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남은 이야기> 아직 정확하지 못한 입장에서 (안재영)

문탁
2022-03-25 11:48
202
재빵

 

 

   <길드다>가 출범한 이후로 텍스트랩과 공산품에 참여하는 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일요일마다 길드다에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 재영아 일요일에 뭐 하니 시간 되면 잠깐 볼까?

- 아 나 일요일마다 하는 세미나가 있어

- 아 맞다 너 ‘문탁’ 가지

 

   분명히 내가 ‘길드다’라는 단어를 몇 년간 사용해왔음에도 여전히 친구들의 인식 속에서는 ‘길드다’가 ‘문탁’의 대체 단어가 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탁’이라는 단어가 시간상 더 오랜 기간 입력된 단어였고, 공간적인 의미로도 ‘문탁’이라는 단어가 이점이 있었던 것이다. 혹 친구들이 수지구 수풍로 131번길 5*에 찾아올 일이 있는 경우에 나는 매번 지도 어플에서 ‘문탁네트워크’를 검색하고 오라고 설명해 주었다(지금 알았는데 ‘길드다’도 어플에 검색하니 나온다!). 그리고 소신 발언을 하자면 ‘문탁’이라는 단어가 ‘길드다’라는 단어보다는 부르기에도 외우기에도 편한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자리매김에 실패한 가장 큰 까닭은 내가 ‘길드다’라는 공간 혹은 네트워크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지금 다시 설명해 보라고 해도 나는 온전히 설명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청년’, ‘생존’, ‘다름’, ‘같이’, ‘회사’, ‘공동체’라는 단어들을 섞어 애매모호하게 설명했던 것 같다. 실제로 특정 상황 속에서 길드다 멤버들이 길드다에 대해서 소개할 때 그들도 ‘음... 어떻게 얘기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를 앞에 깔아두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걸 본 적이 몇 번 있다.

 

   그렇게 나는 <길드다>가 어떤 공간인지 명확히 설명해 내지도 못하는데 <길드다>가 분화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우현에게 <길드다>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글로 써달라는 고마운 부탁을 받았다. 그 예시 중에는 ‘<길드다>는 나에게 어떤 곳이었나’가 있었는데 나는 이번 기회를 빌어 나에게 <길드다>는 <문탁 네트워크>와 어떻게 다른 곳이었나에 대한 간단한 느낌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담배 피우기 좋은 곳

 

   지원이 형 덕일 테지만 길드다 앞에는 언제나 꽁초 버릴 곳이 마련되어 있다. 가끔 들를 때, 세미나 쉬는 시간, 파지사유를 들를 때에도 보통은 길드다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나는 세미나를 가는 날 잠을 많이 못 자고 간 날이 많았는데 몽롱한 채로 쨍쨍한 해를 받으며 길드다 문 앞에서 담배를 피울 때 기분이 좋다. 물론 밤에 길드다에서 술을 마시다가 나와 필 때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술 마시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안정적이고 이쁜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고 좋은 스피커로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동네에서 일반 식당이나 술집 아닌 곳에서 저렴한 음식과 술을 사서 편하게 놀 공간이 있다는 건 참 용이한 일이다. 이 좋은 공간을 만들고 정리하는 데에 별 도움을 못 준 것이 아쉽다.

 

 

 

 

가까워진 곳

 

   길드다 멤버들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길드다의 전신 <2030 도시 부족 세미나>에서였다. 약 1년간 함께 세미나를 했는데 책도 너무 어려웠고 어째서인지 멤버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내가 괜스레 거리를 두었던 것 같고 멤버들도 조금은(?) 그랬던 것 같다. 이후로는 한동안 문탁과는 거리를 두고 지내다가 2017년에 문탁에서 했던 청년예술 프로젝트로 나는 다시 발을 디뎠고 2018년에 길드다가 창설되고 그때부터 길드다에서 하는 세미나들을 지금까지 드문드문 꾸준히 참여했다. 명식이 형은 언제나 재빵이라고 불러주었고 지원이형은 술 사준다는 말을 자주 건넸는데 실제로 자주 사줬다. 고은이와는 농담 죽이 늘게 되었고 동은이와는 서로 ‘찐텐’을 부리며 농담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현이와는 취해서 서로 고민을 늘어놓았고 문탁샘이 가끔 하시는 잔소리가 듣기 싫지 않았다.

 

 

부채감이 남은 곳

 

   세미나를 하며 나는 많은 폐를 끼쳤다. 지각은 상습적으로 하였고 맡은 발제를 제대로 해가지 않았고 에세이 발표가 다가올 때면 장기간 잠수마저 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멤버들은 화를 내는 대신 기다려주거나 먼저 다가와 주었다. 2030 세미나 때도 지각을 자주 했었는데 그때는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는 언질만 주었었다. 그런데 길드다 세미나에서는 내가 잠수를 타는 동안 부담 갖지 말고 연락 달라고 문자를 주었고, 어느 날은 동은 고은을 비롯한 친구들이 과자와 음료를 사들고 집까지 직접 찾아와주기도 했다. 덕분에 잠수를 풀고 나서 다음 세미나가 열리면 이번에도 같이하자고 연락을 주었다. 내가 가진 못난 점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하고 먼저 다가와 주는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다. 

문탁 네트워크의 대표 세미나인 <선물 세미나>가 기억난다. 돈으로 교환을 할 경우 서로의 이득이 충족되기 때문에 거기서 관계가 끝나지만 선물을 주고받은 경우에는 받은 사람 입장에서 부채감이 생기고 그것이 지연되기 때문에 관계가 계속된다는 것. 아직 갚아야 할 것이 많다.

 

 

응원하게 되는 곳

 

   친구들이 <길드다>에 대해 물을 때 항상 신이 나서 이야기하던 것이 기억난다. 또래 친구가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먹고살지를 함께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말만 들어도 재미난 일 아닌가. 그런 짓을 실제로 내 주변에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하며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었고 친구들은 참 멋지다고 호응해 주었다. <길드다>에 대해 명확한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설명할 때 내 감정만큼은 명확했던 것 같다. 길드다가 분화된다는 것이 명확히 어떤 상황인지 나는 지금 알 수 없지만 이들이 또 재미난 일을 벌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재미난 일을 함께하고 그 일에 대해서 명확하진 못하더라도 정확한 글을 써보고 싶다.

 

*수지구 수풍로 131번길 5: <길드다>와 <문탁 네트워크>의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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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차명식     2018년, 길드다가 ‘청년 인문학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첫 기치를 올렸다.    2020년, 길드다의 목소리로서 ‘아젠다’의 첫 호가 발간됐다.     그리고 길드다 5년 차, 아젠다 3년 차인 올해 길드다와 아젠다는 함께 그 첫 장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작에 임한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자면 길드다는 ‘청년’, ‘인문학’, ‘자립’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행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의 토양이었다. 이 표현은 꽤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길드다를 만들 당시의 소개 글을 살펴보면 “길드다는 대학도 회사도 아니지만 우정으로 맺어진 일과 지식의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제도 교육)과는 다른 형태로 함께 공부하는’ 네트워크이자 ‘회사와는 다른 형태로 함께 일하며 자립을 추구하는’ 네트워크라는 뜻이다. 즉 학문의 탐구와 물질적 삶의 조건들(물론 후자는 경제적 측면을 포함한다)을 한데 추구하되 이미 널리 알려지고 확립되어 있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겠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길드다는 모든 면에서 실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으로 돈을 어떻게 벌 것인지, 번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모자라는 수입은 어떻게 채울 것인지, 업무를 어떻게 분담하고 또 협업할 것인지……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무엇을 할 것인지’도.     ‘보통 다 그렇게 한다’가 근거가 될 수 없는 시도들이었기에 길드다의 활동은 항상 예상치 못했던 기쁨의 순간들과 그보다 좀 더 많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을 맞닥뜨렸다. 마지막으로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활동을 되새기면서 길드다-아젠다 1.0을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2019...
차명식     2018년, 길드다가 ‘청년 인문학 스타트업’을 표방하며 첫 기치를 올렸다.    2020년, 길드다의 목소리로서 ‘아젠다’의 첫 호가 발간됐다.     그리고 길드다 5년 차, 아젠다 3년 차인 올해 길드다와 아젠다는 함께 그 첫 장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작에 임한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자면 길드다는 ‘청년’, ‘인문학’, ‘자립’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행한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의 토양이었다. 이 표현은 꽤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길드다를 만들 당시의 소개 글을 살펴보면 “길드다는 대학도 회사도 아니지만 우정으로 맺어진 일과 지식의 네트워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제도 교육)과는 다른 형태로 함께 공부하는’ 네트워크이자 ‘회사와는 다른 형태로 함께 일하며 자립을 추구하는’ 네트워크라는 뜻이다. 즉 학문의 탐구와 물질적 삶의 조건들(물론 후자는 경제적 측면을 포함한다)을 한데 추구하되 이미 널리 알려지고 확립되어 있는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는 않겠다는 것이며 그렇기에 길드다는 모든 면에서 실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문학으로 돈을 어떻게 벌 것인지, 번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모자라는 수입은 어떻게 채울 것인지, 업무를 어떻게 분담하고 또 협업할 것인지……무엇보다 그 모든 것에 앞서 ‘무엇을 할 것인지’도.     ‘보통 다 그렇게 한다’가 근거가 될 수 없는 시도들이었기에 길드다의 활동은 항상 예상치 못했던 기쁨의 순간들과 그보다 좀 더 많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을 맞닥뜨렸다. 마지막으로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활동을 되새기면서 길드다-아젠다 1.0을 마무리해 보고자 한다.        2019...
문탁
2022.03.25 | 조회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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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2.03.25 | 조회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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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식 (길드다)      보다 큰 선을 위한 투표     돌이켜보면 내게 선거권이 생긴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선거에서 크게 고민을 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매 선거마다 내게는 당연히 찍어야 할 당과 후보들이 있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도 최소한 당연히 찍지 말아야 할 당과 후보들이 있었다. 그것은 딱히 후보의 공약이나 약력을 샅샅이 훑지 않더라도, 선거판마다 쏟아지기 마련인 뉴스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더라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선거란 인물이나 당에 대한지지 이전에 내가 지지하는 가치 - 선善을 증명하고 확인받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더 훌륭한 선, 이 사회를 위한 공동의 선이 무엇인지는 내게 항상 명확했기 때문이며, 자연히 어디에 표를 던지는 것이 ‘옳은’ 일인가도 항상 분명해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이 나뿐이 아니리라 확신한다. 역사를 보아도 보다 큰 선을 향한 지향은 각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여러 사람들의 협력과 공동행동을 이끌어내며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이는 몇몇 사가들이 근대 이후 한국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 개인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충성으로 여겼던 일본의 ‘무사도’와 군주의 뜻을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더 큰 선으로 군주를 이끄는 것이야말로 충성이라 여겼던 조선의 ‘선비정신’의 차이를 논하면서 언제나 더 큰 선을 향해 ‘일치단결’했던 한국사의 궤적을 그려낸다. 일제강점기에 그 더 큰 선이란 일본제국이란 열강에 대한 투쟁과 민족의 독립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부터 분단기에는 경제 발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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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2.02.24 | 조회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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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이 이슈다. 이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다. 그만큼 나는 대선에 관심이 없고, 정치나 시사 이슈들에 어둡다. 그런 내가 대선에 관한 글을 쓰게 되다니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런 김에 내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내 주변의 2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 삶이랑 정치랑 무슨 상관인데        난 정치 자체에 비관적이라기보다는 정치와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낀다. 파란색 정권일 때나 빨간색 정권일 때나 내 삶에서 체감한 차이는 없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정책에 따른 혜택과 불이익을 받은 적도 있었겠지만, 그걸 정권의 영향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나는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오히려 법을 이용하면서 군대도 면제받았으니(중졸 학력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장기 대기자로 면제처리를 받았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나쁜 놈이려나? 아니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는 정책을 펼쳐도 관심 없는 호구?      반면 내가 처한 환경은 좀 특이하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문탁 주변 사람들은 왼쪽 성향이 강한데, 내가 자주 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고향 친구들은 완전 오른쪽이다. 진보, 보수 같은 키워드만으로 두 집단을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대략적으로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봐온 왼쪽은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추구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그냥 이념적으로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오른쪽은 모두가 잘사는 삶보다는 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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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현(코코팰리 혹은 김왈리)
2022.01.23 | 조회 401
지난 연재 읽기 길드다 아젠다
        1. purpose: 지속 가능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통장 잔고가 거의 떨어졌다는 것이다. 1, 2년 차에 길드다는 수입의 50%를 공모사업으로 충당했다. 그랬던 것이 작년부터 큰 규모의 공모사업에서 탈락하기 시작했고, 점차 운용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길드다 멤버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돌아가며 크게 아팠다. 명식과 우현은 점차 살이 빠졌고 위장병이 심해졌다. 지원과 나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작년 길드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났고 한동안 누워있었다. 우리는 바쁘게 움직이는데 돈은 계속 떨어졌다. 올해가 지나면, 당장 내년이 되면 돈이 없어서 길드다를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현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여름부터 정기회의 외에 시간을 내서 개편 회의를 했다.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논의를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무작정 서점의 <경영> 코너를 찾았다. 살면서 처음 가본 코너를 흥미롭게 구경하다 『2030 창업 길라잡이』라는 책을 집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세미나를 하며 다른 팀을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지만, 길드다를 살필 수는 없었다. 비즈니스 모델 표에 고객군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제안하고 있는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간단명료하게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길드다의 정체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다음엔 지원의 진행에 따라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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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2021.11.25 |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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