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8] 공유지는 살아있다   생소한 단어 ‘공유지’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 훅 들어왔다. 작업장을 만들고 일년쯤 지나서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느 날은 빵을 굽고 어느 날엔 미싱을 돌리면서 복작복작 거리다보니 공간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하나둘 늘어났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꿈들이 새록 새록 생겨나고 있었다. 청년들이 공연도 하고 아지트를 벌일 수 있는 곳,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더 많은 이들고 만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대한 꿈이 커져 갔다. 문탁네트워크 맞은 편에는 걸핏하면 간판이 바뀌는 음식점이 하나 있었다. 새로 개업하고 좀 지나면 문 닫는 날이 점점 늘어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그런 가게자리였다. 아마도 짐작컨대 넓은 홀을 다 채울 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차라리 영업을 안 하는게 덜 손해인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장사가 지지리도 안 되는 그 자리에 문탁의 세 번째 활동공간을 만들자고 누군가 제안했다. 보증금이며 공사비용까지 따져보면 이제껏 벌여온 일들과는 규모가 다른 일이 될 게 뻔했다. 월세며 각종 공간유지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도 넓은 공간에 마음껏 활동을 펼치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걸 상상하니 어떻게든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공간을 계약한 뒤 준비단계에서 마을카페, 마을쌀롱 등으로 칭해지던 공간은 언제부턴가 공유지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가을,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는 문탁네트워크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었다.     공유지 X – file   개업 이후 파지사유에서는 가지각색의...
뚜버기
2020.07.10 | 조회 575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 / 12화]     인문약방, 여기가 로두스다!     약사가 되기 싫었다 나는 약사라는 직업에 그다지 소명의식이 없었다. 약대 대신 미대에 가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그 어떤 과목보다 미술 시간에 집중했다. 미술로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 엄마가 권한 약대에 갔지만 미술은 내게 못다 이룬 꿈이었다. 약사가 되어서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미술을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실제로 스물아홉 되던 해에 국내 미술 대학원 두 곳에 지원했다. 한 곳은 무참하게 떨어졌고 다른 한 곳은 전문과 과정으로 합격했다. 서류전형인 곳에서는 인터뷰 내내 미술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받았고, 시험을 치른 곳은 탈락자가 한 명도 없어서 이건 뭔가 싶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유학을 가서 제대로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학비가 비싼 미국에서 공부할 방법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미국 약사가 되는 것 밖에 별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미국 약사 면허를 따겠다고 세 가지 시험을 패스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인턴 약사에 지원하는 등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들을 하느라 미국을 세 번이나 다녀 왔다. 결국 미국에 가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미술을 공부하려고 한 이유는 뭘까? 그렇게나 약사라는 일이 하기 싫었던 것일까? 한참 뒤에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생각해 보면 미술은 내게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변명’ 같은 것이었다. ‘미술을 하지 못해서 내가 불행하구나!’라는 생각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때면 떠오르곤 했다. 8년 전 오빠가 불의의...
[둥글레의 인문약방 / 12화]     인문약방, 여기가 로두스다!     약사가 되기 싫었다 나는 약사라는 직업에 그다지 소명의식이 없었다. 약대 대신 미대에 가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그 어떤 과목보다 미술 시간에 집중했다. 미술로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 엄마가 권한 약대에 갔지만 미술은 내게 못다 이룬 꿈이었다. 약사가 되어서 돈을 벌게 되면 그 돈으로 미술을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실제로 스물아홉 되던 해에 국내 미술 대학원 두 곳에 지원했다. 한 곳은 무참하게 떨어졌고 다른 한 곳은 전문과 과정으로 합격했다. 서류전형인 곳에서는 인터뷰 내내 미술 전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받았고, 시험을 치른 곳은 탈락자가 한 명도 없어서 이건 뭔가 싶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유학을 가서 제대로 공부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났다. 학비가 비싼 미국에서 공부할 방법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미국 약사가 되는 것 밖에 별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미국 약사 면허를 따겠다고 세 가지 시험을 패스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인턴 약사에 지원하는 등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들을 하느라 미국을 세 번이나 다녀 왔다. 결국 미국에 가지 않게 되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미술을 공부하려고 한 이유는 뭘까? 그렇게나 약사라는 일이 하기 싫었던 것일까? 한참 뒤에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생각해 보면 미술은 내게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변명’ 같은 것이었다. ‘미술을 하지 못해서 내가 불행하구나!’라는 생각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때면 떠오르곤 했다. 8년 전 오빠가 불의의...
둥글레
2020.07.02 | 조회 614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기린
2020.06.24 | 조회 642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올해 나는 길드다에서 <청년철학학교>를 시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동안은 문탁 프로그램에 길드다 청년들을 참여시켰는데 이제부터는 길드다에서 독자적으로 철학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피노자, 니체, 푸코, 들뢰즈, 논어, 장자를 기본으로 하여 최소한 각 1년씩 ‘제대로’, ‘빡세게’ 읽히리라. 하여 6년 정도가 지나면 사유의 ‘검은 띠’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파란 띠’는 딸 수 있게 훈련시키리라.        자, 그러면 올해는 작년에 이어 들뢰즈를 좀 더 읽혀야겠다! 청년들에게 제안했다. “작년에 『천의 고원』을 읽었으니 올해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 들뢰즈 책 몇 권을 더 읽자!” 그리고, 나의 제안은 공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청년들은 나에게 문탁의 커리큘럼은 너무 올드하다고, 자신들은 좀 더 최신 이론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헐~~ 얘들아 이 분들은 올드한 분들이 아니라 클래식한 분들이야. 그리고 원래 클래식은, 베토벤이 그렇듯이 당대엔 가장 신박한 스타일이었어. 그래도 청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신 청년들은 올해 ‘포스트 휴머니즘’을 읽겠다고 했다. 가져온 목록들을 보니 텍스트도 저자들도 낯설었다. 그래? 그럼 난 잘 모르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커리큘럼을 짜봐. 그렇게 <2020 길드다 청년강학원>이 만들어졌다. (청년들은 ‘철학학교’라는 이름이 ‘구리다’고 ‘강학원’으로 바꿨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건데^^) 첫 번째 시즌은 <미디어와 신체>라는 주제로 슈타이얼, 키틀러, 위베르만을 읽는단다. 얼핏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 세상에나 공지를 올리자마자 스무 명이나 신청을 했다. 심지어 서울 강북, 일산에서도 청년들이 왔다.     히토 슈타이얼    ...
  올해 나는 길드다에서 <청년철학학교>를 시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동안은 문탁 프로그램에 길드다 청년들을 참여시켰는데 이제부터는 길드다에서 독자적으로 철학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스피노자, 니체, 푸코, 들뢰즈, 논어, 장자를 기본으로 하여 최소한 각 1년씩 ‘제대로’, ‘빡세게’ 읽히리라. 하여 6년 정도가 지나면 사유의 ‘검은 띠’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파란 띠’는 딸 수 있게 훈련시키리라.        자, 그러면 올해는 작년에 이어 들뢰즈를 좀 더 읽혀야겠다! 청년들에게 제안했다. “작년에 『천의 고원』을 읽었으니 올해는 『안티 오이디푸스』를 읽고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 들뢰즈 책 몇 권을 더 읽자!” 그리고, 나의 제안은 공손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청년들은 나에게 문탁의 커리큘럼은 너무 올드하다고, 자신들은 좀 더 최신 이론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헐~~ 얘들아 이 분들은 올드한 분들이 아니라 클래식한 분들이야. 그리고 원래 클래식은, 베토벤이 그렇듯이 당대엔 가장 신박한 스타일이었어. 그래도 청년들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신 청년들은 올해 ‘포스트 휴머니즘’을 읽겠다고 했다. 가져온 목록들을 보니 텍스트도 저자들도 낯설었다. 그래? 그럼 난 잘 모르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커리큘럼을 짜봐. 그렇게 <2020 길드다 청년강학원>이 만들어졌다. (청년들은 ‘철학학교’라는 이름이 ‘구리다’고 ‘강학원’으로 바꿨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건데^^) 첫 번째 시즌은 <미디어와 신체>라는 주제로 슈타이얼, 키틀러, 위베르만을 읽는단다. 얼핏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 세상에나 공지를 올리자마자 스무 명이나 신청을 했다. 심지어 서울 강북, 일산에서도 청년들이 왔다.     히토 슈타이얼    ...
문탁
2020.06.20 | 조회 98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 / 11화]     현대판 만병통치약, 진통제     첫 직장인 종합병원에 다닐 때 동기 중 한 명이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해서 속으로 비난한 적이 있다. ‘아니 약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신이 공부한 학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왜 아픈데 참지?’ 난 이해할 수 없었고 되려 그녀가 무식? 해 보였다. 생리통이나 두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는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은 “약은 독이다”라는 원론적인 얘기였다. ‘참내! 그렇지 원래 약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잘 쓰여야 하는 거고 그래서 약학이 있는 거야!!!’ 속으로 외쳤다. 그러던 내가 최근 1~2년 동안 소염진통제를 한 알도 삼키지 않았다. 소염진통제는 감기 초기, 인후염, 염좌나 근육염 등 각종 염증과 두통, 치통, 생리통 등 각종 통증에 효과가 있고 활용도가 높아 약국에서 많이 팔리는 약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쉽게 또 자주 먹었던 약인데도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약 2년 전 독감 후 기관지염이 심하게 와서 병원들을 전전하다 너무 약을 많이 복용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부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니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그 양상도 대단했다. 엄청나게 가려웠고 긁으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합해졌다.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두드러기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한방과 양방을 함께 공부한 나로서는 간에 무리가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양의 약을 먹어서 몸에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단식을 했고 혈을 보충해주는 사물탕과...
[둥글레의 인문약방 / 11화]     현대판 만병통치약, 진통제     첫 직장인 종합병원에 다닐 때 동기 중 한 명이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해서 속으로 비난한 적이 있다. ‘아니 약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신이 공부한 학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왜 아픈데 참지?’ 난 이해할 수 없었고 되려 그녀가 무식? 해 보였다. 생리통이나 두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는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은 “약은 독이다”라는 원론적인 얘기였다. ‘참내! 그렇지 원래 약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잘 쓰여야 하는 거고 그래서 약학이 있는 거야!!!’ 속으로 외쳤다. 그러던 내가 최근 1~2년 동안 소염진통제를 한 알도 삼키지 않았다. 소염진통제는 감기 초기, 인후염, 염좌나 근육염 등 각종 염증과 두통, 치통, 생리통 등 각종 통증에 효과가 있고 활용도가 높아 약국에서 많이 팔리는 약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쉽게 또 자주 먹었던 약인데도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약 2년 전 독감 후 기관지염이 심하게 와서 병원들을 전전하다 너무 약을 많이 복용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부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니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그 양상도 대단했다. 엄청나게 가려웠고 긁으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합해졌다.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두드러기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한방과 양방을 함께 공부한 나로서는 간에 무리가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양의 약을 먹어서 몸에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단식을 했고 혈을 보충해주는 사물탕과...
둥글레
2020.05.21 | 조회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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