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양생에세이①] 침범받을 용기

현민
2021-07-09 14:46
433

1. 정체화된 페미니즘의 현장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조금 더 나에 가깝게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의식적으로 작게 소리 냈고,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와 메갈을 동어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메갈로 오해받기 싫었다. 또, 페미니스트라면 PC(Political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하거나, 탈코르셋을 한 외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PC하기엔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었고, 매일 화장을 하며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그렇게 생각했다. PC하고, 모두가 숏컷하고 바지 입는, 혹은 메갈인 것.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온 친구가 나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아? 라고 말한 날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자신의 발언이 언피씨하다고 바로 정정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런 게 있었다. 페미니스트다운 것, ‘진짜 페미니스트’의 이미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서점에서 일하게 됐을 때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라는 책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 되기는 밥 먹듯이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이라영,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들어가는 말 중)

 

내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길 꺼린 가장 큰 이유는 탈코르셋이다. PC한 의견에 묻혀가는 건 비교적 쉬웠지만, 오랜 외적 구성을 바꾸는 건 누구나 그렇듯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치마를 좋아한다. 바지보다 품이 넓고 긴 치마가 좋다. 반짝이는 악세사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많은 여자 친구들이 숏컷으로 자르는 동안 긴머리를 고수했다. 마스크 덕분에 립스틱을 안 바르게 됐지만, 가끔 색 있는 립밤은 포기 못 한다. 탈 코르셋을 접한지는 오래됐어도 내 스타일에 대한 의심은 진행 중이다. 내가 치마나 귀걸이를 좋아하는 게, 진정 나로부터 시작된 일일까? 내가 사회적 여성성을 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타협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닌 게 아닐까?

 

우리는 쉽게 탈코르셋의 디폴트를 떠올릴 수 있다.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고, 간편한 옷을 입는 사람. 탈코르셋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정한 내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되지 못해 느끼는 부채감이 있다.

 

오랫동안 머리를 숏컷으로 잘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로서 ‘진짜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수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머리를 자르지 못했을 때 따라오는 부담감도 커졌다. 해방하자고 하는 탈코르셋이 이렇게 편협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도망치려던 곳은 사회의 고정관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혼란스러운 새로움 속에서 ‘정상’,‘정답’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건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만들어주니까. 그렇게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디폴트다. 우리가 새롭게 찾은 디폴트는 젠더 규범만큼이나, 혹은 그것보다 더 촘촘하게 폭력적이다. 이곳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사유방식을 찾아야 한다.

 

 

나는 삭발하고 원피스를 입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 도달하고 싶다. 탈코르셋을 해도, 탈코르셋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을 가지고 싶다. 사람들이 더 가볍고, 유쾌하게 탈코르셋을 언제든 하고 또 그만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계 안에서, 또는 밖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 ‘강요’와 ‘다양성’이 난무하는 현장

 

나는 고등학교를 통해 만난 친구들과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비슷한 깊이로 내향적이어서, 나는 그 사이에서 줄곧 외향적인 사람으로 대상화되곤 한다. 내가 이들과의 소통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을 때는 회의를 할 때다. 우리는 회의에 많이 의존해서 그 시간에 많은 걸 함께 정한다. 보통 내가 회의를 진행하며, 내가 제일 말을 많이 하고, 내가 글로 정리하는 역할이게 된다.

 

그렇게 끝나면 다행이지만, 나는 이렇게 일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토로한다. 이 마음을 표현할 때면 그들은 더 말이 없어진다. 그러면 그들에게 불편한 티를 내면서도, 그들이 강요당한다고 느낄까봐 두려워진다. 나는 그 느낌을 알고 있다. 누군가 나를 침범하려고 하면 내 방어기제는 공격적으로 반응해 강요하지 말라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강요는 절대 하면 안 될 것으로 치부되고 있으니 그건 방패가 되기도 하지만, 내가 할 말이 있을 때 날카롭게 말을 막기도 한다.

 

다양성은 현세대를 이해할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너와 나는 달라’를 이해하는 건 한끝 차이다. 그 말을 사용할 때,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와 달라서 어쩔 수 없다’는 은근한 무기력감을 느낀다. ‘서로에게 강요하지 말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해’라는 말은 너무 타당하고 숭고하게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그 말을 쓸 때 진정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쉽게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느낀다. 특히 내가 페미니즘이나 비건을 할 때는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을 때도 강요하지 말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강요와 의견제시는 한끝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건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사람들이 어떨 때 강요하는 느낌을 받는지도 분석해봐야 할 일이지만, 사람들은 왜 강요하는 걸까? 그 기저에는 상대가 변화할 거라는 기대, 그에 대한 애정이 있다. 나는 그 애정을 상대에게 개입할 용기로 해석하고 싶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요하지 말라면서, 우리는 다르다면서 타인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는 건 아닌가? 우리가 그 용기를 잃게 된다면 무엇이 남을까? 이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상대가 내 말을 강요로 느낀다고 하면 나는 재빠르게 쫄아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늪에 빠져 서로에게 개입할 수 없어진다면 그건 서로를 이해할 여지를, 그러기 위해 기꺼이 싸워볼 힘을 잃게 된다. 정체되지 않으려면 서로를 침범할 여지가 필요하다.

 

우리는 차이를 일탈이나 종속된 형태의 존재로서가 아니라, 차이들을 긍정성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차이들 속에서 새로운 종류의 집단성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로지 브라이도티, 『유목적 주체』 167쪽)

 

 

 

 

3.균열을 맞이하세요

 

이 에세이를 통틀어 나는 나의 것에 균열을 낼 용기, 침범받을 용기를 가질 것을 제안한다. 위에 제시된 문제들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일이다. 페미니즘을 접하지 못해 편협한 시각을 가진 게 아니었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화 이후에도 삶 속에서 편협함은 계속 발휘되어왔다. 우리는 새로운 사유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내 말로만 가득 찬 내 안에 타인의 여지를 두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탈 영토화는 우리가 기반하여 살아온 영토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버틀러는 자신이 속한 영토를 유유히 떠난다. 버틀러의 시선은 내가 고유하다고 생각한 생물학적 성별을 해체하고, 그저 즐기기만 한 드랙이나 트랜스젠더 문화를 사회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으로 바라본다. 버틀러는 태어났을 때부터 본디 창의적이고 급진적인 사람이었던 걸까? 버틀러가 난 놈이라 이런 대단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버틀러는 소수자로서 배제당한 삶의 폭력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소수성은 세상을 탈 자연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도는 굵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나는 내 정체성의 몇몇 부분을 이런 긍정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남자가 아니어서 받는 차별은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침범받을 용기는 어디서 오나? 침범받는 일에 익숙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침범받기가 시작되어야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바도 분명해질 수 있다. 그때가 되면 나는 내가 줄곧 부정적으로 받아들인 타인의 행동들이, 내 취약성이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균열이 난 곳에 계속 집을 짓고 있다. 내가 꾸민 집을 탈출하거나, 무너뜨리는 일은 너무 어렵다. 그리고 이 결론은 이미 어디선가 보아온, 시원찮은 열린 결말의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균열 속에서 계속 집을 짓게 되듯이, 우리의 깨어진 사고가 정답을 찾아가는 것으로부터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이 시대 페미니즘과 우리의 지속가능성이 될 것이다.

 

 

 

http://moontaknet.com/?page_id=5254&mod=document&uid=33691

댓글 4
  • 2021-07-09 22:18

    나의 것에 균열을 내려면 바깥에서 부딪쳐 오는 것들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니,

    침범받을 용기야말로 자기변용을 가능하게 하는, 참으로 능동적인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침범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침범받을 용기를 말하는 발상의 전환이 멋진 것 같아요.^^

     

     

    • 2021-07-12 11:45

       ^ㅅ^ 너무 감사합니다...ㅎㅎㅎ

  • 2021-07-10 09:46

    어제 현민과 친구들이 파지사유에 놀러왔다! 청년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만 봐도 입이 째진다~ 우리 가끔 같이 놉시다~

    • 2021-07-12 11:46

      그럼요 ~~ 쌤들 매번 환대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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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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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2021.12.06 | 조회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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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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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2021.12.06 | 조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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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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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2021.12.06 | 조회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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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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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 조회 325
논어 카메오 열전
자산은 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논어』 「헌문」10   타이완 작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탕누어는 잘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子産/?~기원전522)’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산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출신으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재상 중에 하나였다. 『춘추좌전』을 읽어보면 실제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뭐 이렇게 보면 탕누어가 이 책에서 자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자산의 행적은 이후 『사기(史記)』에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추좌전』 이후에 서서히 잊혀 진 자산이 탕누어에 의해 다시 불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산이 했던 일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형서(刑書) 주조와 관련해 그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겼던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僑不才 不能及子孫 吾以救世也)”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이다. 자산을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나라 자산이라는 뜻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이름은 교(僑)이며 공손교(公孫僑)라 칭한다. 호칭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나라 목공의 손자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다.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周)나라와의 돈독한 관계로 춘추시대 초기에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사이가 멀어지고, 진(晉)이나 제(齊), 초(楚) 등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내정이 불안정했던 것도 큰...
자산은 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논어』 「헌문」10   타이완 작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탕누어는 잘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子産/?~기원전522)’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산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출신으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재상 중에 하나였다. 『춘추좌전』을 읽어보면 실제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뭐 이렇게 보면 탕누어가 이 책에서 자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자산의 행적은 이후 『사기(史記)』에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추좌전』 이후에 서서히 잊혀 진 자산이 탕누어에 의해 다시 불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산이 했던 일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형서(刑書) 주조와 관련해 그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겼던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僑不才 不能及子孫 吾以救世也)”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이다. 자산을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나라 자산이라는 뜻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이름은 교(僑)이며 공손교(公孫僑)라 칭한다. 호칭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나라 목공의 손자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다.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周)나라와의 돈독한 관계로 춘추시대 초기에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사이가 멀어지고, 진(晉)이나 제(齊), 초(楚) 등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내정이 불안정했던 것도 큰...
진달래
2021.11.24 | 조회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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