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8회] 고난을 넘어서는 멈춤의 지혜, 수산건(水山蹇)

봄날
2022-11-10 00:22
402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적인 놀이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이 문장을 말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력질주 하다가 즉시 멈춰야 한다. 이때 앞으로 나가는 관성을 막지 못하고 움직이면 지게 된다.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난괘 중의 난괘로 꼽히는 수산건(水山蹇)괘의 상황이 꼭 이렇다. 마구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되지만,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패한다. 만약 사업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거나, 어떤 큰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점을 쳐서 수산건괘를 얻었다면, 당장 그 일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만큼 수산건괘는 어떤 일을 강행하는 것이 어려운 때임을 강조한다. 이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수산건(水山蹇), 앞으로 가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라

주역에서 ‘물’은 험함, 고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주역의 괘 중에 ‘안좋은 괘’ ‘어려운 괘’라고 불리는 괘에는 항상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들어있다. 수산건괘도 상괘가 감괘이다. 위는 물, 아래는 산이 놓여 있는 형상의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간신히 넘었는데, 다시 물을 만나는 고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은 험한 강이고, 뒤는 내가 넘어온 산이 있으니,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괘의 순서로 볼 때 수산건(水山蹇)괘는 화택규(火澤睽)괘의 다음에 나온다. 주역 64괘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해석하는 서괘전은 “규(睽)는 어긋남이니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수산건괘(蹇卦)로 받았다”고 말한다. 규는 ‘사팔눈’처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반목하는 형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괘이다. 그러니까 수산건괘는 소통하지 못한 결과로 초래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역은 이것을 ‘절름발이’로 표현했다. 수산건괘의 건(蹇)이라는 글자는 ‘추울 한(寒)’과 ‘발 족(足)’이 합해진 것이다. 추위로 동상에 걸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양, 즉 다리를 저는 모양이다. 실제로 발이 동상에 걸렸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있다는 표현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절뚝거리는 발을 들여다 보며 비관에 젖을 것인가, 이를 악물고 꿋꿋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역의 수산건괘는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절망 속에 허우적대도 안되지만, 어려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도 무모한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멈춤의 지혜

 

“건은 서남(쪽)은 이롭고 동북(쪽)은 불리하며,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우니 바르면 길할 것이다.(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吉)”

 

수산건괘의 괘사에서 서남과 동북은 언뜻 보면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는 각 방위에 배속된 성질을 봐야 한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서남쪽을 평지, 즉 음의 성질로 보았고 동북쪽은 험지, 즉 양의 성질로 간주했다. 그러니까 수산건괘의 때에는 험한 곳이 아닌 평평한 곳을 택해야 이롭다는 것이다. 평지는 음(陰)을 뜻하니까, 음의 기운을 취하면 대인을 만나고 결국 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괘명 자체가 가리키는 상황을 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무리해서 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은 무모할 뿐 아니라, 더 큰 괴로움을 초래할 수 있다.

 

순리에 따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양의 발산하는 움직임이나 그 힘에 주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눈은 주로 화려한 스킬의 공격수를 따라다닌다. 반면 상대팀의 공격의 허리를 끊고 우리팀의 공격기회를 만들어내는 수비수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양의 활약상은 분명히 인식하지만 음의 움직임은 잘 포착하지 못한다. 주역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인식습관이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어진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면 먼저 그 ‘어려움’이 무엇 때문인지 판단해야 한다. 수산건괘의 어려움은 지금 자신이 절름발이어서 오는 어려움이다. 그러니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앞으로 달리거나 험지를 오르지 않고 지금 여기에 멈추는 것이 당연하다. 정확한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 ‘가는 힘(양의 힘)’이 아니라 ‘그치는 힘(음의 힘)’을 쓰는 것. 양에만 주목했던 우리의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음의 움직임도, 음을 쓰는 방법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이렇듯 멈춰야 할 시점(時)을 알고, 자신의 힘을 그치는 데 쓸 줄 아는(用) 사람, 그만한 지혜를 갖춘 사람만이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앞에서 던졌던 질문, 즉 좌절하거나 이를 악물고 험지로 나아가는 양자택일이 아닌 방법에 대해, 주역은 수산건괘를 통해 제3의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가지 않는 것’, 즉 ‘멈춰서 새로운 음의 힘을 도모하는 것’이다.

 

가면 어렵고, 그치면 ~하다

문제는 멈춤의 역량, 멈춤의 지혜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럼 어떻게 그 멈춤의 역량과 지혜를 키울 수 있을까. 수산건괘의 효사에 힌트가 있다. 수산건괘의 모든 효사에는 건(蹇)자가 들어있다. 특히 초육, 구삼, 육사, 상육 네 개의 효사에는 모두 가고 옴, 즉 왕래(往來)가 등장한다. 네 개의 효사에 나오는 왕래는 “가면 어렵고, 오면 ~하다”처럼 (if)조건문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오다’의 래(來)자는 산을 뜻하는 간(艮)괘의 성질인 ‘멈추다’ ‘그치다’로 해석한다.

 

初六 往蹇 來譽(초육은 가면 어렵고, 그치면 명예롭다)

六二 王臣蹇蹇 匪躬之故(육이는 왕의 신하가 어렵고 어려우니, (어려움이)자신의 탓은 아니다)
九三 往蹇 來反(구삼은 가면 어렵고 그치면 자신을 돌아본다)

六四 往蹇 來連(육사는 가면 어렵고 그치면 연대한다)

九五 大蹇 明來(구오는 크게 어려움에 벗이 올 것이다)

上六 往蹇 來碩 吉 利見大人(상육은 가면 어렵고 그치면 여유로워 길하리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

 

네 개의 효사가 “가면 어렵다”고 말하고 있고, 나머지 효사에도 ‘어려움’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주어진 상황이 어렵다는 것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각 효사의 뒷부분, ‘그치면 ~하다’이다. 수산건괘처럼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예는 다른 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뒷부분을 잘 살펴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열쇠가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멈춤의 지혜가 발휘된다.

 

초육을 제외한 모든 효가 바른 자리(正位)에 있다는 것 또한 수산건괘의 효에서 주목할 점이다. 각 효에는 각각 배정된 힘이 있는데, 1,3,5효의 자리에는 양이, 2,4,6효의 자리에는 음이 미리 할당되어 있다. 수산건괘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 음의 힘인데, 효의 배치상 그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초육도 바른 자리는 아니지만 양의 자리에 음이 왔고, 수산건괘의 때에 음의 힘을 써서 멈추니 오히려 좋은 결과(명예롭다)가 나온다.

 

구오의 효사는 수산건괘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이 보통의 어려움이 아니라 큰 어려움(大蹇)인 것을 짐작하게 한다. 나라나 공동체의 존망을 가르는 위기상황에서, 육이같은 유약한 음효(蹇蹇)는 구오의 큰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갈 힘이 없다. 그저 간신히 나가지 않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다. 한편 구삼은 ‘가면 어렵다’는 것을 아는 존재로서, 가는 것을 멈추고 하괘의 다른 효들과 편안하게 머문다. 이것이 ‘돌아본다(反)’는 의미이다.

 

내가 의미있게 본 효는 육사이다. 육사야말로 어려운 상황에서 나아가는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양의 힘이 아니라, 멈추는 지혜를 펴는 주인공이다. 육사는 바로 위의 구오와 친한 관계이므로 어려움에 처한 구오를 보필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효사는 (가지 말고)멈추라고, 멈춰서 연대하라(來連)고 한다. 육사는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힘이 미약하여 혼자의 힘으로 (왕에게)가는 것은 그 자신에게나 왕에게나 이롭지 않다. 대신 멈춰서 연대해야 한다. 이때 함께 연대할 대상은 구삼과 육이이다. 스스로 멈추고 돌아볼 줄 아닌 구삼과,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이 주어진 어려움을 감내하는 육이와 함께 구오를 찾아나설 때 비로소 군주에게 어려움을 뚫고 나갈 든든한 힘이 된다.

 

멈추고 해야 할 일, 지혜롭게 연대하기

얼마 전, 문탁네트워크의 <봄날의 살롱>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자연보호’나 ‘환경보호’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개념이며, 상황은 전지구적인 ‘기후위기’사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말로 가는줄 알면서도 여전히 탄소 발자국을 생산하는 작금의 세계야말로 수산건괘가 가리키는 ‘고난의 시대’와 다르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지구를 보지 못하고 여전히 경제발전에 대한 맹신, 발산하는 양에만 환호하는 이 상황을 뚫고 나가는 데는 바로 수산건괘의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해서 세계 각국의 기후위기 운동을 다룬 한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그 지혜가 어떤 방식으로 발휘되는지 보았다. 오스트리아의 시민들이 주인공이었다. 당시 새로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연대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지혜를 길어올렸다. 시민들은 새로 건설한 원전의 가동여부를 묻는 투표에 반대표를 던졌다. 새로운 원전은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고,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생생한 교육현장이 됐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숙의민주주의 통해 원전건설을 공론화 과정에 부쳤지만, 결론은 원전건설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을 원망하고 한심스러워했다. 그 때 우리가 발휘해야 했던 ‘멈추는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 한숨지을 필요는 없다. 음의 힘을 발견해내고, 그 힘들을 써보는 것, 성장담론에 쐐기를 박는 음들의 단결이 우리에게 앞으로 던져진 과제이다.

 

경제발전의 쳇바퀴로부터 내려와서 우리가 한 일은 삼삼오오 모여서 ‘기휘위기’를 경고하는 손팻말을 만드는 것이었다. 만든 손팻말을 가지고 우리는 광화문에 모였다. ‘924기후행진’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수산건괘의 육사효가 떠올랐다. 멈추고 서서 연대하는 사람들. 기후위기를 막는데 우리의 온갖 노력이 너무 미약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멈춰서 지혜를 경험하고 계속 배워나갈 따름이다. 더구나 광화문에 모인 많은 젊은이들은 ‘음의 움직임이 이렇게 밝고 즐겁고 활기찰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는 지금 부드러운 음의 역량을 보고 있고, 멈추는 지혜의 현장을 겪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내 주위의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멈춰서 “기후위기 멈춰!”를 외치는, 우리는 수산건괘의 육사들이다.

댓글 5
  • 2022-11-14 09:11

    멈추는게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라는걸 또 깨닫게 해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22-11-14 11:14

    멈춤의 미학이라니! 이 글을 읽고 멈춰 있는 이 순간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 2022-11-16 02:34

    수산건! 이젠 만나도 쫌 덜 두려울듯합니다~~~^^

  • 2022-12-02 00:28

    수산건괘에 대한 저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큼큼...

    초육은 사춘기 시작이니 어렵고, 놔두면 명예롭다.

    육이는 십이라, 시비걸기 어렵고 어려우니 그건 니 탓이 아니다.

    구삼은 이십칠이라 그치면 삼십 전에 자신을 돌아본다.

    육사는 이십사니 반올리기 어렵고 내리기를 고대한다.

    구오는 사십오라 어려보여도 반백이 올 것이다.

    상(삼)육은 십팔이라 말하기 어렵고 그치면 여유가 생기리니, 대화함에 이롭다.

    ---
    더 나가면 안 되겠지요? 멈춤의 지혜를 얻어갑니다.
    잘 읽었어요~~ㅎㅎ

    • 2022-12-02 15:27

      청량리! 너무 우껴요..ㅋ 그래도 라임 들어간 랩 쏟아내는 가운데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지혜를 얻어 간다니 기쁘군요.^^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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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27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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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조회 325
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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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11.12 | 조회 215
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봄날
2023.07.04 | 조회 285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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