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2회] 관중, 능력주의 시대에 필요한 것

진달래
2021-09-2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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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은 인한 사람입니까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인하지 못한 것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논어』「헌문」17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정치가로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자이다. 우리에게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시절,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던 관중은 후에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는 말로 그와의 두터운 우정을 보여주었다. 포숙아는 제나라의 공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규를 지지하던 관중과 달리 소백을 모시고 있었다. 후에 소백이 제 환공의 자리에 오르자 포숙아는 관중을 추천하여 그를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에 관중은 제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만들고, 제나라를 제후국 중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였다. 제 환공은 관중을 높여 중부(仲父)라 불렀다고 한다.

 

 

공자는 칭찬에 인색하다. 『논어』에 누가 인(仁)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인한지 모르겠다.(不知其仁也)”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로가 관중은 인하지 못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물을 때 공자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如其仁)”라고 대답한 것은 대단한 칭찬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관중과 제 환공이 쇠약해진 주(周)나라를 대신해, 제후들을 규합하여 주 왕실을 받들게 하고, 북쪽의 융족이 침략했을 때 그를 막아냄으로써 중원의 문화를 지킨 것을 높게 평가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관중은 가장 훌륭한 재상으로 꼽힌다. 그런데 자로의 질문을 보면 이 당시 관중에 대한 다른 평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관중이 공자 규를 모시고 있었으면서 규가 죽었을 때 함께 죽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관례대로라면 규가 죽었을 때 관중이 함께 죽는 것이 신하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관중은 규를 제후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서 제나라로 들어가는 소백을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그런데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소백의 신하가 되었으니 공자의 제자들이 보기에 관중은 도리를 다하지 못한 인물로 비춰진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관중은 인한 사람이 아니지요?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 따라 죽지 않았고 또 환공을 도왔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들의 패자가 되게 했고, 천하를 한번 바로잡아 백성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다.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보통사람처럼 사소한 신의를 지킨다고 스스로 도랑에서 목을 매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경우와 같겠는가.”(子貢曰 管仲非仁者與 桓公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子曰 管仲相桓公 霸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헌문」18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제자들의 생각과 달랐다. 공자는 관중의 공적을 높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한 관중을 인하다고 하지 않으면 누구를 인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답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공자의 입장에선 관중이 규를 따라 죽지 않고, 제 환공의 신하가 되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관중이 썼다고 알려진 『관자(管子)』를 보면 백성을 풍족하게 해 주는 것이 다스리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 뿐 아니라 관중은 제 환공에게 명분 없는 싸움을 하지 못하게 했다. 사람들을 배부르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공자 역시 제 환공과 같은 제후를 만난다면 자기도 하고 싶은 일로 여겼다.

 

관중은 그릇이 작다

 

관중은 『논어』에 네 번 등장한다. 이렇듯 모두 칭찬의 말인 듯싶으나 한편, 공자는 관중을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평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의 그릇이 작구나.”

어떤 이가 말했다. “관중은 검소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은 집이 세 채나 있었고, 가신에게 일을 겸직시키지 않았으니, 어찌 검소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만이 병풍으로 문을 가릴 수 있는데 관중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다. 임금만이 두 나라의 임금이 회합할 때 반점(사이에 두는 탁자)을 두는데 관중도 반점을 두었다. 관중이 예를 안다고 한다면 누구인들 예를 알지 못하겠는가?” (子曰 管仲之器小哉 或曰 管仲儉乎 曰 管氏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然則管仲知禮乎 曰 邦君樹塞門 管氏亦樹塞門 邦君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亦有反坫 管氏而知禮 孰不知禮)「팔일」22

 

공자가 관중의 업적을 높이며 칭찬했으면서 이렇게 그의 그릇이 작다고 한 것은 사실 어떤 면을 보고 한 말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공자의 말을 듣고 잘 이해하지 못한 혹자의 질문을 통해 공자가 관중의 어떤 면을 지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후에 사마천은 『사기』 「관안열전(菅晏列傳)」에 “관중은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현신이었으나 공자는 그를 소인이라고 하였다.(管仲世所謂賢臣,然孔子小之)”고 적었다. 아마도 사마천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공자가 관중의 그릇이 작다고 평한 이 문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관중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공자는 관중이 제 환공을 패자로 만든 것을 문제 삼지 않았으나 후대에 맹자는 관중이 왕도(王道)를 행하려 하지 않고, 단지 제 환공을 패자(覇者)의 자리에 머물게 한 것을 비난했다. 북송의 소순(蘇洵)은 「관중론」에서 관중이 자신이 죽고 난 뒤의 혼란을 예견했을 터인데도 그것을 막지 못함을 한탄했다. 제 환공은 재위기간 내내 관중에 의지하여 정치를 했기 때문에 관중이 죽을 때 그를 대신 해 누가 정치를 맡는 것이 좋을지를 물었다. 이 때 관중은 절대 등용해서는 안 되는 세 사람(역아, 개방, 수조)을 언급하는데 제 환공은 처음에는 관중의 말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들을 자신의 측근으로 둠으로써 말년에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제 환공이 제대로 후사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그의 아들들이 제후의 자리를 두고 싸우느라 환공의 장례를 제 때에 치르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고, 제나라는 이 시기에 국력이 많이 쇠해졌다.

그런데 공자가 혹자와 나눈 대화를 보면 이전 관중의 평가들과 달리, 공적이 아닌 평소 행실에 대해 문제 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공자는 관중이 집을 세 채나 가지고 있고,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둔 것을 보고 사치스럽다고 했다. 제후처럼 집을 만들고 제후나 쓸 수 있는 물건을 자기 집에 가져다 놓는 것은 예를 모르는 행동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논어』에 제 환공이 백씨라는 사람의 땅을 빼앗아 관중에게 주었음에도 백씨가 죽을 때까지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고, 『사기』에도 관중이 사치스러웠음에도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공자가 예를 모른다고 했지만 관중이 주나라를 침략한 융적을 물리치고 주 양왕에게 갔을 때 양왕이 그를 상경(上卿)으로 대우하려고 하자 자기는 제후국의 하경이므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정중히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니까 관중의 흠이라면 좀 과하게 사치스러운 정도,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관중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쯤이야 하고 눈감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공자는 왜 굳이 이를 문제 삼았으며, 사마천은 관중을 소인(小人)이라고까지 칭했을까?

 

능력주의의 함정

 

어쩌면 공자가 관중에 대해 ‘그릇이 작다’고 한 것은 그저 관중이 그의 업적에 어울리는 좀 더 훌륭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내비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이 『논어』의 여러 편 중에 「팔일(八佾)」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있다. 「팔일」편은 대체로 당시 대부들이 제후와 맞먹는 부를 누리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관중의 사치스러움이 단지 검소하지 않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가 예를 모른다고 한 것 또한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공자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 사회 혼란은 이렇게 예를 지키지 않는 것, 그러니까 각자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않는데서 온다고 보았다. 거기에 덧붙여 공자가 살았던 시기가 춘추시대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공자가 관중의 사치스러움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것은 이것이 가지고 올 파장을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관중은 공자보다 약 100년 앞서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이렇게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최고의 재상 자리에 오른 것은 그의 탁월한 실무 능력 때문이었다. 포숙아는 관중을 제 환공에게 추천하면서 제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에 만족한다면 관중을 죽여도 좋으나 패자가 되고 싶다면 관중을 등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관중에 대한 평가는 당대보다 공자가 그의 업적을 칭하고 난 뒤, 오히려 공자 사후 전국시대에 이르러 높아졌다. 일례로 『한비자』를 보면 “지금 나라 안의 백성이 모두 정치를 논하며 상앙이나 관중의 책을 소장한 사람이 집집마다 있다(今境內之民皆言治 藏商管之法者家有之)”고 하였다. 아마도 관중의 탁월한 능력과 그에 의해 누리게 된 부(富)와 권력이 전국시대 지식인들이 바라는 바였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시대는 어떠한 배경 없이도 오로지 능력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많았던 시대였다. 제후국들은 7개로 통합되었고, 각 나라들은 누구보다 부강해지기 위해서 각지의 능력 있는 인물들을 끌어 모으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 당시 소진이나 장의와 같은 이들은 평민출신으로 관중에 버금가는 부귀와 명성을 얻었다. 이렇듯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의 가장 큰 매력은 출신이나 사회적 배경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으로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주의는 이렇게 누리게 된 부와 권력을 당연하게 여기게 한다.

그런데 여기서 공자가 주목한 것을 보면 능력으로 출세한 것 자체라기보다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부보다 더 한 것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인정하는 태도이다.

 

 

능력과 공정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에 ‘공정(公正)’이 화두가 되었다. 특히 젊은 층에서 공정함은 무척 예민한 일이 되었다.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과한 이들은 노력으로 얻은 보상은 당연한 것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혜택’으로 흔히 말하는 ‘부모 찬스’와 같은 것에 민감하다. 자기 노력으로 얻은 자격, 즉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닌 것에 대해 부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공정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주의가 과연 공정한가를 생각해보자.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의 문제를 다룬다.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은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근거한 보상이나 박탈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정한 재능의 소유(또는 결여)를 순전히 각자의 몫으로 봐도 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능 덕분에 상류층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노력했지만 시장이 반기는 재능은 없는 탓에 뒤떨어져 버린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공정하다는 착각』 52p

 

능력주의는 자기 능력으로 성공했다고 스스로 많은 재화를 취득하는 것을 당당하게 여기게 만들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과도하게 사치스러운 것에 당당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샌델은 이러한 성공이 과연 능력만으로 혹은 노력만으로 가능한가를 묻는다. 성공은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아서 되는 경우도 있고, 그만큼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관안열전」에 100여 년의 시간 차이가 나는 관중과 안영(안자)을 함께 배치했다. 그리고 그들의 공적이 아닌 그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일들을 기록했다. 특히 관중에 대해 사마천은 그의 친구인 포숙아의 행동과 비교하여 당시에도 관중의 능력보다 관중의 사람됨을 알아본 포숙아를 칭찬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관중의 능력이 탁월한 것은 맞지만 포숙아가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관중은 없었을 것이다. 공자 규를 함께 모시던 소흘은 관중에게 자신은 죽어서 신하의 예를 다할 테니 살아서 신하의 예를 다하라고했다. 제 환공이 그의 능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면……. 이렇듯 관중의 성공은 관중 혼자서 이루어 낸 것이 아니다.

공자는 관중의 능력에 대해서 문제 삼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관중을 ‘소인’이라고 칭하면서 그를 알아본 포숙아를 칭찬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안영의 삶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능력만큼 대가를 받는 것은 공정한 것일까? 관중의 능력은 인정했지만 그 능력으로 누린 사치스러움에 대해 지적한 공자의 이 한 문장이 우리 시대 능력주의의 공정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공정함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댓글 5
  • 2021-09-23 18:32

    몇년전 중국에 갔을 때 도심 중앙 벽마다 논어의 핵심 키워드들이 프린트돼 있어 놀랐다. 논어의 말들이 아직 유효한가? 그런데, 논어에 나올 법하지 않은 단어가 하나 유독 눈이 갔다. 공정...  당시는 공정을 내건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라 공정이 세계 유행인가 싶었다. 진달래샘 글을 읽으니, 공정이란 말은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능력주의의 횡포를 포장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 2021-09-24 20:08

      그러니까요.... 그러고 보니,  도대체 원래 처음부터 그런게 있기나 한 거였어 ?  라는 허무주의 (?) 에 빠질 수도 있을 거 같으네요...흠...

  • 2021-09-23 19:08

    관중은 오랑캐로부터 중국의 예를 지켜냈지만 스스로는 분수에 맞지않는 사치로 예를 벗어났다는 공자님의 평가는 다시 생각해볼만 한것 같습니다

    공적은 공적 잘못은 잘못

    우리가 잘 구별하지 못하고 하나로 다른 하나를 덮어버리는 잘못을 하는 일이 적지 않잖아요

    관중의 이야기를 능력주의 공정과 연결란 진달래샘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명절연휴에 글 낳느라 애많이 쓰셨습니다 짝짝짝!!!

  • 2021-09-23 23:33

    관중에  관한  평가를 능력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한 이 글을 읽자니, 포숙이 알아본 것도 관중의 인간됨이 아니라  '능력'이 아니었을 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 2021-09-24 21:36

    능력과 공정, 한번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아요.

    그런데 관중의 사치함에 공정의 잣대를 들이댈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관중의 능력으로 중원을 안정시켜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바를 따지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할수도 없을것 같네요. 도덕성의 문제라면 모를까. 

    갑자기 헷갈리네요. ㅋㅋ

    질문을 만드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논어 카메오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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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4 | 조회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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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 조회 601
논어 카메오 열전
자산은 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논어』 「헌문」10   타이완 작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탕누어는 잘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子産/?~기원전522)’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산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출신으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재상 중에 하나였다. 『춘추좌전』을 읽어보면 실제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뭐 이렇게 보면 탕누어가 이 책에서 자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자산의 행적은 이후 『사기(史記)』에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추좌전』 이후에 서서히 잊혀 진 자산이 탕누어에 의해 다시 불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산이 했던 일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형서(刑書) 주조와 관련해 그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겼던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僑不才 不能及子孫 吾以救世也)”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이다. 자산을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나라 자산이라는 뜻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이름은 교(僑)이며 공손교(公孫僑)라 칭한다. 호칭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나라 목공의 손자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다.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周)나라와의 돈독한 관계로 춘추시대 초기에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사이가 멀어지고, 진(晉)이나 제(齊), 초(楚) 등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내정이 불안정했던 것도 큰...
자산은 은혜로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자산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은혜로운 사람이다.”(或問子産 子曰 惠人也) 『논어』 「헌문」10   타이완 작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의 리라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탕누어는 잘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子産/?~기원전522)’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자산은 춘추시대 정(鄭)나라 출신으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재상 중에 하나였다. 『춘추좌전』을 읽어보면 실제 자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뭐 이렇게 보면 탕누어가 이 책에서 자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자산의 행적은 이후 『사기(史記)』에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추좌전』 이후에 서서히 잊혀 진 자산이 탕누어에 의해 다시 불려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산이 했던 일 중, 가장 논란이 되었던 형서(刑書) 주조와 관련해 그가 변명 아닌 변명으로 남겼던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僑不才 不能及子孫 吾以救世也)”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며 말이다. 자산을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하는데 이는 정나라 자산이라는 뜻이다. 자산은 그의 자이다. 이름은 교(僑)이며 공손교(公孫僑)라 칭한다. 호칭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정나라 목공의 손자로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이다. 정나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주(周)나라와의 돈독한 관계로 춘추시대 초기에는 외교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나라와 사이가 멀어지고, 진(晉)이나 제(齊), 초(楚) 등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여기에는 귀족들의 세력 다툼으로 내정이 불안정했던 것도 큰...
진달래
2021.11.24 | 조회 322
논어 카메오 열전
관중은 인한 사람입니까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인하지 못한 것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논어』「헌문」17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정치가로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자이다. 우리에게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시절,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던 관중은 후에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는 말로 그와의 두터운 우정을 보여주었다. 포숙아는 제나라의 공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규를 지지하던 관중과 달리 소백을 모시고 있었다. 후에 소백이 제 환공의 자리에 오르자 포숙아는 관중을 추천하여 그를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에 관중은 제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만들고, 제나라를 제후국 중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였다. 제 환공은 관중을 높여 중부(仲父)라 불렀다고 한다.     공자는 칭찬에 인색하다. 『논어』에 누가 인(仁)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인한지 모르겠다.(不知其仁也)”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로가 관중은 인하지 못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물을 때 공자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如其仁)”라고 대답한 것은 대단한 칭찬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관중과 제 환공이 쇠약해진 주(周)나라를 대신해, 제후들을 규합하여 주 왕실을 받들게 하고, 북쪽의 융족이 침략했을 때 그를 막아냄으로써 중원의 문화를 지킨 것을 높게 평가했다. 춘추전국시대를...
관중은 인한 사람입니까   자로가 말했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소홀은 죽었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인하지 못한 것이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환공이 제후를 규합하면서도 군사력으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었다.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曰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논어』「헌문」17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정치가로 이름은 이오(夷吾)이고 중(仲)은 자이다. 우리에게는 ‘관포지교(管鮑之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시절, 친구인 포숙아의 도움을 여러 번 받았던 관중은 후에 “나를 낳아 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라는 말로 그와의 두터운 우정을 보여주었다. 포숙아는 제나라의 공자 규와 소백이 군주의 자리를 놓고 다툴 때 규를 지지하던 관중과 달리 소백을 모시고 있었다. 후에 소백이 제 환공의 자리에 오르자 포숙아는 관중을 추천하여 그를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이에 관중은 제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로 만들고, 제나라를 제후국 중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였다. 제 환공은 관중을 높여 중부(仲父)라 불렀다고 한다.     공자는 칭찬에 인색하다. 『논어』에 누가 인(仁)하냐고 물으면 대체로 “인한지 모르겠다.(不知其仁也)”로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로가 관중은 인하지 못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물을 때 공자가 “누가 그의 인만하겠는가(如其仁)”라고 대답한 것은 대단한 칭찬으로 볼 수 있다. 공자는 관중과 제 환공이 쇠약해진 주(周)나라를 대신해, 제후들을 규합하여 주 왕실을 받들게 하고, 북쪽의 융족이 침략했을 때 그를 막아냄으로써 중원의 문화를 지킨 것을 높게 평가했다. 춘추전국시대를...
진달래
2021.09.22 | 조회 368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와 제자들이 아닌 『논어』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리고 공자는 그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런 작은 궁금증으로 <논어 카메오 열전>을 시작합니다.      『논어』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뿐 아니라 공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 혹은 옛날 현인(賢人), 성왕(聖王) 등등이 있다. 공자는 이들에 대한 다양한 평을 논어에 남겼는데 아마도 이러한 인물평은 대체로 제자들과의 강학(講學) 과정에서 남게 된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소회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사교성 좋은 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 오래되어도 그를 공경하는구나.”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논어』「공야장」, 16   안평중은 우리가 흔히 안자(晏子)라고 알고 있는 제나라의 대부이다. 이름은 영(嬰)이고 자가 평중이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그가 죽은 해는 기원전 500년으로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보다 50세 정도 많다. 『안자춘추』라는 책이 남아 있는데 안자가 쓴 것은 아니고, 안자의 언행을 모아서 후대 사람들이 만든 책이다. 사마천은 『사기』 「관안열전」에 안자를 소개하면서 “만약 안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를 위해서 마부가 되어 채찍을 드는 일이라도 할 정도로 나는 안자를 흠모하고 있다.(假令晏子而在,余雖為之執鞭,所忻慕焉)”고 평했다. 흔히 가장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이야기 할 때 관중과 제환공을 예로 드는데 안자와 제경공도 그에 못지않게 본다. 그러니까 안자는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명망이 높았던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논어』에는 안자에 대해 이렇게 단 한 줄의 평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평도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라니,...
공자와 제자들이 아닌 『논어』 속 등장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리고 공자는 그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런 작은 궁금증으로 <논어 카메오 열전>을 시작합니다.      『논어』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뿐 아니라 공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 혹은 옛날 현인(賢人), 성왕(聖王) 등등이 있다. 공자는 이들에 대한 다양한 평을 논어에 남겼는데 아마도 이러한 인물평은 대체로 제자들과의 강학(講學) 과정에서 남게 된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소회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사교성 좋은 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평중은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 오래되어도 그를 공경하는구나.” (子曰  晏平仲善與人交 久而敬之)『논어』「공야장」, 16   안평중은 우리가 흔히 안자(晏子)라고 알고 있는 제나라의 대부이다. 이름은 영(嬰)이고 자가 평중이다.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그가 죽은 해는 기원전 500년으로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보다 50세 정도 많다. 『안자춘추』라는 책이 남아 있는데 안자가 쓴 것은 아니고, 안자의 언행을 모아서 후대 사람들이 만든 책이다. 사마천은 『사기』 「관안열전」에 안자를 소개하면서 “만약 안자가 지금 살아 있다면, 그를 위해서 마부가 되어 채찍을 드는 일이라도 할 정도로 나는 안자를 흠모하고 있다.(假令晏子而在,余雖為之執鞭,所忻慕焉)”고 평했다. 흔히 가장 이상적인 군신관계를 이야기 할 때 관중과 제환공을 예로 드는데 안자와 제경공도 그에 못지않게 본다. 그러니까 안자는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 가장 명망이 높았던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논어』에는 안자에 대해 이렇게 단 한 줄의 평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평도 ‘남과 사귀기를 잘한다.’라니,...
진달래
2021.07.23 | 조회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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