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 흥? 망? 성? 쇠? (<아젠다> 17호/ 2021년10월 / IN&OUT)

고은
2021-11-25 17:53
329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툴’로 이야기를 나눴다. ‘피자 툴’은 처음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바탕으로 방향성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의 툴이다. 4년 차인 길드다는 지난 활동을 토대로 기대와 방향성을 정리해갔다. 그간 활동을 표로 만들어 ‘가장 좋았던 활동 3개와 그 이유’, ‘가장 좋지 않았던 활동 3개와 그 이유’를 붙이고, 함께 해보고 싶은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도 정리했다. 약 두 달간의 논의 끝에 우리의 ‘피자’를 완성했다. 우리는 스타트업도, 사회적기업도 아니었다.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관계와 역량을 중시하는 팀, 즉 인문학 공부와 활동을 통해 우리가 함께 성장해가는 팀이 길드다였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지난 4년간의 길드다가 말해주었다.

 

 

▲ '피자 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길드다

 

 

 

 

 

2. 이건 마치 비학술적 학술제

 

   ‘피자 툴’의 가장 안쪽, 그러니까 팀의 핵심이 되는 목적purpose에는 ‘지속 가능’이라는 쪽지가 붙었다. 솔직히 말하면, 의외였다. 나는 개편회의를 하며 길드다를 그만하자는 결정을 내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길드다의 4년이 본인에게 의미가 있었다고, 공부가 되었다고, 그래서 이것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재정위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이제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이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생긴 듯했다. 계속하고 싶지만 왜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선 우리의 ‘피자 툴’을 사용해 개편 회의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 길드다의 피자 툴 결과

 

   ‘지속 가능’이라는 목적을 설정되기는 했지만, ‘피자 툴’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공통감각과 비슷한 정도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양의 차이를 확인했다. 길드다 멤버가 얼마나 함께 일상을 보낼 것인가 하는 논의를 할 때도 그랬다.

 

   함께 한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야 시너지가 생긴다는 것이 나와 우현의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엔 둘이서만 공간을 채우고 싶지 않고, 또 그럼으로써 길드다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일들을 나눠맡고 싶다는 의미도 있었다. 지원은 일 때문에 더 나오기가 어렵다고 했고, 명식은 길드다와 자신의 삶을 전부 일치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때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였던 건 나와 명식이었다. 나는 공동체의 강한 결속력을 원했고, 명식은 가장 느슨한 방식의 연결을 원했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명식이 길드다와 분리하고 싶어했던 것이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작년부터 길드다 활동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글들이었다. 이 글을 위해 진행한 개별 멤버 인터뷰에서 명식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명식 : 나는 투-트랙으로 가고 싶다. 지금 개인적으로 쓰고 있는 글들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수입도 있고, 사람들의 평가도 좋았기 때문에 해보면 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최근 좀 더 다양한 형태의 글들에 흥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인지, 이전에 명식이 일상과 길드다 사이에 선을 그은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급격히 명식의 작업에 호의적이게 되었다. (‘어쩌면 명식이 이 일들을 잘 조절하며 건강한 일상 루틴을 만드는 것이 관건 아닐까?’) 그러자 가장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사람이 나와 명식에서 지원과 명식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원이 명식의 작업에 반대한 건 아니다. 다만 지원은 자신의 목공 작업과 길드다를 더 깊게 엮고 싶어 했다. 언젠가 지금 하고있는 일을 길드다에서도 할 수 있었으면, 길드다에서 하고있는 일을 지금 목공 작업하는 것처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인터뷰에서 지원은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원 : 언젠가 새것을 계속 만들고 버리는 방식의 작업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경제 관념이 어떤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그것을 바꾸는 것도 내겐 어려운 일이다.

 

   ‘피자 툴’로 이야기를 나누던 몇 개월 동안 여러 영역에서 의견은 명확하게 갈렸고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각자 특이성이 너무 커서 옆 사람 중 그 누구도 아군이나 적군으로 삼을 수가 없었다. 오직 4개의 상황과 4개의 의견만 있을 뿐이었다. 마치 청년 네트워킹 <비학술적 학술제>와 같았다. 각 개인이 곧 <비학술적 학술제>의 한 단체였다.

 

 

 

 

 

 

3. 바쁘지만 활력은 없는 아이러니

 

   그러나 ‘피자 툴’이 끝나고 이야기는 더 진척되지 않았다. 모두 바쁘다고 했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향해 가는 올해 연말에도 우리는 비학술적 학술제를 준비하고, 도서관협회의 강의 영상을 제작했다. 게다가 명식은 상을 치렀고 지원은 인테리어 작업이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다시 난감해졌다. 나는 <아젠다>에 실릴 이 글을 쓰며 멈춘 지점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바쁘다”라는 말에서부터 말이다. 바쁨이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길드다를 지칭하는 수식어가 되기 시작했던 건 길드다가 생긴 바로 직후부터였다. 1년 차 워크샵에서 명식은 공식 안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 2019년 길드다의 1년차 워크샵

 

명식 : 이처럼 빡빡한 스케줄은 … 홍보 과정에서 미흡함을 … 상호 피드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 일정이 지연되었다. 스케줄과는 별개로 단일 프로그램 내에서도 한 사람이 맡아야 할 몫이 너무나 많아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기 쉽다. (<2019 길드다 워크샵 자료집> 中)

 

   길드다에서 나는 “바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바쁘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러니까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여 현실을 소외시킴으로써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젠 모두의 입에 “바쁘다”는 말이 붙어버렸다. 바쁘다고 모든 상황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 문탁 선생님들에게 우리 안부를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신다고 했다. “○○이? ○○이 바뻐~” 하기로 했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밀리면 회의에선 이런 이야기가 오간다. “너무 바빠서요….” 바쁘다는 말 뒤엔 그렇다니 다음에, 그럼 어쩔 수 없지 같은 말로 대화가 급하게 마무리 된다. 얼핏 바쁜 것과 활력이 없다는 것은 상반되어 보인다. 그러나 바쁘다는 말이 모든 말의 끝마다 붙었던 것과 길드다 활력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별개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터뷰에서 우현은 이렇게 말했다.

 

우현 : 공간과 길드다라는 그룹의 활력이 많이 없다. 나는 이 공간에 매일 나와서 그런지, 그렇게 느낀다. 새로운 사람이 정말 없고 정체되어있는 느낌이다. 올해는 길드다 공간을 스튜디오화 했음에도 활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것으로부터 나의 개인적인 우울과 외로움이 오기도 한다.

 

   모두 자신이 바쁘다고 이야기하며 공간에 잘 나오지 않았고, 회의에선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따지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럼 같이 한번 생각해볼까?”라거나 “내가 도와줄게”라며 나서는 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이 큰 문제라고 느낀다. 어쩌면 “바쁘다”는 말 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각자의 입장을 조금씩 내려놓고 마음을 더 내지 않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혹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보다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하는 데 더 큰 힘을 쓰고 있는 건 아닐까? 문탁쌤은 인터뷰에서 최근 우리의 회의와 움직임이 더욱 형식적이게 되고 있다며, 관료주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문탁쌤 : 지금은 담당자만 애를 쓰고 일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자주 나와서 팀워크가 생기고, 싸우더라도 공동으로 일을 도모하며 기뻐하고, 그러면서 활동이 늘어야 한다. 나부터 즐겁게, 마음을 곡진히 써서 바로 내 옆 사람을 촉발시킬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못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에너지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4. 우현과 고은과 지원과 명식

 

   논의는 아직 진행중이고, 길드다가 흥-성할지 망-쇠할지 전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길드다 개편과정에 대한 글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까? 앞으로 잘해보자며 의지적으로 파이팅을 외치거나 조심하지 않으면 이지러질 것이라며 어림짐작하여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이 글 마지막에서 우리가 함께 할 때, 무엇을 즐겁게 잘할 수 있는지 써보고 싶다. 인터뷰는 네 사람과 진행했지만, 압도적으로 긴 시간이 걸린 건 우현과의 인터뷰였다. 우현은 거진 10살 차이가 나는 형 둘, 5살 차이가 나는 누나 하나와 함께 일하는 23살이다. 2년 차에 들어와 누구보다 빡세게 일을 배우고 공부를 하고 공간을 지키는 친구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있을, 그래서 때로는 자기 검열을 하고 때로는 답답함도 느낄, 덕분에 메타적으로 길드다를 바라보게 되었을 우현의 시선을 빌리기로 했다.

 

나 : 강한 특이성을 가진 우리 네 사람이 함께 할 때, 각자가 어떤 일을 가장 즐겁게 잘하는 것 같은가?

 

 

▲ 명식과 고은

 

   우현이 가장 대답하기 쉬워했던 이는 명식이었다. 그는 명식을 ‘답안지’같다고 말했다. 길드다 그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명식은 특히 우현이 글을 쓸 때 엉킨 생각을 푸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비교적 자기 시간이 확보되기를 바라는 명식이 길드다의 글을 본격적으로 담당한다면 여유시간을 가지면서 즐겁게 일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현이 가장 대답하기 어려워했던 이는 나다. (바로 앞에 있어서…?) 우현은 내가 자기 관점으로 현상이나 사람을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섬세하게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아서 문제를 제기한다고 했다. 명식과 나는 둘 다 문제 제기를 잘하는데, 명식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게 과속방지턱 역할을 하고 나는 놓친 부분을 짚어 변화를 촉발시키는 차이가 있댔다.

 

 

▲ 지원과 우현

 

   지원과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우현이 지원을 특출나다 느낄 때는 그만의 방식으로 절충안을 제시할 때다. 문제가 되는 지점에서 타협점을 제시하는 모습이 마치 타협가와 같다는 것이다. 유연하게 일할 때 즐거워하는 지원이 어떻게 하면 더 유의미하게 길드다의 상황을 조율해볼 수 있을까? 우현은 스스로를 ‘괴짜’라고 불렀다.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영감을 찾아내는 우현은 그것을 바로 아이디어로 전환 시키고, 즉흥적으로 실현시키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길드다에서 하라는 것을 하며 지내고 있단다. 자신은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우현이 길드다에서 더 통통 튀는 에너지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드다는 이런 우현이, 고은이, 지원이, 명식이 활동하는 단위의 이름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같은 일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곳은 각자 가지고 있는 맥락과 능력, 성향이 징하게 부딪히는 현장이었다. 그것을 조율해주던 문탁쌤이 결정구조에서 빠지면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서로의 특이성을 살리고 맞춰가며 리듬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최근 길드다의 팀워크와 활력에 의구심을 품은 것과 별개로, 즐겁게 리듬을 맞추던 때도 많았다. 흩날리던 쌀밥 같았던 4년 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우리가 어떤 결과로 향해 가더라도, 설령 길드다가 사라지더라도, 거기까지 함께 가는 과정이 모두에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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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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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1.12.07 | 조회 45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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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2021.12.06 | 조회 40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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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2021.12.06 | 조회 35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정진우
2021.12.06 | 조회 23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인디언
2021.12.06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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