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4회] 유튜브, 빨간 박스에 담긴 기게스의 반지

새털
2018-08-21 06:54
1036

[플라톤이 돌아왔다 4회]

유튜브, 빨간박스에 담긴 기게스의 반지

-국가』 2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새털 프로필02.jpg

 

:  새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흑기사 형제의 질문, 누가 진정 행복한 자인가

1권의 끝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불의가 이익이 되니?”라고 트라시마코스의 의견에 반박했지만, 그 승리의 쾌감은 석연치 않았다. 마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순정 100%의 질문을 던질 때, 모두의 가슴이 아릿하면서 답답해지는 것과 같다. “어떻게 불의가 이익이 되니?”라는 소크라테스의 고지식한 논리보다 정의는 강자의 편익에 불과하다는 트라시마코스의 사이다발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를 것이다. 설득력이 부족한 소크라테스를 구출하기 위해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가 흑기사로 나섰다. ,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올바르지 못한 것보다는 올바른 것이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을 저희한테 설득하신 듯이 보이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설득하시기를 바라는 겁니까?” 이렇게 해서 정의(正義)에 대한 진검승부는 2권에서도 이어진다.

글라우콘은 정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이것은 그의 생각이라기보다 흔히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상식 또는 통념이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 형제는 소크라테스에게 반대의견을 내세우지만,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흑기사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논리를 마음껏 펼쳐놓을 수 있도록 적군을 자처했을 뿐, 소크라테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신체 단련이나 환자의 치료받음, 그리고 의료행위나 기타 돈벌이(~) 이런 것들이 수고롭기는 하지만, 우리를 이롭게 하는 것들이라고 말하거니와, 우리가 이것들을 수용하려하는 것도 그것들 자체 때문이 아니라, 보수라든가 그 밖에 그것들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입니다.(~) [정의도 사람들에게] 수고로운 종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된답니다. 즉 보수 때문에 그리고 평판을 통한 명성 때문에 실천해야 된다는 것이지, 그 자체 때문이라면 까다로운 것으로서 기피해야만 될 종류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2357d~358a)

 

 

글라우콘의 의견에서 정의에 대한 논의는 논리의 영역에서 심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는 것, 예를 들어 교통법규를 지키고, 거래의 계약을 이행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 돌아올 평판이나 처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키는 차선의 선택이라는 말이다. 원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어겼을 때 돌아올 비난과 벌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것이 소위말하는 정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글라우콘의 의견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직관이 그 근거로 깔려 있다. 인간은 누구나 들키지만 않는다면 멋대로 자기 이익을 늘리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통념이다. 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이익을 최대로 늘리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논리다. 이것은 강자의 논리를 말하는 트라시마코스의 입장과도 유사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확인여부를 떠나 주목해봐야 할 점은, 우리는 경험적으로 정의로운 일은 현실적으로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불일치를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살면서 양심적인 부자를 본 적이 별로 없다. 법을 어기고도 떵떵거리며 잘 사는 사람들도 종종 본다. 우리는 양심적으로 살 것인가 자기 이익을 챙기며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인간적으로갈등한다.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는 우리의 고민을 이해한 듯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최고로 불의한 자는 불의하면서도 정의롭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반대편에는 최고로 정의로워서 불의한 자라는 평판을 듣는 사람이 있다. 드라마 속 악당처럼 조폭의 돈으로 정재계 거물이 되는 사람이 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이웃에게 내주고도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의인도 있다. 이 불일치의 끝판왕, 완벽하게 불의한 자와 완벽하게 정의로운 자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누가 진정 행복한 자인가 판정해보자는 것이 흑기사 형제의 제안이다. 여기까지가 국가전체로 보자면 서론에 해당된다.

흑기사 형제의 질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9권에 가서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끌고 가려면 소크라테스선생은 정말이지 스토리텔링의 달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를 재미있게 읽은 팁 가운데 하나는 소크라테스 혹은 플라톤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해보는 방법이다. ‘전설의 고향수준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국가는 철학책이 아니라 설화와 민담집처럼 느껴진다. 나는 시인 추방설을 외친 플라톤이야말로 진정한 신화와 전설의 수집가이고 이야기 애호가였다고 확신한다. 2권에서도 기게스의 반지라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2.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

글라우콘은 인간의 본성상 누구나 들키지만 않는다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려 할 것이라 전제하면서, 그 근거로 기게스의 반지 전설을 가져온다. 목동 기게스는 우연히 반지 하나를 얻게 된다. 이 반지를 끼고 목동들의 모임에 나갔다가 기게스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반지를 손바닥 아래쪽으로 돌리자 그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반대로 반지를 손바닥 위쪽으로 돌리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반지의 신비한 능력을 알게 된 기게스는 왕궁으로 들어가 왕비와 간통을 한 후에, 왕비와 모의해서 왕을 살해하고 왕국을 장악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반지와 목동이라는 설정은 플라톤의 창작이라고 짐작된다. 이 이야기의 원래 출전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84년생으로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생으로 추정되는 것을 감안할 때, 역사국가보다 2세대 정도 앞선 저작이다. 역사에 수록된 기게스의 이야기는 플라톤의 것과 대동소이한데, 몇 가지 디테일의 차이가 있다. 기게스는 목동이 아니라 왕의 신뢰받는 신하였다. 왕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다. 왕은 완벽한 왕비의 몸매를 자신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기게스에게 제안을 한다. 침실의 문을 몰래 열어놓을 테니, 살짝 들어와 왕비가 옷 갈아 있는 모습을 훔쳐보라는 것이다. 왕은 이렇게 해서라고 왕비의 몸매를 기게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이것이 왕의 욕망이다. 제안을 받고 기게스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왕은 강건했고 결국에는 왕의 코치대로 왕비의 벗은 몸을 훔쳐보게 된다. 여기서 기게스의 욕망은 반반이다. 왕비의 벗은 몸을 보고 싶은 욕망과 왕의 신임을 얻고 싶은 욕망, 그의 행동에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사단은 이 모든 사태를 왕비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왕비는 몰래 기게스를 불러 뜻밖의 제안을 한다. 감히 내 벗은 몸을 보았으니 이 자리에서 죽든가 아니면 나와 함께 왕을 죽이자는 제안이다. 물론 기게스는 그 자리에서 죽을 수 없으니, 왕비와 함께 거사를 치루고 왕이 되었다.

여기서 왕비의 욕망은 무엇일까? 자신을 모욕한 왕에게 응징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기게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던 것일까? <span style="font-family:Arial, Helveti

댓글 6
  • 2018-08-22 12:00

    '소선생님'의 노하우를 연재하는 새선생의 안내도^^



    문탁내 '유선생'급 아니겠소~~ ㅋㅋㅋ





    그나저나.... 저 욕망의 특급열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히 수명을 마칠 수 없다"



    는 이 결론이 어찌 이리 익숙하지?



    이건... 분명 노자 냄새야...



    새선생? 요즘... 어디 기웃거리는 중? ㅋㅋ






    그나저나2...



    저 욕망을 성취하는 동력으로 제시된 '성실성'



    인욕과 성실의 동침은 괴물을 낳는다?



    존천리 거인욕을 부르짖은 주자님이 



    거봐라.... 내 말이 맞지? 라고 할판!






    새선생^^ 재밌게 읽었습니다~

  • 2018-08-22 12:44

    게샘! 중요한 걸 그 뻔한 가르침을 우리는 구비구비 돌아서 이해하게 될 거란 점이요^^정답을 아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거지요~

  • 2018-08-22 23:04

    어째서... 새털쌤도 오프보다는 온라인에서, 아니 아니

    라이브보다 글로하는 강의가 더 쏙쏙 이해가...^_____^

    그런데 ‘국가’가 원래 이렇게 재밌었나요?

    쌤 글이 ‘국가’에 대한 오해를 부르는 듯...

  • 2018-08-23 18:24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당근 다음 기대합니다

  • 2018-08-25 01:04

    먼... 훗날 새 선생님의 유튜브 이야기가 소선생님의 스토리텔링같이 느껴지는 날이 올까요?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읽고 있는 일인 추가요~^^

  • 2018-09-05 09:55

    아 정말 인터넷 시대는 너무 자유로워서 되려 속수무책이 되어버려요.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6회]     지르텍 주세요       “그런데 왜 지르텍을 달라는데 다른 약을 권하는 거야?”    “아마도 같은 성분과 효능인데 가격이 저렴한 약이 있어서 그랬겠지. 지르텍은 팔아도 남는 거 하나도 없어!”   친구가 저런 질문을 하면 난 약사를 사기꾼이나 도둑놈처럼 보는 것 같아서 흥분한다. 지르텍을 비롯해 광고로 유명해진 브랜드 약들은 모두 사정이 같다. 광고 비용이 약 가격에 반영되어서 원가가 올라가 비싸게 들어온다. 게다가 이런 약들의 가격으로 약국을 비교하기 때문에 약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마진 없이 판다.  모든 광고가 그렇겠지만 약은 유난히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건강은 언제나 다다익선 아닌가! 새로운 모델이 광고를 하면 여지없이 곧 그 약을 찾는다. 하지만 유명한 약이라고 해서 모두 다른 약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은 많다. 이런 사정들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명으로 약을 찾는 사람에게 대체로 다른 약을 권하지 않는다. 다른 약을 권할 때 불신의 눈빛을 보내거나, 아예 ‘닥치고 달라는 대로 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싫다. 어떨 땐 그 사람에게 더 맞는 약이 있어도 입을 다물 게 된다.  이렇다 보니 약국에 들어와 몇 마디 하는 말에도 느낌이 온다. 내가 어디까지 에너지를 쓸 것인가가 거의 자동으로 결정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몇 마디 말도 없이 입 다물고 약을 건넬 때,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찌꺼기가 남아...
[둥글레의 인문약방/6회]     지르텍 주세요       “그런데 왜 지르텍을 달라는데 다른 약을 권하는 거야?”    “아마도 같은 성분과 효능인데 가격이 저렴한 약이 있어서 그랬겠지. 지르텍은 팔아도 남는 거 하나도 없어!”   친구가 저런 질문을 하면 난 약사를 사기꾼이나 도둑놈처럼 보는 것 같아서 흥분한다. 지르텍을 비롯해 광고로 유명해진 브랜드 약들은 모두 사정이 같다. 광고 비용이 약 가격에 반영되어서 원가가 올라가 비싸게 들어온다. 게다가 이런 약들의 가격으로 약국을 비교하기 때문에 약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마진 없이 판다.  모든 광고가 그렇겠지만 약은 유난히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건강은 언제나 다다익선 아닌가! 새로운 모델이 광고를 하면 여지없이 곧 그 약을 찾는다. 하지만 유명한 약이라고 해서 모두 다른 약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은 많다. 이런 사정들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명으로 약을 찾는 사람에게 대체로 다른 약을 권하지 않는다. 다른 약을 권할 때 불신의 눈빛을 보내거나, 아예 ‘닥치고 달라는 대로 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싫다. 어떨 땐 그 사람에게 더 맞는 약이 있어도 입을 다물 게 된다.  이렇다 보니 약국에 들어와 몇 마디 하는 말에도 느낌이 온다. 내가 어디까지 에너지를 쓸 것인가가 거의 자동으로 결정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몇 마디 말도 없이 입 다물고 약을 건넬 때,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찌꺼기가 남아...
둥글레
2019.12.09 | 조회 1093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뚜버기
2019.11.26 | 조회 446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기린
2019.11.12 | 조회 502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5회]   달콤살벌한 다이어트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약국이 한가하다. 감기나 알레르기 질환들이 뜸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약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노인 환자들이 많아서 늘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에 대한 처방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여름이 되자 약국으로 일명 ‘다이어트 처방’이 몰려들었다. 다이어트 처방은 계절에 상관없이 늘 있지만 노출이 많은 여름이 되면 당연히 더 늘어난다. 근무약사 입장에서는 이 처방을 가져오는 손님들이 달갑지는 않다. 처방 일수가 길고 약 가짓수가 많아서 조제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약을 먹으면서까지 살을 빼려는 그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다이어트 처방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원칙적으로는 진료과에 상관없이 발행이 가능하다. 여러 약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거의 다이어트 처방을 조제했다.   소름 끼치는 다이어트 처방 다이어트로 허가를 받은 약은 식욕억제제와 지방흡수(소화) 억제제로 크게 두 가지다. 하지만 처방을 보면 약 종류가 5가지가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떤 병원에서 처방했건 이 처방들은 마치 복사라도 한 듯이 비슷하다. 위 두 가지 약 이외에 간질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각성제, 당뇨약, 비충혈 제거제(감기로 인한 코막힘 치료), 변비약, 이뇨제, 유산균 제제, 녹차추출물 등이 추가된다. 여기에 알약으로 나오는 한방 제제(방풍통성산이라는 처방)까지 쓰인다. 약사로서 처방 내용을 보면 소름이 절로 끼친다. 약들의 작용과 부작용을 알게 되면 과연 복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지방 섭취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주로 식욕억제제인 암페타민류(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가 처방된다. 이...
[둥글레의 인문약방/5회]   달콤살벌한 다이어트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약국이 한가하다. 감기나 알레르기 질환들이 뜸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약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노인 환자들이 많아서 늘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에 대한 처방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여름이 되자 약국으로 일명 ‘다이어트 처방’이 몰려들었다. 다이어트 처방은 계절에 상관없이 늘 있지만 노출이 많은 여름이 되면 당연히 더 늘어난다. 근무약사 입장에서는 이 처방을 가져오는 손님들이 달갑지는 않다. 처방 일수가 길고 약 가짓수가 많아서 조제하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약을 먹으면서까지 살을 빼려는 그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다이어트 처방은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원칙적으로는 진료과에 상관없이 발행이 가능하다. 여러 약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나는 거의 다이어트 처방을 조제했다.   소름 끼치는 다이어트 처방 다이어트로 허가를 받은 약은 식욕억제제와 지방흡수(소화) 억제제로 크게 두 가지다. 하지만 처방을 보면 약 종류가 5가지가 넘어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떤 병원에서 처방했건 이 처방들은 마치 복사라도 한 듯이 비슷하다. 위 두 가지 약 이외에 간질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각성제, 당뇨약, 비충혈 제거제(감기로 인한 코막힘 치료), 변비약, 이뇨제, 유산균 제제, 녹차추출물 등이 추가된다. 여기에 알약으로 나오는 한방 제제(방풍통성산이라는 처방)까지 쓰인다. 약사로서 처방 내용을 보면 소름이 절로 끼친다. 약들의 작용과 부작용을 알게 되면 과연 복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지방 섭취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주로 식욕억제제인 암페타민류(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가 처방된다. 이...
둥글레
2019.10.20 | 조회 543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기린
2019.09.30 | 조회 53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