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여성들은 정말 불행했을까] ‘부모(傅母)’를 아시나요?

고은
2022-10-08 12:12
403

 

 

1. 엄마와 작은 이모

 

   외가는 강원도의 깊은 시골에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유학길에 올라야 했던 탓에 오 남매 모두가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두 삼촌은 대학교까지 마쳤지만, 이모들은 일찍 생활전선에 올랐다. 엄마는 자매 중 오직 자신만이 우여곡절 끝에 학업을 이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 작은 이모와 밥을 먹다가 엄마가 어떻게 학업에 계속 할 수 있었는지 듣게 되었다. 작은이모는 당신의 동생인 나의 엄마가 학업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그 뜻을 피력하기 위해 며칠 동안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결국 할머니가 두 손 두 발을 드셨기에 엄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찾아와 설득해도 꿈쩍하지 않던 할머니는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자신을 따라 생업에 동참한 작은 이모의 말을 쉽게 모르는 척할 수는 없으셨을 것이다.

 

  작은이모는 종종 당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중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는 단골 소재인데,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0살 때부터 작은이모와 가까이에서 살았던 나는 그녀의 포용력과 다정함이 총명함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모만큼 곤란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무슨 말을 듣든 그 요지를 곧바로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런 이모의 단식투쟁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모는 당신 앞에 있는 두 조카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엄마는 이모의 선견지명(?)에 따라 집안에서 가장 좋은 학벌을 갖게 되었는데, 그 첫째 조카딸인 나는 대학을 자퇴하고 둘째 조카딸인 내 동생은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2. 장강과 그의 선생, ‘부모(傅母)’

 

   엄마가 어렸을 때처럼 ‘교육'이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교육'을 하는 사람도, ‘교육'을 받는 사람도 남성이라고 여겨지던 시대 말이다. 대개 여성은 오래도록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해왔다고, 남녀 대부분이 대학교에 진학하는 지금에서야 남녀는 평등하게 ‘교육'을 받는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러나 <열녀전>에는 여자가 교육받지 못한 것이 뿌리 깊은 전통일 것이라는 통념과 어긋나는 내용이 담겨있다. 고대 귀족 여성은 자신의 방을 나설 때 반드시 다른 여성들과 함께 다녀야 했다. 그중 하나가 신체의 예절을 알려주는 유모였고, 다른 한 명이 덕과 의를 가르치는 ‘부모(傅母)’였다. 스승 부(傅)와 어미 모(母)가 결합한 ‘부모(傅母)’는 여자들의 여자 스승인 셈이다. 부모(傅母)는 <열녀전> 곳곳에 등장하는데, 그중 ‘제녀부모'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위나라 왕의 정실부인인 장강은 미인이었다. 장강은 처음 위나라에 시집왔을 때 제멋대로 굴고, 행색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미고, 방만한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장강의 부모(傅母)는 아마도 장강이 시집오기 전부터 함께 생활했던 선생이었을 것이다. 부모(傅母)는 그런 장강을 보고 그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하고, 시를 지어 한 번 더 설득한다. 장강은 마침내 부모(傅母)의 말을 듣고 감동하여 스스로를 바로잡는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처음 위나라에 왔을 때 못 말리는 철딱서니였던 장강은 부모(傅母)덕에 개과천선한 뒤, 훗날 <시경>, <사기세가>, <춘추좌전>에도 등장하는데, 역사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현명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다른 역사책에 따르면 장강의 현명함이 더욱 도드라지는 것은 그의 남편인 위나라 왕 때문이다. 장강의 남편은 난폭하고 무절제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총애하던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군사놀이를 하는 등 호전적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 용인하고 방치했다. 결국 후궁의 아들은 장강의 남편인 위나라 왕이 죽고 몇 년 뒤 그 자리를 찬탈했다. 물론 후궁의 아들은 얼마 못 가 쫓겨났지만, 그로 인해 위나라가 큰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이는 모두 장강의 남편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장강은 자기 남편과 다르게 문제가 된 후궁의 아들을 일찌감치 싫어했다고 나온다. 훗날 문제를 일으킬 사람을 일찌감치 포착할 줄 아는 현명한 인물로 그려진 것이다.

 

 

 

 

 

3. 여성들의 공동체

 

   장강이 어렸을 때 제멋대로 굴었다는 캐릭터 설정은 그녀의 출신과 관련이 있다. 제나라의 제환공은 패자(霸者)가 되는데, 장강은 그보다 약 100년 전의 사람이다. 장강 생전에 제나라는 훗날 패자(霸者)를 배출할 수 있을만큼 국력을 탄탄하게 쌓아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힘 있는 공주인 장강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던 부모(傅母)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실 장강의 부모(傅母)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다. 장강과 부모(傅母)의 에피소드는 <열녀전>에만 등장하고, <열녀전>에도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한 정보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부모(傅母)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열녀전>에서 장강의 부모(傅母)가 했던 말을 살펴보면서 부모(傅母)가 어떤 존재였을지 나름대로 상상해보았다.

 

   ‘제녀부모’ 에피소드는 거의 장강 부모(傅母)의 말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엄청난 달변가였다. 부모(傅母)는 숨 돌릴 틈 없이, 장강이 끼어들 틈 없이 촘촘하게 맥락을 짜서 자기 생각을 전달한다.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맥락이 상당히 세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모(傅母)는 먼저 장강의 친정인 제나라가 얼마나 존귀한 나라인지 칭송하며 장강의 귀를 연다. 그리고는 거기에 제나라가 그토록 존귀한 것은 힘이 세거나 재물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대대로 백성의 모범이 되어왔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단다. 부모(傅母)가 이 말을 함으로써 장강은 순식간에 장강이 꾸민 화려함이 아닌 물려받은 덕으로 인하여 존귀한 사람이 된다. 이어서 부모(傅母)는 장강이 위나라에 온 것 역시 덕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말로 장강이 위나라에 온 본분을 짚고 시를 지어 정리하며 말을 마무리한다. 즉 부모(傅母)는 당시 국력을 키워가고 있었던 장강의 친정 제나라의 위세를 거론하며 장강을 띄워주지만, 그 위세는 힘이 아니라 덕으로부터 나왔다고 강조하며 장강이 무엇을 까먹고 있었는지 상기시킨 것이다.

 

   부모(傅母)의 말을 보면 그의 교육 수준과 교양수준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부모(傅母)가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장강에게 꼭 필요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이 있는 제나라에서 왔다고 하더라도, 장강은 난폭하고 무절제한 남편에게 총애받지 못하고 적자도 낳지 못한 처지였다. 장강은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큰 문제로 불거지거나 곤란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니 장강과 일상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던 부모(傅母)의 역할은 오늘날 짧은 시간 동안 만나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의 역할보다는 더 큰 것이었다. 제나라에서부터 함께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그들은 일종의 공동체와 같아서 일상의 지혜를 나누고 앞날을 함께 헤쳐 나가는 관계였을 것이다.

 

 

 

 

 

 

4. 작은 이모, 어쩌면 부모(傅母)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묘하게 부모(傅母)에게 마음이 갔다. 물론 <열녀전>에 나오는 여자들은 대부분 현명하고 능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장강 부모(傅母)의 총명함은 나의 작은 이모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장강의 부모(傅母)와 작은이모는 모두 귀가 밝아 말의 요점을 언제나 명확하게 이해하고 눈이 맑아 문제가 생겨도 어디로 가야 할지 제대로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앞날을 생각하며 여성들을 도왔다. 적자를 낳지도 총애받지도 못했던 왕후였던 장강과 여성이기 때문에 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뻔했던 나의 엄마는 그녀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장강과 그 부모(傅母)처럼 엄마와 작은이모도 서로의 일상을 돕고, 지혜를 나누고, 그로부터 배우며 함께 삶을 일궈가는 여성 공동체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이모는 나와 동생에게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작은이모는 내가 10살일 때부터 털털한 나의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 자매에게 머리를 손질하는 방법, 좋은 옷을 고르는 방법,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말과 표정이 풍부하지 않아 때때로 로봇 같다는 소리를 듣는 나는 사근사근하게 사람을 챙기는 방법, 곤란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방법,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작은이모에게서 배웠다. 고모나 이모가 부모(傅母)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작은이모를 나의 부모(傅母)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글을 쓰다 보니 알겠다. 작은이모는 나와 동생의 진학 문제로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작은이모는 엄마처럼 공부를 잘하는 나를 보곤 미국의 유명한 대학교의 이름을 열거하며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작은 이모의 말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솟아났다. 내가 일반적인 진로를 벗어난 뒤부터 작은이모는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아끼지만, 대신 밥을 사주시고 쇼핑에 데려가신다. 작은이모는 엄마가 학교에 진학했을 때처럼, 내가 대학을 자퇴하고 동생이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을 때도 나름의 방식으로 응원하고 격려하고 계셨을 것이다.

 

 

 

댓글 1
  • 2022-10-12 11:51

    오호! 고은님 글 덕분에 부모(傅母)라는 새로운 말을 배웠습니다.^^

    서로에게 배우며 부모(傅母)가 되는 여성들의 관계를 즐겁게 떠올려 봅니다.

지난 연재 읽기 소설을 읽읍시다
'인생'이란 '허무'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어째서 '허무'가 문제가 되는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고 난 후에는, 흙과 먼지가 되고 만다. 죽음은 생(生)에 대한 모든 감각을 유지시켜 주던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과는 별개로 죽은 자 자신에게 그의 삶은 완벽한 '무의미'가 되고 만다. 살면서 누렸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 사는 것은 고통스럽다. '허무'는 생生의 옷을 입고 나타난 '죽음'이다. 쾌락을 추구하고, 성취를 갈망하고, 철저한 소명의식을 마음속에 품고, 안간힘을 쓰면서 생의 기록을 남기는 이 모든 인간적인 행위들의 이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근본적인 '허무', 존재가 흩어져버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망각하지 않고서는 삶을 지속할 수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가 다루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 시작부터 역설이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 갑옷 속에는 정작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갑옷이 말하고, 갑옷이 움직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갑옷'조차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 아질울포의 '정체'는 그 자신의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순결을 잃을 뻔 한 귀족 처녀를 구해내고 받은 기사작위, 기사로서 걸치고 있는 갑옷, 기사로서 얻은 전쟁에서의 공훈만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질울포가 진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묻지는 말자. 차라리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다른 것이다....
'인생'이란 '허무'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어째서 '허무'가 문제가 되는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죽고 난 후에는, 흙과 먼지가 되고 만다. 죽음은 생(生)에 대한 모든 감각을 유지시켜 주던 의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억과는 별개로 죽은 자 자신에게 그의 삶은 완벽한 '무의미'가 되고 만다. 살면서 누렸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 사는 것은 고통스럽다. '허무'는 생生의 옷을 입고 나타난 '죽음'이다. 쾌락을 추구하고, 성취를 갈망하고, 철저한 소명의식을 마음속에 품고, 안간힘을 쓰면서 생의 기록을 남기는 이 모든 인간적인 행위들의 이면에는 어찌 할 수 없는 근본적인 '허무', 존재가 흩어져버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망각하지 않고서는 삶을 지속할 수가 없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가 다루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이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 시작부터 역설이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 갑옷 속에는 정작 갑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갑옷이 말하고, 갑옷이 움직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갑옷'조차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자', 아질울포의 '정체'는 그 자신의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순결을 잃을 뻔 한 귀족 처녀를 구해내고 받은 기사작위, 기사로서 걸치고 있는 갑옷, 기사로서 얻은 전쟁에서의 공훈만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질울포가 진짜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묻지는 말자. 차라리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다른 것이다....
정군
2023.05.16 | 조회 426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1. Hey Listen Mr. Big      요즘 음원 차트를 살피느라 분주하다. 4세대 여자 아이돌들의 전성기라고 떠들썩한 만큼, 나의 혼을 쏙 빼놓는 멋진 노래와 무대가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고 화려하게 꾸민 여성 아이돌이나 여성 솔로 댄스 가수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여성 댄스 가수에 환장한다.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여성 댄스 가수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꽤 윗자리에 이효리가 있다. 이효리는 ‘10 minutes’과 같은 섹스어필을 주 코드로 삼았는데, 3집부터 다른 색깔을 보이기 시작했다. 3집의 타이틀 곡으로는 능동적인 여성성을 주장하는 ‘U-Go-Girl’을, 후속 활동 곡으로는 남성성에 대해 질문하는 ‘Hey Mr. Big’이라는 노래를 들고나왔다.   'Hey Mr. Big' 뮤직비디오 장면   “자랑만 가득한 말마다 따분한 미래가 아득한 소년들이여 가슴이 따뜻한 생각이 반듯한 조금은 차분한 남자가 돼줘 (…) 남자의 싸움은 힘 아닌 희망이 커질 때 언제나 승리가 보여 (…) Hey Listen Mr. Big (…)” (-'Hey Mr. Big')      이효리는 이 노래를 통해 ‘척'하는 남성들에게 질문하는 당찬 여성 가수가 되었다. '훌쩍 넓어진 어깨로 죽어도 지켜줄 여자를 안길'과 같은 가사가 있다는 건 아쉽지만, 이 노래가 대중가요에 페미니즘 문화가 접목되기 이전인 2008년에 발매되었음을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노래의 주요한 흐름 속에서 화자는 마초가 되기를 자처하고 허세 부리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비판하고 그런 문화에 동조하는 남성에게 자기 말을 ‘잘 들으라’고 조언한다....
1. Hey Listen Mr. Big      요즘 음원 차트를 살피느라 분주하다. 4세대 여자 아이돌들의 전성기라고 떠들썩한 만큼, 나의 혼을 쏙 빼놓는 멋진 노래와 무대가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고 화려하게 꾸민 여성 아이돌이나 여성 솔로 댄스 가수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여성 댄스 가수에 환장한다.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 여성 댄스 가수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꽤 윗자리에 이효리가 있다. 이효리는 ‘10 minutes’과 같은 섹스어필을 주 코드로 삼았는데, 3집부터 다른 색깔을 보이기 시작했다. 3집의 타이틀 곡으로는 능동적인 여성성을 주장하는 ‘U-Go-Girl’을, 후속 활동 곡으로는 남성성에 대해 질문하는 ‘Hey Mr. Big’이라는 노래를 들고나왔다.   'Hey Mr. Big' 뮤직비디오 장면   “자랑만 가득한 말마다 따분한 미래가 아득한 소년들이여 가슴이 따뜻한 생각이 반듯한 조금은 차분한 남자가 돼줘 (…) 남자의 싸움은 힘 아닌 희망이 커질 때 언제나 승리가 보여 (…) Hey Listen Mr. Big (…)” (-'Hey Mr. Big')      이효리는 이 노래를 통해 ‘척'하는 남성들에게 질문하는 당찬 여성 가수가 되었다. '훌쩍 넓어진 어깨로 죽어도 지켜줄 여자를 안길'과 같은 가사가 있다는 건 아쉽지만, 이 노래가 대중가요에 페미니즘 문화가 접목되기 이전인 2008년에 발매되었음을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노래의 주요한 흐름 속에서 화자는 마초가 되기를 자처하고 허세 부리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비판하고 그런 문화에 동조하는 남성에게 자기 말을 ‘잘 들으라’고 조언한다....
고은
2022.12.24 | 조회 360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봄꽃을 말하지 않는 봄절기    봄이면 꼭 벚꽃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그런 데 갈 바에 차라리 뒷산으로 산책하러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꽃잎이 휘날리면 한 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고 집 근처 공원을 두고 멀리 나갈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꽃놀이하러 갈까? 하고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봄꽃은 이렇게 이성을 살짝 흔들어버릴 정도로 사람을 설레고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것 같다. 봄이 되어 한가롭게 꽃이 핀 거리를 거닌다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봄, 하면 이렇게 봄꽃을 빠트릴 수 없다.    하지만 절기에서는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봄꽃에 대한 찬사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고대 사람들은 봄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도대체 봄에 따뜻한 기온을 반기듯 피어나는 꽃들이 아닌, 무엇을 보았던 걸까?            2. 비雨, 봄을 알리는 신호탄    입춘은 봄기운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절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1월 1일에 시작하는 달력과 다르게 절기에서는 봄을 일 년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봄절기를 살펴보면 시기마다 변화하는 봄의 풍경을 떠올릴 수...
  *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봄꽃을 말하지 않는 봄절기    봄이면 꼭 벚꽃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나는 그런 데 갈 바에 차라리 뒷산으로 산책하러 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꽃잎이 휘날리면 한 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꽃보다 사람이 더 많고 집 근처 공원을 두고 멀리 나갈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꽃놀이하러 갈까? 하고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봄꽃은 이렇게 이성을 살짝 흔들어버릴 정도로 사람을 설레고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것 같다. 봄이 되어 한가롭게 꽃이 핀 거리를 거닌다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가. 봄, 하면 이렇게 봄꽃을 빠트릴 수 없다.    하지만 절기에서는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봄꽃에 대한 찬사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고대 사람들은 봄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도대체 봄에 따뜻한 기온을 반기듯 피어나는 꽃들이 아닌, 무엇을 보았던 걸까?            2. 비雨, 봄을 알리는 신호탄    입춘은 봄기운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절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1월 1일에 시작하는 달력과 다르게 절기에서는 봄을 일 년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봄절기를 살펴보면 시기마다 변화하는 봄의 풍경을 떠올릴 수...
동은
2022.12.13 | 조회 303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1. 엄마와 작은 이모      외가는 강원도의 깊은 시골에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유학길에 올라야 했던 탓에 오 남매 모두가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두 삼촌은 대학교까지 마쳤지만, 이모들은 일찍 생활전선에 올랐다. 엄마는 자매 중 오직 자신만이 우여곡절 끝에 학업을 이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 작은 이모와 밥을 먹다가 엄마가 어떻게 학업에 계속 할 수 있었는지 듣게 되었다. 작은이모는 당신의 동생인 나의 엄마가 학업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그 뜻을 피력하기 위해 며칠 동안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결국 할머니가 두 손 두 발을 드셨기에 엄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찾아와 설득해도 꿈쩍하지 않던 할머니는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자신을 따라 생업에 동참한 작은 이모의 말을 쉽게 모르는 척할 수는 없으셨을 것이다.     작은이모는 종종 당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중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는 단골 소재인데,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0살 때부터 작은이모와 가까이에서 살았던 나는 그녀의 포용력과 다정함이 총명함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모만큼 곤란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무슨 말을 듣든 그 요지를 곧바로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런 이모의 단식투쟁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모는 당신 앞에 있는 두 조카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엄마는 이모의 선견지명(?)에 따라 집안에서 가장 좋은 학벌을 갖게 되었는데, 그 첫째 조카딸인 나는 대학을...
    1. 엄마와 작은 이모      외가는 강원도의 깊은 시골에 있다.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유학길에 올라야 했던 탓에 오 남매 모두가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었다. 두 삼촌은 대학교까지 마쳤지만, 이모들은 일찍 생활전선에 올랐다. 엄마는 자매 중 오직 자신만이 우여곡절 끝에 학업을 이을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 작은 이모와 밥을 먹다가 엄마가 어떻게 학업에 계속 할 수 있었는지 듣게 되었다. 작은이모는 당신의 동생인 나의 엄마가 학업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그 뜻을 피력하기 위해 며칠 동안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 결국 할머니가 두 손 두 발을 드셨기에 엄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찾아와 설득해도 꿈쩍하지 않던 할머니는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자신을 따라 생업에 동참한 작은 이모의 말을 쉽게 모르는 척할 수는 없으셨을 것이다.     작은이모는 종종 당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중 공부를 잘했다는 이야기는 단골 소재인데,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10살 때부터 작은이모와 가까이에서 살았던 나는 그녀의 포용력과 다정함이 총명함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모만큼 곤란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무슨 말을 듣든 그 요지를 곧바로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런 이모의 단식투쟁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모는 당신 앞에 있는 두 조카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엄마는 이모의 선견지명(?)에 따라 집안에서 가장 좋은 학벌을 갖게 되었는데, 그 첫째 조카딸인 나는 대학을...
고은
2022.10.08 | 조회 403
지난 연재 읽기 다른 20대의 탄생
*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1.       살아가면서 가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도대체 왜 등산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등산에 재미를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렇게 등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산의 풍경 때문이다. 똑같은 산길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 때문에 지겹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새잎이 피어나는 봄, 강렬하게 푸르른 초록색을 느낄 수 있는 여름,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을, 고요한 침묵을 느낄 수 있는 겨울. 계절마다 바뀌는 그 풍경을 거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등산을 좋아하지도, 산의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가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거다. 가까운 친구는 날씨와 계절이 일정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그저 사계절의 단점이 모두 모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큼 계절의 변화를 재미있게 생각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부정적으로...
*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1.       살아가면서 가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도대체 왜 등산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등산에 재미를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렇게 등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산의 풍경 때문이다. 똑같은 산길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 때문에 지겹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새잎이 피어나는 봄, 강렬하게 푸르른 초록색을 느낄 수 있는 여름,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을, 고요한 침묵을 느낄 수 있는 겨울. 계절마다 바뀌는 그 풍경을 거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등산을 좋아하지도, 산의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가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거다. 가까운 친구는 날씨와 계절이 일정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그저 사계절의 단점이 모두 모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큼 계절의 변화를 재미있게 생각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부정적으로...
동은
2022.09.16 | 조회 39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