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잊히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시간이라는 공통분모와 ‘현재성’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는 세계평화 메시지를 위한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와 본 히로시마에서 보낸 낯선 남자와 하룻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 혹은 그의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공교롭게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제목처럼 부부클리닉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도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갖고 있다. 다만, 히로시마는 집단기록인 ‘역사’를, 느베르는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시마는 박물관의 전시내용 혹은 극중 영화 속 반전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이야기되는 반면, 느베르의 시간은 대부분 그녀에게 일어난 과거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문제의 교집합은 ‘시간’이다. 역사 속 전쟁은 지난 과거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잊히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시간이라는 공통분모와 ‘현재성’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는 세계평화 메시지를 위한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와 본 히로시마에서 보낸 낯선 남자와 하룻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 혹은 그의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공교롭게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제목처럼 부부클리닉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도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갖고 있다. 다만, 히로시마는 집단기록인 ‘역사’를, 느베르는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시마는 박물관의 전시내용 혹은 극중 영화 속 반전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이야기되는 반면, 느베르의 시간은 대부분 그녀에게 일어난 과거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문제의 교집합은 ‘시간’이다. 역사 속 전쟁은 지난 과거가...
청량리
2022.04.03 | 조회 284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문탁       길드다의 4년 실험이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길드다는 각 구성원의 조건과 욕망에 따라 두 팀으로 분화한다. 한 팀은 길드다 아젠다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유튜브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길드다의 현재 역량과 상황을 반영한 구조조정이고 전진적 개편이다.      그러나 이런 쿨한 공식적 멘트 이면에서 내 속은 좀 복잡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길드다 4년 중 처음 2년간은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는데 이에 비해 후반부 2년은 힘은 힘대로 들고 마음은 고달팠다. 나는 대체로 답답했고 속이 터졌는데 그런데도 이 감정을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의 회고는 불가피하다. 4년 전 길드다는, 4인(5인)의 청년 + 1인의 사장으로 구성된 “인문학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정체성이 애매하긴 했다. 4(5) + 1의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건 5+2가 될 수도 있는 것일까? 혹은 10+1도 괜찮다는 것이었을까?  ‘인문학 스타트업’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자립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지만, 그것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주요 사업모델로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출발한 건, 내가 경험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청년들의 위치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들이 중, 장년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치이는’ 사례를 계속 봐왔다. 다시 말하면 성인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청년은 시작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계속 ‘선생님(들)’께 배우고 혼나는 미숙한 학인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게다가 문탁네트워크의 경우엔 ‘선생님’에 더해 (감수성의 측면에서) ‘엄마’들도...
문탁       길드다의 4년 실험이 막을 내렸다. 공식적으로 말한다면, 길드다는 각 구성원의 조건과 욕망에 따라 두 팀으로 분화한다. 한 팀은 길드다 아젠다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다른 한 팀은 유튜브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길드다의 현재 역량과 상황을 반영한 구조조정이고 전진적 개편이다.      그러나 이런 쿨한 공식적 멘트 이면에서 내 속은 좀 복잡하다. 단순하게 말하면 길드다 4년 중 처음 2년간은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는데 이에 비해 후반부 2년은 힘은 힘대로 들고 마음은 고달팠다. 나는 대체로 답답했고 속이 터졌는데 그런데도 이 감정을 청년들에게 전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약간의 회고는 불가피하다. 4년 전 길드다는, 4인(5인)의 청년 + 1인의 사장으로 구성된 “인문학 스타트업”으로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정체성이 애매하긴 했다. 4(5) + 1의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건 5+2가 될 수도 있는 것일까? 혹은 10+1도 괜찮다는 것이었을까?  ‘인문학 스타트업’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자립을 지향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지만, 그것이 인문학 프로그램을 주요 사업모델로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출발한 건, 내가 경험했던 인문학 공동체에서의 청년들의 위치 때문이었다.     나는 청년들이 중, 장년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치이는’ 사례를 계속 봐왔다. 다시 말하면 성인 중심의 인문학 공동체에서 청년은 시작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계속 ‘선생님(들)’께 배우고 혼나는 미숙한 학인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 같았다. 게다가 문탁네트워크의 경우엔 ‘선생님’에 더해 (감수성의 측면에서) ‘엄마’들도...
문탁
2022.03.25 | 조회 365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고은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 <아젠다>에 <길드다의 흥? 망? 성? 쇠?>라는 글을 썼다. 현재의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젠다>에는 <길드다>에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공지가 올라갔다. 그 사이에 <길드다>에서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사람은 나였다. 친구들에게 “이렇게는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딱히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한 회의에서 확인했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1.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이렇게는 못하겠다”는 말은 무척 애매해보인다. ‘이렇게’가 뭔데? 마지노선이나 조건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건 뭔데? 지금 글로 풀어보려 해도 ‘이렇게’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길드다의 사장님과 친구들은 모두 내 말을 알아들었다. 그 말을 하는 타이밍이 하필 지금이냐고 물어본 사람은 있었어도,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입장은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므로, <길드다>엔 변화해야 할 명분이 생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문탁쌤이 헤드의 역할을 내려놓자 우리가 가진 생각의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원과 명식은 <길드다>를 이대로 유지하고 싶어했고, 자신들 개인의 일도 계속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길드다>에 더 자주 나오거나 운영 일을 더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나와 우현이 앞으로도 계속 <길드다> 운영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은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 <아젠다>에 <길드다의 흥? 망? 성? 쇠?>라는 글을 썼다. 현재의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젠다>에는 <길드다>에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공지가 올라갔다. 그 사이에 <길드다>에서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사람은 나였다. 친구들에게 “이렇게는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딱히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한 회의에서 확인했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1.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이렇게는 못하겠다”는 말은 무척 애매해보인다. ‘이렇게’가 뭔데? 마지노선이나 조건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건 뭔데? 지금 글로 풀어보려 해도 ‘이렇게’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길드다의 사장님과 친구들은 모두 내 말을 알아들었다. 그 말을 하는 타이밍이 하필 지금이냐고 물어본 사람은 있었어도,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입장은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므로, <길드다>엔 변화해야 할 명분이 생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문탁쌤이 헤드의 역할을 내려놓자 우리가 가진 생각의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원과 명식은 <길드다>를 이대로 유지하고 싶어했고, 자신들 개인의 일도 계속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길드다>에 더 자주 나오거나 운영 일을 더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나와 우현이 앞으로도 계속 <길드다> 운영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문탁
2022.03.25 | 조회 309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송우현   * Still G.D.D: 힙합 대부 닥터 드레의 명곡 <Still D.R.E>의 패러디다.       길드다 멤버들과 지내는 건 쉽지 않았다. 선 그을 수 있는 직장 동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한 친구도 아닌 사람들. 많이 봐야 일주일에 한두 번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그마저도 못 보는 사람들. 게다가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선배들. 이들과 우정을 나눈다는 건 뭐였을까? 무서운 얼굴로 인사도 안 받아주는 골초, 안쓰러울 정도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범생, 쓸데없이 예민하고 비관적인 멀대, 그리고 그들을 모아주는 선생님…. 그 사이에 낀 나는 뭐였을까?      1년 차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 사이에 껴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유일하게 이우학교와 연이 없고, 공부는 이제 막 시작했고, 나이도 어리고, 하는 일마다 실수해서 혼나기 일쑤였다. 게다가 누군 진지하게 준비해온 기획안을 비웃지 않나, 누군 구석에서 자기만 신경 쓰고, 누군 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터뜨리고…. 시간이 갈수록 멤버들과 섞일 순 있었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아있었다. 길드다에서 내 역할은 무엇인가? 난 길드다에 기여하고 있는가? 냉정하게 보자면 난 연습생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량과 경험이 적은 막내로써 핸디캡을 얻었고, 항상 피드백을 받기만 했지 내가 주는 피드백은 효력이 거의 없었으며, 공동 세미나를 따라가는 게 벅차서 기본기를 공부하는 세미나를 따로 열었다.(그마저도 폐강할 뻔했을 땐 정말 괴로웠다.) 당연히 몇 년 만에 그들 수준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건 욕심이고, 현실적으로 나는 기본기를 쌓을 시기인 것도 맞다. 하지만 그 덕에...
송우현   * Still G.D.D: 힙합 대부 닥터 드레의 명곡 <Still D.R.E>의 패러디다.       길드다 멤버들과 지내는 건 쉽지 않았다. 선 그을 수 있는 직장 동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한 친구도 아닌 사람들. 많이 봐야 일주일에 한두 번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그마저도 못 보는 사람들. 게다가 나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선배들. 이들과 우정을 나눈다는 건 뭐였을까? 무서운 얼굴로 인사도 안 받아주는 골초, 안쓰러울 정도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모범생, 쓸데없이 예민하고 비관적인 멀대, 그리고 그들을 모아주는 선생님…. 그 사이에 낀 나는 뭐였을까?      1년 차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 사이에 껴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유일하게 이우학교와 연이 없고, 공부는 이제 막 시작했고, 나이도 어리고, 하는 일마다 실수해서 혼나기 일쑤였다. 게다가 누군 진지하게 준비해온 기획안을 비웃지 않나, 누군 구석에서 자기만 신경 쓰고, 누군 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터뜨리고…. 시간이 갈수록 멤버들과 섞일 순 있었지만, 여전히 고민은 남아있었다. 길드다에서 내 역할은 무엇인가? 난 길드다에 기여하고 있는가? 냉정하게 보자면 난 연습생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량과 경험이 적은 막내로써 핸디캡을 얻었고, 항상 피드백을 받기만 했지 내가 주는 피드백은 효력이 거의 없었으며, 공동 세미나를 따라가는 게 벅차서 기본기를 공부하는 세미나를 따로 열었다.(그마저도 폐강할 뻔했을 땐 정말 괴로웠다.) 당연히 몇 년 만에 그들 수준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건 욕심이고, 현실적으로 나는 기본기를 쌓을 시기인 것도 맞다. 하지만 그 덕에...
문탁
2022.03.25 | 조회 227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김지원       4년간의 길드다, 2년간의 <아젠다>를 맺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그럴싸한, 감동적인 말들을 남겨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거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라거나 ‘사랑을 하면 이별이…’하는 뻔한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 눈가가 촉촉해지는 상황이 된다. 여러 번 글을 지웠다. 아직까지 충분히 정리가 되지 않은 마음이, 뻔하고 쉬운 답으로 가려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무언가 맺는말보다는, 나에게 놓인 새로운 국면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기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명식과 함께 <아젠다>를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길드다가 애초 <아젠다>를 기획한 계기는, 코로나-19의 유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집합 금지로 인해 계획했던 세미나와 강의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오프라인 기획들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세상이 멈췄어도 어떻든 돈을 벌어야 했고, 공부를 하고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유료 회원제 메일링이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음에도 생각보다 회원이 모이지 않았다. 글도 문제였다. 돌아가며 메인 글을 썼지만, 늘 바빴다. 충분히 공부하고 생각하며 써낸 글이라기보다 마감을 맞추어 쳐낸 글들이 되었다. 발행 1년을 맞을 즈음 고민 속에 독자와의 인터뷰도 진행해 보았다. 글이 어렵다, 길다, 가벼웠으면 좋겠다, 코너를 줄여도 좋다…. 애정 어린 피드백들이었다. 이를 받아들여 대담이나 길드다의 일상적인 고민들을 전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시도했으나, 결국 써왔던 방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각기 다른 관심과 역량을 가진 네 명이 비슷한...
김지원       4년간의 길드다, 2년간의 <아젠다>를 맺는 글이라고 생각하니 그럴싸한, 감동적인 말들을 남겨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거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이라거나 ‘사랑을 하면 이별이…’하는 뻔한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 눈가가 촉촉해지는 상황이 된다. 여러 번 글을 지웠다. 아직까지 충분히 정리가 되지 않은 마음이, 뻔하고 쉬운 답으로 가려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무언가 맺는말보다는, 나에게 놓인 새로운 국면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기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명식과 함께 <아젠다>를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기로 했다.      길드다가 애초 <아젠다>를 기획한 계기는, 코로나-19의 유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집합 금지로 인해 계획했던 세미나와 강의가 줄줄이 취소되었고,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오프라인 기획들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세상이 멈췄어도 어떻든 돈을 벌어야 했고, 공부를 하고 글을 써야 했다. 그렇게 시작된 유료 회원제 메일링이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음에도 생각보다 회원이 모이지 않았다. 글도 문제였다. 돌아가며 메인 글을 썼지만, 늘 바빴다. 충분히 공부하고 생각하며 써낸 글이라기보다 마감을 맞추어 쳐낸 글들이 되었다. 발행 1년을 맞을 즈음 고민 속에 독자와의 인터뷰도 진행해 보았다. 글이 어렵다, 길다, 가벼웠으면 좋겠다, 코너를 줄여도 좋다…. 애정 어린 피드백들이었다. 이를 받아들여 대담이나 길드다의 일상적인 고민들을 전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시도했으나, 결국 써왔던 방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각기 다른 관심과 역량을 가진 네 명이 비슷한...
문탁
2022.03.25 | 조회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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