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11일차 _ 녹색 봉사

모로
2021-11-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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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교통 봉사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들 부모님들이 돌아가면서 일 년에 한 두 번씩 녹색 봉사를 한다.  

초등학교 부모들이 아침에 노란 조끼 입고, 깃발 들고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그거 말이다. 

1학년 때는 명칭이 '녹색 어머니회'여서 어느 시절 어머니회냐고 또 녹색은 왜 녹색이냐고 혼자 분기탱천했는데,

나같이 소심한 반항을 한 사람들이 많은지 2학년이 되니까 녹색 교통 (봉사)라고 명칭이 달라졌다. 

 

오늘과 내일, 내가 배정된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춥고 나가기 싫었다. 

왜 엄마들한테 (몇몇 아빠들한테도) 이런 귀찮은 일을 전가시키는 건가 투덜거렸다. 

그러다가 조금 늦었다. 

헐레벌떡 뛰어가서 손곡 초등학교 후문 앞에 섰다. 

내 눈에는 너무나도 짧아 보이는 신호등이었다. 여기서 이 깃발을 들고 있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마음 속으로 조금 욕했다. 

그리고 촛점 없는 눈으로 신호등을 보면서 깃발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아.. 이런 쓸모없어 보이는 일이, 쓸모 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들도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은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아이들은 전봇대 처럼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무단 횡단을 멈추었으며, 과속을 하던 노란 버스도, 내 깃발을 보고 조금 속도를 줄였다. 

후문에 서 계시던 경비 아저씨는 들어가는 모든 아이들에게 일일히 인사를 건네셨다. 그리고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가는 아이에게는 사탕을 나눠주셨다. 눈으로 아이를 살핀다는 것이 이런 일이구나. 비록 말을 걸지도 않고, 우두커니 서 있는 것만해도, 아이들은 어떤 보호를 받고 있는 거구나. 누군가가 내 아이를 이런 눈으로 한 번씩 살펴봐 주어서 지금껏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다. 마을이 아이를 키우듯, 우리 마을에도 서로의 아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내일도 녹색 교통을 해야하는데, 내일은 좀 더 아이들을 웃는 눈으로 서 있어야지!!

 

댓글 4
  • 2021-11-25 20:59

    애들이 크니 녹색 봉사  할수가 없네요.

    그땐 참  하기싫었는데. 지금은 조잘대는 꼬마들 보면 넘의 집 자식들인데도 귀여워요. 내일은 모로님이 미소 씨~~~~익! 

    • 2021-11-26 09:18

      남의 자식이 더 이쁜?? ㅎㅎㅎ

      오늘은 아이들이 별로 없는 자리인지 몇 명 안 지나가더라고요. 눈인사 아쉽!! ㅎㅎㅎ

  • 2021-11-26 18:09

    오호~~ 이것이 기호작용을 해석하는 해석체 모로? ㅋ

  • 2021-11-28 06:48

    녹색어머니...진짜 이상한 이름이었는데....이제 이룸이 바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