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날개없이 추락하기

문탁
2023-06-10 05:23
500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일이 없는 추운 겨울에는 어떤 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한다. 일용직 잡부는 당장 내일, 일주일 뒤에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일이 생기면 비가 억수처럼 와도, 한파가 세상을 얼려도 일단 몸을 깨워 나간다.

유독 빠르게 추웠던 올겨울. 2주 동안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매일 160㎞를 운전하며 일터를 오갔다. 총 100평이 넘는 수십 마리의 앵무새 집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장님(?)이라 불리는 건축주는 취미로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나를 먹여살린 앵무새

 

 

2.

 

앵무새는 매달려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과연 열대 우림에 살던 앵무새들이 3.3㎡ 조금 넘는 감방 같은 개인실을 좋아할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우체국 5호 박스만 한 새장에 살다가 큰 집에 살면 좋은 건가.) 그리하여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철망으로 두르는 작업을 사람 네 명이서 1주일이나 했다.

천장에 철망을 두르는 작업이 가장 고역이었다. 3m 높이 천장에는 폭 4㎝의 가느다란 각관*이 다섯 줄 깔려 있고, 내가 그 위에 엎드려 기며 철망을 방수 피스로 고정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철망을 고정시키면 엎드려 기어 다니면 되지만, 둘둘 말린 철망을 펴기 위해서 첫 줄은 어쩔 수 없이 얇은 각관을 밟고 피스 몇 개를 박아야만 한다.

 

웬만한 높은 곳은 수없이 걸어 다니는 직업을 가져서 감각이 무딘 편인데 그날은 좀 겁이 났다. 밟을 곳이 너무 얇고 출렁거렸다. 겁이 나면 몸이 굳고, 내 발과 손의 위치가 정확하게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 각관이 아닌 철망을 밟았고, 아주 아끼는 내 드릴은 추락하여 목이 부러졌다. 나도 같이 추락하다가 가까스로 4㎝ 짜리 각관에 몸이 걸렸다.

 

계속 춥다가 날이 풀린 어느 날, 앵무새 집을 짓다가 죽을 뻔했다.

 

 

 

▲목이 부러진 내 드릴.

하지만 이것은 ‘독일산 명품’으로 소개되는 드릴이라, 내 과실로 인한 파손이어도 3년 간 무상 AS가 된다.

 

 

*각관(角管, square-shape steel pipe): 내부에 빈 공간이 있고 단면 모양이 네모난 건축용 쇠파이프.

 

 

3.

 

사고와 사건은 생각날 때마다 돌이켜 볼 수 있어야 다시 일어날 확률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장에서 다치거나, 다칠 뻔하거나, 죽을 뻔할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는 편이다. 어떤 날은 손에 피가 흐르는 사진을 찍어 둔다. 어떤 날은 SNS에 글로 투정을 부린다. 실은 투정이라기보다는 사실 묘사에 가까운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이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건 흔한 경우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고맙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반응이 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현장은 안 가면 어떻겠냐”와 같은 말들이다. 위로받고 싶어서 떠들면서, 동시에 이런 말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도 참 이상한 놈이다.

이 흔하고, 당연한 반응이 왜 따뜻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내일 또 같은 곳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올라가서 피스를 박아야만 하기 때문일까. 실은 스스로가 제일 겁이 나고, 조심하고, 가기 싫은데 그 마음은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현장이 위험한 게 내 잘못인가. 위험한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기면, 나는 조금 덜 위험한 일만 골라서 하면 되는 건가.

 

 

4.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며 틈틈이 같이 일하는 기술자 한 분이 있다. ‘노가다’를 한 지 20년이 넘은 베테랑이다. 현장에서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내가 작업 반장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면 그와 대판 싸워 주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깔끔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도 잘 가르쳐 주는 좋은 사람이다. 위험한 공정들을 시작할 때마다 그는 큰소리로 외친다.

 

“죽으면 각자 자기 책임이다. 아무도 책임 안 진다.”

활동가 일을 그만두고 막 현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현장에서 다치거나 죽으면 당연히 일을 시킨 사람 책임인 것 아닌가. 이런 가스라이팅이 어디 있나.’

그런데 5년간 현장에서 수없이 다치고, 죽을 뻔하고 나서야 그가 그렇게 큰 소리로 경고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건설 현장은 매우 위험하다. 손이 찢어지면 상처가 괜찮아질 때까지 일을 못 나가는 내 손해요, 눈에 쇳가루가 들어가서 눈을 못 떠도 내 책임이다.

나의 위험을 기꺼이 책임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저 말을 매번 외치는 것은 아주 살뜰하고 따뜻한 책임이었다.

 

 

5.

 

고용 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일하다가 사망한 노동자가 644명이라고 한다. 이 중 절반이 넘는 328명이 건설 현장에서 죽었다. 중대 재해 처벌법이 해당되는 사업장에서의 사망자는 2021년보다 7명이 늘었다고 한다. 노동부가 ‘파악한’ 사망자만 644명이다.

 

안전 고리도 하나 없이 공중에서 하우스 파이프를 밟고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외국인 노동자들, 하이바라고는 구경도 못하는 5인 이하 소규모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 통계에 없다. 단가는 미쳤고 마감 기한은 촉박해, 밤을 지새워 일하는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죽고 다친 기록은 담겨 있지 않다.

 

이 부실한 통계는 빠른 시일 안에 ‘중대 재해 처벌법이 과연 필요한 법인가?’라고 딴지를 거는 자본주의의 근거가 될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어차피 위험한 건 위험한 거니 그만큼 돈을 더 주면 되는 거다. 일어날 사고는 일어난다.’라는 논리만큼 정확한 말이 없지 않은가. 이 논리를 펴는 이들은 말할 것이다.

 

“사망 사고를 막는 데 중대 재해 처벌법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세상이 아주 느려지기를 바란다.

지하철이 1분도 늦어지면 안 된다고, 그래서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행위는 불법이라고 말하는 서울시장이 판을 친다. 국회는 2024년 1월에야 5인 이상 사업장 및 건축비 규모 50억 미만 건설 현장에도 중대 재해 처벌법이 적용되도록 만들었다. 이런 정치를 지지하고 있는, 중독 같이 풍요롭고 빠른 세상은 끊임없이 사람을 죽이고 차별을 만들어 낸다.

건설 현장도 서울 지하철도 이미 너무 빠르고 위험하다. 이 속도가 모두 비용이 되고 차별이 된다.

추락하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을 지시받았을 때에는 못하겠다고 연장을 던지고 나올 수 있는 일터가 필요하다. 물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조치들이 늘어나 쉽게 부술 수도, 만들 수도 없는 사회적 약속 또한 필요하다. 일용직이 매일 목숨을 걸고 어제 해 본 일과는 또 다른 일을 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간절히 필요하다.

1초도 안 되는 추락의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든다.

‘아 XX, 돈이 뭐라고, XX 내가 왜 여기 목숨을 걸었나.’

 

 

▲ 추락사 위험과 함께했던 일터

 

 

*해당 통계는 고용 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 재해 현황 부가 통계-재해 조사 대상 사망 사고 발생 현황〉(2023. 01. 19.)이다. 관련 내용은 이 기사를 참고했다.​

 

 

 

 

 

 

 

 

 

 

*이 글은 <아젠다 2.0> (바로가기)에  2월20일자로 업로드된 글입니다. <인문약방>은 아젠다 편집팀과 글쓴이 남어진님의 허락을 받아 앞으로 한달에 한번  <남어진의 현장분투기>를 연재합니다.  아울러 <아젠다 2.0>에는 <길드다>였던  차명식님과 김지원님의 연재글을 비롯해 올해부터 새롭게 필진에 합류한 스페인의 김해완님과 영국의 데이빗님의 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청년들의 담론생산의 장 <아젠다2.0>에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댓글 3
  • 2023-06-10 16:31

    저도요.. 세상이 아주아주 더 느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속 속도가 더 늦춰져야 그게 더 진실한 게 되겠지요?
    어진님의 글 아젠다에서 읽을 때도 참 좋았는데, 여기서 읽으니 더 차분하게 읽히는 건 뭔일이래요?하하하

  • 2023-06-11 14:35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
    아젠다에서도, 문탁에서도 2번 만났네요.
    어진씨의 눈빛도 생각나구요.

    위험한 공정을 시작할 때 “죽으면 각자 자기 책임이다. 아무도 책임 안 진다.”는 각성의 목소리가 살뜰하고 따듯한 책임이라는 말이 정말 현실의 반영이라서 아프기도 하구요.
    안전하게 일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각성해봐야 할 것 같아요. 고마워요~~~~^^

  • 2023-06-12 08:13

    어진의 글을 매달 읽게 되겠군!! 기대됨~

인문약방 에세이
      삐침과 빡침 : 마을에서 돌봄을 실천한다는 것은     김윤경       새로운 상상계:시민적 돌봄·난잡한 돌봄   나는 작년에 문탁네트워크에서 돌봄을 공부했고, 올해는 양생을 공부한다. 작년 ‘나이듦’세미나에서 읽었던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중 전희경의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받기」 는 나에게 새로운 개념을 선사했다. 바로 ‘시민적 돌봄’이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돌봄을 발명해낸 개념이다. 이 새로운 돌봄관계는 ‘가족 돌봄’을 넘어서고, ‘서비스’들과는 다른, 다치고 아프고 늙고 언젠가는 죽어가는 취약한 존재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연루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의존’이라는 조건을 기본으로 한다. 전희경은 이 보편적이면서 불가피한 공동의 운명을 ‘시민적 돌봄’이라고 명명한다. 감정이 있고 취약하며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다정한 존재로서의 ‘시민’을 상상해보라고 말이다.   또 올해 양생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읽은 『돌봄 선언』에서는 ‘난잡한 돌봄’이란 개념을 나에게 선사했다. 그 개념은 1980~1990년대 에이즈 인권운동 액트 업 활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의 에세이 「전염병 중에 난잡할 수 있는 방법」에 근거를 둔 것이다. 에이즈 유행의 원인이 게이들의 성적 난잡함에 있다는 주장에 그는 게이들의 성 문화의 난잡함은 ‘실험적’인 성적 행위를 배가했음을 의미한다고 응수했다. 그는 난잡함이라는 개념을 ‘가벼운’ 또는 ‘진정성 없는’이라는 의미가 아닌 게이들이 서로에 대해 친밀감과 돌봄을 다양화하며 실험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난 친밀감으로 많은 관계들을 교차하며 난잡하게 돌봄을 실천하자고, 다정하면서 강한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을 돌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올해 초, 한 마을 모임에 참석했고, 다행히 정치적으로 견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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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7.02 | 조회 221
일상명상
  버섯에 빠지다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장마에 가슴이 두근두근   장마가 시작되었다. 덥고 습하여 불쾌지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장마가 싫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격하게 장마시즌을 반기고 있다. 숲에서 버섯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작년 봄 내내 탄천변에서 풀꽃을 탐색하던 내가 여름 장마가 그친 뒤 뒷산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버섯에 눈이 갔다. 그 뒤로 산에 갈 때마다 눈을 땅바닥에 두고 버섯 찾는 재미에 푹 빠지고야 말았다. 버섯 도감을 샀고, 산책을 다녀 오면 도감을 뒤지며 내가 본 버섯과 비슷한 버섯 그림을 찾고 이름을 확인했다. 도감에서 찾지 못하면 인터넷을 뒤졌다. 버섯 이름을 하나 둘 익히니 버섯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양도 재미있는 방귀버섯이며, 닭다리 버섯이며 말불버섯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유레카’를 외쳤다. 십년 넘게 뒷산 산책을 다니면서 그동안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버섯과 갑작스레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자 버섯이 사라졌다. 봄이 오면서부터 은근히 버섯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더워지면서부터 마치 아열대성 기후의 스콜처럼 갑작스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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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7.01 | 조회 414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2023년 2월20일에 강정으로 이사를 왔다. 이우중학교를 가기 위해서 동천동으로 이사를 했으니, 약 10년만에 동천(고기)동을 떠났다. 10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지겹겠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하겠지만, 나는 지겹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 기간 마을에 머무는 일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오래된 친구들과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한다는건 때때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떠나가는 이들을 많이 봐왔고, 그들을 보내주는 건 나에게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피스파인더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22년4월부터 3개월짜리 강정살이(피스파인더)를 시작했다. 그게 강정을 처음 만나게된 시작이었다.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반대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평화운동을 하는 지킴이들이 살고 있다. 해군기지는 이미 지어졌지만,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며, 해군기지를 만들때 폭파시킨 구럼비바위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전쟁을 멈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살고있다. 매일 아침에는 백배, 11시에 미사, 12시에는 인간띠잇기를 하고, 매일 점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삼거리식당이 있다. 그렇게 지킴이들은 11년째 강정을 지키고있다. (강정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얼마전에 나온 <돌들의 춤>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6월18일, 강정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제주시에서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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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2023.06.25 | 조회 390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7월 9일     작년 여름, 새벽이 잔디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2022년 7월 9일. 그날은 새벽이의 세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첫 돌봄을 며칠 앞두고 새벽이생추어리 인스타 계정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 다가오는 7월 9일은 새벽이의 세 번째 생일입니다! 새벽이는 종돈장에서 구조되어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만, 새벽이와 같이 태어난 돼지들은 생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새벽이 역시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돼지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서 새벽이의 삶은 매일매일이 투쟁입니다. 그 매일의 시간이 쌓여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새벽이가 살아낸 날들을 기억하며 이 땅에 사는 돼지들도 생일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사전에 새벽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크루'가 결성되었다. 크루들은 감자 케이크와 미강 미역국을 비롯한 음식들로 새벽이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그리고 생일날 이른 아침, 크루들은 새벽이생추어리에 가서 생일 축시를 낭송하고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주었다. 나는 같은 날 저녁에 처음으로 새벽이, 잔디와 만났다. 처음 본 새벽이의 모습은 위엄이 넘쳤고, 식사를 마치고는 더위를 피해 진흙탕에 몸을 풍덩 담갔다. 잔디는 만나자마자 슬금 슬금 다가왔고, 나는 미리 준비한 토마토를 잔디 입에 쏘옥 넣어주었다. 그렇게 돌봄이 시작되었다. 그날부터 매주 새벽이, 잔디를 만나왔다.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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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
2023.06.20 | 조회 393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먼불빛
2023.06.20 | 조회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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