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에세이1] 매일 같지 않다

나래
2022-08-22 09:25
389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 시즌2는 '여행'이 주제였습니다. 시즌2을 마치며 쓴 에세이 가운데 두 편을 북앤톡에 올립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나를 부르는 망우산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239)

생기 있는 푸른 하늘과 군청색의 대지, 자연이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색의 선명한 농담을 발산하는 나뭇잎들.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존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열정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신선한 대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387)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까치, 2018년)에서 빌과 카츠는 처음 계획대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3520킬로미터 전부를 걷지는 못했지만 두 번에 걸쳐 시도했고 시도한 만큼 예상 밖의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중 트래킹을 마친 후 빌과 카츠가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알고 누리게 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빌처럼 내게도 산에서 단순한 기쁨을 누리며 등산을 즐긴 적이 최근에 있었나? 떠올려보니 올 여름이 되어서는 더워서 없었고 장마가 시작되자 더욱 산에 갈 생각조차 안 했다. 더위와 비 때문이 아니어도 산 자체를 여유 있게 마음껏 즐겼던 기억이 없다.

 

왜 없을까? 나는 10년 전 2030산악회 막내 회원으로 활동하며 설악산, 지리산 종주도 가 보았고 혼자서 템플 스테이를 다니며 지방 곳곳 산행도 했고 고민이 있을 때에는 서울 불암산, 수락산도 종종 등산했는데 말이다. 함께 산행 했을 때에는 웃고 떠들고 나누다가 혼자서는 현실의 고민과 걱정이 가득차서 산 자체를 온전히 즐길 여유는 없었다.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서는 산에 가보고 싶어졌다. 가고 싶은 산은 빌과 카츠가 등산했던 애팔래치아 산맥이나 설악산, 지리산도 아닌 바로 우리집 앞 망우산이다. 우리집 50미터 정도 앞에 있는 망우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걸 알기에 오히려 봄과 가을 잠깐을 제외하고는 잘 가지 않았다. 운동의 효율의 측면에서 보면 필라테스나 요가를 하거나 집에서 유튜브 운동 동영상을 틀어놓고 홈트를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여겼다. 망우산 둘레길을 가더라도 언제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정신은 들려오는 컨텐츠에 팔려있어 망우산은 그저 야외 운동장 정도였다. 이번에는 작정하고 망우산 자체를 즐겨보자. 잘 보아야 하니 안경도 쓰고 잘 들어야 하니 이어폰은 빼고 다른 데 정신이 팔리지 말아야 하니 핸드폰 데이터도 끄고 나는 이번주 매일 아침 망우산에 갔다. 산책 후에는 간단히 기록도 해봤다.

 

 

 

매일 같지 않다

첫째 날: 때마침 전날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흐리기는커녕 햇볕이 쨍쨍하니 화창했다. 뭐든 처음일 때의 재미가 있다. 나는 처음 효과로 힘차게 올랐고 오르막도 크게 힘들지 않게 가다 둘레길 말고 사이 오르막 산길로 계속 올라갔다. 축축한 흙냄새, 촉촉한 풀과 나무 내음도 맡고 비가 그친 후 기회를 놓칠세라 맹렬히 노래하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나무 사이로 하늘도 구름도 자주 올려다 보았다. 장마철 이후로 처음으로 숨이 가쁘고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었다. 닥스훈트, 푸들, 말티즈도 만나고 제 몸의 백 배는 족히 넘을 거미줄을 만들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며 활짝 핀 무궁화도 마주치다보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둘째 날: 어제의 활력은 어디갔나. 근육통이 있고 전신이 찌뿌둥하다. 어제 반가웠던 나무들은 오늘 보니 마치 바야바처럼 울창하고 무성해서 징그럽고 무섭기까지 하다. 오늘은 제초기까지 곳곳에 세 대나 작동하고 있어서 시끄럽고 주위를 지날 때 풀비린내도 난다. 이것은 풀 입장에서 보면 피비린내 아닌가. 나무 위에서 송충이까지 거의 땅에 닿을 듯이 내려와있고 나는 질색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30분만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래도 내려올 때 눈에 맑은 기운이 퍼지고 한결 몸이 가뿐하다.

 

셋째 날: 오늘은 몸도 가볍고 움직임이 가뿐하다. 망우산 둘레길 경사가 가파른 쪽으로 올라 덜 가파른 쪽으로 내려오며 운동 효과는 높이고 부상 위험은 최소화하기로 한다. 활기차게 걸으며 두 팔을 양옆으로 벌려보니 온 몸에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시원하니 좋다. 3일차만에 체력이 이렇게 올라올 수 있나 싶게 신나게 걷고 있는데 요가로도 필라테스로도 완전히는 없어지지 않은 좌골통증이 없어진 것 같아 더 신나게 걸었다. 눈이 맑고 통증도 없고 좋다 좋아.

 

넷째 날: 컨디션은 하루 걸러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 것인가. 오늘은 늦잠도 잤고 갑작스런 일도 처리하고 오전 10시경에 나섰더니 세상 환하고 무덥다. 망우산에 닿기도 전에 지칠 것 같다. 숲에 접어드니 양달과 응달의 반전이 크다. 망우산 둘레길은 나무들이 양쪽에서 우거져 시원했지만 시끄러웠다. 매미도 오전 7시 대에는 잠이 덜 깼던 것인가. 오전 10시 대에 더욱 맹렬하게 앞선 3일 동안 들었던 볼륨의 세 배 정도로 노래한다. 매미뿐만 아니라 등산 온 할아버지도 산책 온 아주머니도 마스크를 낀 채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신다. 한 할머니와 함께 온 손녀가 ‘할머니 내려가자, 배고프다.’는 소리를 듣고 내 공복도 알아차리고는 내려왔다. 내려올 때 바람은 또 상당히 시원해서 동요 가사처럼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주었다.

 

다섯째 날:어제는 오른쪽 외측인대가 약간 불편하더니만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어제보다 더 숲을 거닐 수 있겠다. 오늘은 어제와 같이 둘레길 오른쪽으로 가다가 아차산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50분쯤 가다 깔딱고개까지 가려니 공복에 힘들 것 같아 되돌아 나왔다. 한 할아버지께서 “왜 더 가지 않고 돌아서냐”며 다른 멋진 길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오르막길이지만 계단은 아닌 오솔길! 새로운 길에 오르니 바람결에 차르르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도 들리고, 더 귀 기울이니 어제 매미 소리라고 싸잡은 소리에는 적어도 세 가지 종류의 매미와 두 가지 이상의 새 소리가 섞여 있다. 삼천포인줄 알았던 길은 내가 그제 갔던 둘레길과 연결되어 있었고 심지어 나는 가을에 이 길을 반대 방향으로 와 본 적도 있다. 오색찬란했던 색이 초록빛으로 바뀌어 아까는 못 알아봤다. 이 초록이란 색도 나무마다 초록의 명암과 채도가 제각각이었고 햇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연둣빛까지 다른 빛깔을 자아냈다. 오늘은 계획하지 않은 길로 들어섰더니 망우산이 또 새롭고 탐험하는 것 같다. 망우산은 앞으로 매일 와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겠다.

 

이번 주 아침마다 망우산을 걷거나 산행하며 재미와 매력을 느껴서 되도록 자주 거닐어보고 싶다. 살을 빼기 위해 혹은 운동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내일의 망우산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익숙했던 망우산은 내가 자세히 볼 준비를 하고 즐길 자세를 하고 집중해서 매일 만났더니 재미있는 구석이 많았다. 매일 망우산의 요모조모가 달랐고 나의 상태도 달랐기에 조금씩 다른 변주가 생겨났다. 심지어 망우산은 용마산 아차산과도 연결되어 있어 루트의 변주도 가능하다. 컨디션과 기분, 여건에 따라 짧으면 1시간~길어도 1시간 50분이 넘지 않게 경험했기에 무리되지 않아 매일 갈 수 있었다. 얼굴 한 번 잠깐이라도 보려고 먼 길 달려오는 연인처럼 나도 그날의 상황, 여건, 능력에 따라 시간은 조절하되 평일에는 되도록 자주 망우산과 만나고 싶다. 나머지 여름과 가을 동안 망우산에 있는 나무들 하나하나, 공기, 소리, 온도, 냄새가 어떻게 변해갈지 기대되어 나는 지금 들떠있다.

 

애팔래치아 트래킹 후 알코올 중독자였던 카츠는 술을 끊은 명징한 삶으로 돌아갔고, 빌은 집에 돌아와서도 산을 즐기게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산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바라보게 되었다. 둘을 따라서 멀리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까지 가지 않아도 산은 내 집 앞에서도 매일 즐길 수 있다. 자세히 자주 보아줄 마음과 걸음이 있다면.

 

 

계속 하고 있다.

올해로 나는 2년째 2세를 위해 시험관 시술을 받고 있다. 작년에는 하루빨리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삶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나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핑계삼아 지루해졌던 일도 1/3로 줄이고 평소 식단도 건강하게 운동도 했다. 언제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모르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벌이지 않기로 했다. 1년을 겪어보니 매달 신체주기에 맞춰 배란유도 주사를 직접 배에 찌르고 기다리고 실패를 받아들이고 또 다시 반복해야 했다. 나는 평소 건강하고 활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난소는 내 나이보다 더 먹었고 기능도 지지부진했다. 작년은 내 노력과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가장 모호하고 불확실한 시기였다. 매달 F라는 성적표를 받는 듯한 기분에 몸과 마음은 늘어졌다. 이 지루한 과정은 건너뛰고 원하는 결과만 얻고 싶었다. 오히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진행하기보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결과를 기다리며 비슷한 일상을 굴리는 것은 상당히 지난한 일이었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내일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은 나를 더욱 괴롭혔다.

 

결혼 전에는 새로운 일을 주기적으로 시작하거나 벌이며 활력과 동기를 얻었는데 작년에는 그 반대의 일상을 살아보니 대비가 컸다. 2-30대에는 마음이 동하면 맨땅에 헤딩하듯 일단 시작하고 S.M.A.R.T(구체적, 측정가능한, 실천가능한, 현실적인, 기한이 있는)하게 목표를 세워 실행하며 초급까지는 빠르게 성과를 냈다. 그러다 중급 직전이나 중급 초반에 지겨워지면 또 다른 분야로 진입하며 일도 하고 짬짬이 놀기도 잘 놀았다. 그동안 좌충우돌하며 사건이 많아 역동적이고 재미도 쾌감도 있고 여한도 억울함도 없지만, 어느 분야 중급 이상의 실력은 쌓지 못했고 불안도 했고 유효기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일을 찾는 방식에 이제 질리기도 지치기도 했다.

 

그러다 36살에 놓칠 수 없는 짝꿍을 만나 결혼을 한 김에 2세도 꿈꿔봤지만 될 때까지 계속하기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있었다. 시험관 시술을 받는 데 있어 남성은 평소보다 건강을 챙기고 정자를 채취할 때를 제외하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짝꿍도 시험관 시술 성공이 쉽지 않고 내 쪽에서만 신체적, 정신적 고생을 하게 되며 노력을 해봤는데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우리는 상의 끝에 올해까지만 시험관 시술을 받기로 했다. 2세가 없으면 지금처럼 둘이 살면 된다. 나는 올해는 시험관 시술은 받되 전념하지 않기로 했다. 결혼 전보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계획하는 일이 적어지니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이 김에 여태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꾸려보면 어떨까? 이번에는 작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효율을 따지지 말고 일단 그냥 재미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일상을 꾸려보자.

 

올해 2월부터 나는 우연히 이웃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감정 사회학 세미나를 시작했다. 혼자라면 읽다 말았을 벽돌 같은 감정사회학 책을 매주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며 1학기를 마쳤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한 주일은 금방 갔고 혼자서 밋밋하게 읽었던 책도 나와 경험도 생각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다 보면 풍성해졌고 시야도 넓어지고 재미도 커졌다. 어떻게 해서든 머릿속에 몽글거리는 생각과 느낌을 손끝으로 흘려보내 한 땀 한 땀 문장으로 담아내고, 멘토쌤과 학인들의 조언을 듣고 다시 첨삭하여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했다. 따로 또 같이 에세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도 각기 다른 결과물도 재미있고 끝내고 나니 뿌듯했다. 사부작사부작 하다 보니 1학기는 훌쩍 갔다. 혼자서 작정하고 계획하고 효율을 우선으로 실행하지 않아도 함께 재미와 의미가 있게 일상을 채울 수 있었다.

 

세미나를 하며 활력을 얻고 무리가 없어 나는 세미나를 하나 더 신청하고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망우산에도 올라가보게 되었다. 자세히 자주 보아줄 마음으로 망우산에 오르니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도 같을 것 같아 지겹다고 느낀 건 착각이었다. 망우산은 매일 달랐고 나도 매일 달랐다. 살아 있는 한 매일이 같을 수 없는데도 매일 같다며 지루하다는 나의 느낌이 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어느 때건 찾아가면 망우산의 생명들은 제 할 일을 그냥 계속하고 있다. 내 삶도 계속되고 나도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댓글 13
  • 2022-08-22 10:07

    머리에 몽글거리는 생각과 느낌을 한땀 한땀 글로 만들어 내는 선생님의 모습과  지루함 속에서 일상의 다름을 깨달아 가는 나래님의 통찰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나래님의 글을 통해 저도 다시 생동감 가득한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 2022-08-22 10:19

    나래님! 우리 세미나 박카스!! 덕분에 활력있게 여름을 났습니다. 고마워요~~

  • 2022-08-22 10:32

    나래님 글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아요! 

    글 좋네요~~

    저도 건강해지려 산에 가는데 산 자체를 즐겨봐야겠어요~~~

  • 2022-08-22 10:40

    망우산 기록을 읽으며 마치 제가 등산한 기분?^^  귀차니스트인 저를 간질간질하게 만들어주시네요. 작은 균열을 찾아내고 그러면서도 꿋꿋이 걸어가는, 나래샘이 조금 더 보여지는 멋진 글 넘 잘읽었습니다~~  

  • 2022-08-22 11:08

    아, 이 글을 읽는 동안 한동안 가지 않았던 뒷산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어요.^^

  • 2022-08-22 11:32

    시간과 관심 내어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그 동안 제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시적인 목표와 효율에 따라 주로 일을 해왔다는 점도 깨달았어요. 지금부터는 망우산 산책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조금씩 더 정성을 들이고 싶어요!

  • 2022-08-22 16:17

    쌤님 하루가 다르죠. 하루 하루가 다르더라구요. 

    하지만 매일 다른 하루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하고 또 새 힘을 얻으시길.. 

     

    멀리서 응원합니다 !!!!!!! 여름의 싱그러운 한국산이 그립네요. 

  • 2022-08-22 20:12

    망우군과 연애하는 느낌이 였네요(망우양인가..?)

    중간중간 재미있는 포인트를 넣어주셔서 웃으며 읽었습니다

    저의 하루하루도 매일이 다르네요 기분도 몸 컨디션도🙂

    살면서 설레고 신나고 좋은일도 있지만 어렵고 힘든일도 있겠지요🤢

    안되면 새로운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면 되지요 

    인생은 시도와 선택의 연속.  잘헤쳐나가 봅시다

  • 2022-08-23 15:33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망우산을 오르는 상쾌함이 잘 느껴지는 글이네요.

  • 2022-08-23 17:17

    나래님의 재치 넘치는 글솜씨에 여러 번 감탄했습니다. 우와~! 이런 표현을?! 하고 놀랬네요~! 저도 집 근처 산에 가고 싶어졌어요~^^ 산책이라고 시작해볼까요? 배울 점이 참 많은 나래님의 좋은 글 감사해요~!!

  • 2022-08-23 17:45

    같이 산책하는 상쾌한 느낌이었어요. 좋은 호흡으로 쓰여서 단숨에 물 흐르듯 읽었습니다. 고적하게 망우산을 산책하는 삶에 다다르기까지 나래님의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았어요. '좌충우돌하며 사건이 많아 역동적이고 재미도 쾌감도 있고 여한도 억울함도 없지만, 어느 분야 중급 이상의 실력은 쌓지 못했고 불안도 했고 유효기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일을 찾는 방식에 이제 질리기도 지치기도 했다.'라고 그 시간들을 정리해버리는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문장의 절반 정도는 내 얘기 같기도 했습니다.
    지난한 시험관 시술과 매달 F를 받는 기분을 인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아플 때도 있는데, 2세에 전념하지 않고 새로운 일상을 꾸려보려는 의지에서 역시 늘 봐왔던 나래다운 방향타 조정 능력에 안심합니다. 나래가 매우 좋은 둥지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래에게는 늘 어떠한 시기나 질투도 섞이지 않은 200% 순수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게 됩니다.

  • 2022-08-23 23:18

    초록이란 색도 나무마다 초록의 명암과 채도가 제각각이라고 했듯 너도 너만의 예쁜 색으로 삶을 물들여가고 있다고 생각해. 항상 너를 응원해. 그리고 지지해. 보고싶어. 화이팅!

  • 2022-08-23 23:42

    옆에서 얘기하는 듯한 매끄러운 글 잘 읽었어. 여전히 생기 넘치지만 더 여유가 생긴 모습이 보기 좋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어느 때건 찾아가면 너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마!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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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2023.11.26 | 조회 34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스르륵
2023.11.21 | 조회 30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요요
2023.11.20 | 조회 21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봄날
2023.11.20 | 조회 21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자작나무
2023.11.13 | 조회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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