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생극장 / 4회> 도행역시(倒行逆施),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소!

기린
2019-09-30 15:19
537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1.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어찌 골육 같은 자식을 멀리하려고 하십니까?

 

비무기는 그런 오사가 아니꼬워 두 사람을 싸잡아 반란세력이라고 고했다. 화가 난 평왕은 오사는 감옥에 가두었고, 태자에게는 사람을 보내 죽이라고 명했다. 태자는 한발 앞서 그 명령을 접하고 도망갔다. 비무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 그들을 불러들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초나라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

 

평왕은 사자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사의 두 아들은 조정으로 들라. 너희가 오면 네 아비를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당장 죽여 버리겠다.

 

큰 아들 오상이 조정으로 나서려 하자 둘째 아들 오자서가 말렸다. 그 길은 세 사람이 모두 죽게 되는 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하고 달아나자고 했다. 오상이 말했다.

 

-너는 달아 나거라. 살아서 이 원수를 꼭 갚아다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오자서는 스스로 잡혀가는 형을 뒤로 하고 사자에게 화살을 쏘며 도망쳤다. 갖은 고생 끝에 오(吳)나라에 들어간 그는 수완을 발휘하여 오나라 조정에 줄을 대었다. 그리고 초나라를 공격 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제대로 초나라를 공격하니 초나라에서 도망친 지 십 육여 년이 흘러 평왕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소왕이 즉위한 후였다. 오나라의 공격에 소왕은 수도에서 달아났다.

 

 

그는 소왕이 도망쳤다는 소식에 평왕의 무덤을 찾았다. 장례를 치른 지 십 년이 넘은 무덤을 파헤치고 평왕의 시신을 향해 매를 휘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옛 친구 신포서가 사람을 보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자네의 복수는 너무 지나친 것 같네. 일찍이 신하가 되어 평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니, 이보다 천리에 어긋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오자서는 이렇게 응답했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천리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전해 주시오.

 

2. 저무는 복수의 시간 앞에서

 

오자서는 십 육년이 흐른 후에야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수는 무덤 속에 있었다. 원수의 아들(초 소왕)을 몰아내고 초나라 수도를 점령한 것으로 원한은 갚은 셈이다. 하지만 오자서는 무덤까지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니 신포서가 지나치다고 할 만하다.

 

오자서가 아버지를 따라 죽으러 가는 형과 한 약속, 꼭 복수하겠다고 다짐한 이후 십육 년은 긴 시간이었다. 도망 길에서 병에 걸려 죽을 뻔도 했다. 너무 배가 고팠을 때는 구걸을 해야 했다. 오나라에서는 왕권다툼의 소용돌이에서 왕좌를 차지하는 쪽에 줄을 대기 위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나날이었다. 초야에서 농사일로 연명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때를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 세월을 견디고 마침내 초나라 수도에 이르렀지만 한 발 늦었다. 도망간 초 소왕을 잡기 위해 주변국을 수색하는데 더 이상 시간을 쓸 수 없다. 오왕 합려가 아무리 그를 신임하더라도 한낱 신하의 사정에 맞춰 한정 없이 기다려 주지도 않을 것이다. 무덤 앞에 선 오자서는 자신의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복수의 시간이 느껴졌다. 이대로 돌아선다면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사연은 잊히고 말 것이다. 그는 회초리를 들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에 매질을 시작했다. 「오자서열전」에는 삼백 번을 휘두르고서야 멈추었다고 적혀있다.

 

사마천은 오자서의 선택에 대해 “작은 의(義)를 버리고 큰 치욕을 갚은 강인한 대장부”였다고 평했다. 신하의 도리를 지키기에 아버지와 형의 억울함이 더 무거웠다. 군신 간의 의리보다 부자간의 정이 더 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정을 뒤로하고 도망쳐야 했던 치욕은 더욱 생생했다. 그것을 갚지 않고는 남은 생을 감당할 수 없는 절실함. 도리를 어기더라도 끝내야 했다. 그래서 오자서의 복수에는 계속 살아가기 위해 끝내야하는 부득이함이 느껴진다. 그 부득이함은 차마 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야 복수를 끝내게 했다. 사마천이 강인하다고 여긴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3.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오나라로 돌아온 오자서는 합려를 도와 오나라를 다스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서쪽으로는 초나라와 접전하고 북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를 위협하고, 남쪽으로는 월(越)나라를 굴복시켰다. 그 와중에 월나라와의 접전에서 합려가 전사했고 그의 아들 부차가 왕위에 올랐다. 부차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력을 키웠고 마침내 월나라의 항복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자서는 월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여 화친을 맺으려는 부차에게 제동을 걸었다.

 

 

-지금이 월나라를 완전히 정복할 시기입니다. 화친은 월나라가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뿐입니다. 월나라 왕 구천을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그는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는 인물입니다.

 

 승리에 도취한 부차는 오자서의 간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구나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백비는 화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에도 부차는 주변국과 전쟁에 나가면서 월나라는 안중에 없었다. 오자서는 그 때마다 간언을 서슴지 않았다. 부차는 그런 오자서가 불편했다. 왕의 심기를 눈치 챈 백비는 이렇게 참소했다.

 

-오자서는 불만이 많으니 결국은 주변 제후들과 공모하여 쳐들어 올 것입니다. 그전에 오자서를 처리해야 합니다.

 

부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오자서에게 칼을 내리며 자결할 것을 명령했다.

 

 

-아첨과 비방을 일삼은 신하의 말로 나에게 칼을 내리다니! 제 아비와 저를 왕으로 만든 나의 공이 한낱 신하의 아첨에 무너진단 말인가. 내 죽어서도 오나라의 멸망을 똑똑히 지켜볼 것이니, 내가 죽으면 눈알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에 걸어다오.

오자서의 마지막 말을 전해들은 부차는 대노했다. 오자서의 시신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말가죽에 쌓여서 강에 버려졌다.

 

 신하는 임금이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보필하는 자리이다. 아버지가 죽어나간 자리이기도 했다. 오자서 또한 그 자리에 서서 죽음을 맞이했다. 아버지의 불행을 본보기 삼아 자식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오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바른 길을 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자의 시신을 훼손하는 작은 도리는 어겼을지언정, 신하로써 바른 길을 가는 강인한 대장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오자서가 죽은 이후, 때를 기다렸던 월나라 구천이 공격을 감행했고 오나라는 패배했다. 이 패배는 결국 오나라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오자서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던 아들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회사에서는 작업 과정에서 생긴 재해로 처리하려고 했다. 부모가 보기에 그 재해는 안전을 무시한 온갖 불법이 묵인되는 현장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 불법을 가리기 위해 사고 무마에 급급한 회사에 맞서 부모는 아들의 장례를 거부했다.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아들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렸다. 대통령이 위로의 면담을 제안했을 때도 거부했다. 이러한 처사를 두고 항간에서는 자식 장례도 치르지 않는 독한 사람들이라고 수근 댔다. 면담을 거절한 것은 보상금 흥정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그런 수모를 견디면서 싸운 끝에 아들의 장례를 치른 것은 아들이 죽은 후 육십 이일만 이었다고 한다. 고 김용균씨의 가족 김미숙씨의 이야기이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도리를 어기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선을 넘어서서야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이후 김미숙씨는 ‘다시는’(산업재해 유가족 연대모임)에서 아들의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연대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족의 억울한 죽음에 주저앉지 않고 그런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서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오자서를 넘어 진정한 ‘복수’의 길을 내는 사람들이다.

댓글 2
  • 2019-09-30 16:27

    다시 더워진 날씨에 정신이 혼미했는데 서늘함을 주는 글이네요!!

  • 2019-10-08 09:48

    선을 넘을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요?
    선이라는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닐거구...
    선만 보지말고 사람을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5]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었을까?   2010년 따뜻한 봄 <마을과 경제>라는 알쏭달쏭한 이름으로 시작된 세미나는 회를 거듭하면서 이전에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관념들을 바꾸어 갔다. 일 년쯤 지나자 어떻게 돈을 잘 벌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것이 경제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각자도생의 삶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모하는 살림이 경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장경제는 희소성과 결핍이라는 생각을 먹고 자라나 점점 세상을 결핍된 곳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필요한 것은 뭐든 상품으로 만들고 거래하는 시장 말고 다른 방식의 경제를 한번 꾸려 보고 싶다는 욕망이 싹텄다. 그러면 뭔가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 달에 걸쳐 어렵게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붙잡고 씨름하고 나서 우리는 드디어 창업을 하겠다고 나섰다. 마을경제, 시장을 흔들어라! 우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마을에서 부를 잘 순환시키며 살아간다는 경제의 본질을 실현시켜보자, 무한 경쟁과 등가교환 말고 호혜와 선물로도 얼마든지 경제를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1. 마을작업장의 탄생   의기투합한 우리는 먼저 마을을 고민하고 공동체적 삶을 꾸려가는 선배들을 만나러 나섰다. 북한산 자락 아래에서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삶의 고민도 나누며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그분들은 조만간 농촌으로 이주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살 거라고 했다(지금도 문탁에 보내주는 마을 소식지를 보면 홍천에서 농사 지으며 자연과 어울려 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마포...
뚜버기
2020.01.06 | 조회 417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뭘까? 시세차익, 좋아요 구독자수, 맛집 리스트. 그럼 많으면 많을수록 나쁜 것은? 내 뱃살, 미세먼지. 이런 것들은 그나마 좋고 나쁨을 가볍게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데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건을 좋고 나쁨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선택이 늘 좋기만 하고 혹은 늘 나쁘기만 할까?  초한(楚漢)시대 한신은 유방의 휘하에 들어간 후 항우 진영을 상대로 거듭 승리를 거두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 결과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천하에서 한신의 이름이 드날렸다. 유방도 경계심을 품을 만큼이었다. 한신 스스로도 자신감에 차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사자성어의 원출전이 바로 한신의 열전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자성어 토사구팽(兔死狗烹)도 나온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한신이 토끼 사냥이 끝나 쓸모없는 사냥개로 삶겨지는 처지가 되었다. 한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인생역전을 따라 가보자.   한신의 병법, 배수진   한고조 유방이 공신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한신과 마주 앉게 되었다. 한고조가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 군대를 이끌 수 있겠소? -폐하는 10만 정도의 군대를 이끌 수 있겠습니다. -그대는 어떻소?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런 그대가 왜 내 밑에 있소? -폐하께서는 군대는 이끌 수는 없습니다만, 장수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의 밑에 있는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지 사람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은 뭘까? 시세차익, 좋아요 구독자수, 맛집 리스트. 그럼 많으면 많을수록 나쁜 것은? 내 뱃살, 미세먼지. 이런 것들은 그나마 좋고 나쁨을 가볍게 가늠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데 맞닥뜨리는 수많은 사건을 좋고 나쁨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선택이 늘 좋기만 하고 혹은 늘 나쁘기만 할까?  초한(楚漢)시대 한신은 유방의 휘하에 들어간 후 항우 진영을 상대로 거듭 승리를 거두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 결과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천하에서 한신의 이름이 드날렸다. 유방도 경계심을 품을 만큼이었다. 한신 스스로도 자신감에 차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사자성어의 원출전이 바로 한신의 열전이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자성어 토사구팽(兔死狗烹)도 나온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한신이 토끼 사냥이 끝나 쓸모없는 사냥개로 삶겨지는 처지가 되었다. 한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인생역전을 따라 가보자.   한신의 병법, 배수진   한고조 유방이 공신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어느 날, 한신과 마주 앉게 되었다. 한고조가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은 얼마나 되는 군대를 이끌 수 있겠소? -폐하는 10만 정도의 군대를 이끌 수 있겠습니다. -그대는 어떻소?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런 그대가 왜 내 밑에 있소? -폐하께서는 군대는 이끌 수는 없습니다만, 장수를 거느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의 밑에 있는 까닭입니다. 또 폐하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지 사람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신이...
기린
2019.12.18 | 조회 503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6회]     지르텍 주세요       “그런데 왜 지르텍을 달라는데 다른 약을 권하는 거야?”    “아마도 같은 성분과 효능인데 가격이 저렴한 약이 있어서 그랬겠지. 지르텍은 팔아도 남는 거 하나도 없어!”   친구가 저런 질문을 하면 난 약사를 사기꾼이나 도둑놈처럼 보는 것 같아서 흥분한다. 지르텍을 비롯해 광고로 유명해진 브랜드 약들은 모두 사정이 같다. 광고 비용이 약 가격에 반영되어서 원가가 올라가 비싸게 들어온다. 게다가 이런 약들의 가격으로 약국을 비교하기 때문에 약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마진 없이 판다.  모든 광고가 그렇겠지만 약은 유난히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건강은 언제나 다다익선 아닌가! 새로운 모델이 광고를 하면 여지없이 곧 그 약을 찾는다. 하지만 유명한 약이라고 해서 모두 다른 약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은 많다. 이런 사정들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명으로 약을 찾는 사람에게 대체로 다른 약을 권하지 않는다. 다른 약을 권할 때 불신의 눈빛을 보내거나, 아예 ‘닥치고 달라는 대로 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싫다. 어떨 땐 그 사람에게 더 맞는 약이 있어도 입을 다물 게 된다.  이렇다 보니 약국에 들어와 몇 마디 하는 말에도 느낌이 온다. 내가 어디까지 에너지를 쓸 것인가가 거의 자동으로 결정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몇 마디 말도 없이 입 다물고 약을 건넬 때,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찌꺼기가 남아...
[둥글레의 인문약방/6회]     지르텍 주세요       “그런데 왜 지르텍을 달라는데 다른 약을 권하는 거야?”    “아마도 같은 성분과 효능인데 가격이 저렴한 약이 있어서 그랬겠지. 지르텍은 팔아도 남는 거 하나도 없어!”   친구가 저런 질문을 하면 난 약사를 사기꾼이나 도둑놈처럼 보는 것 같아서 흥분한다. 지르텍을 비롯해 광고로 유명해진 브랜드 약들은 모두 사정이 같다. 광고 비용이 약 가격에 반영되어서 원가가 올라가 비싸게 들어온다. 게다가 이런 약들의 가격으로 약국을 비교하기 때문에 약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마진 없이 판다.  모든 광고가 그렇겠지만 약은 유난히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건강은 언제나 다다익선 아닌가! 새로운 모델이 광고를 하면 여지없이 곧 그 약을 찾는다. 하지만 유명한 약이라고 해서 모두 다른 약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은 많다. 이런 사정들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명으로 약을 찾는 사람에게 대체로 다른 약을 권하지 않는다. 다른 약을 권할 때 불신의 눈빛을 보내거나, 아예 ‘닥치고 달라는 대로 줘’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싫다. 어떨 땐 그 사람에게 더 맞는 약이 있어도 입을 다물 게 된다.  이렇다 보니 약국에 들어와 몇 마디 하는 말에도 느낌이 온다. 내가 어디까지 에너지를 쓸 것인가가 거의 자동으로 결정된다고나 할까? 하지만 몇 마디 말도 없이 입 다물고 약을 건넬 때,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찌꺼기가 남아...
둥글레
2019.12.09 | 조회 1096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뚜버기
2019.11.26 | 조회 449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기린
2019.11.12 | 조회 50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