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인생극장/5회> 언중유향(言中有響), 각본 없는 드라마를 기대하며

기린
2019-11-12 09:09
505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1.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취합니다.

-한 말을 마시고 취한다면서 어떻게 한 섬을 마신단 말이오?

순우곤이 대답했다.

-임금께서 내리신 술잔은 두렵고 어려운지라 엎드려 마시느라 한 말도 못 넘기고 취합니다. 어버이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술자리는 긴장하면서 마시느라 두 말 전에 취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마시는 술은 대여섯 말은 마실 수 있겠지요. 만약 고향 주막에서 남녀가 뒤섞여 투호놀이 등을 하며 술잔을 오가면 여덟 말쯤 마시도 취기가 돌뿐입니다. 그러다 날이 저물어 사람들이 돌아가니, 주인이 내 방에 얇은 비단 속옷을 입은 여인네라도 들여보낼라치면 신은 너무 즐거운 나머지 한 섬도 거뜬히 마십니다. 그러므로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 고 하니 모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지나치면 반드시 쇠합니다.

위왕은 순우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말했다.

-좋은 말이오

순우곤은 노예출신이라고 전해진다. 그런 그가 임금의 술자리에 배석할 정도에 이른 것을 보면 자타가 공인하는 능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로 말솜씨였다. 사마천은 「골계열전」에서 위왕과 순우곤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골계’란 매끄러운 말로 웃음을 자아내는 일을 의미한다. 골(滑)자를 살펴보면 물(氵)과 뼈(骨)가 결합되어 있다. 순우곤의 말은 물처럼 매끄럽게 술 좋아하는 위왕의 마음에 흘러들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이르러서 한 마디에 뼈를 심었다. 지나치면 반드시 쇠한다. 위왕이 무엇에 빠져있는지 정확하게 가리킨 이치, 그래서 위왕을 꼼짝 못하도록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그 후 위왕은 밤새워 술 마시는 일을 그만 두고 나랏일을 챙겼다. 순우곤에게는 제후들 사이의 외교 업무를 맡겼다. 그리고 주연이 열릴 때마다 언제나 순우곤이 옆에서 모셨다.

 

    2.유방과 항우의 대화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다시 혼란에 빠지니 천하의 호걸들이 다시 일어났다. 그 중에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 유방과 항우였다. 두 사람은 서로 기세를 다투며 다시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막바지 각축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 노약자들은 군량 운반에 지쳐갔고 장정들은 군 생활을 힘겨워했다. 두 사람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화의 장에 나왔다. 두 사람은 광무산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유방은 들으라. 쥐새끼처럼 도망 다니지 말고 당당히 나서서 나와 일대일 대결로 결판을 내자!

-대역죄인 항우는 들으라! 회왕 앞에서 우리가 처음 명을 받았을 때 관중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가 왕이 되기로 했다! 그대는 약속을 저버리고 나를 촉한으로 몰아냈다! 또 진나라에 들어가 폭행과 약탈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저버리고 파괴했다! 사람을 보내 은밀하게 의제를 살해했다!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한 죄도 모자라 이미 항복한 자를 죽이고 정사를 공평하게 처리하지도 않으며 약속도 저버렸으니 천하가 용납하지 못할 대역무도한 죄인이다! 나는 정의로운 군대를 일으켜 제후의 군대와 함께 천하의 대역죄인을 정벌하겠노라! 굳이 일대일로 도전할 까닭이 무엇인가!

유방이 쏟아내는 죄목에 화가 끝까지 치민 항우는 당장 숨겨놓은 쇠뇌를 꺼내어 장전했다. 서로 대화하기 위해 몇 사람의 장정이 목청을 돋우어야 하는 거리였다. 그 거리를 단숨에 좁힌 항우의 화살은 유방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유방은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허리를 굽혀 발을 문지르며 말했다.

-저 대역죄인이 내 발가락을 맞혔다!

유방의 진영에서 크게 비웃는 소리가 항우의 진영으로 울려 퍼졌다.

유방은 항우와의 대결에서 내내 약세였다. 항우와 일대일로 맞서면 당장 끝장이 나는 형국이었다. 유방이 내세운 죄목이란 것이 항우로서는 승복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항우 군대의 승리가 없었다면 제후연합군의 지금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유방이 보따리 내놓으라는 생짜를 쓰는 것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항우가 쇠뇌를 쏴 버렸다. 유방을 맞출 자신도 있었다. 유방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목숨을 내놓고 항우의 성질을 돋운 것이다. 화살을 맞은 충격을 무릅쓰고 허리를 굽혀 쇼를 하는 것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산을 뽑을 혈기 방장한 항우가 산전수전을 겪으며 경륜을 쌓은 유방의 노련함에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3. 주창과 유방의 대화

주창은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과 같은 고향 사람이다. 유방이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킬 때 그도 함께 나섰다. 그 후 주창은 늘 유방의 뒤를 따르며 항우와 싸웠다.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 고조가 되었고, 주창은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는 강직한 성품이라 바른 말을 하는 신하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고조가 척부인을 옆에 끼고 노닥이고 있는 형국에 주창이 들어섰다. 고조의 모습을 본 주창을 뒤돌아 물러났다. 고조가 뒤쫓아 와 서 그를 잡고 말했다.

-나는 어떤 임금이냐?

-폐하는 거얼...주와 다...으름 없는 폭군이십니다.

고조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주창을 내치지는 못했다. 시간이 흘러 고조는 자신이 아끼는 척부인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기 위해 태자를 폐위시키려고 했다. 반대하는 신하들이 나섰지만 무시했다. 고조는 주창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신은 마..말은 자..알 못하지만 그..것이 오..옳지 않다는 것은 아..알고 있습니다. 신은 폐...하의 며..명려..령을 드듣..지 않겠..습니다.

워낙 중차대한 일에 격앙된 주창은 더더욱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고조는 그런 주창의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유방이 고향의 주막에서 브아피 고객 노릇에 만족하며 살다 천하가 다시 재편되는 때를 만났고 사람이 달라졌다. 주창은 유방이 주막의 한량에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그 시간을 함께 했다. 서로에 대해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는 세월이었다. 그러니 노련한 유방이 강직한 주창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주창에게 물어본 것은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자라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충신의 의중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짐작은 했으되 정직한 주창의 대답을 재확인하자 겸연쩍은 웃음으로 모면하는 유방이 눈에 선하다. 결국 유방은 태자 폐위 건에 대한 논의를 중단시킬 수밖에 없었다.

 

 언중유향(言中有響), 말에는 울림이 있다. 순우곤은 왕의 심기를 살피면서도 꼭 해야 할 말은 놓치지 않는 기지가 돋보인다. 노련한 사람은 자신의 말로 인해 벌어질 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진다. 유방은 항우를 자극한 후 목숨을 걸고 그 결과를 감당해냈다. 주창의 말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만큼 유방과의 믿음이 돈독하기도 했다. 믿음에는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이렇게 세 사람의 말은 각각 상황은 달랐지만 상대에게 울림을 주어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가 회의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저들의 말처럼 드라마틱한 순간을 연출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사안에 대한 지난한 이해의 과정을 거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그조차도 소수의 사람이 계속 말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대략 난감이다. 나로 말하자면 어떤 때는 쓸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우물쭈물하다가 회의 시간을 다 보낸다. 혹은 상대와 다른 생각을 밝힌다고 말에 힘을 주다가 언성이 높아져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의에 갈 때 마다 언중유향의 순간을 기대한다. 각본 없는 드라마야말로 제대로 울림을 줄 테니까.

댓글 4
  • 2019-11-12 17:45

    부정적인 정념을 일으켜 사태를 악화시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을 감동시키는 울림이 있는 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울림이란 것이 혀끝에서의 말재간이나 기술로서의 수사학이나 웅변술만으로는 안될 것이 분명할 터.
    골계도 노련함도 도무지 역부족인지라, 차라리 주창의 '말 더듬기'를 배우고 싶군요.

  • 2019-11-14 15:10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속이거나 할까?엔
    정말 말 잘하는 기술이 필요할겁니다.
    미사여구가 필요없는 신뢰가 쌓이는 관계가 먼저인 것 같습니다.
    그런 관계에는 말 더듬이의 향기도 맡을 수 있는 코가 아닌 귀가 있는 것 아닐까요?

  • 2019-11-14 21:28

    순우곤도 대단하군요. 필요한 말, 하고싶은 말을 위해, 잘골라내는 솜씨라니, 전 거기 가기 전에 상대방 화를 먼저 돋우기 일쑤라서...

  • 2019-11-14 23:06

    언중유향에서 향은 깊은 신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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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4] 희소성이 없는 세계   최근 뉴스에서는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생활고를 견디기 어려워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극이다. 비보가 전해질 때마다 다들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조금 지나면 잊혀져버리고 또 다시 비극이 되풀이 되는 현실이다.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면 극단적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라고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을 것이 뻔히 짐작 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비슷한 곤란함이 있다. 선물경제니 호혜적인 관계니 하는 것들은 여유가 있을 때 이야기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요즘 같은 때엔 한계가 있다는 거다. 주어진 게 한정된 세상, 치열한 경쟁 없이 제 몫을 찾기도 어려운데 자기 몫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는 이야기엔 힘이 빠진다. 밑빠진 독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창고를 떠올릴 수는 없을까.   저절로 조절되게 내버려두라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자연의 아낌없는 베풂을 느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에게서 젖이 나와 아이를 키운다. 좀 더 크면 자연이 아이를 먹이고 성장시킨다. 프랑스 남부 로셀 마을 뒷산 양지바른 중턱에는 ‘로셀의 비너스’라 불리는 여성 신체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투박하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상이 떠오르게 하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아마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풍만한 가슴을 한 부조 속 그녀는 한 손에는 들소의 뿔을 들고 한 손은 아이를 밴...
뚜버기
2019.11.26 | 조회 449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기린
2019.11.12 | 조회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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