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글쓰기3]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김현지
2021-12-06 09:48
355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는 다 큰 딸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엄마의 표정을.

 

“엄마는 그렇게 욕하고 성질부리는 남편을 또 만나고 싶어?”

 

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담긴 농담을 던졌다. 그런 내 공격을 막아 세운 건 엄마였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까불지 말라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또박또박 내뱉은 한 마디. 엄마의 날 선 목소리에 나는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말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아버지를 향해 들끓던 분노를 잠재웠다. 엄마는 죽기 직전 온 마음을 담아 아버지를 방어했고, 그 방어 덕에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가능성이 생겼다.

 

 

사랑은 방법까지 사랑이어야 했다

 

내게 아버지는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울적한 딸의 마음을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바닥까지 가라앉은 날이면 아버지는 내게 “업어줄까?” 하고 물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한참을 있으면 내 가슴으로 아버지의 온기가 전달됐다. 그 따뜻함에 의지해 별로였던 하루를 그럭저럭 괜찮은 날로 마무리하곤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예측을 벗어난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던 아니 할 수 없었던 23살의 어느 날, 휴학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했다. 힘들어서 쉰다는 건 아버지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거실에 꿇어앉히고 내가 누리고 있는 호사를 하나하나 나열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이 감당하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아냐며 노기 어린 얼굴로 서운함을 표현했다.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던 나는 내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26살.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문구를 보았고, 아버지는 교사가 된 나를 껴안고 울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이 거북했다. 그 눈물이 나를 위한 눈물일 리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스무 살쯤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거라 해석했다. 아버지를 향한 양극단의 감정을 껴안고 사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설픈 해석술이라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이해받고 싶었던 순간에 외면당했던 기억은 묵혀놓았던 화를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사랑은 방법까지도 사랑이어야 했다. 돈을 벌고 나서부터 아버지를 더욱더 멀리했다. 앞으로는 아버지 때문에 어떤 것도 소모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게 내가 선택한 복수의 방식이었다. 엄마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즈음 아버지를 향한 내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엄마를 병들게 했다고 확신했다.

 

엄마는 왜 삶의 끝에서 아버지와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을 한 걸까. 엄마는 어떻게 아버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나도 생의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어질까.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이 올 때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좋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게 됐다

 

엄마가 죽고 나서 한 달 뒤 결혼을 앞둔 언니가 새 가정으로 터를 옮겼다. 언니가 집을 나가던 날 아버지는 언니를 배웅하며 꼭 안아주었다. 아버지와 언니 모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하지만 둘 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부러 씩씩하게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짧은 시간에 애사와 경사를 치른 집은 더없이 고요했다. 평생을 들어왔던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소리로 사람의 빈자리를 느꼈고, 외로웠다. 겨울방학이라 일터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즈음 나는 아버지와 자주 시간을 보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탓일까.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누그러진 탓일까. 그와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전 아버지와 함께 엄마와 오르내리던 산에 갔다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함께 저녁을 먹는 일과가 한동안 지속됐다. 보내는 시간의 양에 비례해 나누는 대화의 밀도도 높아졌다.

 

함께 산길을 오르던 어느 하루, 과묵하기로 유명한 엄마가 자기 앞에서는 수다쟁이였다고 자랑처럼 말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엄마는 바보라고. 아버지가 괴롭혔던 시간은 다 까먹었나보다고. 그 수모를 당하고도 아버지를 또 만나고 싶어 한다고. 죽기 전 나를 향해 쏘아붙이던 엄마의 모습은 아버지에게도 뜻밖이었는지 아버지는 그날의 기억을 여러 날에 걸쳐 곱씹어 말했다. 같은 말의 변주를 듣는 과정에서 나는 아버지가 꽤 오랜 시간 엄마에게 미안함을 표현했음을 알게 됐다.

 

아버지의 말에는 내가 모르는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서로의 속내를 말하며 엄마와 아버지는 하루를 끝맺곤 했다. 어떤 날에는 각자의 서러웠던 세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엄마를 서글프게 한 날들이 후회스러워 아버지는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사랑이란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부부에겐 생겼다. 엄마가 죽고 나서 아버지는 여전히 침대의 한 옆을 비워둔다 했다. 엄마가 옆에 누워 있는 것 같아 침대 한가운데에선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 이제 아버지의 하루 끝은 잠들기 전 손으로 쓰윽 침대의 빈자리를 훑는 일이 됐다. 그해 겨울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오고 갔을 수많은 이야기와 홀로 된 아버지의 마음결을 상상하며. 나는 예전처럼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결혼을 했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함부로 화를 분출하지 않으며, 쉽게 자신의 삶을 연민하지 않는 남자와. 그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공간에는 긴장과 불안이 없었다. 갈등이 발생해도 우리 사이에는 큰 목소리가 오고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 마음에 들었다. 반면 아버지는 더 외로워졌다. 종알종알 말동무해주던 딸의 부재는 아버지에게 커다란 상실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딸과 통화하기를 원했고, 외로움을 알아보는 딸에게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해 하소연했다. 넓은 집의 적막이 얼마나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전화 너머 홀로 있을 아버지가 애잔했다. 독립을 해서도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나를 찾는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 우울에 빠진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드는 죄책감.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두 감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통화 끝에 한결 개운해진 목소리로 막내딸이 최고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볼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엄마가 우리를 떠나기 시작한 계절의 기억은 아버지를 괴롭혔다. 전보다 더 애절해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약해져버린 아버지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어 짐짓 담담한 척했지만, 내게도 가을은 힘든 계절이었다. 엄마가 죽은 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내 몸은 자주 까라졌다. 직장에서 슬픔을 티내지 않으려 애쓰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울음이 터져버릴 때가 허다했다. 그런 날들을 며칠 보내고 나면 꼭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몸이 힘들어도 나를 찾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식과 부모의 이별보다 더 힘든 게 부부의 이별이라던데…. 나는 내 고통보다 아버지의 고통이 더 마음에 쓰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슬픔까지 감당할 만큼 그릇이 크지 못했다. 내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을 호소하기에 바쁜 아버지를 견디기 힘든 날에는 ‘당신이 내 아버지인 게 너무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뱉는 순간 진실이 아닐 말로 아버지에게 상처를 줄 만큼 나는 아버지가 싫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에 대한 연민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여느 날과 달랐다.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도저히 괜찮은 척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울며 말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슬퍼하면 나는 너무 슬퍼져서 하루를 잘 버틸 수가 없다고. 나는 아버지가 슬프다는 말을 듣는 게 정말 힘들다고. 평소와 다른 딸의 목소리를 듣고 전화 너머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크게 울었다. 아버지는 정말 몰랐다고 했다. 자신의 슬픔이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그날 이후 아버지는 조금 달라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안부를 먼저 묻는 일이 늘어났고, 내가 먼저 전화를 걸기 전까지 나를 찾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내 한계를 표현하고 나서부터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겼다. 안전거리 안에서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고통에 마음 쓰는 착한 딸인 동시에 아버지의 고통까지 감당하려 했던 건방진 딸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아내를 잃은 나이 든 남자’의 자리에 아버지를 위치시켜 놓은 게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걸. 이번 생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려면 아버지를 나보다 약한 존재로 바라본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여전히 내 아버지는 아내 혹은 딸이 자신의 마음을 살펴주길 바라는 20세기의 남자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댓글 3
  • 2021-12-06 22:21

    저도 언젠가 일찍 돌아가신 아부지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어요. 갈등이고 화해고 뭐도 없었던 것 같아서요.

  • 2021-12-06 22:43

    이 글 읽으면서 작년 이맘때 정신줄을 놓은 어머니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자 끈떨어진 연처럼 불안해하며 폭주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꺼내기 쉽지 않았을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놓을 수 있다니.. 글쓴이의 힘이 느껴집니다.

  • 2021-12-13 12:04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새삼스럽게 나서 눈가에 눈물이 촉촉....격한 감정인데 글에서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가라앉혀주는 힘이 있네요. 저도 그날 이후 매일(사실 잘 안되긴 하는데...) 남아있는 엄마에게 전화하고 있습니다. 현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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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1.12.07 | 조회 45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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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2021.12.06 | 조회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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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2021.12.06 | 조회 35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정진우
2021.12.06 | 조회 23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인디언
2021.12.06 | 조회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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