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루쉰과 청년
장타이옌, 전사(戰士)인 스승 - 애닯고 아득한 청춘의 모퉁이, 그곳에 늘 서 있는 스승들(2) -         1. 단발과 혁명   루쉰은 1936년 10월 17일, 「타이옌 선생으로 하여 생각나는 두어 가지 일」을 쓴다. 스승인 장타이옌 선생이 사망한 것이 6월 14일. 쓸쓸한 그의 추도식을 보면서 스승을 추억하는 글을 쓴 것이 10월 9일. 그러나 좀 미진했고 더 쓰고 싶은 게 있어서 새로 글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글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다음 날 쓰러졌고, 그 다음 날 결국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글은 루쉰이 죽기 이틀 전에 쓴, 루쉰의 마지막 글이 된다.   그런데 그 글은 죽기 이틀 전에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주 심상하게 시작된다. 지난 번 장타이옌 선생에 대한 글을 쓴 다음 날 신문을 보니 쌍십절(雙十節) 25주년이었다는 것. 시간이 참 쏜살같다는 것. 그런데 다시 신문에서 “신진작가가 노인을 증오하는 글을 읽고 찬물을 반 바가지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을 느꼈다는 것. 그러면서 자기가 감탄할 때 하는 정수리를 만지는 손동작도 구닥다리 유물이지만, 그것은 원래 마침내 변발을 잘라냈다는, 승리의 제스추어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루쉰은 변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사실 당시 정세는 엄중했다. 1927년의 백색쿠데타로 정권을 쥔 장제스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아니라 어제까지의 동지였던 공산당을 섬멸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5차례에 걸쳐 감행된 초공작전(剿共作戰) (혹은 위초작전圍剿作戰이라고도 불린다)이 그것인데 심지어 1933년...
장타이옌, 전사(戰士)인 스승 - 애닯고 아득한 청춘의 모퉁이, 그곳에 늘 서 있는 스승들(2) -         1. 단발과 혁명   루쉰은 1936년 10월 17일, 「타이옌 선생으로 하여 생각나는 두어 가지 일」을 쓴다. 스승인 장타이옌 선생이 사망한 것이 6월 14일. 쓸쓸한 그의 추도식을 보면서 스승을 추억하는 글을 쓴 것이 10월 9일. 그러나 좀 미진했고 더 쓰고 싶은 게 있어서 새로 글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글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다음 날 쓰러졌고, 그 다음 날 결국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글은 루쉰이 죽기 이틀 전에 쓴, 루쉰의 마지막 글이 된다.   그런데 그 글은 죽기 이틀 전에 쓴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주 심상하게 시작된다. 지난 번 장타이옌 선생에 대한 글을 쓴 다음 날 신문을 보니 쌍십절(雙十節) 25주년이었다는 것. 시간이 참 쏜살같다는 것. 그런데 다시 신문에서 “신진작가가 노인을 증오하는 글을 읽고 찬물을 반 바가지 뒤집어 쓴 듯”한 기분을 느꼈다는 것. 그러면서 자기가 감탄할 때 하는 정수리를 만지는 손동작도 구닥다리 유물이지만, 그것은 원래 마침내 변발을 잘라냈다는, 승리의 제스추어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루쉰은 변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간다.   사실 당시 정세는 엄중했다. 1927년의 백색쿠데타로 정권을 쥔 장제스는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이 아니라 어제까지의 동지였던 공산당을 섬멸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1930년부터 1933년까지 5차례에 걸쳐 감행된 초공작전(剿共作戰) (혹은 위초작전圍剿作戰이라고도 불린다)이 그것인데 심지어 1933년...
문탁
2018.10.09 | 조회 868
지난 연재 읽기 차명식의 책읽습니다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⑧ 어머니라는 ‘익숙함’ 김고연주, 『우리 엄마는 왜?』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문탁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혼 여성이 상당히 많고 그분들 중 대부분은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이다. 게다가 그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문탁네트워크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가끔은 나와 함께 공부를 하거나 여타 활동을 함께하는 분들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로 인해 나는 때때로 매우 미묘한 상황에 처한다. 한편으로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엄마’에 대해 듣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머니들과 공부를 하면서 어머니 입장에서 보는 ‘아이들’에 대해 듣게 된다. 그럴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 낯설음이다. 그들이 묘사하는 상대방의 모습에서도, 상대방을 묘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들이 읽힌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정체성이다.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아이로서의 정체성, 가족으로서의 그들.  ...
   일요일 2시 중학생들과  책 읽습니다 ⑧ 어머니라는 ‘익숙함’ 김고연주, 『우리 엄마는 왜?』            글 : 차명식 (청년길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5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중학교 아이들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2년간 함께했던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 시간들을 이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에 그 간의 수업들을 가지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나만의 글이 아니다. 나의 목소리와 더불어 아이들의 목소리 역시 읽는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0.     문탁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혼 여성이 상당히 많고 그분들 중 대부분은 아이가 있는 어머니들이다. 게다가 그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문탁네트워크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니 가끔은 나와 함께 공부를 하거나 여타 활동을 함께하는 분들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로 인해 나는 때때로 매우 미묘한 상황에 처한다. 한편으로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입으로 자신들의 ‘엄마’에 대해 듣게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머니들과 공부를 하면서 어머니 입장에서 보는 ‘아이들’에 대해 듣게 된다. 그럴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떠한 낯설음이다. 그들이 묘사하는 상대방의 모습에서도, 상대방을 묘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모습들이 읽힌다. 그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정체성이다. 어머니로서의 정체성, 아이로서의 정체성, 가족으로서의 그들.  ...
차명식
2018.10.09 | 조회 560
지난 연재 읽기 감자전의 만화展
감자전
2018.10.04 | 조회 365
지난 연재 읽기 플라톤이 돌아왔다
[플라톤이 돌아왔다 5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국가』 3권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글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철학은 디테일의 차이다 가장 정의로워 심지어 ‘불의한’ 자처럼 보이는 자와 가장 불의한 자라 심지어 ‘정의로워’ 보이는 자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정의란 무엇인가 파악해보자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제안을 소크라테스는 다시 리모델링한다.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 먼 거리에 있는 작은 글씨를 읽도록 지시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혹시 다른 곳에 같은 글씨가 더 큰 글씨로 적혀있다는 것을 기억해서 그것을 먼저 읽게 된다면, 먼 거리에 적힌 작은 글씨는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개인의 정의를 살펴보기 전에 보다 큰 국가의 정의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개인의 정의를 정리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추론이 가능하려면 개인과 국가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에서 누구 한 사람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가 단지 ‘크기’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이들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플라톤이 돌아왔다 5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국가』 3권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글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철학은 디테일의 차이다 가장 정의로워 심지어 ‘불의한’ 자처럼 보이는 자와 가장 불의한 자라 심지어 ‘정의로워’ 보이는 자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정의란 무엇인가 파악해보자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의 제안을 소크라테스는 다시 리모델링한다. 시력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 먼 거리에 있는 작은 글씨를 읽도록 지시했다고 생각해보자. 그가 혹시 다른 곳에 같은 글씨가 더 큰 글씨로 적혀있다는 것을 기억해서 그것을 먼저 읽게 된다면, 먼 거리에 적힌 작은 글씨는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며, 개인의 정의를 살펴보기 전에 보다 큰 국가의 정의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개인의 정의를 정리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추론이 가능하려면 개인과 국가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대화에서 누구 한 사람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제안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가 단지 ‘크기’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이들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새털
2018.10.02 | 조회 776
지난 연재 읽기 감자전의 만화展
감자전
2018.09.26 | 조회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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