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일이 없는 추운 겨울에는 어떤 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한다. 일용직 잡부는 당장 내일, 일주일 뒤에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일이 생기면 비가 억수처럼 와도, 한파가 세상을 얼려도 일단 몸을 깨워 나간다. 유독 빠르게 추웠던 올겨울. 2주 동안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매일 160㎞를 운전하며 일터를 오갔다. 총 100평이 넘는 수십 마리의 앵무새 집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장님(?)이라 불리는 건축주는 취미로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나를 먹여살린 앵무새     2.   앵무새는 매달려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과연 열대 우림에 살던 앵무새들이 3.3㎡ 조금 넘는 감방 같은 개인실을 좋아할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우체국 5호 박스만 한 새장에 살다가 큰 집에 살면 좋은 건가.) 그리하여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철망으로 두르는 작업을 사람 네 명이서 1주일이나 했다. ​ 천장에 철망을 두르는 작업이 가장 고역이었다. 3m 높이 천장에는 폭 4㎝의 가느다란 각관*이 다섯 줄 깔려 있고, 내가 그 위에 엎드려 기며 철망을 방수 피스로 고정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철망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일이 없는 추운 겨울에는 어떤 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한다. 일용직 잡부는 당장 내일, 일주일 뒤에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일이 생기면 비가 억수처럼 와도, 한파가 세상을 얼려도 일단 몸을 깨워 나간다. 유독 빠르게 추웠던 올겨울. 2주 동안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매일 160㎞를 운전하며 일터를 오갔다. 총 100평이 넘는 수십 마리의 앵무새 집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장님(?)이라 불리는 건축주는 취미로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나를 먹여살린 앵무새     2.   앵무새는 매달려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과연 열대 우림에 살던 앵무새들이 3.3㎡ 조금 넘는 감방 같은 개인실을 좋아할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우체국 5호 박스만 한 새장에 살다가 큰 집에 살면 좋은 건가.) 그리하여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철망으로 두르는 작업을 사람 네 명이서 1주일이나 했다. ​ 천장에 철망을 두르는 작업이 가장 고역이었다. 3m 높이 천장에는 폭 4㎝의 가느다란 각관*이 다섯 줄 깔려 있고, 내가 그 위에 엎드려 기며 철망을 방수 피스로 고정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철망을...
문탁
2023.06.10 | 조회 490
인문약방 에세이
1.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가 세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 대차고 까다롭고, ‘집시의 음울함’을 풍기고, 탁월한 지성을 갖추었으나 세심하지 않고, 감성은 공격적이지 온화하지 않으며, 말투와 태도는 냅다 직설적이고, 우아함이나 겸손함 따위는 결여되어 있으며 아슬아슬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2쪽)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병원에 취직하여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녹록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는 주인공(차정숙)의 모습이 판타지 같지만은 않아서 공감하며 보고 있다. 나에게 주인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인물은 같은 과 선배이자 주인공 아들의 여자 친구 ‘소라’이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은 후배 교육에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jtbc. 닥터 차정숙. 인물 소개) 드라마 속 그녀는 주인공의 실수에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책은 온 병동에 울리고 이를 보다 못한 남자 친구(주인공의 아들)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고 조언하자 ‘나는 잘하고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의 전개 상 소라는 자신이 그렇게 다그치던 나이 많은 주인공이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텐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태도를 후회할 것인가? 그 상대가 시어머니인데’. 소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이불킥 하지만 ‘우리가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왜 나는 시어머니라고 해서 그녀가...
1.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가 세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 대차고 까다롭고, ‘집시의 음울함’을 풍기고, 탁월한 지성을 갖추었으나 세심하지 않고, 감성은 공격적이지 온화하지 않으며, 말투와 태도는 냅다 직설적이고, 우아함이나 겸손함 따위는 결여되어 있으며 아슬아슬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2쪽)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병원에 취직하여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녹록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는 주인공(차정숙)의 모습이 판타지 같지만은 않아서 공감하며 보고 있다. 나에게 주인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인물은 같은 과 선배이자 주인공 아들의 여자 친구 ‘소라’이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은 후배 교육에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jtbc. 닥터 차정숙. 인물 소개) 드라마 속 그녀는 주인공의 실수에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책은 온 병동에 울리고 이를 보다 못한 남자 친구(주인공의 아들)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고 조언하자 ‘나는 잘하고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의 전개 상 소라는 자신이 그렇게 다그치던 나이 많은 주인공이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텐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태도를 후회할 것인가? 그 상대가 시어머니인데’. 소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이불킥 하지만 ‘우리가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왜 나는 시어머니라고 해서 그녀가...
천유상
2023.06.07 | 조회 269
인문약방 에세이
  1.모범생 딸의 방황과 탐색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 엄마 입장에서는 27년간 모범생으로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딸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돕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다를 같이 떨어주고 미주알고주알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잘 말해주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도 나오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직장도 잘 다니는 딸이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주중에는 무역회사에서 퇴근하고 술 마시느라 연락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주말에도 2030등산동호회를 다니느라 또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는 딸이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모두 엄마 탓을 해대는 통에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은 고려하지도 않고 나는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라는 엄마 말을 듣고 그동안 애써 유지해오던 가면을 이제야 깬 것 같아서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나래가 공부 못 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네.“ 중학교 1학년 때쯤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듣고나서 나는 줄곧 반 1등의 모범생 모드를 약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험 때 잠깐의 벼락치기가 아닌 1년을 공부해야 하는 고3때 나는 오히려 한,중,일 드라마에 빠지고 친구들을 꼬여내어 노래방에서 놀며 보내다 당연히 명문대는커녕 서울의 4년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딱히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수는 하기도 싫었으면서, 당연히 돌아온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1.모범생 딸의 방황과 탐색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 엄마 입장에서는 27년간 모범생으로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딸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돕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다를 같이 떨어주고 미주알고주알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잘 말해주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도 나오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직장도 잘 다니는 딸이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주중에는 무역회사에서 퇴근하고 술 마시느라 연락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주말에도 2030등산동호회를 다니느라 또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는 딸이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모두 엄마 탓을 해대는 통에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은 고려하지도 않고 나는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라는 엄마 말을 듣고 그동안 애써 유지해오던 가면을 이제야 깬 것 같아서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나래가 공부 못 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네.“ 중학교 1학년 때쯤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듣고나서 나는 줄곧 반 1등의 모범생 모드를 약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험 때 잠깐의 벼락치기가 아닌 1년을 공부해야 하는 고3때 나는 오히려 한,중,일 드라마에 빠지고 친구들을 꼬여내어 노래방에서 놀며 보내다 당연히 명문대는커녕 서울의 4년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딱히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수는 하기도 싫었으면서, 당연히 돌아온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나래
2023.06.07 | 조회 247
인문약방 에세이
새로운 계절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9년차이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우리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모두 성인이다. 두 아이가 독립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막내가 있으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갈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재하시며, 풍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늘 안정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서로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외형적으로 보기에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늘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불행을 예감하는 나름나름의 문제가 늘 잠복해 있음을 느껴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복한 가정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막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을 당신과 살아온 이전처럼 살라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었고, 홀가분했고,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날개 달겠네”하며 빈정거리고는 곧 잊어버렸지만,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음을 예감했다....
새로운 계절   남편과 결혼한 지 올해로 29년차이다. 그동안 떨어져 지낸 적도 거의 없다. 우리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오래 함께 살았다. 우리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고 이미 모두 성인이다. 두 아이가 독립했으며,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한 막내가 있으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갈 길을 찾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별 탈 없이 자라주었고,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재하시며, 풍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늘 안정되어있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에 충실했고, 커다란 결격사유가 있다고도 여기지 않으며 서로가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처럼 외형적으로 보기에 우리 가정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남편도 늘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불행을 예감하는 나름나름의 문제가 늘 잠복해 있음을 느껴왔다. 그러고 보면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복한 가정은 다른 누군가의 불행이나 희생으로 지탱되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막내가 성인이 되고 집을 떠나 도시로 가던 날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역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의 30년을 당신과 살아온 이전처럼 살라면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었고, 홀가분했고,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이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날개 달겠네”하며 빈정거리고는 곧 잊어버렸지만, 나는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계절이 도래했음을 예감했다....
윤아
2023.06.07 | 조회 270
인문약방 에세이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은 16년 동안 거식증을 겪어낸 자신의 이야기를 한올 한올 끄집어내어 정리한 글이다. 신체의 모세혈관 한가닥까지 도려내어 해부하듯이 그녀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하고도 심도깊은 감정과 욕망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직조하여 우리에게 펼쳐 놓는다. 그녀가 선택한 ‘허기’의 키워드는 원하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욕망과 죄책감, 욕구의 솟아오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참혹한 세계에 대한 공포. 이런 양가적 감정 사이에 자리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녀에게 배고픈 상태의 유지는 아우성치는 원함을 걸어 잠그는 열쇠이자,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외부적 증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거식증’의 극단까지 끌고 간 그녀의 강박스러움과, 그 속에서 복잡 다양하게 얽혀 있는 욕구들, 감정들의 이야기를 언어로 풀어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왜 ‘허기’를 욕구했는가? 라는 질문은 어머니와의 애착관계, 태생적 기질은 물론, 시대가 요청한 여성에 대한 억압까지 파헤치기에 충분했다. 개인이 신체에 가한 자해적 억압은 거대한 진실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놓쳤던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원한다’는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의미이다. 나의 감정을 풀어내어 언어로 옮겨 놓는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포용하며 타인과 연결하는 고차원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이 작업의 작은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불안의 내면화 30대 초반부터 거의 십년 동안 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심장이 미칠 듯이 빨리 뛰고 정신은 아찔하여 죽을 것만 같았던 경험들은 삶이 곧 지옥이 되는 순간들을 선물했다. 흔히 잘...
꿈틀이
2023.06.07 | 조회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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