문탁선생님들과 다시 연대할 것! 첫 2년간은 우리가 작정한 길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코로나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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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비학술적 학술제. 마지막 기념사진. 꼰대는 나 하나다. 하하

 

 

  그런데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뭔가 엇박자가 나고 재미가 없고 리듬이 안 생기고 결과적으로 활동도 위축되고 그에 따라 돈도 바닥이 나기 시작한 게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후반기 2년 나를 괴롭힌 정념들 – 이 아이들은 공간을 유지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걸까? 이들 사이에 우정이 쌓여가고 있는 걸까? (문탁의 한 회원은 내가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자 일갈하여 “관심 없어요. 무엇보다 걔네는 자기들끼리 별로 안 친한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 아이들은 길드다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정말 길드다를 하고 싶긴 한 걸까? -을, 코로나로 인한 정세의 변화 때문이라고, 고로 어느 정도는 불가피했다고 말하는 건 너무 안이한 평가가 아닐까?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 했을까? 두 개의 길 중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 선택. 더 많이 개입할 것. 나라도 길드다 현장을 지킬 것. 새로운 활동을 구성할 것. 멤버를 바꾸거나 확대해서라도 길드다를 재활성화 할 것! 두 번째 선택. 망하든 흥하든 청년들 스스로 알아서 하게 더 발을 뺄 것. 결과적으로 나는 두 번째를 택했다. 그리고 청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난 나에게 “그 결정이 최선이었을까? 올바른 것이었을까? 혹시 힘들어서 그냥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묻고 있다. 80년대식의 어법으로 말하자면 내 안의 ‘청산주의!’ 내 속이 복잡한 첫 번째 이유이다.

 

  길드다 청년들은 길드다를 통해 꼬뮨적 주체로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개개인의 성취(책을 내고 앨범을 내고 강의를 하고...)를 도왔지만, 첫 사장 칼럼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길드다를 콜드플레이 같은 ‘밴드’로 키우진 못했다. 

 

  “어쩌면 내가 브라이언 이노같은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면에는 길드다가 ‘콜드플레이’ 같은 밴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고? 오해는 금물이다. 내가 그 밴드를 사랑하는 것은 그 밴드가 잘나가서가 아니라 그 밴드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장수하는 밴드이기 때문이다. 취향과 지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따로 또 함께’라는 관계의 기술을 함께 훈련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길드다는 무엇보다 청년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서로의 차이가 더 멋진 화음의 생산으로 나아가는 그런 밴드이다. 하여 그곳에서 나는 청년들과 솔직하게 대화하고, 청년들을 지적이고 감성적으로 자극하고, 그들과 함께 다양한 실험을 끊임없이 추가해가되, 그 자체만을 온전히 즐기는, 그런 프로듀서가 되고 싶다.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런 프로듀서, 바로 그런 어른이다. 그것보다 지금 이 나이에 더 잘 사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하니까! ”(<아젠다>0호, 사장칼럼, “나는 사장이다” 중)

 

 

  청년들이 꼬뮨적 주체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가 코로나 때문인지 길드다라는 조직의 구조 때문인지 개개인의 역량 때문인지 내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분명하게 말하긴 어렵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섞여 있겠지만 '전부 다'라고 퉁치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다. 나에겐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다만 이 마지막 글을 통해 나는 좋은 말이 아니라 필요한 말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길드다는 중요한 실험이었지만 결코 성공하진 못했다고. 어떤 점에서 우리는 실패했다고. 그리고 길드다 청년들이 이 점을 뼈아프게 생각하면 좋겠다고.  꼬뮨적 주체가 되지 않으면, 친구를 돌보고 관계를 가꾸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이 미친 세상에서 우린 살아남기가 정말 힘들다. 가진 것이 정말 없는 청년들에겐 더욱 그렇다.

 

  우현, 고은, 지원, 명식, 그리고 동은. 건투를 빈다.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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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0 | 조회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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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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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0 | 조회 274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나까지 보탤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준석’에 대해. <아젠다>가 뭐 정론지도 아니고 내가 뭐 오피니언 리더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니 <아젠다>가 시사저널도 아니고 내가 시사평론가도 아니니 기껏해야 50명 좀 넘게 구독하는 <아젠다>의 친구들에게 이준석 현상에 대해 혹은 이준석으로 촉발된 몇 가지 개인적 단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금의 요란한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뭐랄까, 한편으로는 쏠쏠한 재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 그만 봐도 상관없는 TV 연예프로그램이나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쟁점도 있다. 얼마 전 읽은 「능력주의 비판을 비판한다」 (이범, 2021.06.10. 경향신문) 같은 과감한(?) 칼럼, 이에 대해 “조만간 24만자 정도의 글로 이런 무지한 소리들을 비판”하겠다는 박권일의 코멘트 같은 것. 그러나 이 밖에는 대체로 “세대교체의 바람과 변화에 대한 바람을 담아” 따위의 식상한 멘트, 혹은 “헌정 사상 처음”이라거나 “이준석발(發) 정치혁명” 같은 호들갑, 혹은 배 들어왔을 때 노 젓겠다는 식의 청년동원 이벤트들의 소란스러움뿐이다. 바람 같은 것,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식혜 위에 동동 뜬 밥풀”^^ 같은 것, 이게 작금의 이준석 현상에 대한 나의 인상평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이준석의 현충원 방명록 글씨를 두고 민 아무개라는 국회의원이 “신언서판” 어쩌고, “어색한 문장” 어쩌고 하면서 훈수를 두었을 때였다. 왜냐하면 나 역시 포털에서 그의 글씨체를 본 순간 ‘헉’ 싶은 마음이 들었고, 문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네 글자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민 아무개라는, 4.15총선이 부정선거라고 주장하여 자신의 당에서조차 ‘수구꼴통’으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런 사람과 내가 정확하게 같은 정서반응을 보이고 똑같은 사자성어를 떠올린 것이었다. 헐, 내 안에 민 아무개 있었어?...
문탁
2021.06.20 | 조회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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