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3회] 장문중이 몰랐던 것

진달래
2023-10-01 10:27
43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문중(노나라 대부)이 큰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기둥머리에는 산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는 마름풀을 그렸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논어』「공야장,17」

 

 

『논어(論語)』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다. 더불어 당대 혹은 선대의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언급 되는데 생각보다 노(魯)나라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공자 당대에 권력자였던 삼환(三桓)을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나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논어』에 두 번 언급되는 장문중은 노나라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기 전까지 장문중이 노나라의 대부였다는 것 이외에 거의 아는 것도 없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장식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1. 썩지 않는 세 가지, 삼불후(三不朽)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의 명곡을 재해석하여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불후(不朽)는 ‘썩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후라는 말은 『춘추좌전』에서 유래했는데 노나라 양공(襄公) 24년, 숙손표가 진(晉)나라의 범선자와 나눈 대화에 등장한다.

범선자가 사람이 죽어도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숙손표가 덕을 세우는 것(立德)과 공을 세우는 것(立功), 말을 세우는 것(立言) 세 가지가 오래 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니 불후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후대에는 이 세 가지를 ‘삼불후(三不朽)’라고 칭하였다. 이 때 숙손표는 불후의 예로 장문중을 들었다.

 

“우리 노나라 선대부 중에 장문중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말씀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불후는)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魯有先大夫曰臧文仲 旣沒, 其立言 其是之謂乎)『춘추좌전』양공24년

 

장문중의 이름은 진(辰)으로 장손진(臧孫辰)이라 불린다. 문중(文仲)은 그의 시호이다. 공자보다 60여년 앞선 사람이다. 장(臧)씨는 춘추시대 초기의 노나라 공족 집안으로 12대 군주인 효공(孝公)의 후손이다. 희(姬)성인 노나라 공족이 장(臧)을 성으로 쓰게 된 것은 효공의 아들인 장희백(臧僖伯)의 자(字), 자장(子臧)을 성으로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집안은 장희백과 그의 아들인 장애백(臧哀伯)도 유명했는데 이들은 모두 군주가 예에 맞지 않은 일을 할 때면 간(諫)하는 것으로 『좌전』에 자주 등장한다.

장문중 역시 『좌전』에서 자주 그의 말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기(史記)』에서는 한 번도 언급 되지 않았다. 장문중은 노나라 장공(莊公), 민공(閔公), 희공(僖公), 문공(文公), 네 명의 군주를 섬기며 많은 일을 했다. 특히 장문중은 나라에 기근이 들었을 때 제나라로 가 곡식을 얻어 온 일로 크게 칭송 받았다. 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희공이 무녀(巫)와 곱사등이(尫)를 태워 죽이려고 했었을 때 막은 일로도 유명하다. 당시의 풍속에 이렇게 나라에 큰 재해가 들면 무당을 희생으로 바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장문중이 나와서 희공에게 간언을 한다.

 

“그것은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아닙니다. 성곽을 수리하고 음식을 줄이며, 비용을 아끼고 검소함에 힘쓰고 서로 나누어 먹도록 권장하십시오. 이것이 지금 당장 힘 써야 할 일입니다. 무녀(巫)나 곱사등이(尫)들이 어찌 하겠습니까? 하늘이 그를 죽이고자 한다면 태어나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능히 가뭄에 들게 할 수 있는 자라며 그를 불태워 죽이고 나면 가뭄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非旱備也 脩城郭 貶食省用 務穡勸分 此其務也 巫尪何為 天欲殺之 則如勿生)『춘추좌전』희공21년

 

미신적인 방법이 아닌 실질적으로 가뭄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는 장문중을 보면 그가 당시 사람들에 비해 매우 합리적인 사람인 듯하다. 뿐만 아니라 희공이 진(晉)나라에 들어가 땅을 나누어 받아오라고 시킨 적이 있는데 이 때, 묵었던 객관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빨리 가서 땅을 받아 온 적도 있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좌전』에 나온 여러 이야기들을 보면 숙손표가 왜 그를 입언(立言)이라고 칭했는지 이해가 된다.

 

  중국문자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점술용 귀갑  사진/쉬쉰(徐訊) 출처 인민화보

 

  1. (/큰거북 껍질)’가 뭐 길래

 

『춘추좌전』이나 『국어(國語)』에서 볼 수 있는 장문중에 대한 이야기들이 물론 모두 좋은 이야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녀와 곱사등이를 희생으로 하여 제사를 지내는 일에는 반대 했으나, 희귀한 새가 날아들자 그 새가 앉은 자리에 제사를 지내게 하는 등 일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

그런데 『논어』 속에 장문중에 대한 공자의 평은 그다지 썩 좋지 않다. 『논어』에는 장문중에 대해 두 번 언급하고 있는데 또 다른 글에서도 장문중이 당시 유하혜가 현명한 사람인 줄 알면서도 그를 천거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고 있다.

먼저 공자가 장문중에게서 문제로 삼은 것은 그가 ‘채(큰거북 껍질)’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걸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거북껍질은 당시 사람들이 점을 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대부 정도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채(蔡)는 크기가 큰 거북 껍질로 이는 나라의 큰 일이 있을 때 점을 치는 용도로 사용했다. ‘귀(龜)’와 ‘채(蔡)’는 둘 다 거북을 말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는 듯하다. 거북을 흔히 귀라고 했는데, 채는 특별히 보귀(寶龜), 원귀(元龜), 수귀(守龜)라고도 하고, 크기가 한 자 이상이 되는 큰 거북을 말했다. 그리고 이 채는 천자와 제후만이 소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장문중의 잘못은 일단 이 채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문중은 그 신분이 대부였으므로 채를 가질 수 없었다. 또 『주례(周禮)』를 살펴보면 귀와 채는 사당에 보관하는 것으로 따로 집을 만들어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면 기둥머리에 산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 마름풀을 그린 곳이 장문중의 사당이라는 건데, 이런 사당의 장식은 천자의 사당에서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대부는 할 수 없었다. 즉 채를 소장하는 것도, 사당의 장식도, 모두 예(禮)에 맞지 않는 것으로 천자 혹은 제후나 할 수 있는 것을 장문중이 대부의 신분으로 했다는 것이다. 후대의 주석가들은 장문중의 이런 태도를 관중이 궁에 있는 문을 가리는 병풍을 자기 집에 둔다거나 제후들의 회합 때 사용하는 반점(탁자)을 집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춘추시대는 신분제 사회이다. 신분제 사회의 특징은 모든 것이 예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주, 대부, 사, 평민 등이 점을 칠 때도 각각 그 신분에 맞게 해야 한다. 모두 거북점을 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거북점을 칠 때도 그 신분에 따라 거북이의 크기가 달랐다.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국립고궁박물관

 

  1. 장문중은 지혜롭지 않다

 

공자는 늘 이러한 신분을 넘는, 즉 예에 맞지 않는 행동, 또는 사치를 경계했다. 이는 관중을 평할 때나 장문중을 평할 때나 일관되게 보여주는 태도이다. 그런데 관중이 예에 맞지 않은 일을 할 때는 그가 인하지 않다고 했는데, 장문중의 경우 지혜롭지 않다고 여겼다.

문공 2년에 노나라가 태묘에서 큰 제사를 지내면서 희공(僖公)의 위패를 민공(閔公)보다 높여서 합사(合祀)를 했다. 희공은 민공의 형이었지만 민공이 먼저 군주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이는 순서를 거꾸로 제사 지내는 것이 되었다. 『좌전』은 이 일의 말미에 공자의 장문중에 대한 평을 달았다. 아마도 그가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을 꾸짖고 있는 듯하다. 공자는 여기서 장문중의 세 가지 인(仁)하지 못한 점과 세 가지 지혜롭지(知) 못한 점을 이야기했다.

 

“전금(유하혜)을 아래로 낮춘 것과 여섯 관문을 설치하고, 첩에게 돗자리를 짜서 팔도록 한 일은 세 가지 인하지 못한 일이다. 신분에 맞지 않는 쓸데없는 것을 설치하여 큰 거북을 보관하고, 순서를 거스르는 제사를 방치한 채 그대로 두고, 바닷새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 것, 이 세 가지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下展禽 置六關 妾織蒲 三不仁也 作虛器 縱逆祀 祀爰居 三不知也) 『춘추좌전』 문공2년

 

그런데 여기서 공자가 장문중에게 지혜롭지 못하다고 한 세 가지는 모두 당대에는 큰 영향을 미치는 일이 아닌 듯 보이나, 후대에는 어떤 전례가 될 수 있는 일들이다. 대부이면서 채를 소유한 것도, 희공의 위패를 민공보다 높여서 제사를 지낸 것도, 원거(爰居)라는 바닷새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 일이 그렇다.

바닷새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 일은 『국어』에서 볼 수 있는데, 바다에 접하지 않은 노나라에서 바닷새가 사흘이나 동문 밖에 앉아 있자, 이를 상서로운 일이라고 생각한 장문중이 제사를 지내게 한 일이다. 당시 제사는 국가의 일로 함부로 지낼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전례가 될 수 있는 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장문중은 한 번 제사를 지내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후대에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번거로운 예를 자꾸 만들어내게 된다. 공자가 이와 같은 일들을 ‘지혜롭지 못하다’고 한 것은 장문중이 이러한 판단 없이 즉,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람들 대부분이 장문중을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했다. 따라서 그가 채를 소유하고 그것을 보관하는 사당에 장식을 한 일 등은 그의 평판과 지위에 ‘그럴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자는 그의 이런 행동이 후대에 삼환이 태산에 제사를 지내고, 팔일무를 자기 집 마당에서 출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장문중이 많은 훌륭한 일들을 했음에도 지혜롭지 못한 인물로 남게 된 이유일 것이다.

댓글 4
  • 2023-10-02 17:20

    사치 좋아하는 누군가가 몹시 뜨끔한 글이로군요 ㅎㅎㅎ.
    '6공화국 말, 진관현에 살던 군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서랍 하나에 붓 열두자루와 잉크 열댓병을 넣어두었다. 혼자서 수레 두 대를 가지고 있었으니 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이에 대해 군이 말하길 '이번 생은 틀렸어...' ㅠㅠ

  • 2023-10-04 09:19

    장문중이 <좌전>에 많이 등장하는 군요 ㅎ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좌전>도 읽어야 ㅋ
    당대사람들의 평가와 공자님의 평가는 다른 면이 있네요.
    안과 밖이 일치해야 직(直)한 것이고, 직하지 않으면 이미 인하거나 지혜롭다고는 할 수 없을테니까요.

  • 2023-10-06 21:02

    팔일무에 대한 비판이 어쩌면 장문중에서부터..! 비판에도 계보가 있네요

  • 2023-10-07 15:08

    장문중은 스스로 의문의 1패라고 생각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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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3.11.05 | 조회 38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칠원의 관리, 장자   들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한 번 쪼고 백 걸음 걸어야 물 한 모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장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없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飮,不蘄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양생주」 『낭송장자』 100쪽     『사기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몽(蒙)땅 칠원(漆園)의 관리(吏)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몽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칠원이 옻나무를 심어 놓은 동산이라는 것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종이와 먹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죽간에 써서 기록을 남겼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액을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찍어 죽간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는 수종이 아닌데다, 씨앗의 발아율도 낮고 잔뿌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도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니 옻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옻나무 동산을 관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칠원의 관리는 중요한 직책은 아니어서 하급말단직이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견은 없다.        「양생주」 3장에는 들꿩의 살이가 나온다. 꿩은 땅 위를 걷는 새로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먹이는 나무 열매나 풀씨 등의 식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데, 작은 곤충도 먹는 잡식성이라고 한다. 먹이 대부분이 땅바닥에서 쪼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사냥감으로 노출되기 쉬워 식용으로도 널리 애용된 조류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늦봄 풀숲에 숨어서 피리로 장끼소리를 내면 꿩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기도 하는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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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10.25 | 조회 390
논어 카메오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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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23.10.01 | 조회 438
한문이예술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동은
2023.09.21 | 조회 544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요요
2023.09.20 | 조회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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