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글쓰기2] 두 번째 일기장

정진우
2021-12-06 09:41
238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맞선 테이블에서 상대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속내를 감추려 부단히 노력하는 표정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든 내용을 멀쩡한 정신으로 토로하기 싫어 저녁에 소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다 말했다. 가슴속에 불만과 당신은 왜 그렇게 간장종지처럼 그릇이 작은지 그리고 꼰대 짓을 그렇게 하는지 왜 그렇게 가식적이고 이기적인지를 시끄러운 술집 안에서 차분히 다 이야기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안하다고 한다. 본인도 자기 성격이 지랄맞은지 잘 알고 있고 바꾸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만두려면 같이 그만두자고 한다. 이런 사람 앞에 앉아 있는 나는 또 다름 리듬을 타고 있었다. 12년 동안 누구보다도 같이한 시간이 많았던 사람으로서 안쓰러운 마음과 함께 과연 내 앞에 않아 있는 사람이 바뀌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다음날 아침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적인 업무가 또 시작되었고 몇 달이 흘렀다. 나의 눈치를 본다고 해야 하나, 나에 대한 조심성은 부쩍 늘었다. 그런데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하다. 학교 앞 구멍가게 아저씨가 초등학생들이 장난감 구경하는걸 보고 사지 않을 것 같아 먼지를 터는 척 하면서 아이들을 쫓아내는 인색한 사람이다. 반면, 선생님이 지나갈 땐 누구보다 공손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저씨가 테슬라, 스페이스X의 주인장 일론머스크처럼 꿈을 크게 가지고 가게를 내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직원들을 종용한다! 다시 리듬의 굴곡이 굵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은 바뀔 수 없는 존재인가? 수 없이 많은 직원들이 입사했고 그리고 마음에 응어리를 안고 퇴사했다. 나는 회사의 나쁜 체계와 습성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도 스스로 용인하면서 살아온 건가? 불만을 겉으로 표현했던 하지 않았던 퇴사한 모든 직원들은 나보다 훨씬 용감하고 현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멍청한 나는 아직까지 이 회사에 머물러 있다. 나오고 싶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오라고 하는 데도 있는데 좀처럼 마음이 동하질 않는다. 옮겨도 또 똑같은 일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다. 그런데… 그리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리고 뭘 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일과 책임감

 

회사와 나와 일은 한 몸이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린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를 읽으며 삼위일체로서의 삶을 나 자신에게 쇠뇌 시켜 왔다. 10여 년 전쯤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빨간 줄을 그어가며 중요한 내용을 되새겼던 책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걸 보니 꽤나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달 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 재출간되어 버젓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았다. ‘삼성이 10년간 신입사원들에게 추천한 단 한 권의 책! 오늘도 습관처럼 출근하는 당신에게 이나모리 가즈오가 알려주는 일의 의미, 일하는 방법’이라는 띠지를 두르고 있었다. 요즘 시대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나와 우리를 찾는 시대가 아니었던가? 나 같이 멍청한 누가 또 밑줄 그으며 읽을까 가슴 한쪽이 답답해져 오는 느낌이다.

 

어릴 적부터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에 피가 흘러도 사내대장부는 울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랐다. ‘여자가 어디…’라는 관념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듯이 ‘남자라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또한 견고하다. 초·중·고 12년의 학교생활은 열심히 해야 했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가야하고, 현역을 제대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를 낳고,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돈도 많이 벌고, 집도 사고, 부모님도 모시고, 자식들은 반듯하게 키워야 한다. 암묵적으로 의식된 사회적 체계 속에서 그저 사회의 속도와 시간표대로 그리고 인색한 아저씨가 만들어둔 그의 시간표에 나를 맞추어 왔다. 너무나 당연하듯 받아들이며 살아오다 내가 떠날 수도 있고 나도 버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족들 생각과 함께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회사와 일을 위해 이렇게 성실하게 살아온 것이 너무나 후회되는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한 몸이라고 착각했던 것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고 생각하니 그 자리에 헛헛함이 들어 왔던 것이다.

 

 

아내와 베리

 

일에 찌들어 힘들게 생활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첫 번째 버팀목이 있어 견뎌 왔다. 그리고 숨은 버팀목은 애완견 베리였다. 항상 퇴근이 늦은 나는 지친 몸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른다. 두세 번째 숫자를 누를 때쯤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와 마주친 순간 몸과 마음으로 나를 반겨준다. 『사람, 장소, 환대』를 읽으며 이야기했던 조건 없는 환대를 베리는 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하는 거라고 말한다. ‘베리’ 요 녀석은 항상 변함이 없다. 그런 마음을 배우고 싶다. 매번 일을 1순위에 두다 보니 가족은 점점 뒷전이 되어갔고, 당연히 집사람과의 다툼도 늘어만 갔다.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원망도 많이 했었다. 결국, 갈라서자는 이야기까지 나왔고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돌파해보려는 생각에 구청에서 운영하는 가정상담을 혼자서 3개월 정도 받기도 했다. 아내를 대하는 나의 말투와 행동을 돌아보고 그리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서 조금은 관계가 개선되는 듯하였으나,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던 중 베리가 우리의 관계로 들어왔다. 이 녀석이 나와 아내 사이에 허물지 못했던 벽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허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허문 자리에 꽃을 심고 있다. 은은한 향기가 나는 꽃을… 요즘은 가끔 농담도 한다. 평생 해야 할걸 일찍 다 해버려 지금은 싸우지 않는 거라고! 아내를 대할 때면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려 노력하기 보단 물속에 항아리를 담그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다 보니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베리는 지금 사장님과도 연결되어 있다. 기러기 아빠로 혼자 살면서 1년 정도 키우다 내가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처음 베리와 만났을 때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은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의 운명을 예감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하게 연결되어 있는 생태계의 순환인가? 한편으론 이런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온 것이 지금의 나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폐경기

 

이런 마음으로 겸목샘의 글쓰기 수업에 접속하게 되었다. 뭐라도 정리하고 싶었다. 계속 펼쳐 놓기만 한 인생을 산 것 같아서… 일리치약국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갱년기편 책처방 『중년 남성의 폐경기』를 우연히 보았다. 단어의 조합이 낯선 제목이었다. 남자도 폐경기가 있다고? 많이들 보지 않는 책인지 오프라인 서점에서 판매하는 곳이 없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며칠을 기다려 받았다. 미국에서 35년간 심리치료 전문가로 상담하며 연구했던 내용을 정리한 남성 폐경기에 관한 두 번째 책이었다.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 공허함과 나의 행동들이 책에 나와 있는 상담내용과 증상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나도 지금 폐경기를 보내고 있는 것인가? 단순히 여성들이 겪게 되는 과정쯤으로만 생각했었다. 남성의 폐경기는 폐정력기 또는 남성정지기로도 불리는데, 호르몬과 신체적 변화뿐만 아니라 심리적·사회적·성적·정신적 분야까지 다차원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 변화들은 심각성과 정도에서 개인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갱년기에 이른 모든 남성이 겪는 문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며 1910년대 까지만 해도 평균수명이 50세 전후였지만 지금은 80세,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면서 두 번째 봉우리가 우리 눈앞에 드러났다고 한다. 중년 남성의 폐경기는 첫 번째 봉우리에서 내려가야 한다는 그 두려움의 계곡이다.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열심히 읽었다. 북미문화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하고 저술한 책이라 그런지 호르몬 변화 및 신체의 노화에 따른 부부관계에 대한 상담내용이 많았다. 남성 폐경기를 통과하는 특정한 경로는 없다! 지금까지의 삶의 중심을 대부분 행위에 두었다면 후반부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내면으로 눈을 돌리라는 신호이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시작한 첫 번째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음 단계의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두 번째 일기장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을 가장 많이 해본 것 같다. 표현이 서툴고 어눌한 내 이야기를 진심어린 마음으로 들어주고, 궁금해 해준 딴짠 샘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잘 표현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그저 흐르는 물의 속도에 몸을 맡긴 채 물살을 만들지 않으려 그리고 내 몸에 돋는 가시를 감추려 노력했을 뿐이다. 어쩌면 글쓰기 첫 시간이 나의 이런 감정에 충실하고 표현하는 것을 억눌러 왔던 나에 대한 솔직한 대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조금은 알 거 같고 희미한 희망에 기대감도 살짝 든다. 표현하며 살겠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사실 지금까지 해온 일도 생각을 도면으로 표현하고 그리고 지어지는 것을 봐오며 때론 아쉬움과 때론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나의 첫 번째 일기장을 들추어 보며, 후회와 감사 그리고 아쉬움을 느꼈다. 페이지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약간의 두려움과 희망을 보았다. 단순히 에세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 번째 일기장의 거창한 서문으로 너무 멋진 글을 써버린 것 같아 가슴 어딘가의 헛헛함이 기대감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댓글 2
  • 2021-12-06 22:23

    <남성의 폐경기> 책 전시하며 누구 한 사람 눈길 주는 사람이 없어 헛헛했는데, 한 분은 계셨네요^^감사합니다~

  • 2021-12-07 20:14

    표현하며 살겠다, 이 문장이 제 눈에 와서 콕 박힙니다.

    표현하며 사는 삶, 그 첫 페이지를 열었으니 그 다음 페이지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일상은 때론 천국보다 낯설다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               윌리 : 여기선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고 하지 않아. 촌스러워 에바 : 아하~그럼 뭐라고 하는데? 윌리 : 우린, 악어 목을 조른다고 해. 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나, 악어 목을 조르고 있어’라고 말하는 거야. 에바 : 좋아, 난 지금부터 악어 목을 조를 거야. (위이이이이잉~~~~)          뉴욕에 온 지 10년이 넘었으나 뒷골목 인생을 벗어나지 못 한 벨라, 아니 윌리(존 루리)에게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옵니다. 그의 고향인 헝가리에서 자신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사촌 에바(에츠더 발린트). 하지만 8평 정도의 원룸에 사는 윌리는 갑자기 찾아온 사촌동생이 달갑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 더러운 방을 청소하려고 에바는 청소기를 찾습니다. 그러자 윌리가 에바에게 해 준 말입니다. 미국생활 10년차인 윌리가 어깨에 힘 팍팍 주고 에바에게 ‘이게 바로 미국’이라 설명하는 거죠.  어느 날 에바가 사온 ‘티비 디너’와 ‘체스터 필드’ 한 보루에 윌리는 웃으면서 ‘너도 괜찮은 녀석이었구나’라며 화해(?)의 악수를 청합니다.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 아마도 가장...
청량리
2021.12.07 | 조회 45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지연
2021.12.06 | 조회 407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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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2021.12.06 | 조회 35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헛헛함’,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다. 쫓아내 보려 하지만 계속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삶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튼 지 1년 가까이 되어간다. 끊었던 담배도 다시 부쩍 늘었다. 좋아하던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술자리는 매번 비슷한 내용의 대화와 가십거리들로 채워져 있을 뿐이고 다음날 컨디션도 좋지 않아 마실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 공통의 관심사도 많지 않고, 미숙하고 어리석은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필요로 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항상 눈앞에 얼쩡거린다. 간혹 한숨 쉬는 직원에게 ‘천장 꺼지겠다!’ 큰 소리로 농담을 하면서도 뒤에 가서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던 내가… 한숨도 부쩍 늘었다. 나도 내 어께를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가? 가을이 다가와 그런 건지 인생의 가을을 타는 것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회사와 사장   ‘욱’하는 마음에 사직서를 냈다. 사유는 뻔한 ‘일신상의 이유’다. 생각 없이 쓴 이유가 정말 이유가 된 것 같다. 내 몸에 알 수 없는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하다. 바이오리듬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것이 나도 모르게 터져버렸다. 평소 사소한 것에 짜증내는 일도 늘었다.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갖게 되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가 아니라 사장에 대한 불만이다. 조금의 암시도 없이 나의 사표를 받은 사장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정진우
2021.12.06 | 조회 238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처음에는 잘 몰랐다. 집을 짓고 보니 풍광이 너무 좋다.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숲속, 조금만 걸어 나가면 숲길이다. 해발 450미터 높이에서 바라보는 산자락들, 그 사이사이로 평창강에서 올라오는 물안개.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아침 일찍은 물안개가 가득하다가, 해가 올라오는 시간에 따라 산자락들이 조금씩 보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마침내 안개가 걷히면 산들이 만드는 겹겹의 선들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저녁녘에는 붉은 색과 노란 색 계열이 제멋대로 섞인 해 그림자가 산을 긴 타원형으로 물들이며 마치 주황색 호수가 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방은 고요하고 주변에 불빛이 없어 밤에는 여러 별자리들이 보이고, 가끔은 별똥별도 볼 수 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아, 참 좋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집은 평창집이다. 우리는 집을 두 번 지었다. 지금 사는 고기동집과 여기 평창집. 고기동집을 지을 무렵, 이전에 아이들 키우며 동네를 만들고 10여 년 간 함께 살았던 성산동 사람들 사이에서 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애들도 독립했으니 시골에 가서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는 것. 그들과 함께 산 세월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우리는 별 고민 없이 합류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어떤 마을을 만들면 좋을지, 각자가 하고 싶은 일도 적어보고 마을 배치도 그려보며 집터를 구하러 다녔다. 여기 저기 다녀보다가 거의 2년 만에 찾은 곳이 이곳 평창이었다. 처음 땅을 계약한 후 집을 짓기까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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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 조회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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