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요요
2023-11-20 18:04
218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한에서의 자료들을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다윈이 말한 중간단계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일 중간단계가 있다면 무수한 중간단계들 모두 자연에 잘 적응해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라는 비판이었다. 굴드는 이것을 ‘2퍼센트 날개의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다윈은 마이바트의 비판을 의식하며 『종의 기원』의 최종판이라 할 수 있는 6판(1872)에서 중간단계는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변화’라는 입장을 밝혔다. 기능의 변화라는 다윈의 답변은 중간단계를 구조와 형태로만 파악하는 관점을 바꾸는 새로운 시각의 시작이었다. 이후 여러 화석 증거들을 통해 최초의 깃털이 날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폐가 육지에서의 호흡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다윈의 혜안이 증명되었다.

 

이처럼 진화생물학의 역사는 새로운 물음과 그에 대한 탐구와 응답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물음에 답을 찾고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해가는 과정이 바로 진화의 역사이자 진화론의 역사를 써왔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질문들 중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굴드의 질문에 대한 닐 슈빈의 답변이다. 나는 이 글에서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니다’라는 닐 슈빈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한다.

 

 

굴드의 질문: 생명의 테이프를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닐 슈빈은 1980년대에 유명인사로 떠오른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1942~2002)의 조교였던 적이 있다. 당시 굴드는 교양과정 수업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공룡과 그 밖의 생물들이 살아남았다면, 지금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굴드는 이 강의를 바탕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 『원더풀 라이프』를 썼다. 그 책에서 굴드는 우리 존재를 포함해 자연계는 지난 수십 억 년 동안 일어난 우발적 사건들의 산물이고, 그 사건들 중 어느 하나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세계는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248쪽)

 

굴드의 이런 생각의 반대편에 리처드 도킨스(1941~)를 비롯한 일군의 생명과학자들이 있다. 굴드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5억3천만년전 캄브리아기 생명의 대폭발이 다시 되풀이된다면 생태계는 지금과 같은 결과가 아닐 것이라고 본 것과 달리 이들은 거의 모든 생명체가 비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 다발적 진화)다. 수렴진화란, 생명의 나무에서 근연관계가 아닌, 서로 멀리 떨어진 종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결과를 말한다.

 

모든 동물의 배아는 발생과정에서 모두 똑같이 삼배엽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외배엽에서는 피부와 신경계가 발생하고, 중배엽에서는 근육과 뼈가 발생하고, 내배엽에서는 소화기관 등이 발생한다. 물고기든, 초파리든, 도롱뇽이든, 닭이든, 인간이든 예외가 없다. 또 거의 모든 동물이 비록 구조는 다르지만 눈을 갖는다. <아더 마인즈>에서 보았듯이 3억년 전에 생명의 나무에서 분기한 문어와 인간이 뇌라는 기관을 갖게 된 것 역시 수렴진화의 예다. 생명과학자들은 만약 진화가 우연히 일어난다면 계통이 멀리 떨어진 생명체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비슷한 구조나 기능을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닐 슈빈의 답: 진화는 불확실한 도박이 아니다

 

닐 슈빈도 도킨스와 같은 입장에 선다. 그는 단적으로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 역시 반례로 다발적 진화를 제시한다. 닐 슈빈은 다발적 진화가 일어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 이유는 문제의 해법이 무한하지 않고,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날개의 경우를 보자.

 

나는 생물은 모두 날개를 지닌다. 새, 익룡, 박쥐, 파리의 날개는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내부구조와 진화해온 역사가 저마다 다르고 그것은 추적이 가능하다. 새의 날개를 구성하고 있는 각 뼈의 배열은 박쥐나 익룡의 그것과 다르다. 박쥐는 길게 늘어난 다섯 개 손가락 사이에 쳐진 막이 날개인 반면, 익룡에서는 길게 늘어난 네 번째 손가락이 날개를 지지한다. 곤충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조직으로 날개를 지지한다. 각 구조는 모두 날개임에 틀림이 없지만 저마다 배열이 다르며 그 배열은 포유류, 조류, 파충류, 곤충의 각기 다른 진화사를 반영한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265쪽)

 

아무리 구조와 배열이 달라도 날기 위한 구조로 자연이 ‘날개’를 선택했다는 점은 같다. 그것은 자연의 해법이 무한정일 수 없고 생명체의 신체가 갖는 물리적 조건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렴진화의 또 하나의 이유는 자연선택이 개체 간의 차이에서 생겨난다는 것에 있다. 개체 간의 차이가 없다면 진화는 없다. 그런데 어떤 종에서 어떤 변이가 지배적이고 다른 변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즉 어떤 편향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발생과정에서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기관이 발생과정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낸다면 다른 종의 특정 개체군 내에서 그 기관에 어떤 변이가 나타날지, 어떤 쪽으로 진화할지 예측가능하다.

 

도롱뇽은 서로 다른 종들이 똑같이 혀를 화살처럼 쏘아 먹이를 잡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이 진화는 새로운 뼈와 근육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뼈와 근육을 새로운 기능으로 전용한 결과였다. 그런데 발사체 혀가 고도로 진화한 도롱뇽의 DNA 계통수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이 종들은 전혀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멀리 떨어진 중국종, 멕시코종, 캘리포니아 종이 도롱뇽들은 모두 새끼 손발가락이 퇴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이유는 발생과정에서 손발가락이 생겨난 순서와 반대로 손발가락의 퇴화의 순서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닐 슈빈은 굴드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다른 우발적 상황을 넣어 생명의 테이프를 재생해도 중요한 부분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274쪽)

 

닐 슈빈은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된 발생의 레시피가 진화의 방향에 결정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도롱뇽의 사지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발생의 경로를 알면 그것의 진화의 경로도 예측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어떤 우발적 상황이 끼어들더라도 발생의 설계도인 유전자의 제약이 결정적이라는 의미이다. 결정론에 가까운 이 주장은 현대의 분자생물학의 성과에 근거한 과학적 답변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굴드가 말한 진화란 ‘우발적 사건들의 산물’이라는 비결정론적 주장은 유전자 결정론에 완전히 패배한 것일까? 굴드의 주장은 일고의 여지도 없는 것일까? 나는 닐 슈빈의 주장의 반례를 그의 책 안에서 다수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조립과 병합, 그리고 감염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바바라 매클린톡(1902~1992)은 옥수수 유전자 돌연변이 연구를 통해 게놈이 정적인 것이 아니고, 어떤 유전자는 게놈 안에서 이곳저곳으로 점프하며 자신의 사본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십년의 연구 끝에 신중에 신중을 거쳐 점핑 유전자 가설을 발표했을 때 모두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 인간 게놈의 70퍼센트가 점핑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매클린톡은 1983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매클린톡 이후의 연구를 통해 점핑 유전자가 식물만이 아니라 동물에서도 돌연변이를 게놈 전체로 퍼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은 앞서 닐 슈빈이 말한 유전자의 설계도에 따른 제약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에 의한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린 마굴리스(1938~2011)는 세포 속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를 공생 진화의 예로 제시했다. 오랫동안 마굴리스의 주장은 주류 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세포 속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내 소기관이다. 이것들은 염색체가 들어있는 세포핵과는 별도의 자체 게놈을 갖는다. 마굴리스는 그것들의 기원이 세포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박테리아에 연원한다고 생각했다. DNA 염기서열 분석기법이 개발되면서 린 마굴리스의 주장이 맞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공생 진화는 유전자 결정론과는 다른 조립에 의한 진화의 예다.

 

생명사에는 이런 합병의 사례들이 흔하게 발견된다. 오늘날 지구에 서식하는 모든 동식물은 몸 안에 복잡한 위계로 조직된 부품들인 기관, 세포, 세포소기관, 유전자라는 부품을 갖추고 있다. 이런 조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것은 모든 동물의 배아가 발생과정에서 삼배엽의 구조를 갖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단세포의 미생물들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몸을 만들게 되는 과정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세포의 구조나 유전자의 배열에 따른 필연적 결과가 아니었다. 40억년전 단세포 생물이 태어난 이후 수십억년 동안 이들은 몸을 형성하지 못했다.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합쳐진 몸을 가진 개체의 탄생은 전적으로 지구 대기의 변화라는 외적 조건에 따른 것이었다. 6억년 전 풍부해진 산소가 없었다면 세포들은 고비용의 에너지를 요구하는 몸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도 그렇다. 바이러스들은 게놈을 감염시키면서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숙주세포에 가져다 주었다. 임신의 경우를 보자. 태반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인 신사이틴은 모체와 태아의 영양과 노폐물 교환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신사이틴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에 기원을 두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의 일부가 되어 숙주를 위해 신사이틴을 만드는 일을 하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영장류, 설치류, 그밖의 포유류가 각기 다른 침입자로부터 유래한 서로 다른 신사이틴을 갖고 있다. 어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육지 동물은 가지고 있는 아크 유전자 역시 외부 감염의 결과다. 이 유전자는 숙주의 뇌에서 기억과 인지기능을 강화시키는 변화를 일으켰다. 이로부터 우리는 유전자와 게놈이 결코 닫힌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백질을 생성하고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게놈이 외부에 열려 있고, 병합과 조립, 감염을 통해 진화되어 온 것은 유전자 결정론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조건이 진화에 개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는가?

 

 

 

생명이란 정보, 설계, 코드와 같은 프로그램?

굴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닐 슈빈의 답변, 그리고 닐 슈빈의 답에 대한 나름의 반례들을 찾아보려 시도한 끝에 내게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유전자에 내장된 설계도 혹은 레시피의 제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유전자 레시피라는 전제는 생명을 분자-기계로 보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현대의 분자 생물학 혹은 유전공학이 도달한 결론인 것일까? 그런데 애당초 이 설계도라는 것이 유전자 바깥에서 벌어진 조건의 산물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바바라 매클린 톡이 발견한 것처러 게놈 역시 고정불변의 정적인 것이 아니지 않는가? 닐 슈빈 역시 우리 게놈이 조립과 병합, 감염과 공생의 결과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우리 게놈의 10퍼센트는 태고의 바이러스가 차지하고, 60퍼센트 이상을 점핑 유전자가 만들어낸 반복서열이 차지한다. 우리 자신의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양한 종의 세포와 유전물질이 합병하고 유전자가 끊임없이 중복되고 전용된다는 점에서, 생명사의 흐름은 곧은 수로라기 보다는 꼬이고 구부러진 강에 가깝다. 어머니 자연은 옛 레시피와 원료를 전용하고 복제하고 수정하고 재배치함으로써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낸다.(『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311쪽)

 

결국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데이터들을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앞서 나는 진화생물학의 역사가 물음의 역사라고 말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진화생물학은 물음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생명과 진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둘러싼 담론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날 분자생물학의 전제가 되는 유전자 중심 생명관은 우리의 세계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다시 묻게 된다.

 

댓글 1
  • 2023-11-23 09:47

    대부분의 다종공동체, 신유물론적, 포스트휴머니즘적,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센트롤 도그마를 비판하지요.
    버뜨...다윈은 좀 더 복잡한 것 같아요.

    근데 재밌는 것은 린 마굴리스는 열나 나오는데....굴드 이야기 하는 경우는 잘 못 봤다는...ㅋㅋㅋ... 왜 그럴까유?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정군
2023.11.26 | 조회 34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스르륵
2023.11.21 | 조회 30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요요
2023.11.20 | 조회 218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봄날
2023.11.20 | 조회 21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자작나무
2023.11.13 | 조회 24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