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글쓰기1] 선물이 아니라면......?

인디언
2021-12-06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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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걸리면서 처음 같이 했던 사람들 몇 몇이 떠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집이 완성되고 우리가 다니기 시작한 건 4년 넘어 5년째 되는 것 같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우리는 이십여 가구가 모여 살면서 공동 식당에서 같이 밥해 먹고, 대청마루에 모여 세미나를 하고, 공동작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아랫동네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사업을 하면서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 이사와 사는 가구는 세집뿐 이고, 우리 포함 나머지는 아직도 수도권에 살며 이곳은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이는 온갖 꽃들을 가꾸며 주중의 피로를 잊고, 아니 잊으려 하고(그녀가 정원을 가꾸는 걸 보면 사실은 더 피곤해질 것 같다), 또 어떤 사람은 좀 길게 머물며 그림을 그리는 작업장처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주말에 와서 쉬고 간다. 각자 살면서 기회가 되면 가볍게 음식을 주고받고, 꽃모종이나 채소 씨앗을 나누는 정도의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길고양이들만 함께 키우며... 공터로 남아있는 마을회관 자리에 과연 마을회관은 지을 수 있으려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처음 집터를 닦을 때 꿈꾸었던 노년의 마을살이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 접고 있다. 사람들 구성도 많이 달라졌고 마을이나 공동체에 대한 생각의 폭도 많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을살이만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아니다. 남편이 은퇴한 올해 우리는 평창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우리가 평창에서 살게 되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은퇴할 날만을 기다렸건만, 은퇴하고 나니 코로나가 찾아왔고, 엄마가 집으로 오셨고, 아들부부까지 들어오면서 계획은 틀어졌다. 우리는 여전히 고기동에서 살고 평창은 별장처럼 되었다. 평창에서 뭘 하고 살지 고민하던 남편은 요즘 생각이 바뀌고 있다. 꼭 평창에서 살아야 할까? 우리가 꿈꾸던 마을살이가 어렵다면 오히려 여기 문탁이나 파지사유를 중심으로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은퇴하고 공부하러 다니면서 그동안 주변만 맴돌던 태도가 바뀌는 것 같아 반갑다. 하긴 평창에 살고 싶다고 해도 한동안 우리는 평창에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평창집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

 

 

 

 

집을 선물하자

 

언제부턴가 집이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 되면서 부모 형제라도 마음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되는 곳이 되었다. 나도 남의 집에 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우리집에 오지 않는다. 혹 남의 집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들어오세요.’라는 말은 듣기 쉽지 않다. 그냥 현관 앞에서 볼일 보고 돌아온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쉬는 공간이다. 집에서라도 편하게 쉴 수 없다면 너무나 사는 것이 힘들 것이다. 실제로 그런 공간이 없어서 힘든 사람들도 많다. 내 집, 나만의 방, 뭔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내밀함을 가진 곳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집에 누군가를 들여놓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평창집은 담도 없고 대문도 없이 열린 형태로 되어 있어 쉽게 남의 집을 들락거릴 수 있다. 마을 전체를 그렇게 설계했다. 가운데 길을 두고 양쪽으로 집을 지었는데, 각자의 집터에 앞뒤로 집을 두어서 마주보는 마당을 넓게 하였다. 우리집은 설계부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는 걸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우리가 있어도 다른 사람이 쓸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두고 화장실도 방마다 배치했다. 데크는 10명 이상이 와도 될 만큼 넓게 만들고, 보일러 말고 전기온수기도 설치해서 따뜻한 물이 모자라지 않게 하고...... 집을 짓고 나서도 창문마다 문 열리고 닫히는 표시를 붙여놓고, 황토방 불 때는 법, 분리수거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곳 등등 집 사용 매뉴얼 같은 것도 만들어두었다. 어쩌다 보니 전등을 좀 복잡한 시스템으로 설치하게 되었는데(직접 개발한 선배가 선물로 해주었다.) 사람들이 전등 켜고 끄는 걸 힘들어 해서 괜히 그걸로 했다고 몇 번이나 후회했다. 침구도 넉넉히 갖다 놓고 수건도 서랍에 가득 채워두었다.

 

사람들이 평창집에 오면 대부분 ‘와, 좋다!’라고 감탄한다. 풍경도 좋고 공기도 좋고 마냥 편안해진다고. ‘그럼 와서 쉬었다 가.’라고 하면 일단 놀란다. 우리가 있을 때는 괜찮지만 주인도 없는데 남의 집을 어떻게 쓰냐는 것이다. 괜찮다고, 원래 그렇게 쓰려고 생각하고 지은 집이라고, 비어있는 집이니 써도 된다고 열심히 설명을 하면, ‘그래도 되느냐’며 조심스럽게 ‘한번 와볼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평창집에서 쉬고 간 사람들은 다양하다. 알고 지내는 여행 작가가 폐암 말기인 엄마와 항암치료 대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갔다. 그녀는 2년 전에도 책을 쓰느라 일주일간 머물렀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차도 마시며, 글을 써야하는 긴장 속에서도 마냥 행복해했고 그를 보는 나도 마음이 환했었다. 이번에는 추석연휴에 다녀갔는데 딸은 딸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그 식구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려왔다. 무릎담요를 덮고 긴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먼 산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평안해 보이는 미소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 사진은 아마 내 마음속에서 한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지난 여름에는 식구가 6명인 남편친구네가 코로나 때문에 인원제한으로 예약한 호텔에 갈 수 없게 되어 평창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딸이 키우는 강아지를 데려가도 되느냐고 무척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처음으로 강아지 데리고 간 여행이 너무 행복했다고 그 집 딸이 직접 감사인사를 했다.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언니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분은 남편, 아이들과 4식구가 왔었는데 집을 정말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휴지와 쓰레기봉투를 사놓고 갔다. 기분이 너무 상쾌했고,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친구가 일주일간 혼자 머물며 대관령음악제를 충분히 즐겼다고 좋아했고, 아이와의 갈등으로 너무 힘들다던 후배가 다녀 간 후 아이와의 관계가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입은 웃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아, 나는 집에서 쉬고 가는 사람들의 그 마음들을 함께 느끼고 싶은 것일까? 그로 인해 내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을 즐기는 걸까? 돈을 받지 않고 선물했기 때문에 그런 즐거움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냥 빈 집을 쓰게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정말 큰 선물을 받는 기쁨을 누린 것을 알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평창집을 쓰는 사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싶어 한다. 그냥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전기도, 물도 쓰고 불 때는 나무도 사야하고 집 관리도 해야 하니 비용을 내는 게 맞다고. 엄밀히 따지면 그럴 수도 있지만 난 집 사용료를 받는 것이 불편하다. 우리집은 펜션도 아니고 그냥 빈 집을 제공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쉬다 가고 즐겁고 행복하면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데, 빈 공간을 선물하고 그런 좋은 마음을 선물 받으면 되는데... 그냥 기쁘게 선물로 받아주면 안되나?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쓰는 것은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기는 힘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상품권을 두고 가기도 하고, 택배로 선물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사용료를 내면 부담 없이 쓰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못 쓰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정 그러면 조금 내보라’고도 해보았다. 오히려 편하게 잘 쓰는 걸 보니 무작정 내 마음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선물이 아니라면 무엇이면 좋을까?

 

 

공유 별장 사용설명서

 

평창집 다용도실에는 물건들이 많다. 쌀 봉투도 자잘하게 여러 개가 있고, 이런 저런 라면들, 햇반, 참치캔, 맥주와 소주, 안주와 과자들...... 냉장고에는 장아찌, 신 김치도 있고, 냉동고에는 아이스크림도 있다. 평창집에 다녀간 사람들이 가져와서 먹고 남은 것들, 또 누군가 와서 쓰겠지 생각하고 두고 간 것들이다. 그렇게 물건들은 순환되고 있고, 다용도실과 냉장고는 이미 나만의 것이 아닌, 공유 창고가 되고 있다.

우리가 가서 살지 않는다면 평창집은 계속 별장처럼 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별장이 아닌 우리들의 별장, 공유 별장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집주인인 내가 선심 쓰듯 집을 내주는 일방적인 형태가 아닌 서로 공유하는 공간으로. 그러려면 집에 오는 사람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생각하고 부담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공유한다면 쓰는 사람이 모두 책임과 의무를 나누어야겠지? 근데 아무래도 주로 쓰는 사람은 우리니까 많은 부분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관리는 우리 몫이겠다. 비용을 생각해보자. 전기는 태양광이 있으니 기본요금 정도밖에 안 나온다. 물도 지하수를 쓰니 모터 전기요금 정도다. 상대적으로 많이 쓰는 비용은 난방비용이다. 기름보일러용 등유, 황토방 장작. 기름은 우리가 채워두고 장작은 함께 쓰는 사람들이 나눠 감당하는 것도 괜찮겠다. 누구는 비용을 내고 누구는 장작을 패고... 장작 패는 방법은 가마솥이 알려주겠지. 사실 이렇게 해도 그 비용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가 없다. 누가 얼마나 쓸지도 모르니까. 이런 접근 자체가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이렇게 해봐야겠다. 상자를 두 개 만들어둔다. 하나는 연대기금용, 하나는 길위기금용. 문탁네트워크에서 연대활동을 위해 쓰는 기금과 청년활동을 위해 쓰는 기금이다. 코로나 때문에 활동이 좀 뜸해지긴 했지만 요즘 길위기금 모금이 진행되는 걸 보면 뭔가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공유 별장을 사용한 후 기금을 내는 방식. 사용 비용도 공유하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다. 노트를 하나 만들어 어느 정도 기금이 전달되었는지 기록해두면 좋겠지. 황토방 장작은 이렇게 하면 어떨까? 힘이 되는 사람은 장작을 패고, 장작패기가 힘든 이들은 가까운 숲길 산책을 하면서 나뭇가지들을 한 자루씩 모아온다. 황토방 불쏘시개용으로. 내가 해봤는데 이건 누구라도 할만하다. 그리고 공유 별장에 필요한 소모품 채워 두기. 아마 지금은 세탁세제가 떨어져 갈 것이다. 다음에 가는 사람은 세탁세제를 채워두면 좋겠다. 물론 사용 후 청소나 정리는 기본이다. 함께 쓰려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다. 어떻게 들어오는지 모르지만 들어와 죽어있는 벌레 외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아,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도 있다. 사용 후기 같은 것 말이다. 세미나 후기를 쓰듯 여기서 보낸 시간 속에서 느끼고 생각한 무언가를 남겨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삶이 주는 기쁨, 슬픔, 외로움...... 무언가 깨달음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거나 풀거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떤 이야기들을 남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이렇게 스토리를 쌓아가다 보면 공유 별장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을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하나 갖다 둘까? 사진 한 장 씩 찍어서 작은 메모와 함께 남겨두면 그것도 좋을 것 같다. 평창집 거실은 비어있는 높은 벽이 있으니 그곳에 사진들을 붙여 놓으면 재밌겠다. 일 년에 한 번 씩 콘테스트 같은 걸 해볼까?

 

 

 

최근에 평창집에서 글쓰기클래스 멤버들과 일박이일 워크숍을 했다. 글은 거의 개요 수준이어서 심도 있는 합평을 할 수는 없었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일주일에 2-3시간 만나는 것과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일단 시간에 쫒기지 않고 몸이 편안해지니 마음도 더 열리는 것 같다. 여행지라기보다는 그냥 집이었기 때문에 맘 편히 술도 마시고, 그러다보니 그동안 보지 못한 다른 측면도 볼 수 있어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진 것도 같다. 문탁네트워크 워크숍도 했다. 2주에 한 번씩 살림회의를 하지만 두 시간 남짓으로는 깊이 있게 논의하기가 어렵다. 시간에 쫒기지 않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의 상태도 더 잘 알게 되고 안 풀리던 것도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난 개인적으로 내년에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나갈지 좋은 팁도 얻었다. 글쓰기 클래스에서 얻은 힘으로 내년에는 글쓰기를 시작해 볼 생각이다. 공유 별장이 워크숍 명소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두 시간 정도의 멀지 않은 거리에 이런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가능했던 일이다. 마을살이의 계획은 어긋났지만 공유 별장으로 또 다른 형태의 함께 살기가 가능하다면,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 더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것을 공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갇히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노년의 삶을 더 넓게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나는 참 좋다! 아, 집 이름을 공휴재(共休齋)로 해볼까?

 

댓글 3
  • 2021-12-06 22:25

    인디언샘과 알고 지낸 기간은 길지만, 올해처럼 1년 꼬박 같이 보내긴 처음이네요~그래서 새삼스러웠던 시간이에요^^

  • 2021-12-07 14:33

    인디언샘의 나이가 되었을 때 저도 샘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생 선배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 2021-12-17 10:38

    뒤늦게 인뎐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양생팀 평창 워크숍에서의 기억이 떠올라ᆢ

     

    아 ᆢ 샘은 드뎌 평창집을 이렇게 풀어내셨구나,  이런사연과 이런고민들이 있으셨구나ᆢ

    넘 잘 읽었어요 ~~~

     

    그리고 공휴재로의  초대!  멋지심 ㅎㅎ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청량리
2021.12.07 | 조회 45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지연
2021.12.06 | 조회 40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김현지
2021.12.06 | 조회 35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정진우
2021.12.06 | 조회 23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인디언
2021.12.06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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