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불교산책16회]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요요
2023-09-20 20:35
453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설명하는 도식이 팔상성도(八相成道)이다. 도솔천으로부터 어머니의 자궁에 드는 입태(1)와 룸비니 동산에서의 출생(2), 성밖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을 마주하는 사문유관(四門遊觀)(3), 고뇌 끝에 집을 떠나는 출가(4), 설산에서의 고행(5), 보리수 아래에서의 깨달음(6), 다섯 비구에 대한 첫 설법(7), 사라쌍수 아래에서의 열반(8)이 그것이다. 깨닫기 전 고행이 팔상성도에 포함된 것을 보면 그의 고행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출가 수행자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강도높은 수행을 6년간이나 이어갔음에도 붓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고행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었다. 극단까지 고행을 밀어붙였던 붓다는 마침내 회의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마음의 집중과 통찰로

 

고행은 괴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괴로움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붓다는 고행이 올바른 수행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숙고하고 고행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붓다는 출가하던 그 날처럼 다시 출발점에 섰다. 그간의 수행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고 ‘깨달음에 이르는 다른 길’을 찾기로 한 그때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농경제에서 잠부나무 그늘 아래 선정에 들었던 기억이었다. 아마도 고대 인도의 명상적 문화의 전통 속에서 가능한 경험이었겠지만 그때 느꼈던 기쁨과 평화를 떠올린 것이다. 그동안 여러 고행을 해 온 붓다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와 같은 기쁨과 평화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 순간을 붓다는 이렇게 회고한다.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없는 즐거움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와는 관계가 없는 즐거움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맛지마니까야』 36 「삿짜까에 대한 큰 경」)

 

당대의 고행자들이 그랬듯이 붓다는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피해왔다. 즐거움이란 감각적 쾌락이나 불선한 마음의 상태라고 보고, 수행자를 삿된 길로 이끄는 마라의 속삭임이라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세속적 즐거움과 다른 영적인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자 그간 붓다를 지배해왔던 통념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떤 두려움도 없이 기꺼이 영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엄청나게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다. 이 전환으로부터 붓다는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고 어떤 조건에서 사라지는가를 살피는 해방의 길, 중도의 길을 찾아냈다. 그것은 거대한 파도가 될 영적 혁명의 시작이었다. 이제 붓다는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쌀죽을 먹었다. 붓다가 고행주의를 버린 것을 알게 되자 함께 수행하던 동료들은 배신감을 느끼고 손가락질 하며 떠나갔다. 붓다는 혼자가 되었다.

 

팔상성도에는 이 전환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고행의 장면이 아니라 고행을 버리는 장면이야말로 붓다를 붓다로 만든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붓다의 출가는 세속이 귀하게 여기는 부와 명예와 쾌락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가의 목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 떠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당시 거의 모든 출가자들이 귀하게 여기던 고행으로부터 떠나는 두번째 떠남이 있어야 했다. 고행으로 피폐해진 몸을 회복한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 앉아 깨어있는 마음으로 분명히 알아차리며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단단한 음식이나 쌀죽을 먹어 힘을 얻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안에서 생겨난 그러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습니다.(『맛지마니까야』 36 「삿짜까에 대한 큰 경」)

 

선정이 점차 깊어지자 평온과 고요 속에서 마음은 ‘때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유연하고 유능하게 확립되어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평정하고 동요 없는 상태가 되자 마음의 눈을 가리는 것이 없어진 만큼 통찰의 힘도 커졌다. 고요하고 집중된 마음은 번뇌의 발생과 소멸에 대한 앎으로 향했다. 붓다는 무상(無常)을 봄으로써 모든 것이 조건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어디에도 ‘나’와 ‘나의 것’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났다. 마침내 생로병사의 두려움과 탐·진·치의 번뇌로부터 자유로운 자,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깨달은 자, 붓다가 되었다.

 

깨달음의 장소 보드가야에 세워진 대탑

 

 

와서 보라

 

언젠가 꼬살라국의 왕 빠세나디는 번다한 일상에 지쳤을 때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왕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숲으로 갔다. 그런데 숲의 아름다운 정경을 보자 불현듯 숲에서 명상하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사는 붓다의 제자들이 떠올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모든 것을 보시와 탁발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안락을 누리는 수행자들의 행복이 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수레를 돌려 붓다를 찾아갔다. 그리고 붓다를 만나 경외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생각을 털어놓았다.

 

세존이시여, 여기에서 수행승들이 미소를 짓고, 즐거워하고, 참으로 기뻐하고, 감관이 청정하고, 평안하고, 두려움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주는 것으로 살고, 사슴처럼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을 보니 세존의 가르침 안에서, 차츰차츰 이루어지는 명상의 뛰어난 특징들을 깨닫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지마니까야』 89 「진실에 대한 장엄의 경」)

 

빠세나디 왕의 말에서 우리는 명상적 삶에 대한 찬탄을 발견한다. 선정의 행복을 누리는 붓다의 제자들의 모습은 빠세나디 왕에게도 다른 수행자 집단과 확연히 달라 보였다. 바로 그렇게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 때문에 당시 붓다의 제자들을 향해 ‘몸은 닦지 않고 마음만 닦는 자들’이라는 비난이 퍼부어지기도 했다. 붓다는 이런 비난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정으로 얻는 내면의 깊은 만족감이야말로 탁발 음식으로도 기쁨을 얻고, 나무 밑 처소에서도 안온하게 살고, 풀 섶을 깐 침구로도 만족하며 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가 제자들에게 마음을 집중하는 명상[samādhi, 定]만 중시하고 명상법만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붓다가 고행을 버리는 전환의 순간에 생각한 것을 다시 환기해보자. 명상의 즐거움은 감각적 쾌락이나 다른 존재는 아랑곳 없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와는 관계없는 영적인 즐거움이었기에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윤리적인 삶, 즉 계[sīla, 戒]를 지키는 삶을 토대로 한다. 계를 지키는 삶은 타자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다른 존재의 고통과 행복에 관심을 갖는 일상의 윤리 바로 그것이었다.

 

또 감각적 쾌락이 우리를 애착하게 하는 것과 달리 명상은 애착을 내려놓는 지혜를 향한다. 물론 우리는 명상의 즐거움에도 쉽게 집착한다. 그러나 붓다는 명상의 즐거움조차 조건적으로 생겨나고 조건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통찰하게 했고, 그럴 때 명상은 지혜의 완성, 통찰지[pannā, 慧]로 향하는 길이 된다. 그러므로 붓다가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끈 것은 ‘오직 명상’이 아니라 계·정·혜 삼학(三學)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명상 또한 일시적으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 것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 충실했던 붓다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찬탄했다.

 

벗이여, 나는 눈앞에 분명한 것을 제쳐두고 시간이 걸리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벗이여, 나야말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제쳐두고 눈앞에 분명한 것을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감각적 욕망이란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괴로움과 절망이 가득하며 거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지금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고,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람들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슬기로운 이들이 스스로 알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쌍윳따니까야』 1:20 「사밋디경」)

 

 

 

 

수행은 기쁘고 즐겁다

 

붓다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은 누구도 고행의 미덕을 찬탄하지 않는다. 고통을 참고 견디느니 차라리 진통제를 찾는다. 그래서 그런가, 명상이 일시적으로 괴로움을 없애주는 힐링 상품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명상이 영성의 외피를 쓴 세속화된 상품이 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명상이 영적 수행이라면,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전체적인 삶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증요법에 그치고 마는 것은 어떻게 아름답게 포장이 된다해도 영적 수행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명상은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인 이득을 주지 못한다. 일용할 양식과 안전한 주거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며, 질병의 고통과 노화와 죽음을 없애지도 못한다. 당장 기후위기와 전쟁의 위기와 방사능의 위협을 줄여주지도 못한다. 불평등을 낳는 사회구조를 바꾸지도 못한다. 그러나 명상은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는지 또렷이 알아차리게 한다. 그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우리는 고통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분별과 망상에 지나지 않는 온갖 이야기를 지어내며 끊임없이 자기를 강화한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마음의 동요 없이 다른 존재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필 수 있게 된다.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명상하는 루틴을 통해 나는 비록 짧은 순간이나마 영적인 즐거움을 느끼고 때로 깊은 고요와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과 번뇌를 가라앉히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명상은 현세에서 효과가 있고 유익을 가져다 주는 수행이 틀림없다. 단지 호흡을 지켜보는 수행만으로 무상과 무아를 통찰하는 힘이 커지는 경험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붓다가 가르친 무상과 무아라는 개념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단순해 보이기까지 한 가르침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수행은 내 속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명상하는 동안의 마음의 고요와 평화도 기쁨을 주지만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들이 일어날 때 그 만족감은 더욱더 깊어진다.

 

그러나 이 실감은 단지 경험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과 세계를 보는 인식의 구조를 바꾸는 실감이기 때문에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삶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 효과로서 자아의식이 점점 힘을 잃고 약해진다. 이 과정은 모든 존재가 깊이 서로에게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존재의 실상을 깨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더 윤리적인 삶을 살고, 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의 하루하루가 기쁨을 음식으로 삼는 광음천의 천신들처럼 즐겁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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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요요와 불교산책>의 마지막 편이다. ‘공부한 것을 글로 쓰는 것이 문탁의 윤리’라는 친구들의 강압과 은근한 권유가 있었다. 그 응답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편 쓰겠다는 약속을 수시로 어긴 탓에 열 여섯 편의 글을 올리는 데 2년이 걸렸다. 솔직히 글쓰기는 고행에 가까웠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을 만날 때 비로소 고행적 글쓰기는 명상적 글쓰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글을 올릴 때마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내가 쓴 글 역시 내 것이 아니라 한 시절의 이야기요 인연 조건의 산물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 진전이 있었다. 연재를 마치게 되어 기쁘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8
  • 2023-09-21 06:49

    고생하셨습니다.
    그동안 독자로서도 즐거움이 컸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음엔 또 다른 요요님의 글로 만나길 기대할게요

    박수2.jpg

  • 2023-09-24 12:40

    고행이 아닌 수행으로서의 명상이 일상와 괴리된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놓아버리게 함으로써 일상을 더 잘 살게 하는 것임을 조금 알것 같습니다.
    붓다가 와서, 보라! 라고 하신 그 앎에 다가서는 길을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가보고 싶습니다~

  • 2023-09-25 22:00

    와~~ 2년 동안 쓰셨군요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요요샘을 보면서 읽은 글이라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도 명상적 글쓰기가 되는 날을 기대해봐도...될까요? ㅎ

  • 2023-09-26 00:14

    아... 샘... 금요 클래식은 또 언제 하는 거에요 ?
    그 시간도 기쁨이었고 음식이 되어 배불렀습니다.
    그동안 불교 산책도 그랬답니다.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 2023-09-26 08:20

    일상의 윤리(계)가 바탕이 되는 기쁨과 즐거움의 수행이라니 능동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것이겠군요. 연재를 마친 요요샘의 기쁨에 왠지 저도 기뻐집니다~

  • 2023-09-27 12:16

    잠시 쉬었다가 딴 글로 만나겠죠^^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23-09-28 00:30

    그동안 잘 읽었습니다.
    샘 애쓰신거 이렇게 거저 먹어도 되나?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2023-10-03 18:00

    요요쌤 글 기다리면서 읽었는데.. 마지막인걸 이제 알았네요ㅜ
    2년 동안 연재하셨다니 너무 대단합니다!! 애독자임을 이제야 밝힙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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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의 얼굴을 본 적이 있나요? 문선희,「이름보다 오래된」을 읽고     알지도 못하면서   반촌(半村) 생활을 하면서 관계 맺게 된 비인간 동물들은 도처에 있다. 두더지, 너구리, 고양이, 쥐, 멧돼지, 고라니, 뱀, 계곡의 물살이, 그리고 각종 곤충들. 그들 중에 내가 특별히 관심을 두게 된 종이 있다면 그 이유는 틀림없이 우리 사이에 있는 불편하고 두려운 어떤 감정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잘 지내보자는 화해의 마음을 내어본 적은 없다. 내가 시도하고 궁금했던 것은 그들을 피하거나 내쫓거나 없애는 방법. 그나마 피하는 정도면 평화롭다. 가끔은 생포하거나 죽이는 방법들도 궁리했다. 이들은 나의 건강을 위협하며 농사를 어렵게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뱀을 쫓기 위해 떠돌이 산속 고양이들을 사료로 유인하여 우리 집 근처에 살도록 하고, 집 둘레는 백반으로 결계를 쳤다. 불청객들이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살충제는 언제든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남편이 해답을 찾지 못한 것은 멧돼지, 고라니, 두더지. 이 녀석들은 번갈아 가며 우리 살림과 밭작물과 과실수들에 큰 해를 끼쳤다. 특히 올해는 고라니가 그 역할을 단단히 했다.   고라니는 해마다 빌런이 아니었던 적이 거의 없다. 항상 잔잔하게 우리의 농사를 방해해왔다. 나보다 더 콩잎에 환장하는 고라니 때문에 콩 농사는 반촌 첫해부터 포기했다. 녀석들은 녹즙 해먹을 기대로 사다 심은 비싼 와송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 버리기도 했다. 고라니를 막기 위한 울타리를 쳐도 허술한 구석을 용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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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3.11.05 | 조회 38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칠원의 관리, 장자   들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한 번 쪼고 백 걸음 걸어야 물 한 모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장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없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飮,不蘄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양생주」 『낭송장자』 100쪽     『사기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몽(蒙)땅 칠원(漆園)의 관리(吏)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몽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칠원이 옻나무를 심어 놓은 동산이라는 것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종이와 먹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죽간에 써서 기록을 남겼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액을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찍어 죽간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는 수종이 아닌데다, 씨앗의 발아율도 낮고 잔뿌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도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니 옻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옻나무 동산을 관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칠원의 관리는 중요한 직책은 아니어서 하급말단직이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견은 없다.        「양생주」 3장에는 들꿩의 살이가 나온다. 꿩은 땅 위를 걷는 새로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먹이는 나무 열매나 풀씨 등의 식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데, 작은 곤충도 먹는 잡식성이라고 한다. 먹이 대부분이 땅바닥에서 쪼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사냥감으로 노출되기 쉬워 식용으로도 널리 애용된 조류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늦봄 풀숲에 숨어서 피리로 장끼소리를 내면 꿩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기도 하는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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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5 | 조회 390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문중(노나라 대부)이 큰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기둥머리에는 산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는 마름풀을 그렸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논어』「공야장,17」     『논어(論語)』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다. 더불어 당대 혹은 선대의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언급 되는데 생각보다 노(魯)나라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공자 당대에 권력자였던 삼환(三桓)을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나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논어』에 두 번 언급되는 장문중은 노나라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기 전까지 장문중이 노나라의 대부였다는 것 이외에 거의 아는 것도 없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장식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썩지 않는 세 가지, 삼불후(三不朽)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의 명곡을 재해석하여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불후(不朽)는 ‘썩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후라는 말은 『춘추좌전』에서 유래했는데 노나라 양공(襄公) 24년, 숙손표가 진(晉)나라의 범선자와 나눈 대화에 등장한다. 범선자가 사람이 죽어도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숙손표가 덕을 세우는 것(立德)과 공을 세우는 것(立功), 말을 세우는 것(立言) 세 가지가 오래 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니 불후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후대에는 이 세 가지를 ‘삼불후(三不朽)’라고 칭하였다. 이 때 숙손표는 불후의 예로 장문중을 들었다.   “우리 노나라 선대부 중에 장문중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문중(노나라 대부)이 큰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기둥머리에는 산을 조각하고 동자기둥에는 마름풀을 그렸으니,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子曰  臧文仲居蔡  山節藻梲  何如其知也) 『논어』「공야장,17」     『논어(論語)』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다. 더불어 당대 혹은 선대의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언급 되는데 생각보다 노(魯)나라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는다. 공자 당대에 권력자였던 삼환(三桓)을 제외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노나라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논어』에 두 번 언급되는 장문중은 노나라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인 듯하다. 하지만 『춘추좌전(春秋左傳)』을 읽기 전까지 장문중이 노나라의 대부였다는 것 이외에 거의 아는 것도 없었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거북껍질을 보관하는 집’에 장식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썩지 않는 세 가지, 삼불후(三不朽)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여러 가수들이 다양한 장르의 명곡을 재해석하여 부르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불후(不朽)는 ‘썩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불후라는 말은 『춘추좌전』에서 유래했는데 노나라 양공(襄公) 24년, 숙손표가 진(晉)나라의 범선자와 나눈 대화에 등장한다. 범선자가 사람이 죽어도 썩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숙손표가 덕을 세우는 것(立德)과 공을 세우는 것(立功), 말을 세우는 것(立言) 세 가지가 오래 되어도 폐해지지 않으니 불후라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후대에는 이 세 가지를 ‘삼불후(三不朽)’라고 칭하였다. 이 때 숙손표는 불후의 예로 장문중을 들었다.   “우리 노나라 선대부 중에 장문중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가 남긴...
진달래
2023.10.01 | 조회 438
한문이예술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동은       1.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이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동은
2023.09.21 | 조회 545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요요
2023.09.20 |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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