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 밀양통신 - 6회] 또래 친구

밀양통신
2018-07-10 01:53
742

또래 친구

  

 

 

 

 

어지니 프로필01.jpg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패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살이 더 빠져보인다,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이다. 반면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겠어요.” . 지금까지 이 말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인사치레로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타인이 나의 고생을 이런 식으로 위로해주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고됨이나 외로움은 걱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밀양 할매들과 대책위 식구들이라는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이자, 고됨을 견디는 동료가 있었다. 이들은 띠동갑, 두 띠동갑, 세 띠동갑도 넘는 나이에도 나를 존중해주었고, 그래서 나는 남들이 보기에 미친 듯이살 수 있었다. 50대 농부가, 20살짜리에게 꼬박 꼬박 이라고 불러주는 일은 흔치 않다. (모두 이렇게 사는 세상이 오면 참 좋을텐데   

 

할매들젊은 나이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않고 여기에 계속 잡혀서 어쩌노.”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여기도 즐거운데,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하실까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되어 놀기 시작한 지 세 달, 이제야 내게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 둘 느껴진다. 집이나 자동차 같은 것들은 없으면 몸이 조금 힘들 뿐이지만, 남아도는 이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가 없으니 너무나도 심심하고 허하다. 흥이 점점 사라진다. 문득 문득 재밌을 것만 같은 일거리(돈을 왕창 벌 아이디어.ㅋㅋ)가 생각나도 내 머릿속 상상으로만 끝난다. 어디 말할 곳이 없으니 메모를 하다가도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상은 말로 내뱉고, 돌아오는 말을 받아야 커지기 마련인데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들어줬으면, 응원해주었으면 넘길 수 있는 고통, 분노와 같은 것들은 나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고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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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또래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또래 친구를 만나려면 두렵기도 하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내 입에서 완전 꼰대 같은 말들이 튀어나오기(나오려하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렇다.”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해보면 부끄럽고 미안하다. 점점 말수를 줄이고 또래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된다. 수 년 동안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예의 바름적당히 무시할 수 있는 배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나 자신이 내가 무시하고 싶었던 사람처럼 변해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어떻게 해야 이 깝깝한 삶을 신명나게 되돌릴 수 있을까. 돈 열심히 벌어서 맛있는 거 사먹고, 사고 싶은 옷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것은 좀 슬프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내가 속했던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라는 조직에서 빠져나온 지금, 같이 무언가를 작당 해볼 친구는 곁에 한 사람도 남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걱정한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은 알겠다. 나는 일상의 친구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근데 나만 그런걸까.

 

 

도시든, 시골이든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나 큰 도시로 가는 상상을 가끔 한다. 작은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해봤을법한 생각이다. 일거리도, 놀거리도 없는 이 공간에서 고립감과 ‘NO은 아주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동기부여가 되면서 먹고 살만한 일재밌는 놀거리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사람이 살아남는 방법은 매우 한정적이다. 부모님에게 공구상이나 농사일 같은 사업을 물려받거나, 나처럼 일용직 혹은 알바로 돈을 버는 일 정도가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 심지어 대부분의 경우에는 큰 돈도 되지 않는다. 소멸해가는 소도시에서 젊은 사람이 살아남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보니 한 지역에서 오래 버티는 청년들을 만나기가 힘들다. 2016년 여름, 밀양 청년 여럿이 모여 놀아보자며 너나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7~8명의 사람들이 함께 했는데 2년 만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는 광역 범위가 바뀌었다. 우리는 서울로, 부산으로 각자 할 일을 찾아 떠났다. 말리고 싶어도 말릴 수가 없는 것이 마치 모래 위 잡초가 홍수에 쓸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친구를 잃어 가다보니, 자연스레 사람이 많은 곳을 동경하게 된다. 그곳에는 더 많은 일거리와 놀거리, 기회들이 가득할 것만 같다.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좋은 사람들은 다 도시로 간 것 같은데, 그래서 당신들은 즐거운가. 당신들의 대답이 꼭 듣고 싶다. 대부분이 여긴, 나름 즐거워라고 말한다면 나도 내일이라도 짐을 싸고 도시로 가고 싶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곳에 사는 청년들은 어떤 처지일까. 그 곳도 먹고 살기 힘들고 모여 놀기는 더 힘들까. 일에 치이고, 꼰대 상사에 치여가며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희망이 없는 세상인데 우리는 뭐가 좋다고 꾸역꾸역 살까. 그만두면 갈 곳이 없어서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세상을 이따위로 만들어놓은 인간들은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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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또래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동의 경험(먹고 사는 일이든, 노는 일이든)이 얼마나 소중할까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은 청년 정책이랍시고 매 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첫 번째가 일자리문제, 두 번째가 주거 문제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것들만 해결된다고 우리네 삶은 바뀔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안정적인 집과 일이라는 결과만큼, 목적지 까지 걸어가는 과정 또한 중요하지 않나. <또래가 함께 겪는 공동체적 경험>은 삭제시키고 모든 것을 <돈과 힘으로 세운 질서>로 돌아가게 만드는 사회는 그 길을 좁고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뜻 있는 일들을 시도하는 순간 빈곤해지고, 피곤해지다가 망할 확률은 거의 100%에 가깝다. ‘함께 이루는 즐거움만이 깊은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 같은데, 그것을 도모하는 순간 망하는 모순적 상황을 맞고 만다. 집 생기고, 돈 잘 번들 삶이 즐겁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청년의 이름으로 세상과 싸우는 우리들의 논리도 빈약하긴 마찬가지다. 젊은이의 몫을 더 달라고 싸울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몫을 만들어내는 방법 자체를 바꿔내야 한다. 나의 처지가 역전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집도 없고 돈도 없지만, ‘친구와 인생 재미나게 놀다가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 제일 두렵다. 아재들만 가득한 시골에서, 모든 것이 버글버글 하지만 홀로 외로울 도시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이 씁쓸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라며,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조기 꼰대화가 되지 않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며, 언젠가는 함께 일터에서 만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누군가를 억압하고 삭제시키지 않고, 혼자 희생하지 않고, 함께 고생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NM

 

 

댓글 7
  • 2018-07-10 02:36

    도시에서 살 사람과 시골에서 살 사람이 어디 정해져있당가.

    나 역시 문탁에 또래 남자친구들이 버글버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2018-07-10 07:45

    함께 놀고 작당모의할 또래들이 모일 여유가 없는 삶이라니... 확 다가옵니다.

    돈과 모더니티 에세이이군요^^ 

  • 2018-07-10 09:28

    어진아,  동천동에 친구들 많잖아?

    어진아, 길드다 객원회원 할래?

    춘천에도, 밀양에도 길드다 회원으로 있을 수 있어.

    일단 한달에 한번 올라와서 뭔가를 해보는 것,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디.

    그리고...음.....공부해야 하는데, 괜찮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18-07-10 11:18

    몇년 전 광주에서 올라와 문탁에서 공부하던 수아가... 외롭다고 울었던 것이 기억나네.

    수아도 ..우리도.. 또래가 없어서라고... 진단했지만... 과연 그럴까?

    아무래도...나는...조기 꼰대화가 원인일듯한데...

    조기 꼰대화된 동류들을 찾아나서심이 어떠실지...^^

  • 2018-07-10 19:27

    '함께 하는 즐거움을 도모하는 힘'..... 어떻게 키울까.... 나에게도 어려운 질문^^

  • 2018-07-11 10:33

    요사이 스피노자를 공부하면서 느낀건데요,

    민주주의와 우정이 같이 간다는 거에요.

    우정은 위계적 사회에서는 싹틀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또래 친구가 더 중요해졌을까요?

    암튼 저도 요사이 우정이 화두로 올라와 있습니다.

  • 2018-07-11 11:50

    아이고 우리 어진이 보러 8월에 밀양 가야지~

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갑작스러운 인사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진입니다. 오랜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저번 달 원고 약속을 깬 것은 죄송합니다. 망가진 몸과 마음 때문인지, 마주쳐 본 적 없는 벽에 막힌 듯한 느낌 때문인지 말이 나오지 않아 쉬어버리게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은 약속을 마저 지키지 못 할 것 같아서요. 스스로를 가다듬고, 남은 3개월 간 밀양 소식을 전하려던 찰나에 또 다른 일이 닥쳤습니다. 9월 17일, 소집 영장이 예고 없이 날아왔습니다.     어쩌면 운 좋게 빗겨갈 수도 있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판정 난 이는 신체검사를 받은지 4년이 지나면 ‘장기대기자’라는 명목으로 면제가 된다는 것을 올 초 병무청과 통화한 후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엄청나게 재수 좋은 일이 나에게는 생길 것이라는 희망(착각)으로 숨죽여 남은 날을 새었습니다. 8월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그 희망이 현실이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목수 일을 제대로 해보려 트럭도 사고, 드릴도 두개나 사는 바보 같은 짓을 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징집 시스템이었다면 군은 유지되지도 않았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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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통신
2018.10.18 | 조회 821
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강정 마을 사람, 딸기에게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살면서 처음 해 보는 일이네요. (그것도 공개적으로) 우리는 서로 현장의 활동가로 만나, 매번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눈짓 한 번, 짧은 말 한 마디 한 번씩만 나누며 몇 년을 알고 지내며 함께 차 한 잔 해볼 수도 없었네요. 밀양 주민과 함께 제주에 가거나, 서울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때 말고는 얼굴 보기도 참 힘들었어요. 강정에서 살며 겪는 일의 자세한 사정도, 당신의 속내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관함식’ 때문이에요. 정확히는 강정마을에 사는 평화활동가들의 마음이 끊임없는 무너짐의 연속일까 걱정되어, 어떻게 하면 조금의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속상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당신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만 할까봐 글을 시작하는 지금도 조금 망설여지네요.         편지를 쓰다 막 올라온 주민투표 결과를 보았어요. 뉴스에는 숫자로만 보여질 저 결과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짐작이 되지 않아요. 결국 이번에도 청와대는 다른...
      강정 마을 사람, 딸기에게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살면서 처음 해 보는 일이네요. (그것도 공개적으로) 우리는 서로 현장의 활동가로 만나, 매번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는 눈짓 한 번, 짧은 말 한 마디 한 번씩만 나누며 몇 년을 알고 지내며 함께 차 한 잔 해볼 수도 없었네요. 밀양 주민과 함께 제주에 가거나, 서울에서 기자회견이 있을 때 말고는 얼굴 보기도 참 힘들었어요. 강정에서 살며 겪는 일의 자세한 사정도, 당신의 속내도 잘 모르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관함식’ 때문이에요. 정확히는 강정마을에 사는 평화활동가들의 마음이 끊임없는 무너짐의 연속일까 걱정되어, 어떻게 하면 조금의 위로라도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속상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당신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만 할까봐 글을 시작하는 지금도 조금 망설여지네요.         편지를 쓰다 막 올라온 주민투표 결과를 보았어요. 뉴스에는 숫자로만 보여질 저 결과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짐작이 되지 않아요. 결국 이번에도 청와대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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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 조회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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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 친구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의 실패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살이 더 빠져보인다, 얼굴이 힘들어 보인다.”이다. 반면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겠어요.” 다. 지금까지 이 말들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나 속이 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인사치레로 생각하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거니와, 오히려 타인이 나의 고생을 이런 식으로 위로해주는 것을 은근히 즐겼다.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고됨’이나 ‘외로움’은 걱정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밀양 할매들과 대책위 식구들이라는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이자, 고됨을 견디는 동료가 있었다. 이들은 띠동갑, 두 띠동갑, 세 띠동갑도 넘는 나이에도 나를 존중해주었고, 그래서 나는 남들이 보기에 ‘미친 듯이’ 살 수 있었다. 50대 농부가, 20살짜리에게 꼬박 꼬박 “쌤”이라고 불러주는 일은 흔치 않다. (모두 이렇게 사는 세상이 오면 참 좋을텐데)       할매들이 “젊은 나이에 친구들이랑 놀지도 않고 여기에 계속 잡혀서 어쩌노.”라는 말을 하실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여기도 즐거운데, 왜 저렇게 이야기를 하실까’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되어 놀기 시작한 지 세 달, 이제야 내게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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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 | 조회 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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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를 파면하라!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5월 11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밀양송전탑 경과지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밀양 방문은 10일 저녁 9시에 취소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이하 밀양대책위)는 국민인수위에 4대 요구안 접수(2017.6), 밀양송전탑 공익 감사 청구(2018.3) 등의 활동을 펼쳤고, 2018년 4월부터 정부조사단 논의가 시작되었다. 조사단의 활동은 마을공동체파괴/ 재산피해/ 건강피해에 대한 진상조사 후 제도개선으로 하며 위원장/ 법률 / 의학 / 갈등관리 / 회계 /에 각 1명씩 총 5인의 조사 위원을 두는 것으로 외부 전문가 그룹이 제안하였고, 밀양대책위와 산업부가 동의하여 장관 결제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5월 9일, 장관 방문 날짜와 장소, 동선, 발언자 주민 등 세부 사항까지 확정되며 장관 방문과 조사단 출범은 확정되는 듯 했으나 산업부 공무원들이 마지막에 발톱을 드러내며 일이 어그러졌다.                       조사단 구성에 대한 장관 결제를 전제로 진행된 방문이었다. 하루 전까지(10일) 5인 명단에 대한 장관 결제 확인이 되지 않자 밀양대책위는 방문 거부를 이야기 하며 항의했다. 그러자 산업부 전력산업과 과장은 “5인에 이견 없다. 믿고 가자”...
관료를 파면하라!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5월 11일,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밀양송전탑 경과지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밀양 방문은 10일 저녁 9시에 취소되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이하 밀양대책위)는 국민인수위에 4대 요구안 접수(2017.6), 밀양송전탑 공익 감사 청구(2018.3) 등의 활동을 펼쳤고, 2018년 4월부터 정부조사단 논의가 시작되었다. 조사단의 활동은 마을공동체파괴/ 재산피해/ 건강피해에 대한 진상조사 후 제도개선으로 하며 위원장/ 법률 / 의학 / 갈등관리 / 회계 /에 각 1명씩 총 5인의 조사 위원을 두는 것으로 외부 전문가 그룹이 제안하였고, 밀양대책위와 산업부가 동의하여 장관 결제까지 올라간 상황이었다. 5월 9일, 장관 방문 날짜와 장소, 동선, 발언자 주민 등 세부 사항까지 확정되며 장관 방문과 조사단 출범은 확정되는 듯 했으나 산업부 공무원들이 마지막에 발톱을 드러내며 일이 어그러졌다.                       조사단 구성에 대한 장관 결제를 전제로 진행된 방문이었다. 하루 전까지(10일) 5인 명단에 대한 장관 결제 확인이 되지 않자 밀양대책위는 방문 거부를 이야기 하며 항의했다. 그러자 산업부 전력산업과 과장은 “5인에 이견 없다. 믿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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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 조회 838
지난 연재 읽기 남어진의 밀양통신
  활동가가 아닌 삶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터가 바뀌었다.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 상근 활동가’ 일이 끝났다. 세상 돌아가는 소음과는 멀어졌고 기계소음이 가득한 곳과는 가까워졌다. 백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돈벌이가 필요해 공사 현장을 나가고 있다. 항상 마음이 시끄럽고 아팠는데, 이제는 귀가 시끄럽다. 망치로 손을 때리고, 부러진 칼날을 뽑아내다 베이기도 하며 일을 배운다. 요령이 없는 초보는 몸이 고생이다. 그날 공정에 따라서 아픈 부위는 달라진다. 짐통에 시멘트를 져 나르는 날에는 어깨가 아프고, 석고보드를 하루 종일 붙이는 날에는 팔뚝이 아프다. 한 순간만 방심하면 크게 무언가 잘못되는 것 말고는 대책위 일과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는 곳이다. 실수하면 큰소리가 날아오고, 긴장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 10만원이 생기고, 누군가 살 집을 짓는 매력 있는 일이니 즐겁다.    대책위를 그만두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를 무엇이라고 소개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밀양 대책위 활동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노가다 하러 다닙니다.”...
  활동가가 아닌 삶           글 : 남어진        안녕하세요. 저는 남어진이라고 합니다. 2013년 10월 공사가 들어왔을 때, 학교 그만두고 밀양에 왔다가 눌러 앉았습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일했고, 지금은 노가다일을 합니다만,  여전히 탈핵 탈송전탑 세상을 간절히 바라면서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터가 바뀌었다.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 상근 활동가’ 일이 끝났다. 세상 돌아가는 소음과는 멀어졌고 기계소음이 가득한 곳과는 가까워졌다. 백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돈벌이가 필요해 공사 현장을 나가고 있다. 항상 마음이 시끄럽고 아팠는데, 이제는 귀가 시끄럽다. 망치로 손을 때리고, 부러진 칼날을 뽑아내다 베이기도 하며 일을 배운다. 요령이 없는 초보는 몸이 고생이다. 그날 공정에 따라서 아픈 부위는 달라진다. 짐통에 시멘트를 져 나르는 날에는 어깨가 아프고, 석고보드를 하루 종일 붙이는 날에는 팔뚝이 아프다. 한 순간만 방심하면 크게 무언가 잘못되는 것 말고는 대책위 일과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는 곳이다. 실수하면 큰소리가 날아오고, 긴장 가득하다. 그래도 매일 10만원이 생기고, 누군가 살 집을 짓는 매력 있는 일이니 즐겁다.    대책위를 그만두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해야 할 일이 몇 번 있었다. 나를 무엇이라고 소개할지 망설여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밀양 대책위 활동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할까 하다가 그냥 “노가다 하러 다닙니다.”...
밀양통신
2018.05.01 | 조회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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