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나는 조금 독특한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장애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천재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그런 아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예민하고, 울음을 달고 사는, 그리고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돌 지나고부터는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저기 검사도 많이 받았다. 검사 결과는 지능 상위 1%, 사회성 하위 1%.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몇 년 동안 좋아하는 터라, 지금은 유니코드 문자표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생각난 듯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에스페란토라는 문자를 아세요? 인공어 중에 하난데요. 제이 위에 이런 삿갓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매일 이런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모든 게 괴상하게 그려놓은 꼬부랑 글씨 같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 사실 나도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보니, 학교든 학원이든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보편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왜 온종일 이상한 세계 여러 나라 문자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똥을 누는 것 같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아이 ‘되기’는 가능하기나 할까. 흰 눈 잉꼬 같은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결국엔 아이...
나는 조금 독특한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장애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천재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그런 아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예민하고, 울음을 달고 사는, 그리고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돌 지나고부터는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저기 검사도 많이 받았다. 검사 결과는 지능 상위 1%, 사회성 하위 1%.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몇 년 동안 좋아하는 터라, 지금은 유니코드 문자표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생각난 듯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에스페란토라는 문자를 아세요? 인공어 중에 하난데요. 제이 위에 이런 삿갓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매일 이런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모든 게 괴상하게 그려놓은 꼬부랑 글씨 같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 사실 나도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보니, 학교든 학원이든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보편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왜 온종일 이상한 세계 여러 나라 문자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똥을 누는 것 같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아이 ‘되기’는 가능하기나 할까. 흰 눈 잉꼬 같은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결국엔 아이...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